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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35화 (1,23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35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4)

“예… 예쁘다.”

“…….”

“…….”

‘쟤 방금 뭐라고 한 거야?’

김미영 팀장이 어울리지 않게 당황한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겉으로는 크게 티가 나지는 않았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하다 보니 그녀가 보내는 시그널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괜스레 머리를 한 번 더 가다듬는다든지, 안경을 살짝 위로 올린다든지 하는 신호들 말이다.

말을 내뱉은 아들 녀석도 당황하기는 마찬가지. 그나마 김미영 팀장은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아들 녀석은 실수했다는 것은 깨닫고 있는지 얼굴을 푹 숙이고 있었다.

새빨갛게 변한 귀가 두드러지는 것을 보니 아무래도 얼굴을 붉히고 있는 모양인 것 같았다.

한참 쿨해 보여야 할 나이대에서 일어난 치명적인 실수.

그것도 눈에 보이지 않는 파벌이 갈라져 있을 때 나온 실수였기 때문에 알게 모르게 질타를 받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어린놈들이 벌써부터 편을 갈라가지고….’

자세히 살펴볼 필요도 없었다.

꼬맹이들이 노는 곳인 만큼 당연히 끼리끼리 모일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예상했던 것보다 더욱더 파벌이 갈라져 있는 게 눈에 보였다.

연방은 연방 놈들끼리 앉아있고, 교국은 교국 놈들끼리, 공화국은 공화국 놈들끼리 앉아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교국의 꼬맹이들이 나를 바라보는 시선에도 적대감이 들어차 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갑작스레 나타난 공화국의 뉴페이스가 걱정되는 것은 당연하거니와 여기 있는 꼬맹이들을 완벽하게 통제하고 있으니 아마 쟤네들 입장에서는 다소 충격적인 장면일 거라고 생각했다.

‘솔직히 나도 충격적이자너.’

진청의 아들이라는 게, 이 정도로 대우를 받을 일인가. 우상화를 대체 얼마나 해놓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교국과는 분위기가 다르다는 게 여실히 느껴졌다.

덕분에 진땀을 뺀 히들링턴 교수가 땀을 닦으며 입을 열었다.

“한 번만 더 이런 일이 일어난다면 벌점을 부과하도록 하겠습니다. 알겠습니까?”

“…….”

“후우… 정말이지… 다시 한번 말씀드리지만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은 이념이나 국가, 종교로 학생들을 차별하고 나누지 않습니다. 교수들뿐만이 아니라 학생 여러분들도 지켜야 할 규칙이란 말입니다.”

“…….”

“아무래도 문화나 사상의 차이가 있는 만큼 그게 억지로 안 된다는 건 이해할 수 있지만. 방금 같은 일이 강의실에서 일어나면 타 학생들은 위화감을 느낄 수밖에 없습니다. 아시겠습니까?”

“…….”

“반응을 보아하니 이미 소식을 듣고 계신 것 같지만… 아니, 긴말하지 않겠습니다. 앞으로 함께 공부할 학우들입니다. 간단한 인사를.”

교수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건방지게 한마디를 내뱉는다.

“반갑군. 진영이라 불러라.”

앞으로 잘 부탁한다거나, 잘 지내자는 인사를 할 필요가 있을 리 만무, 내뱉을 것은 이름밖에는 없다.

다소 띠껍게 보일 정도로 오만한 인사였지만 진청의 아들내미에게는 이런 게 더욱 어울린다.

‘컨셉 확실하게 잡고 가야지.’

김미영 팀장 역시 평소처럼 딱딱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도련님을 보필하고 있는 리나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남아 있는 자리에 가서 앉으십시오.”

히틀링턴 교수의 질렸다는 듯한 말투.

터벅터벅 걸어서 맨 뒷자리까지, 이미 사람이 앉아 있는 자리였지만 전혀 신경 쓸 필요가 없었다.

나와 김미영 팀장이 맨 뒷자리로 가서 앉기를 바라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렸는지 스스로 몸을 일으켜 자리를 양보하는 녀석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었다.

“너.”

“네.”

“이름은?”

“슬… 슬라바라고 합니다.”

“고맙다. 기억해 두지.”

“영광입니다!”

‘이거 은근히 기분 째지자너.’

진청 이 새끼가 왜 이렇게 허세를 부리고 사는지 알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편해도 이렇게 편할 수가 없다. 구태여 말을 많이 할 필요도 없고, 하는 말 사람들이 정답일 거라고 생각하니 이해하기도 편하다.

히들링턴 교수는 우리가 자리에 앉은 것을 확인한 이후 수업을 진행하려고 했지만 정상적인 강의를 진행할 수 있을 리 만무.

