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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57화 (1,25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57화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26)

전혀 비가 내릴 타이밍이 아니었지만 일단은 비가 떨어져 내려야 했고, 떨어지고 있었다.

쏴아아아아 하는 소리가 계속해서 지면을 두드린다. 마치 하늘도 진영의 죽음을 슬퍼하는 것처럼 차츰차츰 내리던 소리가 어느새 공간을 가득 채웠다.

말소리마저도 전부 묻어버릴 것 같은 폭우가 맹렬히 쏟아졌지만 진청의 목소리는 그 어느 때보다도 뚜렷했다.

“저… 녀석이… 내… 내… 아들일 리가 없다.”

몇몇 꼬맹이들이 눈물을 참지 못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녀석의 명대사에 울음을 참고 있던 녀석들도 끝끝내 울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장담하건대 진청의 입에서 나온 대사 중 가장 마음에 드는 대사였다.

“저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게… 내 아들일 리가… 없단 말이다.”

진청을 쏘아붙였던 김명원도 할 말을 잃은 채로 진청을 바라보고 있었던 것은 당연지사.

이런 상황에서 녀석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김명원의 기준에서는 진청은 분명 악인으로 비쳐졌을 것이다.

진영의 삶을 고통스럽게 만든 아버지였고, 자신의 아들에게 사랑을 줄 줄 모르는 한심한 아버지였다.

그것뿐인가.

아내를 잃은 책임을, 본인의 실수를 아들에게 전가시키기까지 하는 쓰레기 중의 쓰레기였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진청을 압박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본래 사연이 있는 악인은 조금은 세탁되는 법, 아들을 잃고 이미 후회하고 있는 진청에게까지 소리를 지를 정도로 파란의 DNA는 모질지 못했다.

진청의 표정에 들어서 있는 것은 후회 그 자체였으니 말이다.

‘그냥 여기 온 걸 후회하는 거 같자너.’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을 받아들이기는 한 모양, 이 새끼가 눈물 연기를 선보일 수 있을 리 만무하니 굵은 빗방울이 그 역할을 대신해 줄 수밖에 없다.

녀석의 머리까지 흠뻑 젖게 만든 맑은 하늘에 뜬금없는 비는 어느새 놈의 얼굴을 타고 흘러내리는 중이었다.

남들에게 눈물을 보인 적이 없었던 진영의 아버지 진청에게는 이렇게 비가 내려 다행이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시바… 너무… 감동적이자너.’

그 모든 것을 진청이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 가장 큰 성과였다.

“당신… 진영을….”

“그럴 리가 없어….”

“…….”

“그럴 리가… 없다.”

“녀석은… 녀석은 정말 착한 녀석이었어요.”

분위기를 파악한 김명원이 갑작스레 진영에 대한 말을 쏟아낸다. 아까까지는 분명 반말이었는데 지금은 또 존댓말이다.

진청을 진영의 아버지로 인정했다는 거겠지.

“…….”

“흑… 흐윽… 조금 제멋대로이기는 했지만… 똑똑하고 사려 깊었던 친구였습니다.”

“…….”

“표현을 하지 않을 뿐, 누구보다도 따뜻하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친구였… 습니다. 그 누구보다도 당신의 뒤를… 따라가고 싶어 하는 친구였습니다. 흐윽… 흐으윽….”

“…….”

“죄송합니다. 저희가 부족한 탓에… 흐윽… 죄송합니다. 진영이를 지키지 못해서… 죄송합니다. 사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저희의… 잘못이었어요.”

“…….”

“흐으윽윽… 제가… 부족한 탓에… 소중한 친구를 잃었습니다. 우리들이 아무것도 하지 않은 탓에 진영을 잃었습니다. 흐윽… 끄윽… 제가 움직일 수 없게 되는 바람에… 친구를 잃었습니다. 흐윽… 흐으윽….”

“너의… 탓이 아니다.”

“사실은… 당신의 잘못이 아니에요. 제… 제 잘못입니다.”

“스스로를 탓하지 마라….”

필요한 대사를 치고 있는 것도 치고 있는 거지만 일단 하늘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기로 결정했다는 것 부터가 그렇다.

보호막이나 마력으로 구태여 비를 안 맞을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이미 비에 젖은 생쥐 꼴을 하고 있었다. 본인 스스로 비를 맞기로 결정한 것이다.

-받아… 들이셨어요?

-그 입 다물어라. 이 개자식.

