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45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4)
그냥 과민반응하는 것일 수도 있다. 우연치 않게 찍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녀석의 모습에서 느껴지는 위화감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 아네모네의 눈을 눈치채고 있다는 것이 신경 쓰인다. 눈을 린델, 교국, 대륙을 범위로 넓혀서 사용하여 꼬리를 밟고 싶었지만 녀석이 천관위처럼 아네모네의 눈의 흔적을 읽을 수 있다면, 어차피 무용지물일 것이다.
‘CCTV라도 다 돌려봐야 되나.’
아네모네의 눈과는 다르게 많은 제한이 걸려 있었지만 그래도 흔적 정도는 찾을 수 있지 않을까.
구태여 아카데미 안쪽으로 들어온 것도 신경이 쓰인다. 사실 아카데미 자체가 목적이라기보다는 대륙 전역에 슬슬 영향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 더 나은 표현이겠지만… 저런 게 파란 길드의 부지를 돌아다니고 있었다는 게 거슬린다.
공화국에서 한 건, 북부에서 한 건, 연방과 연합의 접경 지역에서 한 건, 어쩌면 위 세 건은 일부러 던져 놓은 미끼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아니면 일단 덩치를 키우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 사이비마냥 여기저기 전부 다 뿌려놓았을 수도 있겠지만 아네모네의 눈에 잡히지 않을 정도로 철두철미한 놈들이 그렇게 쉽게 잡혀줄 리 없지 않은가.
여러모로 찝찝한 점이 많았던 만큼 평균 이상의 대응을 할 필요는 느껴졌다.
“…….”
“…….”
‘오랜만에 일 좀 시켜야겠네.’
“…….”
‘지금 근무자가 누구였지? 리안이였나? 창렬이겠구나.’
“창렬 씨.”
라고 중얼거리자.
“네.”
목소리가 들려왔다. 순식간에 천장에서 뚝 떨어지는 것마냥 어느새 내 앞에 위치해 있다.
“찾아주실 사람이 있어서요.”
“네.”
“통신 채널로 사진 한 장 보냈으니까. 확인 좀 해주세요.”
“네. 확인했습니다.”
“그 남자예요. 분명히 아카데미에 한번 출입한 흔적은 있는데 그 외에는 잡히는 게 없네요. 어디로 꺼졌는지 확인도 안 되고….”
“…….”
“북부와 연방, 연합 접경지대에서도 같은 심볼을 한 악마 숭배자들이 발견된 적이 있어서 상당히 기분이 나쁘거든요… 린델 안에 같은 심볼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면 누가 돼도 좋으니까 일단 조사를 해주셨으면 좋겠네요.”
“네.”
“이 사람이 여기서 와서 누굴 만났는지, 교육시설 내에 관련된 사람이 있는지, 어떤 경로로 이쪽에 흘러들어온 건지. 제 말 무슨 말인지 알아들으셨죠?”
“허투루 하지 않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예리 씨와 리안 씨한테도 전달 부탁드리겠습니다.”
“…….”
김예리와 박리안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자 은근슬쩍 시무룩해하는 것 같았다.
어떤 심정인지 이해가 가기야 했지만….
“창렬 씨를 믿지 못하는 게 아니라 빨리 처리됐으면 하는 일이라서 그래요. 검은백조에 협력 요청을 할 수도 없는 상황인 것 같고… 혼자 해결하기에는 조금 큰 건이라… 아무튼 간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가능하시죠?”
어깨를 툭툭 두드리면서 마지막 말을 이었다.
“부탁드릴게요.”
“실망시켜 드리지 않겠습니다.”
라는 말을 끝으로 시야에서 사라지는 창렬이었다.
단독임무가 아니라는 것에 살짝 실망하는 것 같기는 했지만 사안이 사안인 만큼 나머지 둘과 연계해서 활동하는 게 당연하다는 걸 인정하는 것 같았다.
박덕구 안기모와 함께 따로 할 일이 있는 것 같았던 김예리에게는 반가운 소식이 아니겠지만 특별임무에 범주에 있는 만큼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결과물을 받아낼 수 있을 것이다.
계속해서 아네모네의 눈과 씨름을 하는 사이에 어느새 아침이 밝아온다. 아니나 다를까 김미영 팀장님이 똑똑 하고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 시바 수업 가기 싫다.’
김미영 팀장도 숙면을 취하지 못한 것은 마찬가지. 아들과 친구 계획을 세우기 여념이 없었는지 밤을 꼴딱 새운 것처럼 보였다.
그 피곤한 와중에도 아들에 대해 알아가는 게 재미있었는지 희미한 미소가 서려 있었다.
