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36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5)
“대답해라. 펠리스 하네스트. 감히… 이 나를 협박한 것으로 받아들여도 되겠나?”
당연하지만 한마디도 내뱉지 못한 채로 입을 다물고 있는 녀석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특히나 펠리스 하네스트는 얼굴은 실시간으로 푸르죽죽해지고 있는 중.
한때는 귀족가에 몸을 담고 있었고 지금은 의원의 아들이니 자신이 얼마나 중대한 실수를 범했는지는 대충 깨닫고 있을 것이다.
말 한마디로 칼부림이 나는 세상이다.
가문이고 뭐고 상관없는 자유인들에게는 아무 일도 아닐 수도 있겠지만 유서 깊은 가문 대 가문의 싸움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모욕하거나 협박했다는 사유로도 충분히 정치적으로 압박이 가능한 시대, 언론까지 날뛰기 시작하면 일이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불어 날 수도 있다.
‘하네스트 의원도 참… 근본 중의 근본이었는데… 자식 농사를 잘못 지은 것 같자너.’
하네스트 가문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니다. 구태여 말하자면 교국의 개국공신 중 한 명이기도 했고, 알게 모르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도움을 많이 둔 가문이었다. 괜히 내가 아들을 축복해 달라는 하네스트 의원의 청을 받아들였을까.
애초 다과회에 초대되거나 교국의 명예추기경과 교류를 이어나가는 이들 중에 쭉정이들은 없다.
재산의 여부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가난하든 부유하든 별로 상관이 없다. 사회적으로 명망이 높아야 했고 많은 사람들의 존경을 받고 있어야 했다.
하네스트 의원도 그런 이들 중 한 명이었지만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체급이 맞아야 비빌 수 있는 법이다.
‘어딜 그림자의 영웅한테 비비려 들어.’
당연히 내 신분이 무엇인지 이미 깨닫고 있을 터였다. 솔직히 생김새만 봐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으니까.
“그건….”
“그게 아니라면?”
“…….”
“그게 아니라면 무슨 뜻이었지?”
“…….”
“말을 하는 방법도 잊어버린 건가? 아니면… 실수에 대해 사과하는 방법은… 그 잘난 가문에서 가르치지 않았나?”
“네놈이! 감히! 우리 가문을 들먹여!”
“네가 소리칠 입장이 아니다. 멍청한 놈.”
그야말로 왕의 기세. 자색의 눈동자로 한번 녀석을 노려봐주자 움찔하는 것이 눈에 띄었다.
“나는 지금… 네가 한 실수에 대한 사과를 바라고 있는 것뿐이다.”
말없이 나를 노려보는 녀석이 보인다. 부들부들 떨리고 있는 팔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하지만 딱히 다른 선택지가 있을 리가 없다. 결국에는 조용히 입을 여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내 언행이 약간 경솔했던 것에… 대해서… 유감을… 표하겠다.”
‘곧 죽어도 미안하다고는 안 하네.’
“…….”
“…….”
“받아들이겠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면 이만 비켜줬으면 좋겠군. 오랜만에 만난 인연들과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부족하니… 인사는 다음 기회에 정식으로 하기로 하지.”
“제, 제길… 이걸로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라. 가자.”
호다닥 도망치는 것까지 전형적인 망나니의 모습이었다. 공화국 꼬맹이들은 환호성을 지르거나 대놓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이지는 않고 있었지만 무척 기분이 좋은 것 같아 보였다.
아무래도 이런 문제로 녀석이 시비를 걸어오는 경우가 많았던 모양이다.
파란은 어디까지나 교국 소속이었고, 명예추기경도 교국 평화의 상징이었으니 기를 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타 국에서 교육을 받으며 그동안 쌓아왔던 열등감들이 한순간에 해소된 것이다.
‘그동안 엄청 시비 걸었나 보네.’
엘리트 주의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었지만 확실히 녀석은 그것만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교국에 대한 자부심이 넘치는 것도 좋지만 확실히 위험한 수준이라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까.
‘내가 잘난 거지 시바… 지들이 잘난 게 아닌데….’
