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38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7)
본래 주인공에게 라이벌의 존재는 필수 불가결한 법이다. 그게 성장을 주목적으로 하는 소년만화라면 더욱더 그렇다.
교우들끼리의 아름다운 우정, 라이벌과의 신념을 건 승부, 이성 급우들과 느끼는 풋풋한 감정, 꼬맹이들끼리 일어나는 사건들이라는 것은 당연히 이런 요소들을 가지고 있어야 했다.
김미영 팀장은 이 커다란 스토리를 어떻게 이어나가야 할지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딱히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이미 어느 정도는 배경이 만들어져 있었으니 말이다.
정확히는 진영이 학교에 오기 전에, 이미 공화국의 꼬맹이들과 교국의 꼬맹이들의 갈등이 점점 쌓여가고 있는 시점부터였을 것이다.
건드리기만 해도 펑 하고 터질 것만 같은 긴장 상태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 않았을 뿐이다.
‘여기도 사회니까.’
이런 꼬맹이들 노는 곳에서 실권을 잡았다고 해서 돈을 벌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딱히 뭘 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어린놈들은 그런 걸 신경 쓸 줄 모르면서도 학급 내 위치에 은근히 집착한다.
태생이 귀족 꼬맹이들이라면 아마 일반 학생들보다 더욱더 그런 것에 관심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여기 있는 교국 꼬맹이들의 경우가 딱 그랬다.
교국의 위상도 위상이지만 린델 삼대길드의 위상 또한 워낙 대단한 터라 자연스럽게 실권을 잡게 된 것이다.
알게 모르게 교국의 학생들은 목을 뻣뻣하게 들고 다니고 있었고, 상대적으로 다른 국가의 아이들 같은 경우에는 조금 소극적이게 된 경향이 있었다.
사연이 이렇다 보니 큰 사건이 일어날 리 없었다.
공화국 학생들은 한 발자국 물러나 실리를 챙기는 쪽을 선택했고, 교국 녀석들도 딱히 벌집을 건드리기는 싫어 현 상태를 유지하고자 했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갑자기 등장한 바로 그 녀석.
진영이 이 잔잔해 보이는 호수에 파문을 일으켰다.
‘너무 자연스럽게 대립 구도가 잡혀 있자너.’
지금 이 순간에도 힐끔힐끔 우리 쪽 아이들을 바라보고 있는 교국 녀석들의 시선이 신경 쓰인다.
펠리스 하네스트를 비롯한, 소위 말하는 근본 있는 놈들은 이쪽을 견제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자연스럽게 공화국 녀석들 또한 교국 학생들을 의식하고 있는 중.
삼 일도 되지 않아 충신이 된 슬라바가 조용히 입을 열었다.
“진영 님.”
“…….”
“마도학자 황정연 님과 대마법사 정하얀 님께서 강단에 서신다고 합니다.”
‘당연히 알지. 내가 불렀는데.’
“알고 있다.”
멀어져야겠다고 다짐했던 목 조르는 샤오 란도 교국 녀석들을 흘기며 말을 이어나간다.
“시기가 조금 이상해요. 아마 진영님과 우리 파벌을 견제하기 위해서 이지 않을까 싶은데….”
“…….”
“…….”
‘그거 아니야. 걔네가 왜 공화국 꼬맹이들을 왜 견제하겠어. 도대체….’
그저 조금 도움을 받기 위해서 일 뿐이었는데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건지 모르겠다.
“교국 학생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함일까요?”
‘도대체 꼬맹이들한테 힘을 실어줘서 얻는 게 뭐가 있다고 힘을 실어주겠어.’
“확실히 진영 님이 신경 쓰이는 것이겠죠. 파란 길드가 직접 움직일 정도니까요. 아무리 지금의 교국이 강국이라고는 해도 공화국의 작은 그림자를 무시할 수 없었던 게 분명해요.”
‘그거 아니야.’
“위선적인 놈들….”
“겉으로는 평화니 정의니 희생이니 떠들어대기는 하지만 교국이야말로 가장 앞과 뒤가 다른 놈들이니… 그럴 만도 하죠.”
주군을 위해서라면 목숨이라도 바칠 것같이 컨셉을 잡은 빅토르 갈리아도 한마디 보탠다.
“혹시나 파란의 마도학자와 대마법사가 진영 님에게 해를 끼칠 가능성은 있겠습니까?”
