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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15화 (1,21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15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8)

“너희들은 도대체 뭐냐고… 이… 이! 개새끼들아!!!!”

터져 나온 것은 어마어마한 악의, 이해할 수 없을 정도의 분노와 적개심이었다.

콰드드드드드아아아아아!

소리가 귀로 먼저 들려온 이후에는 마치 노을빛이 세상을 삼킨 듯했다.

피아를 구분하지 않는 공격, 한 번이라도 스치면 온몸이 분해되어 즉사할 수도 있는 마력들이 여기저기에서 미쳐 날뛰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폭력. 저런 건 1회 차에서도 느껴본 적이 없었다.

악마 대군주를 마주친 적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녀석은 다른 놈들과는 본능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깨닫는다.

본능이 경고하고 있었다. 저건 위험하다고. 지금까지 봤던 녀석들과 질적으로 다른 무언가라고.

머릿속에서 계속해서 울리는 목소리가 아니었다면 아마 진즉에 놈에게 공격을 내어주고 말았으리라.

이해하는 것보다 먼저 알게 된다.

‘흥.’

마치 언제든지 꺼내 볼 수 있는 기억을 꺼내 보는 것처럼 어디로 공격이 오는지 어떻게 회피해야 하는지 알게 된다.

신기한 일이었다. 요상한 방식으로‘연결’되어 있었다는 것도 그랬지만 이 전장의 상황을 완벽하게 읽고 있는 녀석에 대한 의문점이 들 수밖에 없었다.

‘진짜 괴물은 놈일지도.’

눈앞에 있는 노을빛의 군주는 필멸자를 벗어난 초월자다.

그 사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자신의 기준으로도 분명 이해할 수 없는 영역에 놓여 있는 괴물이었지만 이기영은….

녀석은….

이해하고 이해하지 못하고의 영역을 벗어났다.

‘말도 안 돼.’

등 뒤로 소름이 돋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노을빛의 군주는 완벽하게 폭주한 상황, 이미 이성을 잃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고 있었다.

노을빛의 군주 자신조차도 이해할 수 없는 폭주에 이 녀석은 모두 대응하고 있다.

무차별적으로 뿌려지고 있는 마력이 날아가는 위치와 속도, 녀석의 다음 행동까지, 마치 미래를 읽고 있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

틈이 없을 것 같은 검기의 파도를 계산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낸다.

슈퍼컴퓨터도 분석할 수 없는 것은 놈은 계산해 낸다.

꽃과 풍요의 패밀리아의 누군가가 암흑 방패 수문장을 쓰러뜨리고 얻은 방패를 펼치자 모든 인원들이 녀석의 뒤로 자리 잡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쾅! 하고 한 번 공격을 막는 것이 한계, 그것만으로도 방패의 내구도는 바닥이 되고 녀석의 온몸이 으스러지기는 했지만 원정대원들은 한 번 더 움직일 수 있는 힘을 얻는다.

-알고 계시겠지만 노을빛의 군주는 지금 폭주하고 있어요.

“…….”

“칫. 누가 그걸 몰라서!”

-제가 이 장소를 무대로 삼은 이유는 엄폐물이 많았기 때문이에요. 몸을 숨길 수 있고, 여러분들에게 직접적으로 공격이 닿기 전에 위력을 반감시킬 수 있는 방패가 하나 더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거든요.

‘노을빛의 군주가 폭주하리라는 것도 알고 있었나?’

-하지만 이 장소에서 머무를 수 있는 시간은 기껏해야 3분입니다.

“무슨 말씀인지 알 것 같군요.”

-네. 지형적인 이점을 살릴 수밖에 없어요. 적절한 예가 아닐 수도 있지만….

“네.”

-여러분들의 탱커는 바로 이 노을빛의 마왕성이에요. 쉴 시간은 없어요. 당장 움직이겠습니다.

“민첩함의 선율!”

“바람 발걸음!”

녀석의 통제하에 놓여 있는 것은 자신뿐만이 아니었다.

자신과 윌리엄에게는 직접적으로 연결을 시행했을 뿐이었다.

