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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27화 (1,22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27화

대륙에서(1)

“…….”

“…….”

“그러니까….”

“…….”

“결국 더미기영은 언젠가는 로헨으로 돌아가게 되겠네요? 시간이야 조금 걸리겠지만… 돌아갈 수 있는 창구를 마련해 준거나 마찬가지잖아요.”

“뭐. 그렇게 되겠지. 사실 빠르면 빠를수록 좋아. 일이 많아지는 게 나쁜 건 아닌데 구태여 그쪽까지 우리가 관리할 필요는 없으니까. 딱 멀티로 쓸 수 있게 되는 걸로 족해. 본의 아니게 초기비용이 조금 들어가기는 했지만 안정화 되는 시기는 꽤 빠를걸.”

“…….”

“낙원을 만드는 비용이 안 들어가서 다행이지. 그것까지 해야 했으면 아마 그냥 뒤집어 버렸을 거야.”

“흐음….”

“개발도상대륙이니만큼 로헨에서 뽑아낼 수 있는 실적은 꽤 든든할 거고… 잠재력은 충분하니까 어떻게 굴릴까 하는 건 그쪽에게 달렸지. 물론 방향성을 제시하는 것 정도는 해 주겠지만….”

“걱정은 안 돼요? 혹시 더미가 주제넘은 짓을 할지도 모르는데.”

“계약 내용에는 그걸 억제할 수 있는 제약들도 많아, 누나. 사실 그런 특약 자체도 필요 없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되는 데 뭘… 육체가 생기고 사람과 똑같은 행동을 하고, 스스로 발전할 여지가 있다고 한들, 결국 데이터는 데이터야 누나. 기어올라봤자 기어오를 수 있는 한계선이 있다고.”

“당연히 그렇기야 하겠죠. 근데 걔네는 조금 소름 끼치더라고요. 오빠 말대로 주제넘은 짓을 하지는 않겠지만… 대응이 좀 물러터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어요.”

“…….”

“나였으면 조금 더 확실하게 묶어놨을 텐데… 특히 우효열이랑 꽃기영 그 콤비가 김현성을 역소환시켰다는 것도 썩 마음에 들지는 않고… 그게 본인들의 승리가 아니라는 걸 깨달아야 할 텐데… 달콤한 승리를 한 번 맛본 놈들이니까 더 불안하다고요.”

“일리는….”

있네.

지혜 누나의 말이 꼭 틀린 것은 아니었다. 김현성에게 불운과 불안요소들이 겹쳤다고 한들, 녀석들이 김현성을 몰아낸 일은 위업이라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일이다.

반쪽짜리이기는 하지만 한 번 전투에서 승리한 경험이 있으니 그 기억으로 힘을 얻어 이쪽에 이빨을 드러낼 가능성이 아예 없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물론 확률 자체는 낮다. 굳이 이유를 설명하자면 너무 많아 설명하기도 힘들 정도로 말이다.

이미 녀석에게 걸려 있는 여러 가지 제약들이 그 가능성을 원천차단하고 있었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거였다.

‘이미 너무 지킬 게 많아졌으니까.’

선을 넘는다면 손해를 보는 건 자신뿐만이 아니다. 다른 무엇보다 그게 녀석들의 머릿속에 틀어박혀 있을 것이다.

“그리고 거기 식민지로 쓸 거 아니야, 누나. 정확히는 분점이지. 물론 비율을 조금 많이 떼어가기는 하지만 말이라는 게 아 다르고 어 다른 거잖아. 구태여 싸울 생각을 하는 게 이상한 거라고.”

“흐음.”

“그런 의미에서 생각해 보면 딱히 그런 경험이 나쁘다고 생각하지도 않아. 거기서 무슨 일 터질 때마다 우리가 애 키우는 것마냥 돌봐줄 수도 없고, 로헨도 하나쯤은 좋은 서사를 가지고 있어야지. 그래야 신성도 쑥쑥 벌리고. 자생능력이 생기지.”

“하긴… 그건 그래요. 일 늘어난다고 꼭 좋은 건 아니죠. 근데 하나 물어봐도 돼요?”

