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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60화 (1,56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60화

치료의 효과(3)

‘의미 없는 데다가 돈을 쏟아붓고 있었자너. 그렇지? 말 안 할 거지?’

김현성이 고개를 끄덕이고 있었다.

이윽고 천천히 시야에서 사라지는 정신과 듀오의 모습이 보였다. 혹시나 둘이서 음습한 대화를 나누는 것이 아닐까 걱정돼 녀석들에게 시선을 고정시키기는 했지만 크게 눈에 띄는 대화를 나누지는 않고 있다.

다른 환자의 이야기나 김현성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는 것 같다는 말을 주고받는 것이 전부.

뭔가 꼬투리를 잡고 싶기는 했지만 그런 게 나오지 않아서 답답한 상황이 지속되고 있었다.

내가 너무 예민했나.

‘송수경 리턴즈는… 아닌가?’

그냥 지 할 일을 잘하고 있는 것처럼 보여 녀석들을 주시하고 있던 내가 우습게 느껴질 정도였다.

두 명이 떠난 이후에도 김현성은 별다른 생각에 빠지지 않은 채 아까 벌여놓은 일들을 뒷정리하기 시작했다.

너무나도 평화로워 보이는 모습을 계속해서 눈에 담아두고 있었기 때문일까.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저도 모르게 꺼져 버렸다.

‘어이쿠. 실수했자너.’

진실로 고백하건대 저도 모르게 나온 실수였다. 당연히 반응은 즉각적이다.

-어? 어….

눈에서 빛이 꺼지자마자 당황하는 김현성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갑작스레 창백해진 얼굴을 하던 녀석이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앉았다 일어났다를 반복하기 시작, 호흡이 거칠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도저히 진정이 되지 않는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이후에는 가슴을 부여잡고 있기까지 하다.

자꾸만 눈을 매만지더니 호수로 다가가 황급히 얼굴을 확인하고….

-어? 아… 안 돼….

라는 말을 중얼거리기 시작했다.

“…….”

“…….”

‘아직은 정상이네.’

다행히 아직까지는 정상이었다.

김현성의 극적인 모습을 본 이후에야 회사설이 끊어졌다는 걸 깨닫는다.

미안한 마음이 들어 곧바로 연결을 시도하니 곧바로 편안해지는 얼굴 보였다.

아마 본인이 뭔가 착각했다고 판단한 모양이다. 슬그머니 눈을 매만지더니 이내 정상적인 모습으로 돌아간 녀석.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하지 않은지, 자꾸만 마음속에서 불안감이 증폭되고 있었다. 아마 몇 시간 내에 정상으로 돌아오겠지.

“흐음….”

마음에 들지 않는 몇몇 부분이 있기는 했었지만 의외로 녀석의 상태가 안정되어 있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

차라리 다시 이쪽으로 불러들이는 게 어떨까 했던 마음은 아무래도 김현성의 정신건강을 위해 접어놓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타이밍이 그다지 좋지 않았으니 말이다.

‘육망성 터진 거 알면 난리 날 텐데. 또 그거 신경 쓰느라 안절부절못하면서 난리 칠 게 뻔하자너….’

안 봐도 김현성이 취할 행동은 뻔했다. 또 이상한 상상 하겠지.

육망성 빌런들이 이기영을 노리고 있다거나, 대륙을 부수려고 한다거나, 별것 아닐 수도 있는 일에 상상의 나래를 펼쳐 대륙이 당장에라도 망할 것마냥 설치고 다닐 것이다.

지금 공화국 놈들이 하고 있는 통제와 숙청 쇼가 별 볼 일 없게 만들어질 정도로 말이다.

누나가 들으면 개소리하지 말라고 하겠지만 현재 김현성의 정신건강에 대해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만큼….

‘조금 더 놔둘까.’

“선생님도 정상처럼 보이고….”

가끔씩 회귀자 사용설명서가 끊기는 실수가 일어난다면 근본적인 건 바뀌지 않을 테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문자 오자너.’

[기영 씨 혹시 무슨 일 있으십니까?]

적당히 답장을 해준 것은 당연지사.

별일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김현성은 괜스레 웃는 얼굴로 자리에서 일어나 자신에게 주어진 평화로움을 즐기고 있었다.

‘우리 애들도 저런 장소로 휴가 좀 보내야겠다.’

육망성 일만 끝내놓고 말이다. 차라리 면회도 다 같이 가서 한 일주일 정도 지내다 오는 편이 괜찮을지도 모른다.

아마 모두가 이번 일이 끝나면 녹초가 되어 있을 테니까.

‘제발 휴가 좀 보내달라고 아우성칠 거야.’

그 말대로 길드는 꽤 바쁜 일상을 보내고 있었다. 그야 사고를 수습해야 하기도 했고, 새로운 적의 존재를 눈치챘으니 바쁜 것이 당연했다.

기존 업무들은 전부 다 뒤로 밀려 있었고, 모두가 새로운 업무에 돌입했다.

