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48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17)
‘저 녀석… 도대체 정체가 뭐야.’
저 진영이라는 놈은… 도대체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도 않는 상황이었다. 국제학원 내에서 테러가 일어난 직후부터는 정말로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강의에서 배워왔던 것도, 언젠가 나갈 실습을 위해 끊임없이 연습했던 주문들도… 머릿속이 백지가 된 것마냥 일순간 멈춰 버렸다.
변명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럴 수밖에 없다는 것은 잘 알고 있었다.
일류 모험가들이나 자신의 차이가 뚜렷했고… 파란 국제학원에 침입한 테러리스트들은 그중에서도 진짜라고 부를 수 있는 녀석들이었으니까.
진짜 살의를 가지고 있는 괴물들, 사람을 죽이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살인마들, 성벽 너머로 봤었던 무서운 몬스터들과 비슷한 냄새가 풍기고 있는 녀석들이었다.
하네스트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켜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계속해서 머릿속에 맴돌고 있었지만 몸은 뜻대로 움직여지지 않았다.
주문을 외울 수 있는 입은 굳어버렸고 계속해서 식은땀이 나는 탓에 숨을 쉬기도 쉽지가 않았다.
‘저 살인마들은… 진짜야.’
동료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이는 녀석들이다.
‘도망쳐야 돼.’
놈들과 맞서는 것은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아마 이곳에 있는 이들이 모두 그걸 느끼고 있을 터인데….
‘어째서… 어째서 저 녀석만은….’
저렇게 당당할 수 있는 걸까. 어째서 녀석들과 저렇게 맞설 수 있는 것일까.
눈에 보이지 않을 정도로 빠르게 서로 교차해가며 쇄도하는 쌍둥이들이 보인다.
흐릿한 잔상만이 남아 도대체 뭐가 진짜인지 확인할 수 없는 순간에도 어김없이 공화국의 어린 천재는 땅바닥을 발로 쾅! 하고 밟는다. 묵직한 소리가 들려온 직후에는 이상한 자세로 팔을 내뻗는다.
격투술이라면 자신도 배운 적이 있다. 비록 기본 동작에 불과하지만 지금 저 녀석이 보여주는 동작들이 얼마나 어처구니없고 불필요한 동작들인지는 알 수 있었다.
실전성이 사라진 동작이다. 허공을 향해 팔을 돌린다거나 주먹을 쥐는 방법이라거나, 상대를 제압하기 위한 무술이라기보다는 보여주기 위한 그야말로 체조나 무용에 가까운 동작으로 보였다.
하지만 그 결과물은 사뭇 다르다. 마치 쌍둥이 악당들이 스스로 녀석에게 빨려 들어가는 것만 같다.
여리디여려 보이는 솜주먹이 놈들의 복부에 적중한 순간, 귀신보다도 더 무서워 보이는 적들이 피를 토하며 나가떨어지고 있다.
다시 한번 조용히 팔과 다리로 원을 그리며 손등을 올리며 자세를 잡는 진영이 눈에 보였다.
“인정할게. 조금 우습게 봤네.”
“방심하지 마. 누나. 저 녀석은 다른 꼬맹이들과는 달라.”
“나도 알고 있어. 중국무술. 우리를 만만히 봐도 정도가 있지. 태극권은 아빠한테 가서 가르쳐 달라고 하렴.”
“태극권 같은 게 아니다. 가문의 것이지.”
“너한테 의견을 물어본 적은 없어. 다치기 싫으면 얌전히 있어.”
“아무래도 내가 마법사라는 사실을 잊었나 보군.”
“우리도 몇 가지 마법은 사용할 수 있는데 말이야.”
저번에 봤었던 흑염룡의 불꽃이 진영의 주변에 생성되는 것이 보인다. 진영의 손이 원을 그리자 모든 것을 부식시키는 불꽃 또한 원을 그린다.
녀석이 제자리에서 무용하듯 한쪽 다리를 올리자 불꽃들이 춤을 추듯 넘실거린다.
테러리스트들은 이내 살짝 놀란 기색을 보이고는 했었지만 각자 마법으로 자신의 몸을 보호하고 있었다.
