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59화
치료의 효과(2)
설마 설마 하기는 했는데….
‘효과가 있기는 있는 건가.’
당연히 김현성을 응원해 주는 척하기는 했지만 쓸데없는 짓이 될 가능성이 높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보냈던 응원이었다.
몇 가지 증상 같은 것들은 나아지면 좋겠지만 나아지면 안 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이었다.
‘진짜 좋아지고 있는 것 같자너.’
어쩌다 가방이 이 새끼의 정신병을 상징하는 물건이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과거의 행적을 떠올려 보면 충분히 그럴 만했다.
다른 스토리 전부 다 건너뛰고 샤넬리아 에르메스를 이곳에 데리고 오려고 했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이 된다.
김현성의 현 상태가 궁금해진 것은 당연지사. 계속해서 서 있는 김미영 팀장님을 뒤로 물린 이후에는 곧바로 편지를 열 수밖에 없었다.
[정말 오랜만에 편지를 보내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는 해.’
사실 편지를 보낼 일이 요즘 없으니까. 여신의 손거울로 메시지를 실시간으로 보낼 수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말이다.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며 편지를 넘기자 익숙한 필체의 글씨들이 빽빽이 나열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요즘은 어떻게 지내십니까? 사실 드리고 싶은 말들이 무척 많았지만 막상 글로 적어서 풀려고 하니 제 생각대로 잘 쓰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 사소한 일들이라 편지에 적기도 조금 부끄럽기도 하고요. 식사는 잘하고 계시는지, 요즘 건강은 어떠신지, 길드원들과는 어떻게 잘 지내고 있는지 같은 간단한 이야기들 말입니다. 기영 씨라면 분명 잘 지내고 있겠지만 그래도 걱정이 드는 마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군요.]
[혹시 제가 어떻게 지내실까 궁금해 말씀드리자면 저는 잘 지내고 있습니다. 치료 프로그램들을 잘 이수하고 있다고 하는 것이 더 안심되시겠군요. 이곳의 하루는 매일매일이 조금 단조롭습니다. 선생님과 함께 이야기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그다지 즐거운 일이 일어나지 않는 곳입니다. 선생님께서는 이런 게 평범한 사람들의 일상이라고 말씀하시고는 하지만 저에게는 이런 일상들이 크게 와닿지 않는 것 같습니다.]
[분명 예전에는 잘 받아들였던 것 같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제가 너무 변해버린 건지, 아니면 제 주변 환경들이 너무 많이 변한 건지… 기영 씨나 덕구 씨, 하얀 씨, 혜진 씨, 다른 분들이 옆에 없는 게 원인인 건지는 잘 모르겠지만 이곳의 시간은 조금 더 느리게 흘러가는 것 같은 느낌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린델로 향하고 싶지만 상황이 여의치 않아 아쉬울 뿐입니다. 제가 느끼기에도 지금은 이곳에 있는 게 조금 더 나을 것 같기도 하고요.]
“흐음….”
[지난번의 일들로 제게 일어나고 있는 문제들을 직시하는 것은 저조차도 너무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기영 씨가 짐을 들어주신다고 했지만 사실상 제가 기영 씨에게 너무 많은 부분을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죠. 선생님께서도 제가 기영 씨를 부적같이 생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더군요. 보통의 환자들이 신경안정제나 신경안정마법을 가지고 있다는 생각만으로도 안심하며 일상생활을 할 수 있는 것처럼 말입니다.]
“…….”
[당연히 전부는 아니지만 선생님의 말씀에는 일부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이런 증상들을 고칠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했지만 본래 천천히 시도하는 것이 첫걸음이라고 말씀하시더군요. 일단은 의도적으로 연락이나 생각을 줄여보라고 건의하셨습니다. 그게 잘되지 않는다면 최소한 여신의 손거울이나 다른 통신 채널을 닫는 것을 추천하셨죠. 제가 최근에 연락을 잘 드리지 못한 이유는 이런 이유 때문이었습니다. 기영 씨의 메시지에 답장을 늦게 한 것도 이런 연유가 숨어 있었습니다.]