교수가 무능한 것은 아니었지만 아이들의 집중력에는 한계가 있었다.

교실 안에 있는 학생들 전원이 진영을 의식하고 있는 중, 교국 녀석들조차 힐끔힐끔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심지어 히틀링턴 교수조차 나를 의식하고 있었다.

그야 그림자의 영웅이라고 한다면 공화국뿐만이 아니라 대륙 전체에서도 네임드라고 불릴 만하니까….

사실 저런 반응을 보이는 게 일반적인 반응이었다.

‘좀 과대평가되기는 했어.’

공화국에 워낙 인물이 없다 보니 공화국 내에서 빡세게 홍보한 덕이 없다고는 할 수 없지만, 결과적으로 그림자의 영웅은 대륙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드는 유명인이 됐다.

마케팅을 잘한 덕분에 천재군사로도 명망이 높고, 마법이면 마법, 체술이면 체술, 뭐하나 빠지는 게 없는 만능캐로 평가받고는 한다.

양지에서는 명예추기경이, 음지에서는 공화국의 군사가 활동했다는 선전이 제대로 들어 먹힌 것이다.

‘진짜. 내가 명예 하나는 제대로 살려줬지.’

물론 앞으로 더 살려줄 예정이었다.

아들 하나는 기똥차게 낳았다고 퍼뜨려 줘야지.

“히들링턴 교수.”

“무슨 일입니까.”

“아무래도 지금 설명하고 있는 마법진에 문제가 있는 듯한데…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겠습니까?”

녀석의 얼굴이 붉게 물든다.

“문제는 없습니다만.”

“천천히 다시 한번 잘 생각하고 확인해 보십시오.”

결국에는 이를 악문 히들링턴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정말로 이상이 보이지 않으니 진영 학생이 앞으로 나와 풀어보겠습니다. 만약 공식을 수정하지 못한다면 수업을 방해한 사유로 벌점 5점을 부과하겠습니다.”

“…….”

당연히 가능했다.

위풍당당하게 앞으로 나가 칠판에 마법진을 다시 그리는 것으로 마무리. 마법에는 조예가 없지만 진에는 꽤 조예가 있다.

멍청이가 아니라면 내가 그린 게 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에는 히들링턴 교수도….

“으음….”

이라는 신음만 내뱉을 뿐이었다. 분노보다는 놀라움이 더 큰 것 같다.

순수 학자로서의 호기심이 발동했을지도 모른다. 본인의 그린 진에서 더하기가 아니라 빼기를 했을 뿐인데 오히려 능률이 상승했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고민이 될 것이 분명했다.

제대로 이해할 수 없는 학생들은 그저 멀뚱멀뚱 바라보고만 있는 중, 이윽고 히들링턴 교수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명백한 패배 선언이었다.

‘꽤 괜찮은 놈이네.’

“진영 학생의 말이 맞군요.”

“…….”

“혹시 어떻게 알아차리신 건지 말씀해 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 질문에는 대답할 수 없습니다. 히들링턴 교수. 그냥 보였을 뿐이니.”

“하….”

“…….”

“…….”

“공화국의 군사가 괴물을 키웠군….”

나지막이 내뱉은 히틀링턴 교수의 혼잣말이었다.

‘너 마음에 든다 진짜. 고용된 배우 같어.’

본인도 모르게 조용히 내뱉은 말을 이곳에 있는 학생들 모두가 분명히 들었다. 실수했다는 걸 알았는지 재빠르게 마무리 멘트를 치며 허겁지겁 강의실을 빠져나가는 것도 완벽했다.

“그럼… 오늘은 조금 일찍 강의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렇게 히들링턴 교수도 조심스레 강의실을 나간 직후, 강의실은 불편한 침묵에 휩싸여 있었다.

공화국 놈들이 하나하나 몸을 일으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당연히 자기소개를 하겠지 생각했고 역시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다.

“인사드리겠습니다. 아멜 니콜라이라고 합니다.”

“만나 뵙게 되어서 영광이에요. 리 샤오 란이라고 해요.”

왠지 모르게 익숙한 이름에 곧바로 마음의 눈을 열어보니….

[플레이어 샤오 란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목 조르는 로맨티스트]

‘얘는 가깝게 지내면 안 되겠다.’

공식 석상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아 어디서 뭐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있었는데 결혼도 하고 애까지 낳은 모양인 것 같았다.

어머니의 피를 제대로 이어받은 것이다.

재능은 있는지 월반을 한 모양, 나이대가 제각각이기는 했지만 얘는 다른 애들보다 조금 더 어려 보였다.

“부모님은 잘 지내시나?”

