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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28화 (1,22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28화

대륙에서(2)

“그야… 그건 그런데….”

“빨리 와요. 그냥. 다들 좋아할 것 같구만. 뭐….”

“오랜만에 만나는데 조금….”

“이 오빠 이거 자기 놀리고 싶어서 그러는 줄 아나 봐. 나도 나만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니까요. 근데 여기서 이러고 있으면 안 돼요. 길드 어떻게 하고 나왔는지 기억 안 나요?”

“…….”

“김현성이 이 모자란 놈이 알콜 이슈로 분위기 개판 낸 다음에 타이밍 좋게 오빠가 사라진 거라고요. 부랴부랴 로헨으로 찾아왔더니 정신건강 이슈까지 생겨서 서로 칼질까지 해댔는데 거기가 지금 정상처럼 돌아가겠어요? 안 그래도 파란은 오빠한테 권력이 더 집중되어 있는 구조 아니에요? 탄핵이 안 일어나는 게 이상하다니까요. 아니, 이미 잘렸을 수도 있다니까.”

“정확히 말하면 현성이 쪽에 더 집중되어 있는 형태….”

“그거야 표면적으로만 그렇죠. 실권을 죄다 자기가 쥐고 있으면서 무슨 소리람. 내가 정확히 그쪽 사정은 모르는데 모르긴 몰라도 지금 레임덕 터졌을 거예요.”

‘그것도 그래.’

심지어 걔는 눈치 없어서 지가 절름발이 되고 있는 줄도 모를 거야.

아무리 생각해 봐도 혜진이를 데려오지 않은 건 악수였다.

정치 능력의 대부분을 혜진이한테 의지하고 있는 주제에 구태여 조혜진을 떨구고 왔으니 그 누구도 김현성의 행동에 정당성을 부여하지 못했던 것이다.

안 그래도 제정신이 아니었으니 파티원들 눈에는 걔가 어떻게 보였을까.

일이야 끝났으니 겉으로는 수습을 했겠지만 파란 길드에 문제가 남아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뭐 그거야…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아마 금방 다들 조용해질 거야.”

“아무튼 빨리 가요. 이동할게요. 오빠는 라베하로 보낼 거고 저는 곧바로 린델로 갈 거예요. 괜찮죠?”

“응, 알겠어.”

“린델 도착하면 봐요. 길드 잘 수습하시고요.”

웃기지만….

‘살짝 긴장되자너.’

아니, 긴장된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그냥 오랜만에 모두와 마주할 생각을 하니 조금 설레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혜 누나의 말에 고개를 눈을 감자.

“왔다! 왔다니까!! 형님이요!”

하는 돼지 새끼의 목소리가 제일 먼저 들려왔다.

사실 다른 사람들의 목소리가 묻혔다고 말하는 게 옳다. 얼마나 크게 소리를 질렀는지 귀가 다 울리는 듯했으니까.

“형님…. 형님이요! 형니…임?”

그리고 눈을 뜨자 박덕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정확히 말하면 이 새끼의 커다란 얼굴밖에 보이지 않는다. 커다란 얼굴로 시야를 원천 차단한 모습에 다른 이들의 얼굴이 보이지 않자 당황스럽다.

그 와중에 눈물을 줄줄 흘리고 있는 꼴은 가관이다.

계속해서 얼굴을 보고 있으면 넓적한 뺨을 한 대 때리고 싶을 것 같아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그래. 나다.”

“왜… 왜 중학생이 된 거요?”

“그건….”

“오, 오, 오빠!”

이후에는 이쪽을 꽈악 껴안는 정하얀이 느껴진다.

“오, 오… 오빠가… 오빠가!”

“오래간만이야. 하얀아.”

실제로 오랜만은 아니지. 하얀이랑은 대화도 종종 했었는데… 한 번 보기도 했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얀이가 달라붙을 거라는 건 예상했었지만 이쪽을 이렇게까지 조이듯이 껴안을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

마치 반쯤 파묻힌 것 같은 느낌. 하얀이보다 더 작아질 줄은 생각 못 했는데… 얼마나 작아졌는지 대충….

‘감이 오자너.’

“오, 오, 오빠가 어려졌어. 대… 대박… 대박… 오, 오빠가….”

“그동안 잘 지냈지?”

“네… 네.”

‘아파.’

과장 하나 안 보태고 뼈가 아프다.

“하아… 하아… 오, 오빠가… 어… 어려졌어. 오빠가….”

숨소리가 묘하게 거칠다.

“어…려졌어. 어… 어떻게 하지? 어떻게….”

‘뭘… 어떻게 해?’

“너무… 너무 귀여워. 너무 귀여워. 너무 귀여워 오… 오빠가… 오빠가…흐…힛… 흐…흐흐…힛…힛….”

‘…….’

