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16화
노을빛의 마왕성, 마지막 이야기(9)
시야가 순간적으로 흐릿해질 정도였다. 지금 내가 무엇을 보고 있는 건지, 어째서 여기에 이런 게 있는 것인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신의 눈을 믿을 수 없었다는 것이 가장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현실을 회피하는 것은 아니었다. 단지 너무나 비현실적인 광경에 상황을 제대로 인지할 수 없었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일 것이다.
괜스레 잘못 본 게 분명할 거라고 다시 한번 고개를 들어봤지만 눈앞에 보인 광경이 달라질 리 만무했다.
여전히 실소를 불러일으키는 장면이 시야에 들어왔다. 남아 있는 것은 녀석이 인간의 형태를 하고 있다는 것 하나뿐이었다.
온몸이 칼로 난도질당한 듯했고, 심지어 불에 탄 것처럼 형체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피부는 잿빛이 되어 있었고 성한 곳이 하나도 없었다.
아니, 이미 상황이 일어나기 전에도 이 신체는 한계를 맞이했다.
거죽만 남은 피부와 심한 역병에 감염된 듯한 몸, 언제나 성스러운 빛을 받아들였던 신체에서는 참기 힘든 오물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녀석은 믿기 힘들 정도로 더러워져 있었다.
차마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다.
“너….”
-…….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것은 여전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이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것의 두 눈은 조금씩 반짝이고 있었다. 이미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 안에서 녀석은 조용히 두 손을 모으고 있었다.
어떤 죽음이 있었는지 자연스럽게 그림이 그려진다.
녀석은 이 자리에서 숨을 거둔 것이 아니다. 상처투성이의 몸으로, 당장 죽어도 이상하지 않았을 몸으로 이 장소를 향해 걸어왔을 것이다.
제대로 움직이지 않는 팔과 다리를 끌고서, 기어오듯이 이 장소로 향했을 것이다.
살려달라고 구해달라고 말하지 않고 담담하게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의 아래로 녀석이 몸을 질질 끌고 왔다는 증거들이 눈에 보인다.
중간중간 떨어져 나간 살점들과 검은색의 핏자국들이 보인다.
붉은색이 아니라 검은색이었다. 상처를 입기 전에도 이미 내부가 썩어 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이미 죽어가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지만 자신이 생각했었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더 심각했던 것이리라.
‘어떻게….’
어떻게 움직일 수 있었을까.
‘도대체….’
무엇이 그를 이렇게까지 하게 만들었을까.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기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녀석은 결코 강하지 않다. 이기영이 괴물인 것과는 별개로 녀석의 신체는 명백하게 일반인 이하였다.
스탯을 구태여 보지 않아도 알 수 있는 사실이었다.
행군을 제대로 마치지도 못했고, 무거운 것을 들거나 움직일 때면 나가떨어지기 일쑤였다.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듯한 표정을 짓기는 했지만 결국에는 파티원들에게 언제나 도움을 받았던 녀석이었다.
어떻게 그 몸으로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걸까.
비명 한 번 지르지 않고, 그 어떤 도움도 청하지 않고 녀석은 어떻게 이곳에 올 수 있었을까.
답은 뻔했다.
녀석의 두 눈이 조금씩 번쩍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마 저것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목소리를 전하기 위해서일 것이다.
‘머저리 같은 놈.’
점점 머릿속이 차가워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병신 같은 새끼.”
고깃덩이가 되었을 뿐이다. 딱 그것뿐이라고 생각했다. 자신은 지금까지 살면서 크고 작은 죽음을 봐왔으니까.
지금까지와 전혀 다르지 않다. 녀석도 그렇게 허무하게 죽었을 뿐이다.
어떤 연민 같은 것을 느끼는 것이 의미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녀석의 두 눈은 계속해서 빛나고 있었다.
이미 모든 것이 끊어진 인형 같은 모습이었지만 여전히 두 눈이 조금씩 반짝이고 있었다.
“제기랄….”
이미 그 어떤 의미도 없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감정이 요동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좀처럼 진정이 되지 않는다. 심장이 계속해서 쿵쾅거리는 바람에 주변 상황이 아무것도 들리지 않게 되어버렸다.
“너 이 개자식!”
흥분할 필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에는 커다란 목소리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 * *
‘얘 봐.’
-이게 도대체… 뭐지?
“…….”
-지금 당장 설명하는 게 좋을 거다.
‘많이 흥분한 것 같자너.’
-뭘… 뭘 어떻게 돌아온다는 거지? 지금 이게….
“효열 씨. 일단.
