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8화
치료의 효과(1)
[파란 길드의 실수, 공화국의 진영은 대륙을 구한 작은 영웅. 파란 길드의 언론담당관 스미스의 담담한 입장표명.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공화국 측, 파란의 실수가 아니야. 그저 불운한 사고였을 뿐… 교국과의 혈맹에는 그 어떠한 영향도 없을 것. -린델 정치부 강유미 기자.]
[바젤 교황, 교황청은 절대 악마소환사들의 불운한 움직임을 좌시하지 않을 것. -교황청 일보.]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에 잠입한 테러리스트, 어째서 파란 길드에서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나. -딴지일보 박단지 기자.]
[공화국의 진청, 테러리스트와의 전쟁 선포. -린델일보 김성경 기자.]
[슬픔에 빠진 공화국, 아직도 작은 그림자를 잃은 후유증에서 빠져나오지 못해… 그날 이후로 자취를 감 춘 진청 군사님에 대한 걱정과 우려의 시선도… -월간 공화국]
[작은 그림자의 장례는 국장이 아닌 비밀리에 진행될 예정, 다른 누구도 아닌 진청 군사님의 뜻. -주간 공화국]
‘언론에서도 대서특필 해대자너.’
여신의 거울에서도 하루 종일 사건에 대해서만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스미스 언론담당관이 공식 사과를 한 가운데, 파란 길드는 공화국의 특별 조사단이 들어오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육망성 테러리스트들의 꼬리를 잡는 것에 공조하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심지어 트라오레 교수의 신변을 인도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에 일각에서는 공화국에 너무 많은 양보를 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파란의 삼대 길드에서는 테러리즘 앞에서는 모든 대륙이 하나가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로 많은 이들의 불만을 일축시켰습니다.
‘여기서도 그렇고.’
-파란 국제학원, 공식 명칭,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은 오는 13일부터 다시 재개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이번 사건으로 인해 테러리스트들에게 굴복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셈입니다. 대마법사 정하얀의 결계를 비롯하며 각국의 유명 모험가들이 직접 보안에 신경 쓰겠다는 의지를 보이게 되어… 실질적으로 문제가 되었던 교수선임에 대한 문제 해결도….
‘저기도 그렇고.’
-아니, 그래서 파란 길드는 도대체 어디서 뭘 하고 있었냐 이 말입니까! 이 지경이 났어요! 린델 한복판에서도 테러가 일어났다 이 말입니다. 요즘이 어느 시대인데… 이런 일이 일어난다니요.
-지금 그런 파란 길드의 잘못이라 이 말입니까! 어디 이기영 파란 부길드마스터의 잘못이라고 지껄여 보세요! 그 시대를 만든 사람이 누구인지 생각하고 지껄이란 말입니다!
-두 분 잠깐 너무 흥분하신 것 같습니다만… 이번 주제는 여기까지 마치고 다음 발언으로 넘어가도록 하겠습니다. 다음은 시민논객… 린델 시민연대의 김양 님께서 발언을….
‘아주 오랜만에 활기가 돌자너.’
-정확히 오늘 2시 30분부터 공화국에서는 새로운 개인 정보법을 발동하기로 결정했습니다. 공화국민들의 모든 개인정보를 열람할 수 있게 되는 것인데요… 일각에서는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지만 대부분의 공화국민들은 개의치 않고 있습니다. 잠깐 인터뷰를….
-그 개자식들 전부 다 죽여 버려야 한다니까!
-진청 님이 한 번이라도 행복했으면 좋겠어… 너무 불쌍하잖아….
“…….”
“…….”
공화국 쪽이 분위기가 가장 좋기는 했다.
-오합지졸 육망성 놈들의 사촌에 육촌까지 씨를 말려 버리고 말겠다고… 분통을 터뜨리며 선언하셨습니다. 공화국 총통께서는 놈들의 오만방자한 행태를 더 이상 참을 수 없어… 모든 놈들을 지옥불 밑으로 끌어내릴 때까지 모든 국력을 총동원하여….
‘솔직히 진군사는 손해 본 게 없자너.’
당연히 시설 관리를 제대로 하지 못한 파란 길드에서 언론의 뭇매를 맞을 수밖에 없었다.