눈이 빙글빙글 돌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걸로도 모자랐는지….

‘얘. 뭐야. 얘 왜 이래.’

“하얀아… 피… 피나.”

코피를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앗… 잠… 잠깐… 제성해….”

누가 봐도 극도로 흥분한 것 같은 모습이었는데 머리로 피가 쏠려 버린 것이다.

그제야 한두 발자국을 뒤로 물러나며 황급하게 얼굴을 위로 올린다.

그 모습을 본 한소라가 정하얀에게 달려가 조치를 취해주고 있었고 이후에 다가온….

“무사하셨군요.”

선희영이 무릎을 꿇고 손을 꼭 잡고 있었다. 잠깐 동안 얼굴을 마주치자… 그녀도 고개를 끄덕이며 나를 살짝 껴안는다.

“걱정했었습니다. 이기영 님.”

차분하게 말을 이어나가고 있었지만 목소리가 미묘하게 떨리는 듯한 느낌이다.

“정말로 무사해서 다행입니다.”

“희영 씨도 정말 오랜만이네요. 고마워요. 로헨에서의 기억은 살짝 흐릿하기는 하지만….”

라고 한마디를 해주자 팔에 조금 더 힘이 들어간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왜. 다들 한 번씩 껴안지.’

스킨쉽이 나쁘다는 것은 아니지만. 정하얀이 포문을 열었다고 생각했는지 이유도 묻지 않고 대뜸 껴안고 있는 중이다.

“형님!”

선희영 다음은 다시 등장한 박덕구, 이 돼지는 아예 나를 공중으로 들어 올리기까지 하고 있다.

마치 원숭이가 절벽에서 사자를 들어 올리듯이 힘차게 들어 올린 이후에는 머리를 헝클어뜨린다.

안기모 이 새끼는 또 그걸 그대로 받아들더니 땅바닥에 내려 앉히고는 감격했다는 듯이 머리를 꽉 붙들었다.

볼을 꼬집어 당긴 것 같은 느낌이 든 것은 기분 탓일까.

안기모 다음은 엘레나.

얼굴에 홍조가 가득한 그녀는 발을 동동 구르고 눈만 쳐다보더니…. “이기영 님!” 하고 외치고는 나를 살포시 안아 올렸다.

“어머. 어머.” 같은 소리를 황정연이 중얼거리고 있었다. 평소 선을 지키는 유아영도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이쪽을 꽉 껴안았다.

가장 보기 거슬렸던 것은 김예리.

‘얘는 왜 웃지?’

입꼬리가 히죽 하고 올라간 것이 우월감이라도 느끼는 모양이었다. 그럴 만도 했다.

지금은 내가 김예리를 올려다보고 있었으니까. 아무 말 없이 한 발자국을 앞으로 옮긴 이후에는 등을 톡톡 하고 한 발자국 물러선다.

슬쩍 시선을 보니 다음 타자들도 한 번씩 안아보고 싶은 것만 같은 표정. 하지만 그렇게 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부길드마스터.”

예의 바른 창렬이가 바로 내 앞에서 고개를 숙이자 분위기가 딱딱해진 것이다.

“고생하셨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남아있는 인원들이 박리안, 스미스 대령, 알프스, 벨리에 인지라 포옹 타임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을 리 만무했다.

박리안이야 김창렬과 같은 포지션을 고수할 테니까. 반가웠는지 그녀답지 않게 얼굴이 상기되기는 했지만 역시나 목례를 하면서 마무리.

왠지 모르게 벨리에의 표정에 아쉬움이 감도는 건 왜일까.

쟤 설마 저 짬으로 분위기에 편승해 나를 안아보려고 했던 걸까.

아직은 약간 어색할 수 있는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억울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무사귀환을 축하드립니다. 부길드마스터.”

요건 흑집사 스미스.

“축하드려요. 부길드마스터.”

요건 알프스.

“왕!”

요건 흰둥이.

“부… 부길드마스터….”

이건 벨리에. 다른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쪽의 손을 허락도 없이 꽉 잡은 이후에는 슬금슬금 다가오기 시작, 눈치가 보이는지 주변을 한 차례 둘러보고 있었지만 한 발자국을 더 내디딜 용기는 없는 것 같았다.

마침 코피가 멎은 정하얀의 반응을 두세 번 살펴보기까지. 더욱이 행동으로 옮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하얀이가 빨리 비키라는 표정으로 길드의 신입들을 바라보고 있었으니까.

“축… 축하드려요….”

이후에 등장한 것은 김현성이었다.

“기영 씨.”

“현성 씨 오랜만이네요.”

‘많이 수척해졌네.’

광소를 터뜨리며 우효열과 마지막 대결을 펼쳤던 것과는 다르게 의기소침하기까지 하다.

