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42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1)
“쓰레기 같은 놈이 감히… 말도 안 되는 짓거리를….”
‘진짜 화난 것 같은데….’
마주치지 않는 게 더 나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리 봐도 이성을 잃기 직전의 모습, 공식 서신까지 보낸 주제에 이렇게 찾아올 정도라면 이 새끼가 얼마나 화가 났는지 예상할 수 있었다.
지혜 누나 말처럼 찾아와도 녀석에게 득이 될 것이 없는 타이밍이 아니었던가.
체면을 중요시하는 만큼, 자신이 겪고 있는 문제들을 해결한 뒤에 올 거라고 예상했지만 도저히 그럴 수가 없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당연하지만 미친놈, 혹은 미치기 일보 직전의 놈들과는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것이 상식. 슬금슬금 몸을 뒤로 빼며 녀석의 범위 내에서 벗어나려고 했을 때였다.
툭 하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가 내 어깨를 부여잡고 있는 것이 보인다.
‘시바.’
전까지 분명 앞에 보이고 있었던 진 군사의 모습이 보이지 않아 슬그머니 뒤를 돌아보자 인상을 찡그리고 있는 진 군사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네놈….”
“…….”
“이기영….”
“안녕하세요. 오랜만이네요. 군사님.”
“이기영 이 개자식!”
“아니, 왜 멱살을 잡고 그러세요. 잠깐만. 잠깐만 진정하고 우리 말 좀….”
몸이 그대로 들어 올려진 채로 이동된다. 최대한 바둥바둥거려봤지만 녀석은 곧바로 방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는 중.
복도 안에서 소란을 끼쳐서는 안 된다는 이성은 남아 있는 모양인지 곧바로 문을 닫고 분노를 쏟아내는 진 군사가 눈에 보였다.
“조금 더 차분하게 말 좀….”
“웃기지 마라! 이 개자식! 이번에는 도대체 뭘 꾸밀 생각이지? 도대체 무슨 개 같은 짓거리를 하고 다니는 거냐. 아들? 아들? 네놈이 내 아들이라고?! 무슨 말 같지도 않은 거지 같은 소리를!”
“사연이 있어요. 아니 사연이 있다니까!”
“웃기지 마라! 이 비열하고 야비한 쥐새끼! 저번에도 네 그 거지 같은 짓거리에 휘말려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고는 있나? 블랫마켓에서 노예를 구매했다는 개 같은 소문이 아직도 가시지 않았는데 이번에는 아들이라고? 갑자기 사생아가 튀어나왔다는 걸 내가 어떻게 설명해야 되지?”
“아니, 왜 이렇게 답지 않게 흥분하고 그러세요? 진짜. 지성인답게 대화로 해결해 나가도 되는 문제를….”
작은 몸으로 대롱대롱 매달려 있으니 몸이 불편해진다. 진 군사는 계속해서 손을 흔들고 있는 중, 몸이 따라 흔들리는 마당에 멀미가 날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 새끼 때리려고 하는 거 아니지?’
“지금 당장 원래 모습으로 돌아와라! 지금 당장!”
‘돌아가면 때릴려고?’
어린아이에게는 손을 대지 않는다는 것인지, 아니면 지금의 모습이 꼴 보기 싫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성을 잃은 진 군사는 계속해서 돌아오라고 말하고 있었다.
“못 돌아가요.”
“웃기지 마라.”
“아니, 진짜 못 돌아간다니까요. 앞으로 2년은 이러고 있어야 된다는데….”
“뭐라고?”
“로헨에서 잠깐 영혼을 분리할 일이 있었는데 지금은 합쳐지는 과정이에요. 자세히 설명하자면 이야기가 길어지기는 하는데 아무튼 간에 1년에서 2년은 꼼짝없이 이러고 있어야 된다니까요. 나도 돌아가고 싶은데… 돌아갈 수가….”
“뭐?”
‘시바 이래서 말하기 싫었던 건데.’
분노로 일그러진 얼굴에 언뜻 비웃음이 서린다. 여유는 찾아볼 수 없었던 표정에도 어느덧 슬슬 여유가 깃든다. 마치 웃음을 찾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푸… 푸하하핫! 그 꼴로 2년을 더 살아야 된다고?”
