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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08화 (1,20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08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1)

모든 것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아마 나뿐만이 아니라 다른 이들 역시 이 갑작스러운 광경을 비현실적이라고 느끼고 있을 것이다.

갑작스레 천장이 꺼지며 노을이 가라앉는 것도, 노을빛 날개로 몸을 감싸며 조용히 고개를 드는 것도, 순간적으로 파악 날개를 펼치며 주변을 둘러보는 것도, 무엇 하나 현실적인 것이 없었다.

정리되지 않은 장발이 얼굴을 가리고 있어 제대로 녀석이 보이지 않았지만 날개를 펼치는 바람에 의해 김현성의 얼굴이 잠깐 드러난다.

잠깐 공중으로 치솟아 올랐다가 가라앉는 머리카락의 아래로는 일그러진 표정이 자리해 있었다.

사방으로 흩날리고 있었던 노을빛의 깃털 역시 천천히 떨어지고 있다.

이상적인 등장 씬은 아니다.

단순히 하늘에서 떨어졌을 뿐이었으니까.

하지만 김현성 주변에 감도는 깃털이나 녀석의 표정, 얼굴, 행동 같은 모든 것들이 갑작스러운 놈의 등장을 분위기 있게 만들어주고 있었다.

최종 보스는 이래야 한다는 듯한 모습으로 분위기를 잡는다.

조금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이 있었다면….

‘얘… 왜 이렇게 상했어?’

애가 조금 상해버렸다는 것.

마치 갈기처럼 기르고 있는 장발을 둘째 치고라도 궁지에 몰린 것 같은 눈빛이 눈에 띈다.

실핏줄이 터진 것마냥 붉게 물들어 있는 눈과 불안하게 떨리고 있는 동공, 초조해 보이는 입 모양과 간헐적으로 떨리고 있는 손.

언제나 변함이 없었던 체중에도 변화가 있었는지 살이 조금 빠진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구속구만 채워놓으면 병동에 수감된 사이코패스 정신병자처럼 보이기 충분한 모양새에 저도 모르게 할 말을 잃게 된다.

‘이해가 되긴 되자너.’

저 모습을 보고 어떻게 길드마스터가 광증에 시달리고 있다는 사실을 의심할 수 있을까.

구태여 이쪽이 씨앗을 뿌리지 않았더라도 이미 내부에서 이야기가 진행되고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

초월자의 몸으로 저런 변화들을 겪기도 쉽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조금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괜스레 반가운 마음과 약간의 측은한 마음을 애써 억누른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의 시선이 이쪽에 닿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이거 어떻게 반응하지.’

일단 깜짝 놀라는 모습을 보이는 것부터.

머리를 잠깐 부여잡고.

그리운 무언가를 봤을 때와 같은 반응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어째서 눈에 눈물이 고이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말이다.

이미 몇 번 써먹기는 했지만 쓸 때마다 통하니 별다른 선택지가 없다. 최소한 김현성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을 테니까.

어떤 경위로 이곳으로 찾아온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길드와 갈등이 있었던 것은 확실했다.

애써 그 마음을 숨기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녀석은 원체 생각이 많은 성격이었다.

머릿속에 계속해서 떠오르는 의문을 아무 생각 없이 잠재울 수 있는 성격은 아니다.

물론….

‘행동하지 못할 성격도 아니자너.’

한번 방향이 정해지면 은근히 불도저마냥 밀어붙이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녀석은 고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행동하기 위해 이곳에 있다.

“…….”

“…….”

당황스러울 정도로 조용한 장내.

녀석이 내려온 뒤로 몇십 초의 시간이 더 흘렀건만 멍하니 노을빛의 군주를 바라보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말 그대로 한낱 필멸자가 초월자를 눈앞에서 목도 했을 때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자연스러운 반응.

그야 저런 걸 보고 있노라면 현실감각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

가장 원초적인 두려움과 공포.

이해할 수 없는 무력감과 경외.

많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와중에 그들이 선택한 것은 몸에 각인되어 있는 기억이었다.

수백 번이나 읽고 행동했던 매뉴얼.

단순히 공포를 뿌리치기 위함이었을지도 모르겠지만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소리를 지르는 병력들의 모습이 눈에 띄었다.