사실 김현성이 연락을 잘 못 하고 있었는지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그동안 메시지가 뜸하기는 한 모양인 것 같았다.
그래도 하루에 몇 번은 왔었던 것 같기는 하지만… 일반적인 안부 메시지도 보내놓고 확인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답장이 늦은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내가 어떻게 느끼든 간에 본인 나름에는 절제를 하려고 하기는 한 것 같았다.
[어떻게 지내시는지, 뭘 하고 지내시는지 너무 궁금해 참을 수가 없을 정도였습니다만 선생님께서는….]
“근데 이 새끼… 말끝마다 선생님, 선생님, 거리네.”
[그 영향인지 가장 최근에는 악몽을 꾸지 않게 되었습니다. 잠을 자며 뒤척이지도 않았고요. 선생님께서도….]
솔직히 별로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환자들이 정신과 의사들에게 조금 의지하게 되는 건 어찌 보면 자연스러운 일이었으니까.
명망 높은 교수라고 했으니 본인이 그 사실을 인지하고 있다면 알아서 잘 처신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도 물론 있다.
환자가 대륙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의 권력자와 무신에 가까운 무위를 선보일 수 있는 강자라고 한다면 다른 생각을 할 가능성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다.
‘선생님이라는 새끼 이거… 혹시 송수경 리턴즈 아니야?’
이제는 기억마저 흐릿해진 빌런이기는 했지만 그 임팩트는 아직도 남아 있었다.
기회만 보이면 꿀 한번 빨아보겠다고 달려드는 불나방들.
김현성에게 약간의 우호적인 인상만 심더라도 인생이 바뀔 수도 있는 만큼 작정하고 달려들 만한 가치가 없다고 할 수는 없었다.
물론 뒷조사 결과로는 그렇게 나쁜 놈처럼 보이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른다.
‘딴생각하고 있을지.’
[말씀드리기 정말 죄송합니다만 예정되어 있는 면회 일정을 뒤로 늦추는 게 어떨까 합니다. 물론 지금 심정으로는 기영 씨와 모두를 최대한 빨리 만나고 싶지만 더 나아진 모습으로 뵙는 게 더 의미가 있을 것 같아 힘든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적어도 한두 달은 더 지난 이후에… 중략….]
“…….”
이것도 아마 그 선생님인가 뭔가 하는 놈의 처방일 가능성이 높다.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부적에 의지하는 환자에게 의도적으로 부적을 떼고 생활하라는 것 말이다.
물론 환자에 따라 다르기는 했지만 이 선생님은 김현성이 생각보다 프로그램에 잘 따라와 주고 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한 달이나 두 달 정도는 버텨야 차도가 있을 거라고 생각할지도 모르지.
[다시 만나기를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말입니다.]
‘한번… 봐볼까.’
“…….”
“…….”
슬그머니 편지를 던져 버리고는 망원경으로 녀석을 살펴본 것이 당연지사.
수면 아래로 내려놨었던 회귀자 사용설명서도 다시 수면 위로 끌어 올린다.
곧바로 의식하지 않았던 김현성의 정보들과 상태들이 쏟아졌다.
망원경 속에 녀석은….
‘뭐 해?’
“…….”
호숫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었다.
조금은 심드렁한 것 같은 얼굴로 말이다.
턱을 괸 모습으로 조용히 호숫가를 바라보는 녀석은 낚시에는 관심이 없다는 듯 호숫가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전히 빛나고 있는 한쪽 눈을 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갑자기 입질이 오는 것을 확인했는지….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낚싯대를 들어 올린다. 낚시에는 영 재능이 없어 보였는데 꽤 큰 고기가 낚인 모양, 심지어 내가 보기 전에도 몇 마리를 잡았는지 어망에는 물고기들이 들어 있는 모습이다.