“…….”
“멍청한 네놈다운 생각이었구나. 영혼을 분리시킨다니… 2년은 떨어졌던 게 융합하는 과정이겠고. 경우에 따라서는 더 오래 걸릴 수도 있겠구나. 2년이라는 것도 네 예상이 아닌가? 그 비열한 낯짝이 네놈의 유년 시절에도 깃들어 있어. 참으로 꼴사나운 모습이야. 딱 네놈다운 모습이야.”
‘엄밀히 말하면 니 얼굴이랑 섞은 거세요. 시바.’
“아니, 그렇기는 한데.”
“아니지.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내 말에 빨리….”
“아니, 그게 아니라 그럴 만한 사정이 있다니까요. 이미 컨셉 다 그렇게 잡아놔서 바꿀 수도 없어요. 아카데미 내에서 문제가 있어서… 적당한 신분이 하나 필요했고, 그게 공화국 상징의 아들이면 딱 들어맞는다고 생각했을 뿐이죠.”
“네놈에게 어떤 사정이 있는지는 듣고 싶지 않다. 멍청한 놈. 같잖은 짓거리 하지 말고….”
“아니, 나라고 아카데미에서 이러고 싶겠어요? 다 그럴 만한 사정이 있어서 그런다니까. 저도 빨리 업무에 복귀하고 싶죠. 사실 이런 모습이면 교국에서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게 무리가 있기는 하지만… 대륙 전체를 보면 그런 것도 아니잖아요. 저랑 지혜 누나가 로헨에 있었을 때 벌인 사업이라든가. 우리 진 군사님이 자신감 있게 들어간 프로젝트라던가 점검이 당연히 필요하기는 하지만… 여기 일도 바쁘다니까요.”
“…….”
“잘은 몰라요. 어쩌면 작은 일일 수도 있는데 조심해서 나쁠 건 없다니까요. 알고 있어요? 진 군사님?”
“무얼 말이냐….”
“연방과 연합 국경이랑 북부에서 최근에 일어난 일.”
“…….”
“…….”
“멍청한 이교도들 말이냐?”
“어떻게 알고는 있네요?”
“우리 쪽에도 같은 놈들이 붙잡힌 적이 있었다. 육망성으로 인신 공양을 하려고 했던 놈들이었지… 아직 대외적으로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내 귀가 공화국 하나에만 있다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근데 왜 지 아들 소식은 모르셨어요?’
라는 말이 입가에 계속해서 맴돈다. 계속해서 이죽거리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지만 그럴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아마 그쪽에서 이곳을 노리고 있는 것 같아요.”
“개소리. 그 멍청한 집단이 잘도 파란의 심장에 들어오겠군. 교황청에 이단심문관들도 당하지 못해서 쩔쩔매는 놈들이 뭐? 린델에 들어와 테러활동을 벌인다? 소설도 정도껏 쓰는 게 좋을 거다. 아니면… 설마 네놈… 푸하핫.”
‘시바.’
“나이가 어려지더니 뇌도 어려졌나? 혹시 단 것이 당기지는 않나? 푸하핫! 무지개 솜사탕이라도 사 들고 왔어야 했나? 아니지. 초콜릿 선물상자 세트라도 들고 오는 게… 푸흣. 맞았겠군.”
‘이 새끼. 진짜.’
“휴식이 필요하면 여기서 헛짓거리하지 말고… 균열랜드라도 가는 게 좋을 것 같던데… 거기에 어린 친구들이 즐길 수 있는 놀이기구들이 있을 테니 말이다. 아니면 김현성이 만들어 놓은 라베하 워터파크에서 미끄럼틀이라도 타는 걸 추천하고 싶군. 아무래도 그 멍청이가 네놈이 어려질 거라는 걸 알고 있었던 모양이야. 푸…흣….”
흥분하지 말자. 흥분하지 말자.