놈들의 마법이 검은 불꽃과 부딪치는 순간, 쩌정 하는 소리와 함께 하얀색 연기가 주변을 감쌌다.
연기 때문에 시야가 흐려진다. 콜록콜록거리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안개 마법?’
아니, 그런 것이 아닐 것이다. 천관위 교수님의 안개소환 마법이라기보다는 그냥 시야를 가리기 위한 용도로 쓰였다는 것이 올바른 표현이다.
‘다른 학생들을 노리고 있는 거야.’
녀석들의 목표는 진영 하나가 아니다. 아마 학원 내의 모든 학생들이 녀석들의 목표일 가능성이 높다.
그 사실을 깨닫는 순간, 자신도 모르게 얼굴이 창백해졌다. 미친 살인마 두 명이 자신을 노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에 겁이 나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흉터로 가득한 손이 하얀 연기를 뚫고 들어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히히힛. 잡았다.”
“으… 으아아아아아아악! 이… 이거 놔! 이거 놔!”
“너라면 놓겠어?”
“이거 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어 발버둥 쳤을 때, 퍼억 하는 소리와 함께 연기를 뚫고 들어온 한 사람이 보인다.
‘진영….’
순간적이지만 눈이 마주친 듯한 느낌.
놈의 눈에 들어 있는 것은 조소나 비웃음이 아니었다. 오히려 필사적으로 보일 정도로 절박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다시 한번 하얀색 연기 속으로 사라지는 녀석의 등에 대고 아무 말이나 외치고 싶었지만 목소리조차 나오지 않는다.
퍼억! 피슉! 같은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찢겨나가고 부서지는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연기는 천천히 흩어진다. 그리고 꼴도 보기 싫은 공화국 녀석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저… 저 자식….”
대충 보기에도 피투성이가 된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한쪽 어깨는 넝마가 되어 있었고, 깨끗했던 얼굴에도 상처가 가득했다. 마치 서 있는 게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미치광이 살인마들의 모습도 성치 않기는 마찬가지였지만… 누가 봐도 진영 쪽이 대미지를 더 많이 받고 있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우리 때문인 건가.’
“…….”
“…….”
‘우리를 지키려고 그… 그랬던 거야?’
“호언장담한 것치고는 꽤 형편없는 모습이네. 건방진 꼬맹이.”
“흥.”
“생긴 것답지 않게 정도 많은 것 같아. 누나. 킥.”
“…….”
머저리처럼 구경만 하고 있는 와중에도 녀석은 급우들을 위해 싸우고 있었다.
“진영 님. 괜찮…으십니까?”
“진영 님을 보호해!”
뒤늦게 공화국 녀석들이 주문을 외운다. 눈에 눈물이 가득 들어차 있는 모습. 억지로 공포를 집어삼키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진… 진영 님… 진영 님을… 더 이상 다치게 하지 마… 흐윽….”
떨리는 목소리로 어떻게든 주문을 완성시키려고 하고 있었지만 정작 주문을 완성하는 녀석들은 없다.
무식한 마법 외에는 할 줄 아는 게 없었던 빅토르 갈리아는 주문을 외우는 것을 포기하고 두 팔을 덜덜 떨며 호신용 단검을 상대방에게 겨누고 있다.
“여, 여기는 제가 맡겠습니다. 도망치십시오. 진영 님.”
잔머리를 굴리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었던 새끼 여우 슬라바 침착하게 주문을 완성시켜 반투명한 보호막을 만들어냈다.
미치광이 살인마들의 보호막을 향해 검을 휘두르자 쨍그랑 소리가 나며 보호막이 깨졌지만 슬라바는 계속해서 주문을 외운다.
“진영 님께 손대지 마! 이 더러운 살인마들아!”
샤오란 또한 채찍처럼 생긴 무기를 꺼낸 뒤에 진영의 앞을 가로막았다.
“모두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비켜라.”
“네?”
“절대… 그럴 수 없습니다. 흐윽… 흐으으윽….”
“…….”
“저 빅토르 갈리아… 끄으윽… 여기서 죽더라도 꼭 진영 님을 무사히 이곳에서 탈출시킬 것입니다. 흑… 끄으윽….”
“쓸데없는 짓이다.”
“진영 님. 진영 님 그러지 마세요. 더 이상….”
