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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47화 (1,24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47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6)

매일매일 반복되는 업무에 지쳐 한 번쯤 일탈을 꿈꾸는 직장인의 표정을 하고 있는 하연수의 뒤로, 얼어붙어 있는 꼬맹이들이 눈에 보였다.

갑작스러운 테러리스트들의 등장에 아이들은 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중, 언제든 목숨을 버릴 준비가 되어 있다고 말했던 샤슬갈 트리오도 처음 느껴보는 사태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었다.

‘뭐… 이해는 되자너.’

아무리 특별훈련을 받고 있다고는 하지만 여느 때와 같이 평화로운 일상을 즐기고 있었던 아이들이 현역에서 뛰는 모험가와 같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리 없었다.

물론 모두가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곧바로 대응해도 모자랄 판에 본능적으로 움츠러든 아이들을 이끈 것은 파란 DNA를 가지고 있는 김명원, 그나마 내릴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판단이었을 것이다.

“도망쳐!!”

그 외침 하나에 정신이 퍼뜩 든 꼬맹이들이 출입구로 향하기 시작했다.

“꺄아아아아악!”

“뭐야! 뭐야…! 진짜야? 이거 진짜… 여기 파란 국제학교인데… 이런 일이….”

“테러리스트들이야! 빨리 도망쳐!”

“진… 진영 님. 피하셔야 합니다.”

“진영 님! 제가 모시겠습니다!”

그래도 이 극한 상황에서도 충성을 유지하는 샤슬갈 녀석들은 인정할 만했다. 어째 내 뒤로 숨은 것 같은 느낌이 들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간에 제법 여유롭게 상황을 관망하고 있는 테러리스트들이 눈에 띈다. 표적들이 달아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아주 여유로운 모습을 취하고 있다.

어처구니없게 퇴장하는 빌런의 제1법칙, 오만과 자만심의 역할의 충실한 것이리라.

“그래. 우리 귀여운 토끼들아~ 마음껏 도망쳐 보렴. 꺄하하아아하핫!”

“너무 방심하는 것도 좋지 않아. 너의 나쁜 버릇이다.”

“뭐? 지금 설마… 주제도 모르고 내 행동을 꼬집는 건 아니겠지?”

“난 할 말을 했을 뿐이다. 우리의 목적을 잊지 마라.”

“이 작전의 책임자는 나야. 그걸 아셔야지. 짜증 나는 놈이….”

어처구니없게 퇴장하는 빌런의 제2법칙, 동료들 간의 적당한 내분에도 충실하고 있다. 커다란 키를 가지고 빼빼 마른 남자가 하연수가 서로에게 이빨을 들이밀고 있었다.

“죽고 싶지 않으면 그 입 다무는 게 좋을 거야. 멀대 아저씨.”

“킥. 할 수 있다면 죽여… 봐라.”

심지어 이 와중에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것까지 너무나 실패하는 빌런들의 모습과 닮아 있었다.

아이들이 도망칠 수 있는 시간을 벌어주겠다는 의도가 다분히 보이기는 했지만 나쁘지는 않았다. 무엇보다….

“당… 당신들은….”

“…….”

“드디어 때가 왔습니까! 하하핫! 드디어 때가 왔군요.”

라는 목소리로 동료들을 환영하는 목소리가 들려왔으니까.

“드디어 때가 왔구나! 드디어! 이 트라오레가 날개를 펼치는 순간이 왔어!”

‘현행범이자너.’

혹시 하기는 했는데….

‘이 새끼 진짜 찐이었자너.’

보통 추리소설에서 나오는 트릭처럼 진짜는 따로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은 기우에 불과했다.

인생에 불만이 많아 보이는 녀석은 아무래도 육망성 빌런들에게 어느 정도 끈을 대고 있었던 것 같았다.

아직도 하연수와 멀대가 검을 두드리고 있는 사이 한쪽 발이 없는 사내가 놈을 보며 말을 이었다.

기다란 검을 목발마냥 짚고 있었는데 대충 보기에도 기도가 예사롭지 않은 빌런이었다.

“당신이 조력자요?”

“네? 네! 혹, 혹시 어디서 오셨습니까?”

“그것은 당신이 알바가 아니오.”

“여, 여러분들이 언젠가 오시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쯧. 쓸데없는 소리는 되었소. 우리한테 전할 것이 있다고 들었소만….”

“네? 제가… 말입니까?”

“그럼! 전할 것이 없다는 말이오!”

“물, 물론 있습니다. 있고말고요.”

이 이상은 현장으로 볼 수 없었다. 내 손을 잡아당기는 샤슬갈 트리오 때문이었다. 물론 망원경으로도 상황을 지켜볼 수 있기야 했다.