자연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유소년 교육시설에서 임명한 교수가 육망성 빌런이었다는 사실만으로도 얻어맞을 거리가 흘러 넘쳤으니까.
통제하자면 통제할 수 있기는 했지만 구태여 통제할 필요를 느끼지는 못했다.
이런 경우에는 흘러가는 대로 내버려 두는 게 옳았으니 말이다.
‘그래야 길드 직원들도 정신 좀 차리지.’
진 군사가 이번 일에 대해서 꽤 억울해하는 면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사실상 비난을 피하지 못한 것은 파란 길드였다는 거다.
오히려 녀석은 동정받고 응원받는 쪽이었다. 예정되어 있었던 지지율 상승이야 두말하면 입 아프고….
아마 결과물에는 녀석도 제법 만족하고 있지 않을까.
더 강한 통제를 원하고 있던 공화국 정부에서도 이번 일을 핑계로 조금 더 빅브라더스러운 일들을 진행시킬 수 있었고… 복수를 부르짖었던 공화국 내에서는 육망성 놈들의 머리채를 쥐어 잡고 있었다.
만족스러운 결과물이라면 만족스러운 결과물이었다.
지금 공화국의 상태는 육망성의 육자만 보여도 곧바로 공안에 끌려가 정신마법으로 감청받는 분위기였으니까.
얼마나 공화국민 들을 쥐 잡듯이 잡는지 빠져나갈 구석이 하나도 없다고 느껴질 정도였다는 거다.
이 새끼들은 인권탄압 같은 것은 신경 쓰지도 않는다. 그냥 보이면 잡아가서 일단 조사를 때려 박아 버린다. 변명이고 나발이고 필요 없다. 오망성만 보여도 공안에 끌려가 버린다.
‘좋은 분위기야.’
교국에서는 그럴 수 있는 분위기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욱이 필요한 행동이기도 했다.
조금 놀랐던 것은….
“생각보다 많은 것 같습니다.”
“그렇죠?”
녀석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깊게 일상 속에 스며들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물론 대륙은 넓고 작은 마을 같은 경우에는 일일이 통제할 수 없다.
땅 덩어리가 크고 인구가 많은 만큼 모든 곳에서 일어나는 일을 전부 감시하는 것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하지만 그걸 전부 다 생각하더라도….
“유의미한 수치처럼 보인다니까요.”
말을 마치고 의자를 돌리자 고개를 끄덕이는 김미영 팀장의 얼굴이 시야에 비쳐왔다.
교육시설 내에서의 일이 어느 정도 마무리됐으니 리나의 모습은 집어 던져 버리고 김미영 팀장 본연의 모습으로 돌아와 있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까….’
일이 끝난 지 시간이 조금 지난 상황이었지만 감상을 듣고 싶은 게 당연했다.
상황이 계속 변하고 변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기는 했지만 일단은 김미영 팀장의 휴가차 데리고 온 게 당초 목표였으니까.
“그건 그렇고….”
“…….”
“이번에는 좀 어떠셨어요?”
고민 없이 대답해 오는 그녀가 보였다.
“재미있었습니다.”
“그래요?”
“네. 반신반의하기는 했지만 나름대로 좋은 휴가가 된 것 같았습니다. 제 일에 보람을 느끼고 자부심도 느끼고 있었지만 매번 같은 루틴으로 살아가는 건 확실히 힘들었으니 말입니다. 좋은 자극이 되기도 했고… 덕분에 명원이에 대해서도 잘 알게 되기도 했고요. 제가 모르는 모습들이나… 그런 것들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해 주시니 다행이네요. 조금 일이 꼬인 감이 없지 않아 있었는데.”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교육 시설 내까지 테러리스트들의 끈이 닿아 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으니까요.”
“그건 그렇기는 하지만… 명원이는 좀 어때요? 힘들어하지는 않나요?”
“…….”
“…….”
“잘 이겨내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래요? 사실 조금 충격받지 않을까 걱정하기도 했는데….”
“그게 걱정이었다면 부길드마스터께 직접 이야기를 드렸을 겁니다. 이러나저러나 해도 이곳은 지구가 아니라 대륙이니까요.”