나머지 파티원들 역시 모조리 그의 영향권 안에 있다. 서로 다른 주문을 외우고 이해할 수 없는 타이밍에 방패를 뻗는다.

그 결과가 모조리 아군에게 유리하게 다가온다. 이제 막 쓰러뜨린 기둥이 몇 초 후에 다가올 공격을 막아내고, 무너진 천장의 파편들이 간발의 차로 파티의 길을 막는다.

“반격은… 우리 쪽에서 반격은 하지 않는 건가?”

나 역시 무언가를 보여주고 싶다.

당연히 그런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윌리엄 역시 아무 말 없이 그의 목소리에 몸을 움직이고 있었지만 눈동자에서는 조금씩 열기가 느껴진다.

싸우고 싶다.

놈의 눈은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분명히 1회 차의 녀석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나쁜 말로 표현하자면 녀석은 마치 기계 같은 녀석이었다.

차갑거나 냉정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미리 프로그램을 입력해 놓은 것 같았다.

여신의 뜻을 이행하기 위해 태어난 머저리 집단, 교리와 교단의 법외에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하는 놈.

그게 딱 윌리엄에 대한 평가였다. 놈은 발전할 수 없다고 분명히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제 자리일 거라고 생각한 적도 있었다.

놈은 변화를 싫어하는 것처럼 보였으니까. 놈에게는 언제나 완벽한 ‘신도’여야 한다는 강박관념마저 느껴졌다.

불의를 보고 참지 않고, 빛과 정의를 위해 싸우며, 대의를 위해서 검을 들어 올린다.

그것 외에는 아무것도 없는 녀석이었다.

실제로 놈은 1회 차에서 그렇게 죽었다.

여신을 부르짖으며 나가서는 안 될 싸움에 검을 들고 어처구니없게 죽었다.

당연히 머저리 같은 놈이라고 생각했다. 그것 외에는 놈을 표현할 말이 없었으니까.

먼 과거….

녀석의 그 알량한 신앙심에 의해 목숨 한 번을 구원받았던 것조차 잊고서 먼발치에서 그렇게 중얼거렸었다.

‘저 머저리 같은 놈이….’

지금의 녀석은 전과 분명히 다르다.

같은 사람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달라졌다.

“싸우고 싶어 한다고?”

정의나 알량한 교리 때문이 아니다. 놈의 눈 속에 들어서 있던 것은 분명히 정체를 알 수 없는 투쟁심이었다.

1회 차에 윌리엄을 알고 있는 녀석이라면 아마 자신과 같은 반응을 보였으리라.

그 윌리엄이 투쟁심이라니… 꽃과 풍요의 여신밖에 모르는 그 머저리가 누군가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니….

-물론 할 거예요. 다음 장소로 이동한 이후에….

“네.”

모두 다 녀석 때문일 것이다.

‘이기영… 넌 도대체….’

다음 장소에 도착한 이후에 윌리엄과 함께 발을 맞췄다.

-곧 올 거예요. 준비.

노을빛의 군주 역시 다음 장소로 발걸음을 옮긴다.

꽃과 풍요의 머저리와 함께 발을 구른 것은 바로 그때.

‘목.’

노린 곳은 당연히 급소.

‘읽혔나?’

한 발자국 뒤로 물러서는 것을 택한 군주가 너무나도 쉽게 공격을 피한 이후 검을 내지른다.

순식간에 검으로 모여드는 노을빛의 마력은 질릴 정도였지만 당황하지 않았다.

머저리가 방향을 뒤틀어 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몸을 던지듯 노을빛의 군주의 오른손을 쳐내자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불길한 마력이 허공을 가른다.

직격했다면 분명 죽을지도 몰랐을 공격이었지만 그 사실이 이 전투에 더욱더 집중하게 만든다.

윌리엄을 보조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지만….

인정하기는 싫지만 놈은 훌륭한 파트너였다.

녀석이 검을 휘두를 때, 나는 공격에 대비한다. 놈이 수비 자세를 취하면 그다음은 자신의 차례.

계속해서 계속해서 전장에 꽃이 그려진다. 허공을 수놓은 꽃은 어느새 점이 되어 대상의 안면에 틀어박힌다.