외발 검사의 윽박에 트라오레 교수는 벌벌 떨며 지금까지 있었던 일 들을지 입으로 술술 부는 중, 조금 큰 게 잡힐 수도 있을 거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의외로 녀석이 중추적인 역할을 맡고 있지는 않은 것 같았다.

‘그냥 꼬리였나?’

물론 아직 조금 더 캘 것이 남아 있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기대했던 것과는 다른 결과물에 실망할 수밖에 없었다.

-다른 조력자들은… 어디에 있소?

-모두 때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다른 꼬리들의 존재 유무를 확인했다는 것. 당초 상정하고 있던 것보다 더 규모가 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게 당연했다.

‘도대체 뭐야. 이 새끼들.’

본래 큰 숲을 관리하는 입장이라면 나무 한 그루, 한 그루를 살펴보기 어려운 법이다.

대륙 전체를 관리해야 하는 나 또한 나무들을 돌보기 쉽지 않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인정하는 바였다.

하지만 아예 신경을 꺼둔 것도 아니다. 전체를 둘러보는 것은 불가능했지만, 대륙을 관리하는 프로그램이라는 게 그렇게 허술하지도 않았으니 말이다.

한데 거기에 커다란 구멍이 생겼단다. 단순히 구멍이 생긴 것도 아니고 파란의 부지에 벌레들이 들어왔단다.

최근에 제법 이곳저곳을 나돌아 다니기는 했지만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상황이었다.

아마 파란뿐만이 아니라, 린델, 교황청, 교국, 공화국에도 다른 벌레들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가 없었다.

어디에서 갑작스럽게 튀어나오는 이교도들이 아니라 꽤 조직적으로, 대륙 보호 관리 위원회의 눈을 피할 수 있을 정도로 비밀스러운 집단이다.

사회 여기저기에 뿌리는 내리고 있었고, 이미 어느 정도는 고착화가 되어 있다.

‘언제부터 활동한 거야? 도대체.’

1, 2년 정도로 만들 수 있는 결과물이 아니다. 말마따나 그 정도로 단기간 내에 영향력을 펼치기 위해서는 위에서 아래로 직통으로 비를 내릴 수밖에 없다.

베니고어가 신물, 혹은 성자와 성녀 같은 것들을 내리듯이 말이다. 이를테면 계속해서 지켜봐 왔던 인간을 의도적으로 타락시킨다거나, 저주받은 물건들을 내린다거나, 대륙에 직접적으로 영향력을 끼치는 것이다.

전문용어로 말하면 정체불명의 잡놈들이 우리들을 상대로 공사를 치고 있다고 느껴졌다.

육망성이라는 확실한 심볼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지금의 걱정이 기우가 아닐 수도 있다.

“슬라바. 혹시 교육시설 내에 있는 공화국 학생들과 연락이 되고 있습니까?”

“아무런 연락도 되지 않습니다. 빅토르 갈리아. 아마 의도적으로 통신채널이 닫은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의도적인 테러인 것 같습니다. 진영 님.”

“무엇을 노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분명 이마에 육망성을 문신한 채로 미친 듯이 웃었던 여자가 신선한 마력들이라고 외쳤어요. 필히 학생들이 목적이겠지요. 게다가… 제 생각이 틀렸으면 좋겠지만… 트라오레 교수도 테러리스트들과 한패인 것처럼 보였고요.”

목 조르는 샤오 란이 사태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었다.

“최악의 상황이겠지만… 녀석들의 조력자는… 어쩌면 트라오레 교수 한 명이 아닐 가능성이 커요.”

“그런….”

충성스러운 슬라바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인다.

“생각해 보니… 이곳의 움직임이 너무 조직적인 것 같습니다. 인정하기는 싫지만 이곳은 교국 최고의 길드, 파란 길드의 부지 안이 아닙니까? 아직까지도 파란의 길드원들이 이곳에 오지 않았다는 것은… 이 교육시설을 주변으로 결계가 형성되어 있을 가능성도….”

“어쩌면… 파란 길드도 똑같은 일을 당하고 있을지도 모르지.”

“당장 외부에 도움을 기다리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에요. 그 교국 놈들이 굳이 저희들까지 구할까 싶기도 하고요. 교국에서 일으킨 일은 아닌 것 같지만… 이 기회에 우리들을 제거하려고 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니야. 시바. 왜 생각이 거기로 튀어. 너희 적 아니야.’

“가능할지는 모르겠지만 우리 스스로를 위해서 싸워야 해요.”

앞서 튀어나간 꼬맹이들과 마주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김명원, 아릴, 그리고 펠리스 하네스트 녀석을 포함한 학생들 전원, 여기저기에 흩어질 거라고 생각했는데 본능적으로 우르르 몰려다니는 게 더욱더 안전하다는 걸 깨달은 것 같았다.

