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2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21)
쨍그랑.
“어라? 진짜 별일이네. 진 군사 왜 그래? 혹시 걱정되는 거 아니지?”
“제길….”
“내가 말했잖아. 걱정할 필요 없다니까? 이기영 후배도 모든 사업에서 성공한 건 아니라니까? 흑자전환이 조금 늦을 수도 있는 거지. 적자가 아닌 게 어디야. 응 응. 나는 우리 진 군사 믿어. 이번에는 운이 조금 없었을 뿐이고….”
“그런 게 아니다.”
“내가 이번에는 책임지고 우리 진 군사 도와줄게. 이기영 후배도 따, 따끔하게 혼 좀 내주려고. 참, 여기 돌아왔으면 인사라도 하러 오지. 그냥 무시하고 말이야. 나도 이제 그런 사람 모른다. 뭐. 이기영이 누구였더라? 진 군사도 기억 안 나지? 이번에야말로 우리가 이기영 후배의 코를 납작하게 눌러버리자고.”
‘제길… 이 여자의 도움을 받지 않았어야 했는데.’
“힘을 합치는 거야. 아무래도 이기영 후배는 너무 독선적이거든. 이제 조금 살만해졌다고 여기 있는 애들은 나 몰라라 내팽개쳐 버리고… 대륙 대륙 하면서, 하계에만 관심 가진다니까. 말이 나와서 하는 소린데. 이기영 후배… 은근히 사람 편애하는 것 같지 않아? 은근히 필요할 때만 찾는 스타일… 뭔지 알지.”
“…….”
“아무튼 여기 내가 데이터 정리는 다 해놨으니까. 진 군사는 안심해.”
어차피 다시 해야 하는 것들이었다.
제대로 정리되어 있을 리 없었을 테니 말이다.
베니고어의 개인 예산을 얻기 위해 협력을 요청했다가 그녀까지 떠안게 되어버린 것이 첫 번째 실수.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낑낑거리며 외로움을 토로하던 그녀와 함께 업무실을 사용한 것이 두 번째 실수였다.
‘제길.’
할 일은 태산인데 일에 집중이 되지 않는다. 어떤 환경에서도 업무를 이어나갈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스스로를 과대평가하고 있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외딴 섬마냥 그녀의 집무실만 멀리 떨어져 있던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벨리알도, 베니고어라면 죽지 못해 사는 로렌도, 새로 들어온 사하가와 겔라 역시 업무시간이 되면 저 여자와 떨어지기 위해 갖은 수법을 모두 사용한 것을 그냥 넘기는 것이 아니었다.
“진짜… 내가 이기영 후배 그렇게 안 키웠는데… 물, 물론 처음에는… 조금 그렇기는 했지만 나중에는 얼마나 잘해줬다고… 근데 이렇게 나를 뒷방 늙은이 취급하고… 찾아오지도 않고… 연락도 없어.”
‘…….’
“진짜 웃기지? 걔 있잖아. 최근에는 내가 연락하기 전까지 절대 연락 안 하는 거 알아? 나도 자존심이 있지. 절대로 먼저 연락 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이… 이 나쁜 놈이… 그때부터 지금까지… 끄윽… 진짜로 나한테 안부 메시지 한 통 없는 거야… 끄으으윽… 어, 어떻게 그래? 우… 우리가 어디 보통 사이냐구… 끄윽… 히끅….”
“제길… 그만 울어라.”
“그래서 용기 내서… 끄으윽… 잘 지내냐고 했는데… 답장을 안 하는 거야. 분명히 읽은 것 같은데… 계속 안 하는 거 있지. 내, 내가 이기영 후배를 화나게 한 걸까… 너무 밀기만 한 걸까. 이기영 후배도 내가 괘씸해서 벌주고 있는 거 아니야? 끄으윽….”
“그런 게… 아닐 거다.”
이미 수십 번도 넘게 들었던 이야기였다. 그리고 몇 번이나 더 겪은 상황이다.
이제 책상을 치며 통곡하기 시작할 것이고, 그걸로도 모자라 바닥을 뒹굴기 시작할 것이다.
그 이후에는 발버둥 치며 기껏 끝내놓은 작업에 초를 쳐 놓을 것이다.
“나 처음에는 진 군사가 정말 나쁜 사람인 줄 알았잖아. 이기영 후배가 하도 욕을 해서… 그, 그런데… 의외로 진 군사가 참 따뜻한 면이 있는 것 같아….”
‘제길.’
“그렇지 않아도 이기영 녀석이 종종 네 말을 하더군.”