‘그림은 좋네.’
사람 하나 다니지 않을 것 같은 장소였다. 이를 악물고 인공적으로 만들려고 해도 힘들 정도로 속이 시원해지는 광경이다.
굳이 정신과 의사가 없어도 저런 장소에서 생활하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될지도 모른다.
마치 엘프의 숲과 비견될 정도….
너무나도 맑은 하늘 아래에서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오고 수풀들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가 들려온다.
물고기를 잡은 김현성이 갑작스레 벌떡 일어나는 것이 보인다.
이미 만들어 놓은 모닥불 근처에는 몇 가지 캠핑 장비들이 놓여 있었다.
익숙한 듯 물고기를 손질한 이후에는 꼬챙이에 꽂아 불에 올린 이후에는 조용히 그걸 바라본다.
김현성은 뭔가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일단 마음은 편해 보이기도 했고, 실제로 편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지루하고 심심해 보였는데, 물고기가 거의 다 익어갈 즈음에는 뭐가 그렇게 할 일이 많은지 바쁘게 움직인다.
‘요리하고 있는 거 맞지?’
밖에서 식사를 하는 게 목표인지 본인이 만든 오두막을 왔다 갔다 하고 있다. 야영 경험은 이미 프로 수준이었기 때문에 그럴듯한 식사가 완성되는 것은 순식간.
말 한마디 하지 않고 있었지만 자급자족 캠핑 방송을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김현성이 고개를 돌린 것은 막 식사를 시작하려고 했을 때였다.
-김현성 님.
-아. 선생님. 오셨습니까?
모습을 드러낸 것은 40대로 보이는 남자와 그 뒤를 따르는 20대 여자 한 명.
선생님은 꽤 인자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스미스 대령처럼 나이를 잘 먹은 것처럼 보였는데 체구는 그보다 작고 어디에서나 볼 법한 평범한 인상을 지니고 있었다.
특징이라고 할 게 별로 없어 안경을 쓰고 있는 게 특징처럼 보일 정도, 머리카락도 금색이었다. 세라핌처럼 완벽한 금색이 아니라 갈색이 뒤섞인, 흔히 말하는 더티 블론드였다.
인자한 미소 하나는 잘 짓는 얼굴이다. 그 뒤를 따르는 여자는 긴 검은색 머리카락을 가지고 있었고 마찬가지로 조금 따뜻해 보이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피부가 살짝 창백한 흰색처럼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따뜻하다. 정신과 관련된 놈들 종특인 걸까.
-어떻습니까? 며칠 이곳에서 지내시는 동안….
-그리 나쁘지 않았습니다. 조용하고… 생각할 것도 많고요. 그만큼 할 일도 많았습니다. 숲이 이렇게 편하게 느껴지는 건 정말로 오랜만이었던 것 같습니다. 실제로 몬스터도 없고요.
-그렇군요. 혹시 몬스터가 있었으면 불안하셨을 것 같습니까?
-아니요. 불안하지는 않습니다. 그냥 이런 숲에 들어오면 으레 하는 습관이나 행동 같은 것들이 있는데… 그런 걸 할 필요가 없으니 조금 어색하더군요. 이를테면 바닥을 살펴보는 것이나 나무에 묻은 것들을 살피는 것들 말입니다.
-아아….
-그냥 살짝 어색할 뿐이었습니다.
그 뒤로는 그냥 일상적인 대화가 시작된다.
뭘 하고 있었냐부터, 저택에는 언제 돌아올 거냐, 같은 이야기들. 잠깐 김현성이 캠핑이라도 하고 싶다고 요청한 것 같았다.
아쉽게도 중요한 이야기는 없다. 그냥 딱 선생님과 환자 사이의 거리감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평범한 대화를 나누는 것처럼 보였다.
파란 길드에 습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전해줄 만하건만, 관련된 이야기는 나오지도 않고 있다.