솔직히 김미영 팀장에게 이번 일을 말하는 게 좋을까 고민하기는 했지만 그 얼굴을 보고서는 굳이 알릴 필요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부길드마스터. 혹시… 무슨 걱정거리라도 있으십니까?”
라는 질문을 받기 전까지는 말이다. 나이가 어려져 감정을 숨기는 게 어색해진 건지, 아니면 김미영 팀장이 나에 대해서 너무 잘 알고 있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티가 나고 있기는 한 모양이다.
“큰일은 아니에요.”
“…….”
“교육 시설 내에 쥐새끼 한 마리가 드나든 흔적이 있어서… 무시하고 싶기는 한데 영 신경 쓰이네요. 창렬 씨한테 맡겼으니 김미영 팀장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은데….”
아니나 다를까 덜컥 얼굴이 굳어버린 모습, 그야 아들이 다니고 있는 학교에 쥐새끼가 들어와 있다니 저런 반응을 보일 만했다.
최대한 별일 아닌 것처럼 담담히 설명을 한 것은 당연지사.
최근에 교국에 이런 이슈가 있었고 확실한 것 같지는 않지만 그 끄나풀이 이쪽과 연관되어 있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서만….
“…….”
“…….”
“학생들 안전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미 그쪽도 조치를 내려놨으니까요. 혹시라도 적이 노리는 게 정말로 교육시설 내에 있다면 바깥으로 내보내는 것보다 길드의 부지 안에 있는 게 더 안전할 거예요.”
“네. 이해하고 있습니다. 한데… 혹시 제가 정리한 것을 보여드려도 되겠습니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을 수도 있겠지만 어쩌면….”
“네. 말씀해 주세요.”
황급히 방을 빠져나간 이후 꼬마 김미영 팀장이 가져온 것은 커다란 문서 뭉치였다. 그리도 여신의 거울에서 보이는 커다란 용량의 파일 몇십 개.
“최근 몇 년 사이에 교육시설의 재무제표입니다. 그리고 교육시설에서 강의하는 교수들과 조교들의 연구 예산 이용 내역, 외부인 출입 목록과 교육시설 직원들의 병가 및 휴가 내역, 파란 감찰시설에 대한 자료도 있습니다만 아직 정리가 모두 되지는 않았습니다. 최대한 빠르게 정리를 한다고 했지만… 본래는 조금 더 양식에 맞게 제출하려고 했지만….”
“이건 언제 다 만드셨어요?”
“부길드마스터와 이곳에 잠입수사를 한다고 했을 때부터… 시작했습니다만….”
“확실히 정리가 되어 있기는 하네요.”
“죄송합니다.”
“아니요. 죄송할 게 있나요. 이건 혼자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근데 뭐가 나와도 나오겠는데요. 와, 이게 자료가 남아 있네요.”
“파란 길드의 출입 내역이나 급여 지급 내역처럼 기본적인 것들은 모두 전산화되어 있으니 말입니다. 막스 님께서 도움을 주셨습니다.”
“…….”
“그리고… 방금.”
“네?”
“학생들을 포함해서… 파란 교육시설 내에 있는 모든 인원들의 골드 이용 내역과 통화 이용 내역의 조회도 부탁드렸습니다.”
“…….”
“…….”
‘뭐야 무서워. 그거 범죄잖아요.’
얼굴에는 약간의 광기마저 서려 있는 것 같았다. 명백한 범죄를 당당하게 이야기하는 것을 보니 김미영 팀장도 이 건이 여간 거슬리는 게 아닌 것 같았다.
물론 김미영 팀장이 언제나 깨끗하기만 한 것은 아니다. 길드의 모든 대소사를 처리한 만큼 합법과 위법 사이의 줄다리기를 하고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줄다리기에 불과했다.
그마저도 계속해서 여러 번의 확인과정을 거친 이후에 일을 실행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만큼 조심스럽기도 조심스러웠다.
이렇게 갑작스레 급발진을 하는 것을 보고 있자니 그녀 역시 마음이 급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나도 바본가 보네….’
이건 미처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었으니까.
일이 터졌을 때 꼭 현장에서 해결하려고 할 필요는 없다. 물론 온갖 이능이 판치는 대륙에서는 눈으로 직접 확인하고 현장을 조지는 게 이상적인 해결 방법이기는 하지만 김미영 팀장의 방법이 틀리다고 말할 수 없다. 오히려 이 경우에는 이게 더 적절할지도 모른다.
끄나풀을 알아내는 거라면 충분히 합리적인 방법이다. 전산에 모든 행동이 기록되고 추적할 수 있다는 것은, 대상이 뭘 하고 있는지, 뭘 할 수 있는지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는 뜻이니 말이었으니 말이다.