“…….”
“안전한 곳에서 안전하게만 자라면 좋겠지만 대륙에서… 그것도 모험가로 살아가려면 한 번 즈음은 겪었어야 하는 일일 겁니다. 그게 통제된 상황에서 안전하게 이루어진다면 오히려 제가 감사해야 함이 옳습니다.”
‘독하시네.’
확실히 팀장님도 저쪽보다는 이쪽이기는 해.
“만약 부길드마스터께서 자리를 비우셨을 때, 트라오레가 어떤 계획을 실행했다고 생각한다면… 그다지… 유쾌한 상황은 아니었을 겁니다.”
“틀린 말은 아니기는 하네요.”
“결국에는 자신이 어째서 공부하고 있는지를 알게 되겠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진영을 잃은 슬픔은 양분이 되어 줄 겁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아이들과의 관계도 원만해진 것 같기도 하고 말입니다.”
“결국에는 친해졌나 보네요.”
“네. 어제는 하네스트 가문에 초대되어서… 아마 며칠 동안 그쪽에서 지내고 올 것 같습니다.”
“정말요?”
“네.”
김미영 팀장의 표정은 정말 기뻐 보였다.
“아무래도 아이들이 같은 슬픔을 겪었다는 것과 같은 목표를 가지게 되었다는 게 결정적이었던 것 같습니다.”
“…….”
“제가 하네스트 의원에게 직접 명원이에 대해서 이야기하기도 했고요.”
“아아아….”
“부길드마스터께서 해주신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약간은 휘둘러도 된다는 말씀 말입니다. 물론 직접적으로 하네스트 의원을 압박하거나 한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게 통할 위인도 아니고… 제가 그럴 만한 위치에 있는 것도 아니니까요. 그저 같은 학부모로서 앞으로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싶다고 말했을 뿐입니다. 이번 초대와는 관계가 없는 것 같았지만….”
“잘하셨네요. 그 양반 그래도 은근히 약은 양반이라서… 알아서 잘 처신할걸요. 펠리스 걔랑 명원이를 밀어주려고 할 것 같은데… 원래 그쪽 가문은 보수적이어서 손님들 잘 안 재워요. 며칠 동안 방을 내어준 거면 말 다 했죠, 뭐.”
괜스레 녀석들이 떠올라 망원경으로 하네스트 가문을 살펴보자 차를 마시고 있는 펠리스와 김명원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고급스러워 보이는 정장을 입고 있는 펠리스 하네스트와는 다르게 김명원은 다소 단촐한 복장이다.
-흥. 운 좋은 줄 알아라. 네놈은 평생 구경하지 못할 차일 테니까. 희생과 부활의 성자께서 가장 좋아하시는….
-사색 허브티?
-……멍청한 낙제생답지 않게 안목이 제법이군.
-우리 어머니도 자주 즐겨 드시거든….
-뭐… 뭐? 흥. 그렇다면 오늘은 가난한 네놈이 감히 쳐다볼 수도 없는 식사들을 대접해 주마.
‘근데 펠리스 하네스트 쟤랑 친해지라고 놔둔 게 잘된 일인지 모르겠어.’
-꼭 그럴 필요는….
-네놈의 그 싸구려 입에 성찬을 들이부어 주겠다 이 말이다. 식사예절은 전부 암기했나?
‘쟤 진짜 성격 문제 있어.’
-대충은….
-멍청한 놈. 이런 건 대충 배운다고 되는 게 아니다. 네놈이 위로 올라가려 할수록 꼭 필요한 덕목이란 말이다. 자리에는 자리에 맞는 에티튜드가 중요해. 명예추기경님과 중요한 자리에 함께 있다고 생각해 봐라. 그렇게 게걸스럽게 처먹는 게 퍽이나 도움이 되겠군.
-명예추기경님은 그런 거 별로 신경 안 쓰시지 않을까?
-모르는 소리, 그분의 테이블 매너를 직접 본다면 절대로 그런 소리를 하지 못할 거다.
-…….
-아무튼 티타임 간식은 린델에서 유명한 무지개 솜사탕이다. 비싼 음식은 아니지만 제한 수량 때문에 구하기 힘들지. 네놈이 이 달콤함을 견뎌낼 수 있을까?