-꼬맹이들 눈빛이 조금 매섭기는 하죠? 솔직히 나였어도 못 버텼을 테니까 그렇게 자괴감 느끼지 마요. 어떻게 걔네들을 외면할 수 있겠냐구. 절대 못 해요. 절대 못 해. 지혜 누나도 외면 못 해.

-입 다물으라고 이야기했다. 이기영.

-저도 살 떨리더라니까요. 사람 하나 죽일 것처럼 노려보는데… 명원이가 파란 DNA를 좀 진하게 물려받았나 봐.

그제야 김명원이 파란의 관계자라는 걸 눈치챈 모양인지 녀석의 얼굴이 한층 더 일그러진다. 파란의 개자식들과 연관되면 득이 될 것 없다는 표정이었다.

-쟤가 좀 온도가 뜨겁더라고요. 저도 당황했잖아요. 좀 미안하기는 한데… 결과적으로 잘되기도 했죠?

-뭐?

-아니… 너무 그렇게 날 세우지 말고요. 내가 누구야. 아무 생각 없이 이런 짓을 벌였겠냐고요.

‘이왕 이렇게 된 거 확실하게 도와줘야겠자너.’

잃는 게 있으면 얻는 것도 있어야 하는 법이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 이기영, 적어도 도의가 뭔지는 알고 있는 만큼 확실하게 밀어줘야겠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

결계가 해제되었으니 슬슬 다른 인파들도 몰려올 타이밍, 통신 채널과 영상들도 전부다 가동이 된 만큼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담을 수밖에 없다.

“군사님… 흐윽….”

“군사니임….”

“죄송합니다. 군사님.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근데 혹시 화나셨을까 봐 하는 이야기인데… 이거 지지율은 진짜 오르는 거 알고 있죠?

-…….

-명원이 때문에 진짜 미안해서 그러는데 꼭 보답할게. 원래 가는 게 있으면 오는 것도 있어야 하자너. 진 군사도 나중에 뭐 따로 할래요? 아니면 다음 프로젝트 예산을 조금 더 드릴까? 아니면 집무실… 옮겨 드릴까?

-네놈… 알고 있었나?

-…….

-베니고어는 지혜 누나 옆으로 옮겨주고… 업무환경도 최대로!

-…….

자존심 때문인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었지만 암묵적인 동의를 한 것처럼 보이기는 했다.

상황이 좋지 않고 억울하기는 해도 얻어갈 수 있는 게 있다면 얻어가야 하는 게 우리 같은 인간들의 특징이 아니겠는가.

진청이야 나보다 조금 더 자존심을 챙기고 타협하지 않으려는 성향이 있기는 하지만, 항복하지 못하는 성격은 또 아니었다.

항복 또한 전략이다. 패배를 인정하고 협상으로 이득을 볼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 이득을 보는 것이 또 맞는 선택이었다.

‘이미 순응했자너.’

여기 있는 놈들이 꼬맹이들이 아니었다면 모르겠지만, 국제학원의 구성원들이 눈을 시뻘겋게 뜨고 자신을 지켜보고 있으니 녀석으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을 것이다.

그사이에도 계속해서 관객들이 입장하기 시작했다.

“군사님! 괜찮으십니까?”

“군사님!”

“허억… 허억… 군사님! 진영 님께서는….”

“군사님!!”

드디어 결계를 뚫고 들어오는 것에 성공한 진청의 부관들이었다.

물론 녀석들도 이 참상을 보고서는 할 말을 잃은 듯이 허망하게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군… 군사님….”

“저분… 저분이….”

“그래… 진영 님이시다.”

“선배… 혹시 진영 님이… 돌… 돌아가신 겁니까?”

살릴 수 있다는 둥, 어서 치료해야 한다는 개소리를 지껄이는 녀석들은 더는 없다.

진청은 그저 조용히 다시 진영의 앞으로 다가와 백색 동공이 보이는 눈을 감겨주고….

‘크으….’

가슴에 얼굴을 묻으며….

“개자식… 개자식….”

이라는 대사를 남들이 들리지 않게 중얼거릴 뿐이었다.

그 모습은 마치 드디어 진청이 진영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것 같아 갤러리들의 눈물샘을 자극시키고 있었다.

아까처럼 오바스러운 광경이 아니라 정말로 모두가 눈물만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들어 올려조! 들어 올려조!’

펠리스 하네스트는 이미 질질 짜고 있는 중이었고….