노을빛의 군주는 너무나도 쉽게 그 공격을 막아내지만 하단에까지 신경 쓸 여유는 없었던 모양, 땅을 기어가듯 검을 휘두르자.

‘됐다.’

놈이 날개로 바닥을 막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제길.’

알고 있었나?

“네놈들은 도대체 뭐야….”

“똑같은 소리를….”

“전투에 집중하십시오. 우효열.”

“네놈이나 집중해라. 나는….”

“그 눈은… 도대체 뭐냐고 이 개자식들!!!”

“흥.”

공격이 지나치게 얼굴 쪽으로 날아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고 있다면 기분 탓일까.

검을 휘두르는 것도 아니다. 계속해서 공격을 막으면서 손을 뻗고 있다.

그래. 마치 눈을 뽑을 것처럼 말이다.

“후우… 후우….”

“허억… 하아….”

쾅! 콰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득!

콰직!

윌리엄은 웃고 있었다.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인정하지.’

자신도 웃고 있었으니까.

‘그래 인정한다.’

즐겁다.

그 말밖에는 할 수 있는 말이 없다.

본래 전투를 즐기는 성격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이 전투는 무언가가 다르다.

-조심하세요.

“알고 있다.”

환희.

목숨을 잃을지도 모르는 전투에서 느껴진 감정.

포식자에게 피식자 둘이 달려들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전투는 즐겁다.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고 긴장감에 식은땀이 볼을 타고 흘러내리지만 웃음을 참을 수가 없다.

“하… 하하핫! 하하하하핫!”

-집중하세요.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 개자식!”

‘언제부터 변한 걸까.’

도대체 언제부터 자신이 이렇게 변한 것일까. 무엇이 변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우효열은 확실히 변했다.

귀찮다고 아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일들에 의미를 부여하게 됐다.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었다. 동료, 친구라는 걸 만들 수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누군가를 걱정할 거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이기영.”

녀석이 나를 변하게 했다.

절대로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크윽.”

“집중해라. 윌리엄.”

“당신이나.”

시야가 더욱더 환해진다. 극한까지 이른 집중력 때문에 이기영에게 의지하고 있었던 군주의 움직임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신체와 정신이 어떤 각성상태에 진입했다는 것을 뒤늦게 깨닫는다. 감각이 더욱더 예민해진다.

1회 차 때 있었던 초감각이 점점 더 깨어나기 시작했다.

몸이 뜨거워진다. 뜨거워지면 뜨거워질수록 온몸에 피가 끓어 오르는 듯한 감각이 느껴진다.

“이 눈에는 보여.”

‘효열 씨는 천재니까요.’

그래. 나는 천재니까.

윌리엄 이를 악물고 다시금 검을 뻗기 시작한다. 녀석 역시 조금씩이지만 성장하고 있었다.

필사적으로, 그 어느 때보다도 필사적으로 앞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투쟁심. 그리고….

절박함.

무엇에 대한 절박함인지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상관없으리라.

‘돌아갈 수 있을까.’

녀석이 없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던 것과 같았던… 아니,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그때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물론 걱정할 필요는 없다. 녀석은 언제나 약속을 지켰으니까.

콰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몸이 반대쪽으로 튕겨 나간다.

순간적으로 허용한 공격에 커헉 하는 소리와 함께 피가 울컥하고 떨어진다.

신성력이 곧바로 떨어져 몸이 회복되기는 했지만 피로는 남는다.

이렇게 버틸 수 있는 건 몇 번이 한계. 윌리엄 역시 나가떨어지는 게 눈에 보였다.

콰앙! 콰드드드드드!

-뭐 해요! 움직여요!

“제길.”

그렇게 다시 한번 몸이 어딘가로 처박혔을 때였다.

검을 쥐고 몸을 일으키려던 그때.

“어….”

-…….

익숙한 인형…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

-…….

속으로 아니라고 믿으면서… 괜스레 중얼거린다.

‘녀석은… 언제나 약속을 지켰으니까.’

온몸이 무언가에 의해 훼손당한 채로… 손을 모으고 있는 무언가가 눈에 보였다.

‘너는… 언제나 약속을 지켰으니까.’

“너는….”

너무나… 익숙한 외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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