“어쩌면요. 자신들이 생각했던 것보다 작은 그림자의 이빨이 날카롭다고 생각한다면… 무슨 짓인들 못 하겠어요? 특히나 대마법사 같은 경우에는 이미지와는 다르게 그 성정이 무척 잔인하고 난폭하다는 소문이 있어요.”
“…….”
“제가 생각하는 상황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지만 ‘혹시 모를 우연치 않은 사고’가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죠. 국제학교의 마법부에서 사고가 일어났다는 오명을 얻기야 하겠지만… 공화국의 미래를 제거할 수 있다는 쪽에서는 싸게 먹힐 테니까요.”
“그런….”
“조심스럽지 않게 행동할 이유가 없어요.”
“흥. 더러운 교국 놈들. 안심하십시오, 진영 님. 혹시나 무슨 일이 생긴다면. 이 빅토르 갈리아가 목숨을 바쳐서라도 반드시 진영 님을 지키겠습니다.”
“저 역시 마찬가지예요. 어머니의 이름을 걸고, 반드시 진영 님을 지키겠어요.”
“…….”
“이미 모든 학부에 있는 공화국 학생들에게 주의를 줬습니다. 진영 님.”
“역시나. 슬라바. 당신답군요. 혹시 모를 사고를 벌써부터 대비하고 있다라… 새끼이기는 해도 여우는 여우인 모양이에요.”
“부끄러울 따름입니다.”
‘너희들 왜 그러니 진짜.’
“사실 이미 탈출 루트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아니, 시바 탈출할 일 없으니까 그만 좀 해.’
“웃음이 나오네요… 서로 등 뒤에 칼날을 숨기고 있는 지금 상황이… 정말 우스워요.”
‘안 웃겨. 시바.’
마치 세상에게 배신당한 것만 같은 공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샤오란의 모습이 보인다.
새끼 여우인지 똥강아지인지 모르겠지만 슬라바 저 녀석도 굳은 의지를 표현하고 있었다.
목숨을 바쳐서라도 길을 열고 말겠다는 빅토르 갈리아는 말할 필요도 없다.
‘이거 그냥 컨셉 잡고 놀고 있는 거 아닌가?’
저 말 한마디 한마디에 진심이 가득 담겨 있다는 게 괴롭다.
얘네들은 진심으로 자신들이 영향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는 것일까.
꼬맹이들에게 신경 쓸 정도로 파란 길드와 교국은 여유롭지 않았지만 쟤네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판단할 수 있다고 여겨진다. 꼬맹이들에게는 꼬맹이들의 세계가 있는 법이니까.
모든 게 본인들을 위주로 돌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나이대이니 구태여 설명할 필요도 없었다. 어차피 얘네들은 자기들이 믿고 싶은 걸 믿으니까.
어느 정도는 용인하고, 심지어 즐기기도 했지만 얘네들은 정말로 선을 넘고 있는 듯한 느낌.
웬만해서는 부끄러워지지 않는 얼굴이었지만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진다.
심지어 어울려주기까지 해야 했으니 나답지 않게 수치심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흥. 두려워할 필요도 무서워할 필요도 없다.”
“진… 진영 님.”
“진영 님.”
“아무것도 없는 일처럼 행동해라. 굳이 초조함을 드러낼 필요는 없어. 적들이 부딪쳐 온다면 우리 역시 부딪칠 뿐이다. 마도학자? 대마법사? 흥. 그들이라고 한들 같은 인간이다. 이 내가 긴장할 필요는 없다.”
“역시….”
“…….”
아예 컨셉을 잡는 김에 확실히 잡는 게 나을 것 같았다.
“알고 있나?”
“네?”
“내 자색 눈에는 엄청난 것이 봉인되어 있다는 것을….”
“그…런….”
“나 역시 녀석들과 같은 괴물이다.”
“진영 님… 그런 비밀을… 저희들에게….”
“나를 위해 목숨까지 바칠 생각이 아니었던가? 나 역시 너희들에게 숨기는 것이 있어서는 안 되겠지.”
어린놈들의 눈이 반짝반짝 빛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미 충성 선언을 한 놈들이었지만 자색 눈의 비밀에 대해 들은 이후에는 맛탱이가 간 것마냥 나를 선망의 대상으로 바라보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다. 무려 자색 눈에 봉인되어 있는 힘이었다. 저 나이대의 감성으로는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무언가였을 것이다.
‘이거 효과 좋네. 안대까지 구해 와야겠다.’
결국에는 입을 꽉 다문 녀석들이 말을 이어왔다.
“샤오 린의 장녀 리 샤오 란, 진영님에게 충성의 맹세를!”