저런 놈들이 크면 나중에 전쟁 일으킬 수도 있다니까.
아직도 분이 풀리지 않는지 지 친구들과 함께 분통을 터뜨리는 녀석.
“당장 비키지 못해?! 제길!”
라고 큰소리를 치면서 재빨리 바깥으로 빠져나가는 것까지, 거를 타선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저거 갱생 가능하겠냐고….’
쓸데없는 생각을 하는 사이에 몸을 일으킨 학생들이 보인다.
공화국 소속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눈도장을 찍으려고 하는 놈들. 연방이나 연합에서 온 놈들도 있었고 그 어떤 파벌에도 끼지 못하는 녀석들도 있었다.
순수하게 친해지고 싶은 녀석들도 있을 테고 인사해 둬서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있는 놈들도 있을 터,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인사를 하려고 오는 놈들이 대다수였다.
“아릴이라고 해요. 잘 부탁드려요.”
물론 그중에서는 김미영 팀장의 아들 녀석도 있었다. 아릴이라는 소녀는 이쪽에 인사를 건네면서도 김미영 팀장을 힐끔힐끔 바라보는 중, 아무래도 견제 아닌 견제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명원 녀석은 그 와중에도 자신의 어머니에게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는데….
어느 정도 얼굴을 변형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머니의 모습이 약간은 남아 있으니….
어쩌면 뭔가 익숙한 느낌을 받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김명원이라고 합니다.”
“진영이다.”
“리나라고 합니다. 사이좋게 지냈으면 합니다.”
“앞으로 함께 좋은 공부 했으면 좋겠습니다. 진영 님. 리나 님.”
‘못 본 사이에 훅훅 자라네.’
가까이서 보니 제법 자란 티가 난다. 지난번에 봤을 때는 키가 저 정도로 크지는 않았던 것 같았는데….
조금 더 인사를 나누고 싶었지만 학생들이 너무 많고,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눈도 많은 터라 제대로 인사를 나눌 수가 없었다.
김미영 팀장도 사뭇 아쉬워하는 느낌이었기 때문에 곧바로 입을 열었다.
“슬라바.”
“네!”
“저 둘에 대해서 설명할 수 있나?”
“물론입니다. 진영 님.”
“저 꼬마부터 하지.”
“저 녀석은… 낙제생 김명원입니다.”
“낙제생?”
“네. 매번 시험이나 과제에서 최하위를 기록하거나 기준에 통과하지 못해 떨어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리고 있습니다.”
슬그머니 김미영 팀장을 바라본다.
고개를 휙휙 젓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본인도 들어본 적이 없다는 뜻이었다.
“이론 수업 같은 경우에는 성적이 좋은 편이나 실기 시험 같은 경우에는 처참하기까지 합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마력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고 있는 터라… 노력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고 있기는 하지만 그것뿐입니다.”
“…….”
“그나마 평균 성적을 이론 성적으로 메우고 있기 때문에 전체 순위가 최하위는 아니지만… 시간이 지나갈수록 한계를 보이고 있습니다. 사용하는 마법들이 점점 더 수준이 올라가고 있으니….”
‘재능이 안 좋은 편은 아닌 것 같았는데?’
일반적으로는 교국 8좌 정도로 성장할 수는 없을 것 같기는 했지만 상위 마법사로 성장할 수 있는 자질은 있었던 기억이 있다. 그래서 마법사 쪽을 추천했었던 거고….
정하얀도 바보 멍청이 정도는 벗어날 수 있다고 평가했던 기억도 생생했다.
“출신은 교국입니다. 따로 가문이나 집단에 소속되어 있진 않은 것으로 알고 있으며 파란 국제학원의 교육 시스템의 전형적인 수혜자입니다. 본인이 말을 하지 않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린델에 있는 평범한 집안의 장남으로 유추하고 있습니다.”
‘들었지?’
굳이 자신이 김미영 팀장의 아들이라는 걸 알리지 않은 모양이다.