‘들어 올려줘야지! 뭐 하고 있냐고! 시바.’

샤오 란은 오랜만에 보는 샤오 린에게 푹 안겨 아이처럼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빅토르 갈리아와 새끼여우 슬라바도 자신들의 부모에게 안 긴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공화국의 어른들 역시 자신의 자식들이 무사하다고 기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진영 님이… 진영 님께서 저희들을 구하시려다가… 흐윽… 아버지….”

“빅토르 갈리아. 네 탓이 아니다.”

“아버지… 흐어어어어어어엉….”

“언제까지 질질 짜고 있을 셈이냐. 뭣 하는 거냐. 네 작은 주군에 대한 예를 갖추지 않고!”

“흐윽… 끄으윽.”

‘아니, 들어 올리라니까.’

-아니, 뭐 해요! 시바 진짜. 여기 그렇게 가만히 있으면 뭐 부관들이 우르르 몰려와서 수습해 주기라도 한대?

-…….

-들어 올리라고! 지금 당신 잡고 있는 카메라만 수백 대니까!

-…….

“제길… 이 개자식… 제기랄….”

결국에는 진청이 슬그머니 진영을 들어올리기 시작한다.

도저히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엄숙한 분위기가 좌중을 휘감은 것은 당연지사.

한쪽 손으로는 머리를 한쪽 손으로는 허벅지 뒤쪽을 안아 들자 자연스레 팔이 축 늘어진다.

-이제 가요. 가야죠. 나가야죠. 공화국으로 가야죠.

-그 입 닥쳐라. 지금 당장 네놈을 이 건물 밖으로 던져 버릴까 고민하고 있는 중이니까.

-병원 가고 싶어요? 이왕 이렇게 된 거 빨리 마무리합시다. 바쁜 건 지금부터니까.

직후에는 터벅터벅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몰려 있는 군중들이 홍해 갈라지듯이 갈라진다. 그 사이로 진청은 허망한 표정을 지으며 계속해서 걸음을 옮긴다.

공화국에서 온 녀석의 부관들과 아이들 역시 진청의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마치 행렬을 하는 것처럼 말이다.

당연히 이는 작은 영웅의 넋을 기리기 위한 행렬이었다. 연습한 것도 아니고, 미리 짜맞춘 것도 아닌데 최대한 예를 표현하는 녀석들을 보니 확실히 이런 이벤트에 익숙하기는 한 모양.

공화국에서 온 병사 몇 명이 깃발을 크게 치켜들었다. 그 사이로 진영을 안은 진청이 걸어가는 모습은 장관 중 장관.

창과 검을 들어 올리고, 어디에서 튀어나왔는지 음악마저 흘러나오고 있다.

“…….”

“…….”

마치 이미 죽은 진영을 호위하듯이 말이다.

슬그머니 망원경으로 공화국을 살펴보자 이미 소문이 퍼져 나갔는지 모든 시민들이 여신의 거울을 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뉴스의 타이틀은.

‘작은 그림자 지다.’

화면에 나오고 있는 진청 녀석의 얼굴을 보자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다.

‘아니, 시바 이 와중에 관까지 준비했냐고… 공화국 녀석들 행동력 실화냐구!’

소식을 들은 부관 중 하나가 급하게 관을 준비해 온 모양인지 파란 국제학원의 앞에는 이미 고급스러운 관 하나가 놓여져 있었다.

아들을 잃은 아버지는 아무 말도 없이 손에 들려 있는 것을 조용히 관 안에 내려놓는다.

“한마디 해주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군사님.”

“…….”

“진영 님께서 기뻐하실 겁니다.”

“…….”

“나는….”

“…….”

“…….”

“네가 자랑스럽구나.”

아들내미를 인정하는 근본의 그 대사 ‘네가 자랑스럽구나’.

“…….”

“미안… 미안하다.”

마침내 진청이 진영의 관 앞에서 고개를 떨구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동시에 거대한 고함 소리가 들려온다.

“복수… 복수를!”

‘아니, 갑자기요?’

‘…….’

“피의 복수를!”

‘…….’

“복수를! 피의 복수를!!!”

“피의 복수르을!!!!”

‘시바. 시바.’

“간악한 악마 놈들에게 피의 복수를!”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피의 복수를!”

공화국이 육망성을 물었다.

“피의 복수를!”

이 빠꾸 없는 무식한 새끼들이 육망성을 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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