“현성이가 자리를 비웠어요. 설명드리기 좀 그렇지만 정상적인 상태는 아니고요. 공식적으로는 저도 파란 길드에 없는 상태로 되어 있잖아요. 믿기지는 않겠지만 엄연한 사실이에요. 진 군사님이 따로 조사해 보고 싶으시면 조사하셔도 돼요. 저도 최근에야 꼬리를 밟은 거니까.”
“…….”
“제가 생각하는 것보다 커다란 집단은 아닐 수도 있어요. 사실 단순히 교국에 대한 테러로써 끝날 가능성이 있지만 진 군사님도 아시다시피 내가 좀 악마 문제에 민감하잖아.”
“네놈이? 퍽이나 민감하겠군.”
“로헨 상황 보면 민감해지고 싶지 않아도 민감해지게 되어 있어요. 군단장 둘, 셋이 떨어지는 게 대륙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알고 싶지 않아도 알게 되니까. 이 테러집단의 정체가 뭔지, 원하는 게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카데미에 그 끄나풀이 있다는 건 확실해요. 군사님의 아들로 위장한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고요.”
“개 같은 잡소리는 집어치워라. 또 그 세 치 혀를 놀리….”
“저도 곧바로 복귀하고 싶다니까요? 안 그래도 할 일 많은데… 제가 뭣 하러 아카데미에서 이러고 있겠냐고요. 물론 길드원들한테 맡기는 방법도 있기는 한데… 이번에는 정말 느낌이 안 좋다니까. 아래에서 위로 시작되는 게 아니라, 위에서 아래로 시작되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
“제가 없었던 틈을 타서 약해진 보안 시스템으로 상위 서열의 대군주 하나가 자신의 씨앗을 뿌렸다고 생각해 보시라고요. 그게 대륙 일반인들한테 흘러갔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정말로 기우일까요?”
곰곰이 생각에 빠지는 진 군사의 얼굴이 눈에 보였다.
‘곧바로 안 놀려 먹기를 잘했네.’
진 군사가 프로젝트를 말아먹은 걸로 놀리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든다.
당연히 이기영이 돌아오면 가장 먼저 할 일이라고 생각하며 온갖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었겠지만 지금의 이기영이 아카데미에 틀어박혀 있었으니 의아한 부분이 분명 있을 것이다.
물론 지금의 모습을 들키기 싫어서였다는 게 이유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어쩌면 이기영이 현 프로젝트에 관련된 일을 모르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쪽으로 생각이 기우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
만약 그렇지 않는다고 하더라고 얘 입장에서는 환영할 만한 일이었다. 적어도 벌여놓은 것을 수습할 시간이 생기는 것이었으니 말이다.
“진 군사님이 그렇게 원하면 이거 그냥 때려치울게. 같이 올라가요. 그간 진행하셨던 프로젝트 평가 보고서는 준비해 놓으셨죠?”
“…….”
“준비 안 하셨나?”
아들이 생기는 것이 나은지, 아니면 자신의 무능함이 드러나는 것이 좋을지, 약점을 잡힌 진 군사로서는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준비 안 하셨어요? 근데 뭐 갑자기 여기 이렇게 찾아와서… 혹시 프로젝트 말아먹으셨어요?”
“웃기는군… 오차는 있었지만 예상범주 내에 있다. 계속해서 상승 그래프를 그리고 있으니 네놈이 상관할 바가 아니다. 어차피 네놈은….”
“어떻게 내가 상관할 바가 아니야? 내가 최고경영자인데 이 사람아. 그래서 보고서 준비됐냐고요, 안 됐냐고요. 그리고 백번 양보해서 우리 진 군사님의 독립 프로젝트라 저한테 올릴 보고서는 작성하지 않았다고 칩시다. 그래도 최소한 협업하는 사이인데 알 건 알아야죠.”
“그건….”
“나랑 지혜 누나가 사업 벌이고 조용히 넘어가는 거 봤어요? 베니고어, 벨리알, 로렌, 진 군사까지 다 불러놓고 매번 실적 평가하고 그러는 데… 진 군사는 그런 것도 없고… 일을 벌여 놨으면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다 알아야지. 흑자가 났는지, 적자가 났는지, 실적이 어떤지, 성장 가능성은 있는지 알기는 알아야 될 거 아니에요.”