얘가 그렇게 폭주기관차처럼 달려들더니 뒤늦게 정신이라도 차린 걸까. 왜 갑자기 어깨가 작아 보이는 걸까. 이 새끼는….

“저… 그러니까.”

‘얘는 왜 이렇게 눈치를 봐.’

“정말… 정말… 죄송하고… 또….”

“…….”

“이렇게 돌아와 주셔서 기쁩니다.”

라고 말하고는 살짝 물러서기까지.

아니, 정확히 말하면 물러선 것은 아니었다. 정하얀이 다시 달라붙었고 선희영이 슬그머니 화제를 전환했다. 심지어 다들 뭔가 김현성을 제지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정하얀이야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달라붙은 것 같았지만… 박덕구조차 은근슬쩍 김현성의 앞을 가로막고 있었고 그 타이밍에 맞춰 선희영이 말을 잘라낸 것이다.

미리 약속한 것이 아니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연계 플레이.

이미 구를 대로 구른 멤버들이야 별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는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뭔가 긴장한 듯한 알프스와 벨리에의 표정을 보고 있자니 혹시 일어날 수 있는 사고라도 대비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부길드마스터. 한데 그 모습은….”

“별것 아닙니다. 차원을 넘어오는 과정에서 약간 문제가 발생한 것 같은데 신경 쓰실 정도는 아니에요. 계속 이 모습으로 있는 게 아니라 약… 1년? 어쩌면 반년 정도면 다시 되돌아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아… 그렇군요. 혹시 몸을 살펴봐도 되겠습니까?”

“네.”

선희영과 엘레나가 서로 한 번 눈을 마주치고는 평소처럼 내 몸을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와중에 쓸데없이 머리나 볼따구를 문질문질한 것 같은 느낌이 있었지만 모른 척하기로 했다.

그것 가지고 뭐라 하는 것도 웃길 테니까. 그녀들 역시 몸에 큰 이상이 없다는 것을 뒤늦게 깨달았는지 크게 한숨을 쉰 이후에는….

“그래도 당분간은 경과를 지켜보는 게 좋겠어요. 이기영 님. 혹시 다른 증상이 나타날 수도 있으니 가능하다면… 아니, 무조건 하루에 한 번은 정기 검사를 시행하는 게 좋겠어요. 오늘은 비교적 간단하게 끝났지만… 이럴 게 아니라… 조금 더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해요.”

“네. 엘레나 님의 말씀에 동의합니다. 부길드마스터.”

같은 말을 내뱉었다.

“정말 괜찮은데….”

“방심은 금물입니다. 부길드마스터. 급격한 성장이 신체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에 대해 보고된 사례가 없지 않습니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힘드시겠더라도 꼭 협조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까지 말씀하신다면 어쩔 수 없네요. 근데 길드에는 연락 넣었나요? 혜진 씨랑 다른 분들은….”

“연락은 넣었습니다만 조금 늦는 것 같습니다만, 아….”

‘쟤도 양반은 아니야.’

급하게 이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조혜진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은 조급해 보이는 모습이다.

소식을 듣자마자 날아왔는지 몰골이 조금 엉망이었는데 그동안 마음고생을 얼마나 심하게 했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야 본인을 빼고 다른 곳으로 원정을 다녀갔는데 평정심을 찾을 수 있을 리 만무하다.

대륙에 누군가는 남아 있어야 하니 책임감에 남아 있었겠지만 하루하루가 편하지 않았을 거라 장담할 수 있었다.

이야기에는 빠져 있었지만 가장 고생한 사람 중 하나가 아닐까.

“돌아오신 게 맞습니까?”

하는 소리를 하면서 벌써부터 달려오고 있다.

“부길드마스터?”

“…….”

“부길드마스터!”

‘쟤 많이 급해 보이자너.’

그렇게 보고 싶었나 봐.

이윽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길드원들을 천천히 손으로 밀어내며 내 앞에 서기까지.

“어?”

하며 깜짝 놀란 것 같은 표정이 눈에 띈다. 머리를 묶을 시간도 없었는지 그대로 머리를 풀고 있는 얼굴에 눈동자가 계속해서 흔들리고 있었다.

당연히 상황파악을 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오는 와중에도 온갖 생각을 했을 테니 무슨 정신이 있었겠는가.

“부…길드마스터?”

모두가 있을 때 조혜진에게 장난을 치는 것을 선호하지는 않지만 왠지 그녀를 놀리지 않고서는 참을 수 없을 것 같았다.

“예쁜… 누나다.”

“네?”

“누나는… 누구… 세요?”

“…….”

“…….”

“저를 알고 계시나요? 누나는….”

내 말을 받은 것은 박기리였다.

“아이고오… 형님! 흐으윽… 아이고!”

“부길드마스터!!”

“기영이… 아저씨!! 흐윽….”

털썩하는 소리와 함께 조혜진이 무릎을 꿇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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