엄밀히 말하면 나도 현성이에게 신경 쓸 시기가 아니었다는 소리다.

오히려 현성이가 자리를 비운 것을 다행으로 생각해야 할지도 모른다.

‘기왕이면 김현성 오기 전에 다 끝내놓는 걸 목표로 해야지 뭐….’

공화국처럼 극단적인 모양새는 아니었지만, 김예리나 창렬이는 눈에 띄게 바빠졌고, 언론담당관 스미스 대령 역시 제대로 잠을 자지 못할 정도였다.

박덕구와 알프스, 벨리에는 팀을 짜서 육망성이 그려진 장소로 원정을 떠났고, 정하얀과 한소라는 파란 국제학원의 결계를 새로 짜고 있었다.

엘레나는 관련 일을 전달하기 위해 엘프 왕국으로 떠났고….

길드마스터 대리, 부길드마스터 대리를 하고 있는 조혜진도 아마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업무는 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외적으로 얼굴을 비쳐야 하는 일에는 그녀가 빠질 수 없을 테니 말이다.

그만큼 이번 일의 파장은 크다고 할 수 있었다.

파란의 두 기둥이 없는 상태에서 벌어진 일이기도 했고….

그동안의 대륙이 평화로웠던 반작용이었다.

“이제 슬슬 긴장감을 줄 때도 됐자너. 너무 평화로웠으니까.”

슬쩍 바깥으로 나가자 얼마 있지 않아 김미영 팀장님이 다시 한번 나를 반겼다.

“부길드마스터.”

“아. 네.”

“혹시 다음 일정에 대해서 여쭈어봐도 되겠습니까?”

“실리아 일을 처리하기 전에 일단 오스칼 님부터 만나 뵙는 게 좋을 것 같네요. 현 교국에 대해서 나눌 이야기도 있고….”

“시기는….”

“혹시 지금 가능할까요?”

“언제든지 방문해 달라고 연락을 받은 적이 있으니 아마 가능할 겁니다.”

“그럼 그렇게 하죠.”

“방금 연락을 받았습니다. 예정되어 있는 모든 모임을 취소하고 기다리시겠다고 하는 터라… 조금 이목이 집중될 것 같기는 하지만….”

“주변에서는 대충 눈치채겠네요.”

“네. 아마 오스칼 님께서도 의식하신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러모로 혼란스러운 상황이니… 부길드마스터님과 이야기를 나눈다는 걸 비공식적으로나마 교국민들에게 전하고 싶어 하시는 것 같습니다.”

‘많이 성장했네. 진짜….’

이제는 그냥 아리스 시녀라고 부를 수도 없을 지경이었다.

‘나라도 그렇게 했을 것 같자너.’

현재 교국이 혼란스럽고 교국민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여겨진다.

구태여 비밀리에 들어가려고 할 필요도 없었다. 워프 게이트 한 방이면 곧바로 만날 수 있으니까.

“호위는….”

“조용히 다녀오겠습니다.”

“네.”

짧은 인사를 나누고 곧바로 워프게이트에 몸을 맡기자 시야가 갑작스레 전환된다.

본래대로라면 성대한 환영식이 나를 반겼겠지만 워프게이트에는 사람 한 명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경비병처럼 보이는 사람 하나. 내 모습을 본 이후에는 그대로 얼어붙어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명, 명… 명예추기경님?”

“네. 오스칼 님은 어디에 계시죠?”

“안, 안내하겠습니다.”

‘아예 전부 다 비워놨네.’

다른 직원들은 코빼기도 보이지 않는다. 김미영 팀장이 미리 주문을 한 덕분이겠지만 너무 조용해서 조금은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익숙하지만 익숙하지 않은 길을 따라 쭉 들어가 보니 어느새 응접실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여기서부터는 혼자 가겠습니다.”

“네.”

나머지 경비병 한 명도 떨궈놓은 이후에 응접실의 문을 열자 곧바로 오랜만에 보는 오스칼의 모습이 눈에 비쳐왔다.

“이, 이기영 님?”

“오랜만이네요. 오스칼 님.”

“정…말로 이기영 님이십니까? 아니… 이기영 님이 맞으시군요. 정, 정말 반갑습니다.”

손을 꽉 잡아온 그녀가 곧바로 포옹을 해오기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너무 꽉, 또 오래 껴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조금 부끄러워하는 그녀의 모습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카트린 의원의 깜짝 놀랄 거라고 말한 적이 있는데… 이런 이유 때문이었군요.”

“네. 사정이 있어서… 아무튼 찾아뵙는 게 늦어서 죄송합니다. 본래는 카트린 의원과 함께 볼 생각이었는데… 아무래도 오스칼 님은 따로 만나 뵙고 싶어서요.”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너무 기쁘네요. 혹시 차는 어떤 것으로 드시겠습니까?”

“평소에 마시던 거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물론입니다.”

‘신나 보이자너.’

콧노래까지 부르고 있다.

