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41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0)
-오빠. 군사님 진짜 열 받았나 본데요?
-왜.
-무려 공식 서신이 도착했어요. 웃음기 하나 없다니까요. 무슨 남한테 편지 보내는 것마냥… 더 이상의 폭거는 용납하지 않겠다느니… 지금 하고 있는 오만방자하고 유치한 도발을 중단하라느니….
-…….
-린델을 불바다로 만들어버리겠다는 말이 안 나오는 게 이상하다니까요. 이제 공식적으로 통신 채널도 닫는대요. 연락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아주 정중하게 표현했어요.
-내 통신 채널로 도착한 거야?
-당연히 그렇죠. 전문 읽어드려요?
-아니, 그걸 전부 다 왜 읽어? 참 이 사람은 이해심도 없네. 직장 동료들끼리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거지. 자기가 대륙에 똥 싸놓은 건 생각도 안 하고 말이야. 명예 지킬 생각만 하고 있으니까. 대륙이 이 모양 이 꼴 된 거 아니야. 그러게 누가 사업 조져 놓으래?
-그건 그렇기는 하죠.
-그래서 뭐 공식발표는 했어?
-아니요. 쥐 죽은 듯이 조용히 있어요. 공식적으로 아들 같은 건 없다고 발표하고 싶은 것 같기는 한데… 그걸 어떻게 공식적으로 발표를 하겠어요? 공화국 고위직들한테만 이야기가 돌고 돌아서, 국민들 중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태반인데 스스로 광고할 일 있는 것도 아니고….
-그렇기는 하지.
-아마 오빠가 어떻게 대응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하고 있겠죠. 막무가내로 들이댔다가 아들 버린 쓰레기가 될 수도 있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공화국 고위직들한테 이야기가 나오고 있기는 했어요. 어째서 아들을 숨겨야만 했는지… 사생아라거나… 내다 버린 자식이라거나 뭐 그런 거 있잖아요.
-당장 미쳐 날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신중하네.
-아마 면목이 없어서 그런 거 아닐까요?
-무슨 면목.
-큰소리칠 타이밍이 안 나오는 거죠. 뭐 한 게 있어야 큰소리를 쳐도 칠 텐데… 뭐 해놓기는커녕 제대로 한 게 없으니 체면이 서겠어요? 원래 진 군사 성격이 그렇잖아요. 제가 볼 때는 화난 것도 있는데 아마 이 이유도 클 거예요. 자기가 큰소리칠 입장이 아니라는 걸 인지하고 있을 테니까요.
-하기사….
아마 내가 녀석의 입장이었어도 비슷한 행동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신한테 당당해야 큰소리도 칠 수 있는 법이다.
아마 모르긴 몰라도 나와 지혜 누나와 만나기를 꺼리고 있지 않을까.
-벌려 놓은 거 수습하고 있겠구나.
-그렇죠. 사실 지금 무슨 생각 하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일단 자기가 조져놓은 거 복구부터 할 생각일 거예요. 이 갈면서 수습하고 있는 것 같은데 아마 결과물은 나쁘지 않을 것 같기는 해요. 시간도 얼마 안 걸릴 것 같고… 오빠는 이제 뭐 할 거예요? 정학 먹었잖아요.
-사람들 좀 만나게. 바젤 교황도 본 지 너무 오래됐고, 전부 다 만날 시간이 날지는 모르겠는데 일단 한 명이라도 봐야지.
-지금 교황청이에요?
-응.
-추진력 하나는 빠르네요. 알겠어요. 그럼 걔네들 준비해 놓으면 되죠?
-응. 누나 대륙 던전화 때 같이 행동했었던 쌍둥이들이랑 빌런같이 생긴 애들 기왕이면 하연수도 좀 빌려줘. 걔 은근히 센스 있더라고.
-연수는 시간이 될지 안 될지 모르겠지만 뭐… 이야기는 해볼게요.
끝으로 이지혜와의 통신이 끊겼다.
‘아마 불러오기는 하겠지?’
지혜 누나와 대륙 던전화 당시에 함께 움직였던 1회 차 여단 멤버들의 비주얼들이야 굳이 말할 필요도 없지만 아무래도 쟤네만으로는 조금 부족하다.