“뭔데?”

“꽃기영한테 오빠 기억은 왜 심어 놓은 거예요?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나 싶은데. 구태여 오빠를 떼어내면서까지 심어 놓을 이유는 없었잖아요.”

“이유가 왜 없어?”

“물론 표면적인 이유야 있었겠죠. 그걸 이해 못 하는 게 아니잖아요. 더미가 허튼 짓거리 하는 거 막으려고 했던 것도 있겠고… 그쪽 게니우스들 뒤통수 칠 수 있었던 것도 엄밀히 말하면 그것 때문이었지만… 정말로 다른 방법이 아예 없었던 건 아니잖아요. 사실 그 계획이 퀄리티가 나쁘다 할 수는 없겠지만 엄밀히 말하면 과정 자체가 귀찮았다고요. 그래서 묻는 거예요. 이유가 뭔지.”

“그냥… 궁금해서.”

“뭐라 그렇게 궁금했어요?”

“누나랑 유노가 거기 가면 나보고 난리 날 거라며 대륙 어쩌구저쩌구 하면서 허무맹랑한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그게 진짜인지 아닌지 확인해 보고 싶었거든. 결과적으로 끝까지 볼 수는 없었지만….”

“그래도 결과는 대충 나오지 않았어요?”

“별로.”

“지금 쟤 하는 거 보면 답 나오잖아요. 어떻게든 돌아가고 싶어서 난리 치는 거. 저게 더미월드가 아니라 우리 쪽이라고 생각해 봐요. 그게 정답이지.”

“쟤는….”

“쟤가 오빠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데이터라니까요. 저거 봐요. 행복한 더미월드에서 표정 썩은 것 좀 보라고요. 어라. 쟤 운다. 너 우니? 오빠 이것 좀 봐요. 쟤 울어요. 덤기영 질질 짠다. 더미친구들 다 있는데도 마음속에 공허함이 채워지지가 않나 봐요. 이거 어쩌죠?”

‘이 누나 진짜.’

“우리가 보고 있다는 거 알고 불쌍한 척하는 거야.”

“로헨이 그리워서 흘리는 진실 된 눈물이 아니고요?”

“왜 쟤랑 나를 비교해? 쟤가 운다고 내가 우는 것도 아닌데.”

“아니 그럴 만하니까 그렇죠. 어머. 쟤 하늘 바라보는 것 좀 봐요. 나가고 싶나 봐. 하기사, 거기 있다가 여기 처박히니까 나가고 싶을 만도 하겠다.”

“몇 년 뒤에 나가게 될 텐데 뭐.”

“몇십 년이 될지 누가 알아요? 몇백 년이 걸리면?”

“아무튼 난 안 볼래. 이제. 업데이트도 끝냈으니까. 어차피 순차적으로 더미 얘들 저쪽으로 가게 될 텐데 이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긴 하지만….”

“글쎄요… 그게 쉬울지 어려울지는 아무도 모르는데… 어? 이번에는 화풀이한다. 신전에 대고 화풀이하는데요? 얘가 누굴 닮아서 이렇게 참을성이 없담. 우울한지 구석에 처박혀 있네요. 그 좋아하는 더미친구들도 안 만나고… 쟤 우울증 걸리겠다.”

이 누나….

“그럼… 누나는? 우리 더미지혜는 뭐 하나 볼까? 아, 역시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네. 아, 설마 뭐 하지? 아… 설마 가면을 꺼내는 건가?”

“…….”

“더미기영이 로헨으로 간다는 거 대충 눈치챈 것 같은데? 어? 가면 썼다. 누나. 저거 봐. 가면 썼다. 다 뒤집으려고 한다. 푸…흡. 조만간 자기 데려간다고 안 하면 쿠데타라도 일으킬 것 같은데. 어? 아닌가… 아니… 그게 아니라 복수하려고 하는 것 같은데. 더미기영이 지 버리려고 하는 줄 아나 봐. 얘가… 얘가 확실히 독하네.”

“전… 복수 같은 거 안 하는데요? 가면도 안 쓸 거고요. 데이터가 이상해졌나.”