“어? 뭐… 뭐라고! 뭐라고 했어?”
“정확한 내용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뭐 보고 싶었다는 내용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니까. 이제 좀….”
“정말로? 정말 그랬어?”
“그래. 그러니까 좀….”
“자세히 좀 말해줄 수 있을까? 뭐 다른 이야기는 안 했어? 확실해?”
“녀석에게 직접 듣는 게 좋을 거다. 아마 이기영 녀석도 그걸 더 원하고 있을 테니 말이다.”
“아… 아아아! 그, 그렇겠네. 그게 당연하겠지? 헤…히힛.”
귀찮은 거머리를 떼어놓는 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왠지 모를 불안감은 가시지 않는다. 당연히 이유 역시 알고 있었다.
‘제기랄. 도대체 무슨 거지 같은 짓거리를 하고 있는 거지?’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자신이 뭔가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될 것이라는 걸 말이다.
미신을 믿지는 않지만 이럴 때면 언제나 개 같은 짓거리들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그간의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도대체….’
알고 싶지만 알고 싶지 않다. 궁금하지만 관여하고 싶지 않다. 무슨 일이 벌어지던 알게 되는 순간 녀석에게 휘말리게 될 것이 뻔했다.
아무리 거지 같은 일이 벌어지더라도 그 자리에 자신이 없었어야 했다.
물론 결국에는 알게 될 것이다. 자신이나 이기영 같은 인간들에게 어떤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것 자체를 견딜 수 없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에는 견뎌내야 했다.
‘분명히 휘둘리겠지.’
분명히 놈은 이번에도 자신을 쥐고 휘두르려고 할 것이다. 어떤 상황에 개입하는 순간, 그 특유의 표정과 어처구니없는 궤변, 이죽거림과 비웃음에 이성을 잃을 것이 뻔했다.
이미 거스를 수 없는 상황을 설정해 둔 이후에 무대 위로 자신을 던져놓을 것이다.
자신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일일이 대응하는 것보다 무시하는 게 더 정신건강에 이롭다는 것을 깨달은 것뿐이었다.
이번에는 자신도 무기를 가지고 있었으니 말이다.
물론 녀석이 어려진 걸 무기라고 표현하는 것도 자괴감이 느껴지기야 한다.
스스로가 유치해 지고 있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었지만 놈이 분해하는 얼굴을 봤을 때의 얼굴이 통쾌해 참을 수가 없었다.
종합적으로 생각해 보면 일단은 웅크리는 게 맞는 선택이었지만….
‘그래도 녀석의 패가 뭔지 확인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똬리를 틀기 시작했다. 어차피 뻔하겠지만 미리 대응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진 것이다.
“나는… 일단 내려가 보지.”
“어? 벌, 벌써? 한 달 동안 계속 여기에 있는다고 하지 않았어?”
“잠깐 처리할 일이 있어서 그렇다. 아무튼 금방 오도록 하지.”
“연, 연… 연락할 거지.”
‘제길.’
“그래. 그렇게 하도록 하지.”
절대로 끼어들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일단 놈의 계획이 무엇인지 알고 싶을 뿐이었다.
자신이 다시 한번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에 발을 들이는 일은 결단코 없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다시 한번 공화국 내에 위치한 집무실로 자리를 옮긴 이후에는 저도 모르게 여신의 거울을 두드린다.
아네모네의 눈이든, 감시 카메라든 간에 통제병에 걸린 녀석은 실시간으로 이 모든 장면들을 담아놓고 있을 것이다.
마스터 아이디로 곧바로 접속한 이후, 여신의 거울을 바라보자 교육시설의 곳곳이 한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무언가 사건이 터진 것 같은 모습, 가장 많은 눈이 옥상을 가리키고 있었다.
-끝났다… 히익… 힉힉힉!
-…….
-끝났다고!! 히히히히힉! 히히히히힉! 드디어 그분이 강림하신다! 그분이….
그리고 이미 절정으로 치달은 상황극이 시야에 들어왔다.
‘트라오레?’
금지마법에 라이센스를 받은 교육시설의 교수. 어째서 자신이 이름을 기억하고 있을지 의문이 일 정도로 하찮은 녀석이었다.
문제는 녀석이 완전히 미쳐 있었다는 것. 그리고 바닥에 그려진 커다란 마법진이 너무 도드라지게 눈에 띈다는 것뿐이었다.
‘꼬리를 잡은 건가?’
이기영이 육망성에 대해 이야기 하던 것이 기억난다. 분명 인신공양으로 악마를 소환하려고 하는 버러지들이 교육 시설 내에 있다는 소식이었지만 별것 아닌 것으로 치부해 개의치 않았었다.
