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11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4)
“그 손 놔!!! 이 새끼야!!!”
‘내가 왜.’
“너 이 새끼!! 죽여 버린다!”
‘도대체….’
“으아아아아아아!!!”
계속해서 손을 뻗어보지만 몸은 점점 멀어진다. 이쪽을 낚아챈 용은 자신의 기수를 버려둔 채로 필사적으로 노을빛의 군주와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보였다.
힘없이 쓰러지고 있는 기사가 내가 보고 있는 모습, 순간적으로 머릿속에 불길이 치솟아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스스로의 감정상태를 통제할 여유도 생각도 없이 무작정 소리를 내지를 수밖에 없게 된다.
“이 새끼야! 너… 너! 이 새끼 찢어 죽인다! 그 손 놔!!”
녀석과 눈이 마주친 것은 당연지사. 이를 악문 채로 이쪽을 쫓아오려고 하는 김현성은 다시금 몸을 일으킨 기사에 의해 저지당한다.
머릿속이 혼란스러워지기라고 했는지 움직임에 망설임이 보이고 있었다.
어째서 김현성이 저런 반응을 보인 것인지 순간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깨달을 수 있었다.
녀석은 지금 이기영의 모습을 한 인간이 적대적인 모습을 보였다는 것에 대해 신경 쓰고 있다.
“해봐… 해봐! 이 겁쟁이 새끼! 쓸모없는 새끼! 해봐! 해보라고!! 이 추악한 새끼야! 나한테 했던 것처럼 똑같이 해봐! 죽여봐!”
자연스럽게 머릿속에서는 김현성이 제일 상처받을 수 있는 말들을 쏟아낸다. 다분히 감정적인 말들이었다.
“이 이기적인 새끼! 지밖에 모르는… 무능하고… 더러운… 쓰레기! 이 살인자 새끼!”
“아… 아….”
결국에는 흔들리는 녀석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로 우뚝 움직임을 멈춘 김현성이 한 발자국 두 발자국 물러서고 있었다.
커다란 충격이라도 받은 것 같은 모습에 한 번 더 입을 열려고 했을 때였다.
“이….”
“…….”
“이 멍청한 도마뱀! 이거… 안 놔?”
커다란 용이 바닥에 구멍을 뚫고 추락하듯 떨어져 내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김현성도 조혜진도 더 이상 보이지 않는다.
들리는 것은 계속해서 무언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와 정하얀의 마법, 내가 알 수 있었던 것은 아직까지도 전투가 지속되고 있다는 것뿐이다.
콰아아아아앙!!
“…….”
“이거 놓으라고!”
순식간에 마왕성의 바닥을 부수고 무작정 밑으로 향하는 녀석 때문에 정신이 없다. 온몸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크고 작은 충격들이 계속해서 몸에 누적된다.
빠르게 지나가는 주변 배경을 둘째 치고서라도 정신없이 이동하고 있는 멍청한 용 때문에 이쪽이 어디로 향하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추적을 피하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당연했다.
아직까지도 마왕성을 벗어나지 않고 있었으니까.
목적지가 어디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최소한 이 용은 마왕성의 밖으로 향할 생각이 없다.
‘어디로 가는 거지?’
이성이 돌아오기 시작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리라.
쿠당탕! 콰드드득! 콰아아앙!
“시바.”
마치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처럼 이 멍청한 도마뱀이 위아래로 흔들어 제끼고 있었으니까.
차가운 바람과 잔해, 먼지들을 뒤집어쓸 때마다 뜨거웠던 머리가 조금씩 조금씩 차가워진다.
심지어 이 미친 도마뱀이 욕탕이나 수로에 그대로 얼굴을 처박기까지 했으니 실제로도 머리가 차가워질 수밖에 없었다.
“흡!”
촤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찬물이 머리로 뿌려진 이후,
콰득! 콰득! 콰드득!
“멈춰 이 새끼야. 멈춰! 알겠으니까 멈추라고!”
쿠우웅.
녀석이 자리를 멈춘 곳은 나도 제대로 위치를 알기 힘든 장소였다.
“하우… 하아….”