어떤 인물이 누구와 만났는지,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어째서 병가나 휴가를 받아야만 했는지, 완벽하게는 아니지만 모조리 특정할 수 있다.
몇 년 전의 루틴과 지금의 루틴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도 예상할 수 있다.
자금이 어디서 어디로 흘러가고 나갔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민간인 사찰에 해당되기는 했지만….
‘지들이 사찰당하고 있을지도 모르고 있을 텐데 뭐….’
대륙을 위해서라면 어쩔 수 없는 희생이 필요한 법이다.
“오늘 오전 수업은 땡땡이치죠.”
“네.”
“같이 작업할까요?”
“네.”
“팀장님은 오른쪽에서부터 시작하세요. 저는 왼쪽부터… 그리고, 교직원이나 학생들 가족들도 한번 뒤져보는 게 좋을 것 같네요.”
“네. 알겠습니다.”
“저는 하네스트 의원부터….”
“네.”
물론 굳이 알지 않아도 될 필요가 없는 정보들도 계속해서 눈에 들어오기는 한다.
최근 2년 전부터 함께 휴가나 병가를 맞추고 있는 두 교직원은 조사 결과….
‘아. 그냥 불륜이네.’
기대했는데.
우회해서 빠져나가는 골드는 대부분 만남을 위한 장소였다. 함께 있는 모습이 담긴 영상도 확보가 되어 있다.
충분히 비밀스러운 만남이었지만 더 비밀스러운 만남이 아닌가 싶었던 기대했던 나로서는 맥 빠지는 결과물이었다.
“부길드마스터… 천관위 교수가… 조금….”
“네? 뭐 이상 있어요?”
“너무 깨끗합니다. 마치 억지로 구멍을 끼워 맞춘 것처럼….”
“그건 제가 볼게요.”
본래 하자 없는 인간은 없는 법이다. 뭔가 캥기는 것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끼워 맞춰져 있는 부분들이 눈에 보이기야 한다.
최근에 대부분 정리가 되어 있어 너무나 수상하게 보이기는 했지만 아네모네의 눈을 본인이 직접 확인했으니 혹시나 책잡힐 만한 거리를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여겨진 것 같았다.
‘이 양반은 아니야.’
얘는 그럴 배짱이 없다. 한때는 제법 패기가 넘쳤던 적도 있었던 것 같았지만 희라 누나한테 비오는 날 먼지 날 때까지 두드려 맞은 이후에는 제법 소극적으로 몸을 사리게 됐다고 들었으니까.
“어떻습니까?”
“이 양반은 아니에요. 다른 쪽으로 두드려 보죠.”
“네.”
천관위처럼 아무리 신변정리를 완벽하게 한다고 한들, 기록에 남는 이상 구멍이 남게 마련이다. 심지어 그냥 일반 교수나 교직원, 시설 노동자 같은 사람들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잘 끼워 맞춰지지 않은 퍼즐을 찾아보는 것은 무척 쉬운 일, 문제는 양이 조금 많다는 것이었지만 여기저기에서 균열이 보였던 만큼 후보들은 특정할 수 있었다.
‘얘는 아니고….’
“얘는… 불법 물약에 손을 대는 것 같은데… 하. 이런 놈이 애들을 가르치고 있네.”
‘얘는 블랙마켓 회원… 이건 조금 더 봐볼까.’
자료를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이딴 놈들이 교수로 있을 수 있나 하는 회의감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쉽게도 육망성과 관련된 놈들은 보이지 않는다.
눈이 조금 피곤해 지려는 찰나. 김미영 팀장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이쪽으로 다가오는 것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찾았습니다. 부길드마스터.”
“…….”
“…….”
“이 사람은….”
“네.”
“다음 수업이네요?”
“네.”
“들어가 보죠.”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커다란 살집이 인상적인 트라오레 교수를 눈으로 담을 수 있었다.
“으음… 뭐… 늦었지만 들어오게.”
“……”
“그러니까… 어디까지 이야기했지? 그래. 대륙법상으로 금지된 마법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있었지. 대규모 살상마법 말이야.”
들어오자마자 빌런처럼 보이는 대사를 치고 있었다.
“나는 그런 생각을 하네. 과연 마법을 금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한 개인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제한하는 것이 정말로 옳은가. 금지라는 것은 누구의 판단이고, 그 근거는 무엇인가. 대규모 살상마법이 위험하다면 간단한 마법으로 수만 명을 학살할 수 있는 파란의 대마법사의 존재는 어째서 묵과하고 있는 것인가.”
“…….”
“여러분들에게 묻지. 정말로 이런 억압과 제한들이 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나?”
누가 봐도 이 새끼가 빌런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