그야 지금은 잘 수습됐으니 그럴 수도 있겠지.
-하하하. 오늘은 많이 잡으셨군요.
-네. 유난히 운이 좋은 날인가 봅니다.
-제가 한 마리 가져가도 되겠습니까?
-네.
주섬주섬 물고기를 서리하는 것까지. 김현성이 만든 오두막을 슬쩍 바라보거나, 잘 정리되어 있는 캠핑 도구 같은 것들을 자세히 관찰하는 것 같았는데 무슨 의미인지 알 수가 없었다.
질문들도 조금 실없고, 그냥 김현성을 최대한 릴렉스한 상태로 만드는 것에 집중하는 것 같다고 말하는 것이 적절할 것 같았다.
갑작스레 눈치를 보던 김현성이 입을 연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선생님.
-네?
-혹시 다시… 그 면회 일정을 당길 수 있겠습니까?
-…….
-…….
-어째서 그런 생각이 들었는지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기영 씨가 조금 바쁘십니다.
-네. 그렇군요. 바쁘신 것은 저도 잘 알고 있습니다.
-이미 말을 해놓은 일정에 따라서 스케줄을 전부 짜 놓으셨을 텐데, 괜히 제가 편지를 보내는 바람에 일정이 꼬이셨을지도 모릅니다. 아마 오늘 편지를 받으셨을 테니 지금이라도 메시지를 보내면….
-정말로 그 이유 때문입니까?
-…….
-현성 씨가 그렇게 생각하신다면 다시 일정을 옮겨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만….
-…….
-저는 이번 일정을 고수하시는 게 김현성 님에게 더 이로울 것 같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시고 일상으로 되돌아가는 것을 가장 큰 목표로 잡으시지 않으셨습니까? 물론 지금도 충분히 좋아지신 것 같기는 하지만….
-네. 그랬었죠….
-저는 딱히 현성 님의 행동을 컨트롤하려고 이 자리에 있는 게 아닙니다. 그냥 약간의 조언이나 만들어 놓은, 현성 님에게 맞추어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현성 님을 이해하려고 할 뿐입니다. 만약 현성 님께서 다시 일정을 조율하고 싶으시다면 하셔도 됩니다. 다시 파란 길드로 돌아가고 싶다고 하셔도 제가 말릴 권리는 없습니다.
-…….
-목표를 완수할 건지, 완수하지 않을 건지는 현성 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너무 힘들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조금 돌아갈 뿐이지, 결코 포기하는 게 아니니까요.
-네… 그렇죠.
-그러니까… 모험가들의 표현으로 하면 저와 함께 긴 던전에 들어왔다고 생각해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
-파티의 리더는 현성 님이시고 말입니다.
-선생님은 동료나 길잡이겠군요.
-하하하. 네. 그렇게 생각하시는 게 편하실 겁니다. 더불어 아주 작은 욕심을 부려보자면 저를 조금만 더 신뢰해 주셨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아….
-아직도 제가 현성 님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모든 것을 말할 필요도, 그럴 수도 없겠지만 말입니다. 조금만 더 현성 님에 대해서 말씀해 주셨으면 합니다. 물론… 다음 상담 시간에 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지금은 업무시간이 아닌 터라… 저도 조금 쉬고 싶군요.
-죄송합니다.
-하하하. 농담이었습니다. 현성 님. 말씀하시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찾아오셔도 됩니다.
선생님은 여유로운 척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난항인가 보네.’
박사고 나발이고 쟤도 조금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은 느낌.
당연히 김현성에 대해 전부 파악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김현성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녀석이 회귀했다는 사실도 알아야 했으니 말이다.
김현성이 갑자기 만난 선생님에게 갑작스레 회귀자라 말할 수 있을 리가 없었으니….
‘그렇지?’
제대로 된 치료가 진행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물론 아예 효과가 없는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의미 없는 데다가 돈을 쏟아붓고 있었자너. 그렇지? 말 안 할 거지?’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