‘아무래도 친구 잘못 고른 것 같자너.’
그래도 계속해서 투닥투닥거리는 모습이 즐겁게 보이기는 하다.
갑자기 마법 수련에 열중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노을빛의 그리폰은 두 사람이 써야 가장 효율적이라는 것을 드디어 깨달았지. 네놈을 이곳으로 부른 이유는 내 오리지널 스펠, 노을빛의 그리폰을 가르쳐 주기 위해서다. 너는 화이트 폴을, 나는 블랙 번을 맡는다. 더불어 가문에서 보유하고 있는 마법서도 몇 가지 보여주겠다.
-그래도 되는 거야?
-같은 적을 둔 사이다. 중요한 것도 아니고 가르쳐 주지 못할 게 뭐가 있나? 아버지에게도 허락을 받았으니 안심하도록….
-같은 적….
-그래. 육망성 놈들….
-…….
-살아남은 것은 치욕이다. 진영 그 녀석이 대륙의 영웅이 된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아. 물론 녀석은 위대한 족적을 남겼다는 것을 부정하는 게 아니다. 하지만… 만약 여기 같이 있었더라면….
-…….
-…….
‘그래 그래. 그렇게 서로 상처를 치유하고 같이 나아가는 거야.’
주먹을 부들부들 떨고 있는 펠리스 하네스트는 당장에라도 눈물을 쏟을 것만 같다.
김명원 역시 우울한 표정이었다. 실제로 진영의 장례식에 참여한 둘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만큼 잘 이겨내고 있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아무튼 훈련이다. 준비는 됐겠지.
-물론.
-발목 잡지 마라. 멍청한 낙제생.
-너야말로. 펠리스 하네스트.
‘소년만화스러운 엔딩이자너.’
정확히 말하면 엔딩이 아니기야 했다. 쟤네들은 지금부터가 시작일 테니까.
김미영 팀장 말대로 여러 가지 일을 겪을 거고, 여러 가지 사건에 마주하게 될 것이다.
이번에 있었던 사건은 녀석들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어 줄 것이고, 결국에는 어른들의 품을 벗어나게 되겠지.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다른 누구도 아닌 녀석들에게 달렸다. 하늘을 나는 노을빛의 그리폰과 함께 나는 다시 망원경을 돌렸다.
슬쩍 올라간 내 입꼬리를 보고서는 곧바로 김미영 팀장이 미소를 띠며 말을 걸어왔다.
“잘 지내고 있습니까?”
“네. 확실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네요. 친구를 잘 선택한 건지는 조금 의심이 되기는 하지만….”
“나쁜 아이는 아닌 것 같았습니다.”
“네. 좀 특이할 뿐이죠. 아무튼 꼬마들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
“다른 특이사항이 있었나요?”
“네. 아무래도 실리아를 한번 살펴보셔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교국 내에서는 테러리스트들의 흔적이 가장 진하게 발견된 곳이기도 하고… 아마 공식적으로 보고되지 않은 특이점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카스가노 유노 님께서 직접 이기영 님을….”
“아. 무슨 말씀이신지 알겠네요.”
‘진 군사 실적평가도 한번 들러야 되는데.’
“또 다른 회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중요하지 않은 일정은 일단 전부 취소하기는 했지만 오스칼 님께서 이기영 님이 직접 회의를 주관해 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당분간은 공식 회의는 비참석 아닌가요.”
“통신 채널로나마 회의를 진행해 주실 수 있으신지 물어보시더군요.”
‘아리스 시녀님도 만난 지 오래되기는 했지.’
“그리고….”
“네.”
“길드마스터가 선물과 함께 편지를 보내오셨습니다.”
“현성이가요?”
“네.”
‘얘도 한번 병문안이라도 가야 되는데.’
어느 것 하나 중요하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일단 편지부터 읽어볼게요. 선물은 가방 진열장에 놔주시면 될 것 같아요.”
“부길드마스터.”
“네?”
“선물이 가방이 아닙니다.”
“…….”
“…….”
“진짜요?”
“네.”
치료가 효과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