공중을 유영하던 노을빛의 깃털이 오랜 모험 끝에 땅에 닿은 순간이었을 것이다.

“공격!! 공겨어어어어어억!!”

발악하듯 터져 나온 목소리에 “도망쳐”라고 말한 내 목소리가 묻혀 버린다.

“공겨어어어억! 공격해! 제기랄!!! 공격! 공격하라고! 제기랄!!!”

“저 괴물 새끼를 죽여! 제길! 제기랄!!”

“죽여!! 죽여어어어어어!!”

그리고

“벌레 같은 놈들.”

피슉. 피슉. 피슉. 피슉. 피슉.

콰드드드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노을빛의 깃털이 사방으로 쏘아져 나가기 시작했다.

“으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아아아악!”

“사제! 사제!!! 아아아아아아악!”

“보호마… 커헉… 법… 커헉…. 아아아악!!”

‘시바.’

시바.

그 참상은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다. 마치 인간이 벌레를 손가락으로 짓이기는 것 같았으니까.

정신을 차렸는지 한 걸음을 크게 내딛는 우효열.

“제길.”

꽃과 풍요와 함께 첫 번째 패턴을 받아내며 반격하려고 하는 윌리엄.

“도망쳐요!!”

“…….”

“도망치라고!!”

“네?”

“정신 차려요! 병력을 세 개로 분할합니다.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만 움직여요.”

“뭐?!”

“우효열 이 새끼야 내 말 들어! 내 말 들어요!”

‘일단 벗어나야 돼.’

최우선적으로 취해야 할 행동은 일단 이곳을 벗어나는 것.

당연히 수단도 존재했다.

‘21군단 수집품 4번 마동력위치전환기’

“하얀아! 하얀아! 하얀아! 하얀아!! 하얀아아!!! 한소라!”

기다렸다는 듯이 붉은색의 구체 수십 개가 노을빛의 군주를 향해 쏘아져 내린다.

귀를 울리는 폭음이 연속적으로 터져 나온다.

열기와 마력의 폭풍 때문에 수많은 파편들과 바람, 먼지들이 휘날려 제대로 시야를 확보할 수가 없을 지경.

물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정하얀과 한소라는 계속해서 김현성을 견제하고 있었고 녀석은 그것을 받아내고 있는 중.

폭격의 길이는 길지 않았지만 틈을 만들기에는 충분했다. 그 짧은 틈을 놓치지 않고 짧은 드라마까지.

“효열 씨. 윌리엄 님.”

“…….”

“뒤를… 뒤를 부탁드려요.”

“뭐?”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이기영 님.”

“마지막 부탁이에요.”

“너 이 자식 지금 무슨 말을!”

“이기영 님!!”

“이 개자식! 뭣 하는 짓이야!”

‘뭐 하긴, 너네 다른 곳으로 보내는 중이지.’

“제길!!! 지금 이게!!”

“이기영! 이 미친 자식! 지금 당장!”

‘얘네 난리 났네.’

그래도 어쩔 수 없어요.

최소 레벨은 맞춰야 하니까.

“…….”

차라리 잘된 것일 수도 있다.

‘분명히 있을 거야.’

생각보다 전투가 빨리 끝났어.

김예리, 안기모, 박덕구의 역할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김현성이 녀석들을 리타이어시키고 왔다기보다는 우회해 왔거나 잠깐 동안 전투불능 상태로 만든 이후 찾아왔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그 외 역할이 끝난 배역들은 어쩔 수 없지만 역할이 끝나지 않은 이들을 통해 빠른 스펙 업을 요구할 수밖에 없는 시점이었다.

“부파티장님… 잠깐!”

“이기영 님!”

“부파티장님!! 아앗! 안 돼! 안 돼에!”

사실 갑작스러운 성장이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입에 아무리 달콤한 음식을 많이 집어넣었다고 한들, 그걸 소화시키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으니까.

하지만 그것보다도 녀석들이 당장 스펙 업을 하는 것이 중요했다. 일단 스펙 업만 된다면 소화시키고 그걸 활용하는 건 내 역량에 달려 있다.

놈들이 그 힘을 제대로 다룰지 다루지 못할지에 대한 여부도 모두 내게 달려 있었다.

그리고 꽃기영은 그 분야에 특화되어 있기까지 하니 시도하지 못할 이유가 없었다.