사회성 따위는 키우지 않았을 것 같았던 진짜배기 사이코패스들이 극에 얼마나 어울려 줄 수 있을지 의문이었으니….
그 치들을 컨트롤해 줄 사람의 중요성이야 말할 필요도 없었다.
‘쌍둥이랑 멀대랑 외팔이랑 있었나?’
잘 기억은 나지 않았지만 양지에 모습을 드러낸 적이 없는 실력자 들인 만큼 교육시설에 테러를 일으키기에는 제격인 녀석들이다.
앞으로의 짧은 계획에 대해 곰곰이 생각하려고 허벅지를 손가락으로 툭툭 두드렸을 때 문밖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명예추기경이 왔으면 명예추기경이 왔다고 말을 했어야지! 이 멍청한 것아!”
“죄, 죄송합니다. 교황 성하. 마침 기도를 올리시는 도중이라….”
“명예추기경이 교황청을 방문했는데! 그깟 기도가 문제인가! 이… 이 얼마 만인데… 도대체 몇 분이나 명예추기경을 기다리게 한 게야!”
‘그깟 기도가 아니잖아요… 바젤 교황님. 그리고 30분밖에 안 기다렸는데….’
“죽을죄를….”
“닥쳐라! 이 아둔한 것아!! 네 마음속에 필히 명예추기경과 내 사이를 이간질하려는 마구니가 들어 있구나!”
“아닙니다! 아닙니다! 교황 성하!”
“일단 이러지 마시고 안으로 들어가시지요. 교황님. 안에서 명예추기경님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교황님. 일단 안으로….”
늙어서 성격이 조금 죽었을 줄 알았는데 아직까지 쩌렁쩌렁 힘 있는 목소리가 들려온다.
편지에는 슬슬 살날이 얼마 안 남았네, 이제는 곧 베니고어 님의 곁으로 갈 때가 됐네… 라고 적혀 있기는 했지만 장담하건대 50년, 아니, 어쩌면 70년은 더 살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끼이익 소리와 함께 살짝 열려온 문으로 급하게 들어온 것은 약간 허리를 굽고 있는 노인.
방금까지만 해도 메이스를 들고 오네 마네 했던 영감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이제는 슬슬 자신이 약해지고 있다는 것을 피력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그야 다음 대의 교황에 대해서도 슬슬 생각할 시기일 테니 그럴 만도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너무 오바자너.’
“명… 명예추기경?”
“오랜만에 뵙습니다. 바젤 교황님.”
“허… 정말로 명예추기경이 맞는가?”
곧바로 눈이 휘둥그레지는 모습. 찬찬히 내 모습을 본 바젤 교황의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베니고어시여… 베니고어시여….”
아니나 다를까 노인답지 않은 몸놀림으로 발을 성큼성큼 내디디며 내 손을 꽈악 잡아주는 중.
이다음이야 뻔했다. 그동안 나를 만난 사람들의 공통점 같은 것이라 바젤 교황의 행동이 예상이 간다.
역시나 이쪽을 꼭 껴안으며 등을 토닥토닥 두드려 주는 바젤 교황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이 할아버지 왠지 더 기뻐 보이는데.’
마치 손주라도 생긴 것 같은 얼굴이 아닌가.
그야 슬하에 자식도 두지 않고 결혼도 하지 않았으니 그런 마음이 이해가 가기야 했지만, 정말로 손주를 바라보는 할아버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으니 살짝 당황스러웠다.
성인 버전이었을 때도 종종 바젤 교황의 그런 눈빛을 느낄 때가 많기는 했지만 겉모습이 어려진 지금은 조금 더 노골적이었다. 인자한 미소가 계속해서 입가에 감돌고 있었다.
“일, 일단 앉게. 어떻게 된 일인지 설명해 줄 수 있겠나?”
“라베하에서 악신 겔리와 사하가의 싸움에 휘말렸습니다. 아마도 2년, 혹은 1년 내에 다시 되돌아온다고 하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바젤 교황님.”
“그랬구만… 그러고 보니 라베하로 떠난다고 했었지. 이 늙은이는 모르는 사이에 명예추기경은 또 대륙을 위해 싸우고 있었구만….”