옷은 정복을 입고 있기는 했지만 왠지 모르게 자꾸만 아리스 시녀의 행동이 보인다.

물론 그녀는 지금의 모습이 더 잘 어울린다는 것은 부정할 여지가 없다. 그때 이후로 이미 많은 시간이 지났고, 그녀의 분위기도 많이 바뀐 것 같았으니 말이다.

예전처럼 순수하고 아무것도 모른다는 느낌보다는 성장하고 또 성장한 철인이 눈앞에 있었다.

그런 그녀가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차를 내리고 있는 모습은 조금 이질적이기는 했으나 그녀가 과거 또한 그리워하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힘없는 그때로 돌아가고 싶어 한다는 것이 아니라 과거에 있었던 작은 추억들이 그리웠던 거겠지.

‘나도 종종 느끼니까.’

파티원들이랑 그냥 웃고 떠들고 이랬던 거….

당연히 이런 상황에서는 옛날이야기를 하는 게 도움이 된다.

“혹시 기억나시나요? 이기영 님께서….”

“네. 당연히 기억나죠.”

과거의 추억을 이야기하고….

“그때 오스칼 님께서….”

함께 공유했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몇 번을 하더라도 즐거운 일이니까.

눈치를 보던 오스칼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났을 때였다.

“저… 이기영 님.”

“네?”

“그게… 둘만 있을 때는 그냥 아리스라고 불러주셔도….”

“…….”

“…….”

“이제 그런 말이 쉽게 나오지 않네요. 물론 아리스 님을 부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제게는 아리스 님도 무척 소중한 사람이니까요. 그런데… 너무 커지신 것 같더군요.”

“네?”

“숨기려고 해도 숨길 수가 없는 느낌이에요. 이제는 정말 한 나라의 지도자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에요. 물론 과거의 정체성을 잃고 싶지 않다는 심정은 이해할 수 있지만… 제 눈에는 그걸 극복할 수 있을 정도로 커지신 것 같아요.”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실제로 느끼는 것이 그랬다. 아리스 시녀의 모습을 오버랩하려고 해도 눈앞에 있는 것은 그냥 철혈의 군주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이기영 님 저 아직은….”

“물론 아리스 님이 원하시면 그렇게 해드리는 게 맞죠. 저도 오랜 친구와 선을 긋고 예의 차리며 대화하고 싶지 않으니까요.”

“아! 감사합니다.”

“하하….”

“사실 저도 지금의 제가 어색하기도 해요.”

“그런가요?”

“네. 이기영 님께서 무슨 말씀을 하신 건지도 대충 이해는 가고요. 저는… 아리스 때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있거든요. 이게 좋은 일인지 나쁜 일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아무튼 간에 예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걸 느끼고 있어요.”

“…….”

“하지만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요. 보는 풍경이 달라졌다고 해서 예전의 저를 잊는다면 금방 그 사람들처럼 되고 말 거라고 생각했어요. 특히 대륙 던전화 때 그걸 많이 느꼈었어요. 아리스의 모습으로도 일어설 수 있으니 이걸 결코 버려서는 안 된다고 말이에요.”

“그렇군요.”

“네. 가끔은 이기영 님이 오시면 그걸 상기시켜 주세요. 제가 아리스 시녀였을 때가 있었다는 걸요. 하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아리스 시녀는 제 약한 부분이 아니라 오히려 저를 더 단단해지게 만드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그러니 부담 없이 불러주셔도 돼요. 이기영 님.”

“네. 물론이죠.”

“조금 기쁘기는 하네요. 이기영 님께 이제야 인정받은 것 같아서….”

‘인정은 이미 교국혁명 때부터 했어.’

얘는 단순한 꼭두각시는 아닐 거라고 말이다.

깃발을 들었을 때도, 검을 제대로 쥘지도 모르면서 가장 앞장서 적들에게 돌진했을 때도, 사람들의 앞에서 고함치듯 연설했을 때도, 대륙 던전화 때 혁명의 망령을 불러냈을 때도… 사실 쟤한테는 원래부터 재능이 있었던 셈이었다.

자기가 모르고 있었을 뿐, 이기영이 없었더라도 언젠가는 튀어나왔을 인재였을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사실 이기영 님께 드리고 싶은 작은 부탁이 있어서….”

‘이거 봐. 얘 완전 고수 됐다니까.’

이제는 친분을 무기로 휘두르고 있다.

“아리스라고 불러달라고 한 이유가 있었군요?”

“그, 그게 아니라… 참. 놀리지 마세요. 아닌 거 아시잖아요. 부탁 때문에 그런 게 아니라 이번 육망성 사건에 관련된 일이라….”

“…….”

“잠깐 여신의 거울 좀 봐주시겠어요?”

아리스가 슬쩍 여신의 거울을 가리키자.

곧바로 영상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저거….’

화면에 나오고 있는 것은 오랜만에 보는 라파엘 파티였다.

‘쟤네들은 잊을 만하면 튀어나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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