장담하건대 분명히 만들어 놓기는 했을 것이다. 이대로 발표하기에는 체면이 안 서는 게 문제인 거지.
멍청하지는 않은 만큼 흑자를 내기야 했겠지만 기대 수익에 한참 못 미치는 수치일 것이고, 결국에는 청문회니 뭐니 하는 귀찮은 일에 휘말리는 것을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실제로 청문회가 열릴 일은 없겠지만, 그쪽 회의는 전쟁이었으니까. 다음 프로젝트에서 지원받을 예산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형편없는 수치를 들이대는 것은 수지에 맞지 않았다.
적어도 그간 지혜 누나와 내가 보여줬던 것과는 비슷해야 체면이 선다.
“몸이 이렇게 된 제가 진 군사한테 먼저 찾아와서 우리 회의 언제 하냐고 여쭈어봐야 하나. 나는 진 군사가 찾아온 게 그것 때문인지 알았어.”
“…….”
“실적 평가하자고 그래서 찾아온 줄 알았는데. 이게 뭐예요. 다짜고짜 사람 멱살을 잡고 들어 올리지 않나. 진 군사님 우리 이제 필멸자 아니에요. 대륙의 관리자라고요.”
“궤변으로 넘어갈 생각하지 마라.”
“대륙의 명운이 우리 손가락이랑 머리에 달려 있는데! 아들이 있는 게 문제예요? 뭐 블랙마켓에서 노예를 구매했다는 소문 때문에 평판에 금이 가는 게 문제예요? 나는 일밖에 모르는 사람이에요. 현 대륙보안에 있기 때문에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해서 그렇게 했을 뿐인데… 억울하시면 진 군사님도 제 아들 하세요. 공화국 아카데미 어디에서 하시라고… 저는 그런 거 신경 안 쓰니까.”
“…….”
“…….”
“한 달 안에 준비하지. 그러니 네놈도 이 뭣 같은 짓거리를 한 달 안에 끝내 놓는 게 좋을 거다. 물론. 푸…흡… 일이 끝난다고 해도 네놈의 몸이 전부 다 자라나려면 2년 이상 기다려야겠지만…흐…흡, 말이다.”
‘이 새끼.’
“혹시 다음에 찾아올 때 필요한 게 있나? 아니지 한 달 뒤에 있을 회의에서 네놈의 다과는 특별히 아동용으로 준비해 주마. 무지개 솜사탕을 좋아한다고 했었나? 공화국에도 비슷한 게 있나 한번 찾아보지. 식사도 준비해 두마. 물론 네놈은 어린이 세트로 말이다.”
‘진짜 유치하게 나오네. 진짜.’
더 열이 받는 건 저게 정말로 통하고 있다는 데에 있었다. 녀석도 아마 그걸 느끼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유치하게 나오고 있는 것이리라. 몸이 어려져서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속에서 열이 뻗치고 표정관리가 잘 되지 않는다.
내 반응을 직관하고 있는 녀석이 열심히 입을 놀리는 것도 어찌 생각해 보면 당연했다.
‘사람 진짜 그렇게 안 봤는데.’
이곳에 올 때만 해도 분명 초조하고 짜증 때문에 견딜 수 없었던 것처럼 보였는데 돌아갈 때가 되니 기쁜 마음으로 웃고 있는 녀석.
“오랜만에 즐거운 만남이었군.”
이라고 중얼거리며 문을 열고 나가려는 녀석에게….
“그럼 들어가십시오. 아버지.”
라고 말을 전하자.
“누가 네놈 아버지라는 거냐. 모자란 놈이… 구역질 나는 개소리는 집어치워라. 멍청한 놈. 역겨운 얼굴로 기분 나쁘게 하는군.”
“…….”
“부탁이니 다시는 그딴 소리 지껄이지 마라. 온몸에 소름이 돋을 지경이니.”
이라는 답변이 들려왔다.
문제는 이 모습을 보고 있는 갤러리들이 있었다는 것.
정확히 말하면 내가 부른 손님들, 김미영 팀장님과 김명원, 그리고 아릴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