“교황청을 지키는 것이 대륙을 지키는 것과 다름이 무어 있겠습니까. 심려치 마시고 건강을 챙기셔야지요.”
“콜록. 콜록. 그렇지 않아도 요즘 점점 베니고어 님이 가까워진 것 같은 기분이네. 명예추기경.”
‘아… 또 왜 이래.’
오래오래 해 먹으셔야지.
김미영 팀장도 김미영 팀장이었지만 바젤 교황의 은퇴도 그리 달갑지는 않다.
사실 그리 유능한 교황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지만 통제력이나 장악력에는 거의 최상급의 점수를 주고 싶을 정도였으니까.
무엇보다 함께 올해 일하기도 했으니 편하기도 편하다. 갑작스럽게 사업 파트너가 바뀌는 것을 환영할 만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직 정정하신데 왜 이래.’
“슬슬 때가… 온 것 같기도 하네….”
“그런 말씀 하지 마십시오. 아직 베니고어 님께서 교황님이 곁으로 오시는 것을 바라지 않으실 겁니다.”
“명예추기경이 그렇다면 그런 것이지만… 나도 준비는 해야 하지 않겠는가. 천 년 만 년 살아 명예추기경이 그리는 교국과 대륙을 지켜보고 싶기는 하지만 필멸자에게는 필멸자에게 주어진 운명이 있는 법이라네. 슬슬 나도 이 축복받은 곳을 떠날 때가 된 게야.”
‘아니….’
“바젤 교황님….”
‘아, 이 할아버지 부탁할 거 있나 보다.’
대놓고 말하지는 못하고 이리저리 눈치를 보고 있는 모습, 자꾸만 약한 척하는 걸 보니 먼저 물어봐 주기를 바라는 것 같았다.
“혹시 제가 도울 일이 있겠습니까?”
“괜찮네.”
“교황님께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사실 별것 아닌 부탁이 하나 있기는 하지만….”
“말씀 주셔도 됩니다.”
“아닐세. 이 늙은이가 무얼 더 바라겠는가. 그저 명예추기경이 오래오래 이 대륙을 평화로운 곳으로 만드는 걸….”
“정말로 괜찮습니다. 바젤 교황님, 어서 말씀하시지요.”
“큼… 큼….”
“…….”
“큼… 정… 그렇게까지 말한다면 작은 부탁이 있는데….”
“…….”
“혹시… 초상화에 함께 해줄 수 있겠나? 내 죽기 전에 명예추기경과 함께했다는 추억을 남기고 싶으이….”
“…….”
“…….”
아마 역대 교황들의 초상화들을 걸어놓은 사진을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보통 교황이 평생에 쓰던 물건이나 의복 같은 것과 함께 놓는 것이 국룰, 사람과 함께 남겨놓는 경우는 없다시피 하지만 크게 상관은 없다고 여겨졌다.
이기영이 그냥 이기영도 아니고, 베니고어 교단의 상징 같은 것이었으니….
‘누가 딴지를 걸 수 있겠어.’
별 상관은 없다고 여겨졌다.
“영광스럽게 받아들이겠습니다. 바젤 교황님.”
“정말인가? 하하하! 거기 누구 있느냐! 어서 화가를 들라고 하게!”
“네?”
‘아니, 이 할아버지 진짜.’
방금 전까지만 해도 분명히 걷는 것마저 힘에 부칠 것 같았던 늙은 영감이 벌떡 일어나 문 쪽으로 뛰어간 것은 순식간. 무겁고 거대한 문을 벌컥 열어젖힌다.
“바젤 교황님….”
“어차피 근 시일 내에 교국민들에게는 공개하지 않을 테니 너무 신경 쓰지 말게나. 거기 어서 화가를 들라고 하라!”
“조금만 기다려 주신다면….”
“아무나 괜찮으니 빨리 들라고 하지 못하겠는가!”
“넷! 알겠습니다!”
모든 게 순식간에 진행된다. 나와 바젤 교황이 앉을 의자도, 갑작스럽게 꾸며지는 뒷배경도….
지금 이 모습은 대외적으로는 비밀이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보는 제이나 추기경과 헬레나 이단심문관이 입장해 내 의복을 맞춰주고 있었다.