괜스레 긴장감이 감도는 분위기. 펠리스 하네스트는 공화국 쪽 아이들을 의심하고 있었고, 샤슬갈 녀석들은 펠리스 하네스트를 의심하고 있었다.

긴장을 깬 것은 김명원이었다.

“여기 있었구나! 리나! 진영!”

자연스럽게 김미영 팀장에게 손을 뻗었고 얼떨결에 무리가 합쳐진다. 아직까지 소곤소곤 자신의 생각을 전해오는 샤오 란은 내 의사를 물어오고 있었지만….

“같이 움직이는 게 좋을까요? 진영 님?”

“그렇게 하는 게 좋겠군.”

라는 한마디에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분명히 다른 끄나풀이 있을 수도 있으니까.’

한자리에 모아놓는 게 더 편하겠지. 지금과 같이 이름 모를 놈들이 이쪽을 덮쳐 올 때는 말이다.

좁은 길목을 빠져나가자마자 아이들을 기다리는 놈 두 명이 눈에 보인다.

‘이 새끼들… 고용된 놈들이 아닌데.’

“뭐야….”

“마탑에서 파견 나온 대학원생들이야! 제길! 이 자식들도 테러리스트와 한패라니….”

대학원생들이 타락하는 것은 본래 국룰이기는 했지만 이 새끼들은 정말로 타락해 버렸나 보다.

‘진짜 어처구니가 없네.’

하지만 녀석들이 마법을 사용해 꼬맹이들을 위협하는 일 따위는 벌어지지 않았다.

순간적으로 뛰쳐 들어온 쌍둥이들이 녀석의 목을 그대로 베어버렸으니까.

눈에 제대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서로의 위치를 바꾸어 가며 쇄도해 오는 녀석들에게 일개 대학원생들이 반응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나마 아이들이 그 끔찍한 광경을 보지 못한 것 같았지만 그래도 한 놈이 죽었다는 건 확실히 깨닫고 있는 것 같았다.

‘아니, 시바 그걸 그냥 죽이면 어떻게 해? 아무리 급해도….’

불행 중 다행으로 나머지 한 녀석이 살아 있었지만 이미 미국으로 떠난 녀석의 입에서 어떤 정보가 나올지 모르는 만큼 조금은 아쉬워할 수밖에 없었다. 쌍둥이가 낮게 중얼거리자….

“누가. 네놈들 마음대로 설쳐도 된다고 했지?”

살아남은 한 녀석이 얼굴이 시퍼렇게 변한 채로 횡설수설 말을 이었다.

“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저는 단지….”

“실습실로… 가라. 거기에 임무를 내려 줄 사람이 있을 테니. 다른 이들에게도 전부 그날이 왔다는 것을 보고하고 집결을 명하도록.”

“네넷! 알겠습니다. 알겠습니다!”

허겁지겁 떠나는 대학원생을 뒤로하고 쌍둥이들이 귓속말로 소곤거리기 시작했다.

“죽이면 어떻게 해?”

“하나는 살려뒀어. 그럼 된 거야.”

“언니한테 분명 혼날 거야. 이제 살인은 하지 말라고 했는걸. 그리고 정보는….”

“아니야. 분명히 잘했다고 할걸. 쟤는 죽어도 싼 놈이었어. 그리고 한 명 살려뒀잖아.”

물론 꼬맹이들 쪽이야 받아들이는 그 심각성이 다르다.

“말… 말도 안 돼.”

“저… 저 녀석들 같은 편을 죽였어….”

“저 녀석들은 도대체….”

“너희들은 도대체 뭐야!”

같은 심각한 대화들이 오가고 있었으니까.

“우리는… 달을 부수는 자.”

“더 문… 브레이커.”

상황이 이렇게 보다 보니 그냥 접는 게 좋을까 생각하기는 했지만 어차피 아카데미 내에서 시간을 조금 더 끌어야 했다.

별 같잖은 것들 때문에 계획을 철회하는 것도 신경 쓰이고… 무엇보다 고개를 끄덕이며 아이들을 향해 돌진해 오는 녀석들을 보고서는 일단은 손을 뻗을 수밖에 없었다.

어색하지만 진 군사가 몸을 쓰던 것을 떠올리며 진각을 밟으며 정권을 내지르자.

“이 녀석… 애송이가 아니야!”

박진감 넘치게 외치며 나가떨어지는 쌍둥이들이 시야에 비쳤다. 솔직히 이런 상황에서 이런 이야기하기도 뭐하기는 했지만….

‘넘… 넘 멋있자너.’

스스로가 멋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이런 감정이 느껴지는 것은 분명, 나이가 어려졌기 때문일 것이다.

“덤벼라. 겁 모르고 날뛰는 천둥벌거숭이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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