“어머니는 은퇴하신 지 오래되셨고… 아버지는 돌아가셨어요….”

어째서 돌아가셨는지는 굳이 묻지 않았다.

“영광입니다. 빅토르 갈리아라고 합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슬… 슬라바라고 합니다.”

차례대로 인사를 받아주는 것도 일, 그 뒤로도 대여섯 명의 사람들이 한 번씩 정성껏 인사를 하고 있다.

김미영 팀장은 그 와중에도 아들 녀석을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닌 것 같았다.

학교생활은 어떠니, 요즘은 어떻게 지내고 있니,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기는 했겠지만 보통의 자식들이 그러하듯 제대로 말을 해줄 리가 없지 않은가.

김미영 팀장도 바보는 아닌지라 당연히 아들이 한 말을 전부 다 믿지는 않았을 것이다.

직접 자식 놈이 학교 다니는 것을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왔으니 여러 가지로 확인하고 싶은 게 많겠지.

교우 관계는 어떤지, 수업시간에 집중을 잘하고 있는지, 혹시나 나쁜 짓을 하고 다니지는 않을지.

특히나 같은 또래의 소녀와 꼭 달라붙어 있는 걸 보고서는 약간 충격 먹은 것처럼 보일 정도였다.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연애만 하고 있는 건 아니지?’

“너 아까 전에 뭐라고 했어? 명원아?”

“나도 모르게… 왜 그래, 아릴?”

“왜 그래? 지금 그런 말이 나오니? 살다 살다 내가 펠리스 하네스트 말에 동의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지금 쟤네들 보여? 자기들이 강의실 주인이라는 것처럼 저렇게 뭉치면서 분위기 이상하게 만들고 있잖아. 근데 거기에다 대고 예쁘다는 소리가 나와?”

“아릴… 그건… 실수….”

‘누가 봐도 꽁냥대고 있는 것 같은데….’

“실망이야. 김명원.”

“아니야. 아릴! 그게 아니라….”

‘누가 봐도 둘이 사귀기 전까지 며칠 안 남은 것 같은데….’

김미영 팀장 성격상 학업의 방해가 되는 일을 하는 걸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할 것 같지 않았는데. 의외로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는 것같이 보였다. 의외로 연애 같은 것을 통제하는 가치관은 아니었나 보다.

재미있어하는 것 같자너.

입가에 작은 미소까지 그려져 있었다. 약간은 죄책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어떤 부모가 이런 체험을 거절할까.

긴가민가했지만 확실히 김미영 팀장을 데려온 것은 좋은 선택이었다.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허겁지겁 시설을 살펴보기도 했고, 좁기는 하지만 의외로 좋은 시설에 만족하는 것 같기도 했었지.

예산을 어디에다가 들여야 할지 고민하는 것도 너무나 김미영 팀장다웠다.

아무 생각 없이 100퍼센트 휴가를 즐길 수는 없겠지만 얘도 나랑 성격이 비슷한 만큼 라베하 여행 같은 것보다는 이런 게 더 휴가처럼 느껴질 것이다.

조금 멀리 떨어진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인사 좀 할까?”

눈에 띈 것은 교국의 아이들, 누가 봐도 있는 집 자식이라는 것을 티 내고 있는 것마냥 마력 상승에 도움이 되는 아티팩트를 패션용으로 끼고 다니고 있었다.

“말해봐라.”

“그냥. 별것 아니야.”

“…….”

“여기가 공화국이 아니라 교국이라는 걸 너무 잊지는 않아 줬으면 해서.”

“이 자식이! 지금!”

“니콜라이. 나는 네가 나서는 것을 허락한 적이 없다.”

‘방금 대사 미쳤다.’

스스로 입 밖으로 내뱉고도 우수수 소름이 돋는다. 내가 느끼기에도 내가 멋있었던 것 같다.

“큭… 하지만… 진영 님.”

“다만 네 충정은 기억해 두마.”

“감… 감사합니다.”

“이야기를 계속하지. 그러니까….”

“칫! 펠리스 하네스트다.”

“그래. 펠리스 하네스트. 네 말인즉슨….”

“…….”

“지금 이 장소가 교국이라는 걸 이용해 우리들에게 불이익을 주겠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내가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게 맞는 건가?”

“뭐뭣?”

“교국의 하네스트 의원의 적자. 펠리스 하네스트. 지금 네 지위와 배경을 이용해 우리를 협박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아무리 잘난 척을 하고 교육을 받았다고 해봤자. 중딩들은 중딩들이었다. 말실수 하나에 목이 칼에 들어오는 사교계에서 굴러먹었던 나로서는 이놈들이 너무 귀여워 보이기까지 했다.

‘넘… 넘 재밌자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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