괜스레 헛기침을 하며 시선을 회피하는 지혜 누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지만….

‘진짜 저렇게 할 것 같은데.’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

내가 만약 남몰래 어딘가로 이주할 계획을 세우고, 지혜 누나에게 말도 안 하고 사라진다면 이 누나 역시 똑같은 반응을 보일 것이다.

모르긴 몰라도 지옥 끝까지 쫓아와 복수하려고 하지 않을까. 아마 본인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황급히 더미월드를 가리고 있는 것이리라.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더미지혜가 보여주고 있는 행동이 너무나 이지혜 같았으니 얼굴을 붉히고 있는 것이다.

“이제 그만하죠….”

“그래… 누나. 하지 말자. 우리끼리 이러지 말고 진 군사나 놀려먹자.”

“차라리 그게 좋겠네요.”

“어차피 우리 없는 동안 일 개판으로 해놨을 테니까.”

“이미 둘러보기는 했어요. 나쁘지는 않았지만… 프로젝트 하나는 성과가 지지부진하더라고요. 실적이 그렇게까지 안 좋은 건 아닌데… 그냥… 조금 실망스러운 정도? 애초에 그 군사님이 입을 너무 털었죠. 이 일이 생각보다 어렵다는 걸 아마 지금 깨달았을걸요?”

“어느 정도인데? 적자는 아니지?”

“수익은 나고 있어요. 투자한 거에 비해서 너무 미비해서 문제지. 자금 회수하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 상상도 못 하겠다니까요. 이럴 줄 알면 맡기는 게 아니었는데. 그 자금 굴릴 수 있었으면….”

“하… 진짜 이 사람 안 되겠네. 이 일이 지 공화국에서 소꿉장난하는 것처럼 쉬워 보였나 봐. 내가 진짜 어이가 없어서… 일 벌이고 싶어 할 때부터 알아봤어. 내가.”

“본인 말로는 인력이 부족했대요.”

“인력이 없기는 개뿔, 떠나기 전에 분명히 추가 인력 배정해 줬는데. 사하가랑 겔라 있자너… 얘 그냥 나랑 누나 없으면 아무 일도 못 하겠다는 거 에둘러 표현한 거야. 참… 이래서 무능력한 사람 쉽게 올리면 안 되는 건데.”

‘건수 하나 잡았다.’

“오빠 신났네. 돌아가는 게 기대되기는 하나 봐요?”

누나의 말처럼 꽤 오랜만에 대륙에 들어와 활동할 생각을 하니 제법 기대가 되기야 했다.

파란 길드야 그래도 얼굴을 한 번씩 보고 짧은 대화도 나누었지만 다른 사람은 그게 아니었으니까.

희라 누나는 물론이거니와 라파엘, 심지어 바젤 교황이나 위쪽에 있는 베니고어, 벨리알 같은 직장 동료들, 오스칼도 오랜 시간 보지 못했다.

그 외에도 별 관심이 없었던 떨거지들에게까지 관심이 생긴다.

이를테면 안개소환사 같은 놈들…. 오죽했으면 카트린 의원, 엘리제 의원, 마를린 영애… 아니, 의원과 수다를 떨고 싶다는 생각이 들까.

그러고 보니 혜진이도 오랫동안 보지 못했던 것이 신경 쓰였다. 함께 이동한 파란 길드원들과는 다르게 본인만 대륙에 체류하고 있었으니 여러 가지로 마음고생 하고 있었겠지.

우리 디아루기아, 디아루리아, 막스도….

물론 길드원들과도 제대로 된 대화를 하지는 못했다.

대륙던전화가 끝난 뒤로 조금 쉬려고 생각했었는데 일이 터지고 터지고 터지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이다.

곰곰이 여러 사람들을 떠올리고 있을 때 지혜 누나가 다시금 말을 이어왔다.

“당분간은 조금 쉬어요.”

“누나가 그런 말 안 해도 진짜로 쉴 거야. 진 군사가 망쳐놓은 거 수습하고 나서. 아니, 그것만 문제가 아니지… 대륙은 별문제 없지?”