‘안 할 이유가 없지.’

병력은 크게는 세 개로, 몇몇 특수 임무를 부여할 분대는 따로 빼서 이동시키고.

‘부상자들은….’

버린다.

“제길! 제기랄!”

천천히 흐릿해지는 남궁선, 임채령, 노담혜, 그리고 우효열.

이미 위치전환이 완료된 꽃과 풍요와 윌리엄.

마왕성이 무너지지 않을까 싶을 정도의 소리는 계속해서 들려오고 파편들은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다.

이쪽 역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차피 김현성의 목표는 이쪽이라는 걸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으니까.

우리 병아리들이 준비가 될 때까지 최대한 김현성과 녀석들을 떨어뜨려야 했다.

“돌… 돌, 돌아가야 되는데… 아, 아, 아닌데….”

“…….”

“오, 오, 오빠가….”

“…….”

“이이이익….”

이를 악물고 있는 정하얀과 한소라 덕분에 그나마 시간을 번 것 같았지만 저게 얼마나 갈지 보장은 없다.

이전에 비해 스펙이 너프된 정하얀과는 다르게 김현성은 이전의 힘을 거의 다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사용할 수 있는 힘의 자원에 리미트가 걸려 있다는 게 약점이기는 하겠지만 가지고 있느냐 가지고 있지 않느냐의 차이는 크다.

아니나 다를까 포화를 뚫어낸 김현성이 거침없이 이쪽을 향해 날개를 펼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죽이지는 않을 거야.’

녀석은 알아볼 게 많을 테니까.

단순히 한 걸음을 내디뎠을 뿐인데도 불구하고 녀석이 바로 내 앞에 있다. 분명히 방금 전까지는 저 멀리 있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나를 내려다보고 있다.

‘뭐….’

서로가 서로를 바라보며 묘하게 대치하고 있는 상황.

“대답해라.”

“…….”

“기영 씨는… 도대체… 어디에….”

선수 쳐 버리자.

질문이 먼저 날아 들어오기 전에 질문 내던지기.

“당신은… 누군가요.”

“뭐….”

“당신은… 도대체 누구죠?”

“…….”

“당신은 도대체 누군데… 아니… 당신이 정말 노을빛의 군주가 맞나요? 이 땅을 침략한… 21군단장이… 바로 당신인가요?”

“…….”

“어째서… 어째서 로헨을 내버려 두지 않는 건가요!”

“…….”

“폭력과 공포, 두려움을 이곳으로 들고 온 이유가 도대체 뭔가요. 이곳에 있는 이들이 로헨에서 살아가는 이들이 당신에게 무슨 죄를… 지었길래… 우리들이 무엇을 그리 잘 못했길래… 우리들을 핍박하시는 건가요?”

역할은 당연히 악마군주를 이해하지 못 하는 정의로운 성자의 역할이었다.

“악마….”

“…….”

“이 더러운 악마!”

존재 자체가 증오스럽다는 듯이 녀석을 노려보자.

압도적인 존재감과 공포 앞에 몸을 움직이지 못함에도 불구하고 꽃기영의 눈빛은 여전히 죽지 않았다.

절대로 두려움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듯 입술을 꽉 깨문다. 그래. 마치 대륙에서의 이기영처럼 말이다.

언제나 이기영이 그래왔던 것처럼 꿋꿋하고 용기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옳다.

“넌… 넌 기영 씨가 아니잖아.”

작은 중얼거림. 당연히 꽃기영은 녀석의 목소리를 듣지 못했다. 저 말에 대꾸하면 일이 귀찮아질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 기영 씨가… 아닌….”

두통이 왔는지 머리를 살짝 부여잡는 모습만 보더라도 얘가 지금 얼마나 멘붕이 왔는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거칠게 몰아쉬는 숨. 불안한 눈동자.

시선은 계속해서 내 눈동자에 고정시켜 놓고 있다.

“넌 기영 씨가 아니야. 확실… 확실해.”

자신조차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

여기서는 당찬 목소리를 다시 한번 내뱉어 줄 수밖에 없었다.

‘우리 예쁜 하얀이 주문 외우고 있지?’

“…….”

“…….”

“크윽… 죽이세요! 하지만 절대로… 절대로 제 신념과 로헨의 의지는 당신에게 굴복하지 않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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