-일단? 지금 그런 말을 할 상황이라고 생각하나? 다시 돌아오겠다고? 약속하겠다고? 개소리! 개소리 지껄이지 마라. 이기영. 네놈은… 도대체 어디까지 나를 병신으로 만들 생각이지?
“지금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에요. 윌리엄 님께서… 지금 노을빛의 군주와….”
-그딴 개싸움은 어떻게 되든 상관없다고! 나를 얼마나 바보로 알았으면… 도대체… 어째서! 도움을 청하지 않은 거지? 어째서 네가 이미 가망이 없다는 사실을 미리 알리지 않았지? 동료? 친구? 처음부터 나를 동료라고 생각하기는 했었나? 네놈이 했던 말은 전부 뭐였지? 그날 네놈이 했던 말은 도대체!
‘내가 시바 무슨 말을 했는데.’
-웃기는 소리! 전부 다 웃기지 않는 개소리였어. 제기랄! 네가 날 병신으로 보지 않고서야….
“지나치게… 흥분해 있어요. 설명할 기회를 주세요.”
-설명?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거냐? 도대체 더 이상 무슨 설명이 더 필요하다는 거냐고! 이 개자식! 이딴 꼴이나 보여주자고 나를 도와주겠다는 개소리를 지껄인 건가? 같이 파티를 만들고 함께 여행한 모든 게 이런 꼴을 보여주기 위해서냔 말이다.
“효열 씨답지 않아요.”
명대사를 기다리고 던진 대사. 당연히 이 부끄러움 없는 녀석은 자연스럽게 명대사를 지르고 있다.
-나답지 않다는 게 도대체 뭐지? 네가 나에 대해서 도대체 뭘 알고 있다고 그딴 소리를 지껄여!
열화와 같은 성원이 있을 거라는 건 이미 예상하고 있었지만 생각보다 더 흥분한 녀석의 모습이 당황스러웠다.
얼굴은 이미 붉게 달아올라 있다. 숨도 쉬지 않고 큰 목소리를 내뱉는 녀석의 모습이 적응되지 않았던 것은 당연지사.
‘우리 그렇게 친했었나?’
너무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것 같아 걱정이 될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괜히 녀석답지 않다는 개소리를 지껄인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 침을 튀겨가며 커다란 목소리를 내뱉는 녀석은 정말로 평소의 우효열답지 않았다.
폼을 잡을 여유도, 허세를 부릴 만한 여유도 없어 보였다.
비주얼이 다소 충격적이기는 했으나 무난하게 넘어갈 것을 걱정했던 것과는 180도 다른 반응이었다.
심지어 불안해 보이기까지 하다.
-개자식!
욕을 쏟아내는 데 여념이 없었고 손발도 떨리기 시작하고 있는 것만 같다.
정확히 녀석이 어떤 상태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감히 판단하건대 녀석이 무너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녀석이 이런 성격이 아니었을까? 동료를 만들지 않는 것은 누군가를 잃을까 두려워서일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을 할 정도로 평소의 우효열과 거리가 멀었다.
‘근데 그럴 만하기는 해.’
23살의 꽃기영의 우효열의 사이에 분명 뭔가가 있기는 했었으니까.
현성이처럼 오랜 시간을 함께하며 쌓은 유대감은 아니었지만 야생에서밖에 살아가지 못하는 늑대를 길들이는 것이나 진배없었다.
어느 날 갑자기 툭 하고 튀어나온 꽃기영 그 녀석.
처음에는 분명 정체를 알 수 없고, 재수 없는 놈이라 생각했겠지만 분명히 꽃기영은 우효열이라는 인간의 근간에 영향력을 끼쳤다.
때로는 적으로, 때로는 라이벌로, 때로는 친구로, 때로는 동료로.
무관심이 관심으로 바뀌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이다. 상대적으로 짧은 시간이기는 했지만 그렇기에 의미 있다.
그동안 녀석의 곁에는 아무것도 없었으니까.
아마 머릿속으로는 저도 모르게 함께 했던 추억들이 재생되고 있지 않을까.
‘저는 당신 같은 사람이… 싫어요.’
부터 시작해서.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서 여기에 왔어요.’
운명의 개입이 있었던 첫 번째 만남까지.
‘흐윽… 흐으윽… 모두 나 때문이야… 모두… 흐윽… 흐으윽….’
레이먼 볼트 영감의 죽음.
‘저는 언젠가 죽을 거예요.’
충격적인 고백.
‘그게 제 역할이에요.’
마무리까지.
김현성의 경우로 대입해 보건대 원래 이렇게까지 감정이 격해지면 자연스럽게 옛 추억을 떠올리게 되더라.
녀석의 경우에는 더욱더 빠르게 지나갔을 것이다.