‘여기 마왕성 안이 맞기는 한 건가?’
어두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실내, 지하 어딘가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너무 돌아온 탓에 장소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멍청한 용이 이곳에 오는 와중에 계속해서 뭐를 부수고 나오기도 했으니 내가 자리 잡은 이곳도 사실상 폐허나 마찬가지였다. 주변에는 벽이나 천장의 잔해들이 널려 있다.
성이 어떻게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있는지 신기할 지경.
‘그림자 복도?’
그림자가 넘실거리고 있는 파편이 많았으니 그림자 복도가 아닐까 하고 추측했지만 그것 마저 확실하지 않다.
저게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왔거나 아니면 이 도마뱀이 가지고 왔을 가능성도 충분했으니까.
천천히 손을 뻗자 그림자들이 스스로 의지를 가지고 있는 것처럼 주변에 모여든다.
이 도마뱀의 목적이 시간을 벌려고 하는 거라면 나쁘지 않은 선택인 셈.
물론 큰 효과가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지만 없는 것보다는 낫다.
몸을 숨기는 게 의미가 있는 행동인가는 둘째 치더라도 이쪽을 막아줄 수 있는 방패가 하나 정도는 있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으니 말이다.
“너.”
천천히 나를 이쪽으로 끌고 온 용을 바라본 것은 당연지사.
녀석이 천천히 굳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딱딱하게 굳은 녀석이 석상이 되어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렇게 녀석은 자신의 임무를 다했다는 듯 흩어지기 시작했다.
아까처럼 머리에 열이 뻗친다든가 하는 일은 벌어지지 않았다. 그냥 무감각한 눈으로 녀석을 바라보게 된다.
‘결계? 마법?’
도마뱀의 육체를 구성하고 있는 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그 구성요소 중에는 꽃기영에 대한 안배가 준비되어 있었던 모양, 누구의 안배인지도 대충 예상할 수 있었다.
이지혜 아니면 이기영일 것이다. 정황상 덤혜진이 나보다 먼저 온 것으로 판단되고 있었으니 최악의 상황을 고려해 미리 준비해 놨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제길….’
파르르 떨리는 손, 진정했다고 생각했지만 다시 한번 그녀에 대해 떠올리자 점차적으로 흥분하게 된다.
분명히 머릿속에서는 이상한 퍼즐 조각이 맞춰지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졌을 터, 실제로도 머릿속에 떠오르는 것이 많다.
[죄송합니다. 부길드마스터.]
[…….]
[죄송합니다.]
[…….]
[부길드마스터도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이곳은 언젠가 무너질 거예요.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고 마침 기회라고 생각했을 뿐입니다. 부길드마스터의 의견을 무시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그저 뭔가 나서서 하고 싶을 뿐이었습니다. 부길드마스터는 이미 많은 걸 희생해 왔습니다. 이 작은 장소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
[우리가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도 모두 부길드마스터 덕분입니다. 더 이상 기대는 것도….]
[꺼져. 넌 내 눈 밖에 난 거야.]
작은 갈등이나 거기에 얽힌 이야기들. 머릿속으로는 이랬을 거라고 전부 예상하고 있었던 이야기였다.
다만 실제로 느끼는 것과는 당연히 차이점이 있다.
[부길드마스터.]
[사실은 말입니다.]
[…….]
[사실은…..]
[…….]
[아니. 돌아온 이후에 말씀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부… 부길드마스터! 사실….]
[…….]
[아니… 기영아…. 나는… 나는 너를….]
[…….]
[……했… 같아.]
어디론가 빨려가듯이 사라져 버린 그녀의 마지막 모습까지.
그 바닷속에서 얻은 정보와 다른 점이 있다면 그 감정이 그대로 전해져 온다는 것뿐이었다.
그 외에도 다른 기억들이 계속해서 떠오른다.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었던 일들이나 대륙 던전화 때 일어났던 일들, 대부분 덤혜진에 관련된 이야기였다. 본래부터 내 기억이었던 것처럼 무척 생생하게 말이다.
어째서 잊어왔던 것인지 의심이 들 정도로 그녀와 관련된 이야기들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차곡차곡 쌓이고 있었다.