“빅토르 갈리안, 이 몸이 부서질 때까지 진영 님을 섬기겠나이다!”
“……!”
“흥. 충성의 맹세 따위는 아무래도 좋다. 이미 나는 너희들을 믿고 있으니. 나는 너희들을 동료로서. 또 친구로서 대우하겠다.”
“진… 진영 님….”
어처구니없었던 것은 이 한 편의 희극에 불안해하는 녀석들이 존재한다는 것.
“칫….”
“어떻게 하지?”
“제길….”
“녀석들의 결속이 더욱더 단단해지고 있어. 펠리스 하네스트. 이거 괜찮은 거야?”
“초조해하지 마. 반드시 기회는 온다.”
이 끈끈한 결속력을 멀찍이서 보고있는 놈들의 얼굴에서는 불안감이 서린다. 심지어 아릴과 김명원조차 말이다. 이 상황을 무척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 보인다.
“위험해….”
‘도대체 뭐가 위험한데?’
“지금 공화국 학생들 말이야… 진영이 오고 나서 모든 게 달라지기 시작하는 것 같아.”
이런 분위기를 만든 것만으로도 부끄러움을 견뎌낼 만한 가치가 있었다. 나름대로 평화로웠던 학급의 분위기에 긴장감이 들어선다. 아마 마법부뿐만이 아니라 다른 학부의 상황도 이것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국가 간 꼬맹이들의 갈등이 너무 커진다 싶으면 본래 교수들이 중재를 하는 식이었겠지만 이번에는 그럴 수도 없을 터였다.
심지어 그 중재안조차 제대로 먹히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게 먹혔으면 지금 쟤네들이 저러고 있겠는가.
기껏해야 다른 국가 녀석들끼리 같은 조로 뭉치게 하기, 수업시간에 섞여 앉기, 간혹 엠티를 가거나 학생 원정을 나가 촛불 켜놓고 모두가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을 함께하는 친구라는 것을 강조하며 눈물타임을 한번 가지기 정도겠지만, 이미 흑화할 대로 흑화한 녀석들의 입장에서는 모든 것이 위선적으로 보일 뿐이었다.
게다가….
“안, 안녕하세요. 그… 그러니까. 처음 뵐게요. 어, 어린이 여러분.”
“…….”
“이, 이렇게 자기소개를 드리는 것도 조금… 부, 부끄러워서… 일단 앞으로의 수업에 대해서… 아… 아….”
“…….”
“정하얀 님께서는 전장마법의 이해에 대해 강의하신다고 하셨습니다.”
“소라 말이 맞, 맞아요.”
의식적으로 국가 간의 대립을 자제했던 다른 수업과는 다르게 하얀이의 수업은 철저하게 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구조로 진행할 생각이었으니까.
“5명씩 조를 나누겠습니다.”
“네. 소, 소, 소, 소라 말대로 아무렇게나 서로 짝 지으세요. 조별로 앉, 앉아요. 그… 그리고….”
“정하얀 님께서는 일단 첫 수업이니만큼 간단한 실습을….”
“네. 소, 소라 말이 맞아요.”
“…….”
“조, 조는 다 정해진 건가요?”
통역사를 불러오길 잘했어.
마법사들의 꿈이자 목표라고 부르는 사람이 들어와서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교실의 분위기가 평소보다 조금 더 조용하다.
뚫어지게 하얀이를 바라보는 이들의 눈들에는 선망이 서린다. 심지어 대마법사의 위험함을 강조했던 공화국 꼬맹이들마저 하얀이를 힐끔힐끔 바라보고 있었다.
대놓고 티를 내지는 못하고 있었지만 국가와는 관계없이 마법사로서는 존경할 수밖에 없었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반응이다.
그 와중에 하얀이는 나를 바라보며 슬금슬금 눈빛을 쏴대다 손을 흔드는 중. 손으로 엑스자를 표시하자 고개를 끄덕이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티 나잖아.’
수업에 들어오기 전에 칭찬 좀 해주라고 주문을 했었지만….
“당, 당신… 천, 천재로군요.”
이렇게 다짜고짜 말할 줄은 몰랐기 때문에 조금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위험하고… 어두운 마력… 마치 심연 속 어둠이 느껴지는….”
“…….”
“당신은… 마력의 축복을… 아니, 저주를 받은 천, 천재로군요.”
물론 설정은 좋았던 것 같다.
정하얀 본인도 무척 만족하고 있는 모양새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