짧은 시간이니만큼 마치 꿈처럼 순식간에 지나갔을 확률이 높다.
당연히 감정의 변화는 더욱더 빨라진다. 어느 것 하나 우효열에게 익숙하지 않은 상황이었다.
이내 그 모든 것들이 하나가 돼 분노와 그리움으로 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한참이나 열을 내던 우효열은 괜한 땅바닥과 벽에 화풀이를 하고 있었다.
그 와중에 윌리엄이 피똥을 싸고 있었지만 아랑곳하지 않는 모양.
조금 더 빨리 녀석을 전장으로 이끌어 갈 필요가 있는 만큼 다시 한번 말을 꺼낼 수밖에 없었다.
“저는… 저는 원래부터 이렇게 될 운명이었어요.”
단골 소재로 한번 버무리고.
“이게 제가 이곳에 온 이유고 효열 씨에게 접근한 이유예요. 이게 계약이었어요.”
-웃기지 마….
“알고 계셨잖아요. 제가 얼마 남지 않았다는 걸. 좋지 않은 마지막을 보낼 거라는 걸 이미 알고 계셨어요.”
-그래. 알고 있었다.
모를 리가 없었다. 내가 녀석에게 직접 말했으니까. 심지어 녀석은 내 선택을 존중하기까지 했다. 아마 이렇게 될 줄은 몰랐겠지.
“제 선택을 분명 존중해 주신다고 하셨잖아요.”
-그렇게 말한 적은 없다.
“하지만 표현하셨어요.”
-…….
“세상에는… 분명히 어쩔 수 없는 일도 있어요.”
그 이후에는 설득 타임.
“받아들여야 하는 일도 있는 거예요.”
-…….
“저는 기쁘답니다.”
희생밖에 모르는 바보. 그 이름 23살 꽃기영.
“죽어서도. 이렇게라도 도움이 될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답니다. 마지막까지 효열 씨와 함께 싸울 수 있어서 너무나도 기쁘답니다. 이 로헨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게, 대륙의 빛과 정의를 위해 함께할 수 있다는 게 너무나도 기뻐요.”
-웃… 웃기는 개소리….
“이게 제 숙명이고. 운명이에요. 저는 이 순간을 위해 이곳에 있는 거예요. 의미 있는 삶이었어요. 아니, 의미 없는 삶이었다고 해도 이 순간만큼은 달라요. 어차피 저는 시한부였어요. 전부 알고 계시잖아요. 이해하고 계셨잖아요. 하나의 목숨으로 수많은 사람들을 살릴 수 있었어요. 제 삶에 그것보다 기쁜 것은 없어요.”
-그렇다면….
“…….”
-그렇다면 왜 울고 있는 거지?
연출 진짜 내가 했지만 대단하다.
정체불명의 시신의 가짜 금안에서는 눈물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그렇다면 왜… 울고 있는 거냐고 물었다.
“그럴 리… 없어요.”
-뭐?
“저는 슬프지 않아요. 남은 미련은 없어요. 제게 삶은 고통이었어요. 힘들고 두렵고 무서운 곳이었어요. 이곳에 있었을 때뿐만이 아니에요. 지구에서도, 또 다른 곳에서도 언제나 제 삶은 지옥이었어요. 저는 여태껏 쓸모없는 인간이었어요. 이제는… 이제는 달라요. 저는 이제야… 이제야 완전해질 수 있어요.”
-사실은 살고 싶은 것이 아니었나?
“아니요. 이게 제 마지막이에요. 이기영의 삶에 마침표로써 결코 부끄럽지 않아요.”
-웃기는 소리!
“할아버지… 레이먼 볼트 님과도… 만날 수 있어요.”
-사후세계 같은 건 없다. 병신 같은 놈.
“저는 제 할 일을 마쳤어요. 저는….”
-살고 싶었다고 말해. 그만 인정하란 말이다.
“저는… 여기까지예요.”
살고 싶어! 라고 외치고 싶었지만 그럴 타이밍이 아니다.
“말씀드렸잖아요.”
-뭐?
“세상에는…. 분명히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라고.”
-…….
“이게 빛의 뜻이에요. 저는 이 숙명을 받아들이기로… 결정했어요.”
우효열은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는 주제에 삐뚤어져 있는 캐릭터였으니까.
청개구리 같은 놈이었으니까.
빛의 뜻이라는 걸 정의의 뜻이라는 걸 이해할 리 없었다.
-웃…기지 마….
꽃기영의 시신에서 나온 검은색 혈액들이 놈을 향해 천천히 꾸물거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둠진화한다.’
-웃…기…지… 말라…고….
‘한다. 한다!’
-웃기지 마!!!!!
녀석이 어둠에 둘러싸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