“시발.”
그렇다고 이기영으로서의 기억이 사라진 것도 아니다.
두 기억들이 계속해서 맞부딪치고 있었다. 머릿속에는 김현성에 대한 분노가 있었지만 분명히 그리움이 섞여 있다.
덤혜진에 대한 것도 마찬가지.
‘너희 둘이 거기서 연애했었어?’
라는 시답지 않은 생각이 들다가도 금방이라도 한편으로는 그 소꿉장난에 과몰입을 하게 된다.
꽃기영에게 연애감정은 없는 것 같았지만 그녀에 대한 애틋함은 계속해서 머릿속에서 지워지질 않고 있었다.
‘징그러운데.’
아마 조혜진도 돌아가는 꼴을 보고 있자면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을까.
덤기영과 덤혜진이 서로를 바라보며 입을 맞추는 장면을 실시간으로 보고 있다고 상상하니 왼쪽 팔에 닭살이 다 돋을 지경.
이기영으로서의 자아가 조금 더 주도권을 잡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아 비슷한 생각을 계속하고 있건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덤혜진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가 없었다.
떠올리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여기면서도….
‘시바….’
자꾸만 기억을 떠올리게 된다.
[기영아.]
‘…….’
[안 울었다고! 아! 안 울었다고!]
‘…….’
[부길드마스터… 다른 뜻이 있는 건 아니고… 혹시 오늘 약속 있으십니까?]
‘…….’
[기영아. 고마워. 그리고 미안해.]
과장하나 보태지 않고 사람이 어째서 미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시바… 시발.”
김현성에게 욕을 내지른 것은 분명히 이기영이 아니었다.
그때는 분명히 내가 아닌 상태였었다. 순간적으로 화를 주체하지 못했고 분명히 녀석에 대한 분노로 이성을 잃고 있었다.
눈앞에 덤혜진밖에 보이지 않았었고 그녀를 구해야겠다는 생각 외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다.
나조차도 스스로가 감정적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조금만 이성적으로 생각해도 그녀는 절대 죽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창을 든 기사가 사라진다고 하더라도 데미지는 입는 것은 오롯이 그녀의 육체뿐이다. 데이터를 다시 회수하면 덤혜진은 사라지지 않는다.
잠깐이었지만 그때의 자신은 분명 덤기영에게 쓰여 있었다.
‘조금씩 먹히고 있는 건가.’
꽃기영이 남아 있는 이기영의 기억을 조금씩 먹어버리고 있는 건가?
이 육체에 깃든 영혼이 수용할 수 있는 기억, 데이터의 총량이 존재한다고 가정한다면 그럴듯한 가설이 세워진다.
더미월드에서의 기억을 떠올리기 위해 이기영의 기억을 날려 버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리라.
더미월드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면 떠올릴수록 이기영으로서의 자아는 죽는다.
두려워하는 것이 맞을지 기뻐하는 것이 맞을지 갈피를 잡을 수 없었던 것은 당연지사.
이기영이고 싶기도 하지만 꽃기영이고 싶기도 하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상상도 할 수 없었던 이야기였다.
김현성에 대한 분노도.
창을 든 기사에 대한 애틋함도.
이기영과 이지혜 창조주에 대한 혐오도.
윌리엄과 우효열을 포함한 로헨에 대한 것들도, 가치관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매 순간 방향성을 잃는다.
“씨발… 씨이발….”
순간적으로 찾아온 공포와 두려움
“후우… 후우….”
혼란스럽다. 의미 없는 행동이라는 것을 깨닫지만 않았어도 머리를 부여잡으며 땅바닥을 굴러다녔을 것이다.
나는 누구지?
나는 누굴까.
자아 찾기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고 있었지만 스스로 질문을 던지는 것은 중요했다.
“혜진이를 회수해야….”
당장 생각이 나는 것은 그쪽.
“혜진이를 구해야 돼.”
머릿속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목적.
“돌아가….”
[꼭 돌아올게.]
“내가 있어야 할 곳으로….”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돌아가야 돼.”
[…….]
“나는… 돌아가야 돼….”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모두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야 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