“마법진은 가짜로군.”
순간적으로 녀석이 아무 말이나 지껄인 것은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기는 했지만 놈의 방식을 생각해 보면 아마 그런 것도 아닐 것이다.
아마 가짜 육망성 놈들을 교육 시설 내에 잠입시켰을 거고….
‘낚아내려고 한 건가.’
트라오레 교수를 비롯해서 숨어서 숨을 죽이고 있는 육망성 놈들을 한꺼번에 낚기 위한 수작일 것이다.
물론 세간에는 치욕으로 비칠 것이다. 파란 길드의 부지 안에서 테러가 일어났다는 것은 놈에게도 좋은 상황은 아닐 테지만 녀석은 결과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
자존심 같은 것들을 너무나 쉽게 던져 버리니 말이다.
중요한 사실은 파란 길드가 공격받았다는 것 하나였다.
일이 끝나는 즉시 언론은 이번 사건을 대서특필할 것이고, 온 대륙에서 육망성에 관해서 떠들어 댈 것이다.
조금이라도 연관이 있다고 생각되는 놈들을 모조리 잡아들이고, 안 그래도 조심스럽게 행동하던 놈들을 더 조심스럽게 만들겠지.
내가 너희들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미리 경고한 셈이었다.
‘기우에 불과했나.’
당연히 실제로 군단장이 소환되는 일 따위는 당연히 벌어지지 않는다. 지금부터 보는 건 쓸데없는 연극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때였다.
“군사님!”
“군사님!!”
하는 목소리들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이다. 심지어 집무실을 쿵쿵 두드리기 시작한다.
“군사님! 계십니까!”
구태여 문을 열 필요는 없다고 느껴져 입을 열자 곧바로 대답이 들려왔다.
“무슨 일들이십니까.”
“군사님… 알, 알고 계십니까? 현, 현재 지금 파란 교육시설 내에서… 테러가….”
“알고 있습니다만….”
“정체를 알 수 없는 집단의 테러에 파란 길드가 공격받고 있다고 합니다. 이에 교국에서 정식으로 지원병력을 요청했습니다. 갈리아와 여우, 샤오 란 님 역시 교육시설 테러의 대책을 위해 현재 교국으로 향하신다고… 합니다. 지원병력 파견 승인을… 위해서….”
“승인하도록 하겠습니다.”
더 이상 할 말은 없다.
“경과를 보고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대화를 마무리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원들이 문밖을 벗어나지 않는 것이 느껴졌다.
심지어 서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듯하다. 이윽고 조심스러운 한마디가 문밖에서 다시 흘러나왔다.
“저… 군사님께서는… 같이 가시지 않는 겁니까?”
“…….”
“…….”
“…….”
“진영 님께서… 교, 교육시설 내부에….”
“…….”
“현… 현재, 테러리스트들과 전투 중이시라고 합니다.”
“…….”
“공화국의 명예와 군사님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모든 학생들을 이끌고 적들과 목숨을 걸고… 싸, 싸우고 계시는 중이라고 하십니다.”
“아니….”
“그분이 성에 차지 않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군사님. 군사님의 아들로서 부족한 점이 많을 수도 있다는 것도… 십분 이해하고 있습니다… 그야 그 누가… 군사님을 만족시킬 수 있겠습니까.”
“그 녀석은….”
“하지만… 하지만 적어도… 이번만큼은 진영 님을 생각해 주실 수는 없으신 겁니까.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진영 님의 힘이 되어 주시는 게… 그리 힘드십니까.”
“…….”
“사랑하는 분을 잃으신 참담한 심정을 어찌 아이에게 풀려고 하시는 겁니까.”
마치 울먹이는 듯한 목소리들이 들려온다.
어째서 이 녀석들이 울먹이는지 모르겠다. 도대체 이 새끼들은 뭔데 이미 진영의 존재에 대해서 알고 있단 말인가.
“이대로라면… 그분께서… 너무 불쌍하시지 않습니까.”
“부탁드립니다. 군사님.”
“부탁드립니다.”
“부디… 부디… 부탁드립니다. 그분은 공화국의 새로운 빛이자 미래가 될 것입니다.”
“주제넘은 말씀입니다만… 제발… 부탁드립니다.”
동시에 여신의 거울 안에 있는 어린 이기영이 검은 기둥을 향해 몸을 던지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죄송해요. 파파.
“지… 지랄….”
“…….”
“지… 지랄하지 마라… 이… 이 개자식!”
문을 박차고 나갈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