그 둘과 함께 인사를 나누는 과정에 포옹을 받은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딱 기도회에서 입었던 옷이었는데 아무래도 갑작스럽게 일을 진행하다 보니 장인을 불러와 수선도 그 자리에서 진행하고 있는 중.
바젤 교황의 추진력이 대단하다고는 알고 있었지만 그야말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속도에 당황스러움만 남는다.
‘시대도 바뀌었는데 그냥 사진으로 남기면 안 되나.’
결국 모든 준비가 되기까지 전에 걸린 시간은 한 시간 남짓. 안으로 들어온 화가가 벌벌 떨며 붓을 준비하는 동안, 바젤 교황이 다시 한번 말을 이었다.
“오늘 자네가 여기서 듣고 본 것을 밖으로 나가 발설하지 말게.”
“절대로… 절대로 아무 말도 하지 않겠습니다. 교황 성하! 만나 뵙게 돼서 영광입니다. 명, 명예 추기경님.”
아무래도 빠르게 인사하고 기숙사로 돌아갈 계획은 물거품이 된 것 같았다.
사이 좋게 의자에 앉아 억지로 웃는 표정을 짓는 것도 일이다. 물론 그 과정 동안 바젤 교황과 많은 이야기를 나눈 건 나쁜 시간은 아니었지만 말이다.
“요즘 교국이 조금 어수선하다는 것 알고 있나?”
“네?”
“또 이단들이 설치고 있는 모양이네. 세상이 이렇게 평화로운데 놈들은 무엇이 그리 불만인지….”
“혹시 자세히 이야기를 들어볼 수 있겠습니까?”
“아직까지는 조사를 하는 도중이네. 악마숭배서와 함께 흔적을 발견되었지. 연합과 연방의 국경 지역 쪽에 하나. 북부에 하나. 인신 공양을 하려고 했는지 육망성의 마법진도 같이 발견되었다네. 아직까지는 그리 규모가 크지는 않아 걱정할 정도는 아니지만… 언제나 그렇듯 방심할 수는 없네.”
조금은 심각한 사안부터….
“많은 신도들이 명예추기경을 기다리고 있다네.”
“그렇지 않아도… 기도회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베니고어 님께….”
신도들이 오매불망 기다리는 기도회에 대한 이야기까지.
그 외 여러 가지 잡담들을 나누고는 했다. 계속해서 자리에서 일어나 화가의 그림을 확인하는 바젤 추기경 때문에 말이 중간중간 끊기기는 했지만 그간 근황이나 교황청에서 있었던 일들이 꽤 흥미로웠던 터라 즐거운 시간이라고 할 수 있었다.
교단 내의 권력 구도라든가, 젊은 신도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는 운동이라든가, 신성한 민주주의에 대한 새로운 해석이 나왔다든가.
심지어 바젤 교황의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들어줘야 했기 때문에 정말로 심심한 할아버지와 노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는 했지만 말이다.
“오늘은 교황청에서 하루 머무르고 가는 게 어떤가?”
“저도 그러고 싶지만 아쉽게도….”
“…….”
“…….”
‘아니, 왜 갑자기 허리가 굽어요.’
혈기왕성했던 노인이 점점 작아지는 것이 보였지만 아쉽게도 교황청에서 머무를 수는 없다.
“작품을 마무리해야 할 테니, 한 번 더 들르도록 하겠습니다. 바젤 교황님.”
“오오… 그런가? 그럼… 기다리겠네.”
여기에 이 할아버지랑 놀아주는 사람 없나?
멀리서 손을 흔드는 모습이 매체에서 많이 본 시골 노인 같은 모습이었다.
그런 바젤 교황의 모습이 머릿속으로 그리며 기숙사에 도착했을 때.
방 앞에 서성거리고 있는 익숙한 인형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뭐야. 이 새끼 왜 왔어 여기.’
슬그머니 모습을 숨긴 것은 당연지사.
“제길… 제기랄… 이 개자식.”
같은 혼잣말이 들려왔다.
차단했다며. 이제 연락 안 한다며. 갑자기 왜 찾아왔어.
“…….”
“…….”
‘생각해 보니까 빡쳐서 찾아왔나?’
잠자리에 들려다 갑작스레 치밀어 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는 것처럼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