“다음 인사를 하러 온 소녀는 아릴 베이커입니다. 보통 정신 나간 아릴이라고 불립니다. 연합의 하급 귀족이고… 원만하게 다른 학생들과도 허물없이 지내는 편입니다. 연합 파벌에는 가입이 되어 있지 않고 성적도 나쁘지 않은 편입니다만… 간혹 문제를 일으키는 경우가 있습니다. 김명원과 관련된 일이 보통 그렇습니다.”
“김명원?”
“네.”
“무슨 일이라도 있었나?”
슬라바 녀석이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녀석이 불링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
“…….”
‘아니….’
“보통 김명원이 분쟁에 휘말리면 그녀가 나서서 해결하는 편입니다. 해결하는 건지 문제를 더 키우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김미영 팀장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렇지 않아도 팀장의 입술이 부르르 떨리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손도 벌벌 떨고 있다. 낙제생이었던 것도 따돌림당하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당황하고 있는 것 같았다. 당연히 들어본 적 없을 것이다.
저 꼬맹이가 안 그래도 바쁜 엄마한테 그런 일들을 전부 털어놓을까. 바쁘지 않아도 말하기 힘든 주제였을 테니 말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특히 후자의 경우라면 더욱더 말이다.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자식에 대해 모르고 있다는 게 많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인지… 많이 충격받은 것 같았다.
‘왠지 대충 알 것 같네.’
딱히 교국 녀석들이 아니더라도 김명원에게 가는 시선들이 곱지 않다는 것 정도는 보인다.
한번 의식하며 녀석을 바라보자 그런 현상들이 더더욱 두드러진다. 몇몇은 관심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몇몇은 대놓고 무시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야 마력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마법사라니….
나름 재능이 있다고 선별되어 이곳에 모인 이들에게는 오히려 김명원이 이방인처럼 비칠 것이다.
“아무래도 교국 놈들은 김명원을 교국의 수치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대놓고 괴롭히거나 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시다시피 교국 녀석들은 체면치레를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니 말입니다. 아마 실기 수업을 보시면 제 말이 무슨 뜻인지 아실 수 있을 겁니다.”
녀석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래, 확실히 알 것 같기는 하네.’
실제로 실기수업에 들어가자 문제가 곧바로 두드러졌다.
“…….”
“…….”
“…….”
“너희들은 마법이라는 걸 정의할 수 있겠나?”
“정하얀 님께서는 정의하시기를 마법은….”
“파란의 대마법사의 말을 너희들이 이해할 필요는 없다. 귀담아들을 필요는 더더욱 없지. 그녀는 애초에 마법을 학문으로 받아들이고 있지 않은 사람이다. 나조차도 그녀가 내놓은 논문이나 말을 10%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으니….”
“…….”
“우리 같은 사람들에게는 학문으로서의 마법이란, 마력을 길에 따라서 움직이게 하고, 주문과 수인을 외우고, 발동하는 것이 전부다. 머릿속으로 이미지하고, 공식을 기억하고, 없는 것을 만들어내기 위해 계속해서 도전하고 또 수정하고 반복하는 게 끝이다. 끈기와 인내와 상상력과 노력의 산물이란 말이다. 이해할 수 있나?”
“…….”
“그것을 수백 번, 수천 번 반복해야 겨우 마법사라고 불릴 자격이 있다. 네놈들이 그렇게 배우고 싶어 하는 안개 마법도, 단지 수증기를 만든 것의 변형에 불과하다 이 말이다. 난 그걸 계속 반복했던 것뿐이다.”
“…….”
“그러니 매번 같은 마법만 실습해서 아쉽다는 헛소리를 지껄이지 말고. 차례대로 나와서 배운 것을 반복해라.”
김명원이 앞에 나가서 주문을 시전하자마자 여기저기에서 키득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누가 봐도 명백한 비웃음이었다.
“간단하고 쉬운… 마법이잖아. 저걸 왜 못하는 거지?”
“수치스러운 놈.”
“어째서 저런 녀석이 이 학교 있는 거야?”
“다음 진도로 못 나가는 것도 쟤 때문 아니야?”
아무리 애들 일이라지만….
‘짜증 나려고 하는데….’
불쾌한 기억이 조금씩 떠올랐을 때, 내 손을 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김미영 팀장의 모습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