“네놈들은 도움이 되지 않아. 방해하지 말고 비켜라.”
‘어째서 도망치지 않는 거야.’
녀석이라면 충분히 도망칠 수 있을 것이다. 어려운 일이겠지만 혼자라면 이곳을 빠져나가는 것도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른다.
아니, 최소한 공화국 녀석들만 데리고 간다면 탈출할 기회를 노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도 어째서….’
친구를 위해서, 급우를 위해서 같은 이유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영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은 이곳에 있는 학생들이었다.
“참 눈물겨운 우정이네. 누나.”
“흥. 어차피 쓸데없는 짓이야.”
“슬슬 시간인 것 같아. 누나.”
“그러네. 빨리 정리하고 실습실로 가자.”
뺨에 육망성이 그려진 쌍둥이들이 비릿하게 웃었을 때 어디에선가 커다란 소리가 튀어나왔다.
“이야아아아아!”
하는 기합 소리. 기다란 막대기를 들고 돌진하는 멍청이 하나.
‘김명원.’
모두가 낙제생이라고 부르는 녀석을 보고서는 자신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쓸데없는… 짓이야.”
“…….”
“쓸데없는 짓이라고….”
“이 꼬맹이는 또 뭐야?”
퍼어어어억!
예상했던 것처럼 막대기를 들고 나간 낙제생은 허무하게 나가떨어진다.
하지만 녀석이 다시 한번 주문을 외우며 몸을 일으킨다. 아마도 육체강화 계열 주문, 주문이 완성되었는지 실패했는지 알 수 없다.
아마도 실패했을 것이다. 녀석은 마력도 제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멍청이였으니까.
퍼어어어억!
“아, 진짜 귀찮게. 그냥 죽여 버릴까.”
두 번째 돌격도 배에 발차기를 맞으며 쓰러졌지만….
세 번째로 녀석이 돌진했을 때는, 공화국의 녀석들도 함께 몸을 던지고 있었다.
진영이라면 모르겠지만 김명원 녀석이라면 죽지 않는 것도 기적이다.
그나마 기본 검술을 익히고 있는 것이 도움이 되는 것 같았지만 마법사가 전위로 돌진하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오히려 방해만 되고 있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다.
“저… 저 멍청한 낙제생 녀석이….”
하지만….
하지만 분명히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나을 것이다.
“저… 멍청한 놈도 저렇게 싸우는데….”
혹시나 죽지 않을까. 크게 다치는 것은 아닐까. 전전긍긍하며 숨어 있는 것보다는 저 낙제생이 훨씬 나을 것이다. 진짜 낙제생은 녀석이 아니다.
‘나야.’
여기 모인 사람들 중에 가장 머저리 같은 것은 바로 자신이었다.
“웃기지 마….”
‘내가 진짜 낙제생이야.’
“웃기지 마! 나는… 하네스트야.”
“…….”
“하네스트 가문의 장남… 펠리스 하네스트라고… 교국의 24기둥 하네스트 가문의 차기 가주야. 나는… 나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온다. 두려움과 무서움 때문이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다.
손이 벌벌 떨려 수인이 제대로 나오지 않는다. 미치광이 살인마들의 살기 때문인지 호흡하기 쉽지 않아 주문이 입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주문을 외우게 된다.
자부심을 위해서다.
어렸을 때부터 지켜온 프라이드를 위해서였다.
라이벌을 위해 상처 입은 저 멍청이나, 나가떨어지고 있는 낙제생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신성한 민주주의 혁명을 위해 오스칼 님과 함께 싸운 24개의 가문의 일원 중 하나이자, 그 책임감을 가지고 교국을 위해 헌신하고 있다는 긍지, 교국의 명예추기경에게 축복을 받은 66명의 아이 중 하나라는 자긍심이었을 것이다.
울음을 참고 손을 뻗는다.
“노을빛의 그리폰!!!”
커다란 그리폰이 몸을 일으킨다. 절대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화이트폴?”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화이트폴과….
“블랙번….”
노을빛의 검신의 블랙번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함께 어우러지고 있는 두 마리의 그리폰은 어릴 적 린델에서 보았던… 노을빛에 비치고 있었던 모습 그대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