혹시나 전쟁 같은 거라도 터졌다거나…

“왜 문제가 없겠어요? 파란 길드가 통째로 자리를 얼마나 많이 비웠는데, 사실상 오빠가 그쪽으로 넘어간 이후에는 문 닫은 거나 마찬가지였어요. 정식으로는 파란 길드가 오랜 원정을 떠난다고 발표하기는 했지만 사람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겠어요? 김현성은 처박혀서 방구석 폐인마냥 나오지도 않고, 가끔 밖에 나돌아다니는 길드원들은 표정 썩어서 돌아다니고 있는데.”

“그랬겠네.”

“수습하려고 수습하기는 했는데 수습하기 힘들었어요. 바젤 교황님은 교황청에서 미쳐 날뛰지. 디아루리아는 매일 울어대서 린델 주민들이 잠도 제대로 못 자지. 연방이랑 연합에서는 슬슬 기어오르려고 하는 놈들도 튀어나오지. 차희라 그 여자는 무슨 짐승도 아니고 겨울잠을 잔다고 붉은 용병에서 나오질 않았다니까요?”

“…….”

“전체적으로 파란 길드가 감당할 수 없는 원정에 손을 댔다는 소문이 많았어요. 신화등급 이상의 던전에 들어가서 공략 중일 거라고요. 어쩌면 무슨 사고가 일어났다는 소문도 감돌았죠. 아마 혜진이가 감당하느라 힘들었을걸요.”

“…….”

“오빠 거기 가면 혜지니한테 사과해야 될 거예요.”

“그건 당연한 거지만….”

‘아직도 그런 소문이 도네.’

나쁘게 생각되지는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다.

이기영이나 김현성 같은 이들도 던전에서 사고를 당했다는 소문이 퍼질 만큼 대륙의 업데이트가 끊임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것이었으니까.

기본적으로 우리 대륙은 모험이나, 원정, 전설, 신화 같은 것들이 끊임없이 공급되어야 하는 구조에 서 있다.

모험가들이 빌어먹을 수 있는 환경을 계속해서 마련해 줘야 경제가 돌아간다는 거다.

대륙던전화 이후 대륙이 잠깐 동안 소강상태가 된 이유도 모험가 수준의 인플레이션 때문이 아니었던가.

모험가들의 수준은 올라갔는데, 공략할 던전이 없다. 고등급 유저들을 위한 컨텐츠들이 씨가 말라버렸다.

야전지휘관이나 체계화된 공략 시스템은 희귀 등급이나 영웅 등급의 모험가들도 상위의 던전에 도전할 수 있게 만들었고….

결과적으로 전설 등급 이상의 모험가들의 파이가 줄어버렸다.

부랴부랴 균열랜드를 활용하기는 했지만 그 많은 모험가들을 전부 수용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두더지 성녀의 포근한 안식처 이후로….’

꽤 좋아졌다고 봐야 되나.

대륙에 사는 고위 모험가들에게 직접적으로 말한 것이다.

김현성이나 이기영도 위험할 수 있는 컨텐츠가 있다고, 아직 대륙에 풀리지 않은 신화나 미스터리들이 많을지도 모른다고 경종을 울린 셈이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진 군사가 일을 하기는 했나 봐.’

베니고어가 프로젝트를 진두지휘하지는 않았을 테니까.

“일단 오늘은 푹 쉴 거죠?”

“쉬어? 뭔 소리야. 바로 진 군사한테 가서 뭐 실수한 거 없나 뒤져봐야지.”

“그 모습으로요?”

“어?”

지혜 누나가 조용히 거울을 꺼내 들었다.

“뭐야… 시바….”

거울에 서 있는 청소년이 시야에 비쳤다. 애새끼영보다는 조금 커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기는 마찬가지였다.

“…….”

“…….”

“왜… 이거 원상복구 안 돼 누나? 분명히… 합체했는데?”

“글쎄요… 자리를 찾는 데 시간이 조금 걸리나 보죠.”

지혜 누나가 귀엽다는 듯이 내 머리를 쓰다듬고 있었다.

“잠깐만 있다가 들어갈까?”

“그게 뭔 소리예요. 다들 기다리고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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