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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61화 (1,25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61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

아리스에게 설명을 요구하는 듯한 눈빛을 보낸 것은 당연했다.

어째서 라파엘 파티가 저기에 있고, 어째서 이걸 나에게 보여주는 건지 궁금했기 때문이었다.

사실 이후 벌어지는 이야기를 스포해 달라기보다는 전후 사정에 대해 묻고 싶었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라파엘 파티가 저곳까지 당도한 이유가 틀림없이 있을 테니 말이다. 내 눈빛에 숨은 속뜻을 알아차렸는지, 아리스 역시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이었다.

“이기영 님과 연락이 끊긴 이후였어요.”

“…….”

“라이오스와 교국의 국경 사이에서 이상현상이 일어났어요. 며칠 사이에 많은 실종자들이 생겨 모험가 길드에서 조사에 착수했었죠. 처음에는 그냥 모험가들 사이에서 나돌고 있었던 괴담이었지만….”

“이상현상이 심해졌군요. 아니면… 모험가 길드에서 직접 지원을 요청하기라도 한 겁니까? 흔한 일은 아닌데….”

“네. 라이오스의 프리스티나 님과 모험가 길드에서 해당 지역을 전설 등급의 재난지역으로 설정했으니 저희로서도 어쩔 도리가 없었어요. 일단 조사단을 파견했지만… 조사단도 소식이 끊겼고….”

“…….”

“결국에는 교국 소속 모험가들에게 임무를 내리는 것이 정답이라고 생각했죠. 교국 차원에서요. 그때까지만 해도 모든 문제가 쉽게 해결될 거라고 생각했었지만….”

아마 이 시점까지도 오스칼은 이 건에 대해 크게 신경 쓰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사실 신경 쓸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녀는 한 국가의 수장이었고, 모험가들을 고용하거나 의뢰하는 일은 엄연히 해당 업무를 담당하는 관할 부서에서 담당하고 있었을 테니 말이다.

문제는 그 관할 부서가 허울뿐인 부서였다는 것에 있었다.

‘교국던전재난부는 그냥 명목상으로 만들어진 곳 아니었나….’

모험가들 사이에서 이런 일이 터진다면 보통 린델의 삼대 길드나 파란에서 나서서 일을 해결하는 편이다.

심지어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의 존재도 있었기 때문에 교국의 관할 부서까지 일이 넘어가는 경우는 거의 전무하다시피 하다.

그쪽 입장에서 보면 운이 나빴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엄연히 본인들의 업무 재량을 넘어가는 수준일 테니 말이다.

“어쩌다 일이 거기까지 흘러들어간 거지?”

저도 모르게 중얼거리자 곧바로 아리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와 교국던전재난부 사이에 소통이 문제였어요. 최초 신고를 라이오스가 교국에 보낸 것도 문제였고요.”

그럴 수도 있겠네.

“이미 아시고 계시겠지만… 교국던전재난부는 있으나 마나 한 기관으로 유명하거든요. 삼대 길드나,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 십강 같은 이들이 있으니 사실상 존재의미가 없지만 명목상으로는 있어야 하는 기관이고… 국경이라고 했지만 정확히는 교국의 영토에서 일어난 일이니 자신들의 관할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에서도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었고요.”

“…….”

“교국 던전 재난부에서는 처음에 사건이 터졌을 때 일을 보고하지 않았어요. 할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다른 방안을 모색하고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재난부에서 보낸 교국 소속의 모험가들이 실종된 이후에 1주가 지난 이후였죠.”

“…….”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가장 유명한 프리랜서 모험가들에게 의뢰를 하는 것밖에는 없었고요.”

“그게 라파엘 파티였군요.”

“네.”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와는 다시 공조하지 않은 겁니까?”

“저도 도움을 요청하고 싶지만… 그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서….”

조금은 표정이 어두워지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정치적인 이유라고 봐도 되겠네.’

아무리 명목상으로 만들었다고는 해도, 명색이 국가 기관이다. 일이 잘 못 흘러들어왔다고 해도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에게 일을 이관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린델의 삼대 길드에게 정식으로 의뢰를 신청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겠지만 지도자의 입장에서 국가의 위신을 땅바닥으로 떨어뜨리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오스칼 개인은 그러고 싶을지는 몰라도 교국이라는 집단을 생각하면 그렇게 할 수 있을 리가 없다. 교국민들이 교국에 가지고 있는 신뢰를 잃을 수는 없으니 말이다.

국민이 국가를 믿지 못하는 것 보다 최악의 상황은 없다.

허울뿐인 기관이라지만 그것이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는 것을 설명해야 했고 납득시켜야 했다. 지도자라는 것은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이었다.

‘이해는 돼.’

파란 길드에서 들어온 의뢰를 파란이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외부로 떠넘긴다니….

‘말도 안 되는 일이자너.’

“때마침 이기영 님이 돌아오신다는 것도 알게 됐고… 육망성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도 알게 돼서… 물론 관련자들은 징계를 받을 예정이에요. 일이 수습되고 난 이후에는 공식적인 사과와 발표도 있을 예정이고요. 하지만 그전에 교국 측에서도….”

“무언가를 했다는 명분이 필요하다 이 말이군요?”

“네. 부끄럽지만….”

슬쩍 약해지는 모습이 눈에 띈다. 당당한 오스칼의 모습은 어디로 가고, 왠지 모르게 아리스 시녀의 모습이 자꾸만 눈에 비친다.

갑작스러운 변화에 눈을 다 비볐을 정도, 아무래도 얘가 필요할 때만 아리스로 변신하는 스킬을 취득한 모양인 것 같았다.

분명 처음에는 내가 호구를 잡은 것 같았는데 이제는 반대로 호구를 잡힌 것 같은 느낌이었다.

뭐….

‘사실 교국만의 잘못도 아니니까.’

엄밀히 말하면 대륙 보호 관리위원회와 쌍방의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이 맞다.

애매한 경계선에 걸쳐 있는 것을 네 관할이니 내 관할이니 줄다리기하다 억지로 떠안은 격이었으니 말이다.

‘관리위원회 이 새끼들도 문제 있어. 지혜 누나가 자리를 비운 상태라서 그런가….’

시바 사람 하나만 빠져도 대륙이 제대로 돌아가지가 않아요. 진짜.

이런저런 생각을 하며 계속해서 이야기를 나누는 와중에도 영상은 진행되고 있는 중이었다.

아리스는 내 대답을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지만 일단 함께 영상을 보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는지 더 이상 말을 걸어오지 않았다.

“…….”

“…….”

라파엘 파티가 던전 안에서 조심스레 움직이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오랜만에 보는 사냥개 이주혁과 기적의 사제 마리엔, 그리고 그 외 쓸만한 떨거지들. 카메라가 라파엘의 시점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녀석의 모습은 확인할 수 없었다.

벽면에 그려진 커다란 육망성을 발견한 녀석들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도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게 뭐지?

-일단 주의하자. 라파엘. 우리가 모르는 종류의 마법진일지도 몰라.

-이주혁, 알아볼 수 있겠어?

-난 마법에는 별로 밝지 않아. 저 영감한테 물어봐라.

그사이에 멤버들도 보강을 했는지 모르는 얼굴들도 늘어나 있다.

-실종자들의 흔적은 여기서 끊겼군.

-마법진 앞에서? 어떻게 봐도 수상한데….

‘그래. 누가 봐도 수상하니까 빨리 거기 빠져나와.’

-마력은 느껴지지 않아. 발동된 흔적도 보이지 않고… 게다가… 이런 마법진은 본 적도 없는데….

‘아니… 그런 소리 하지 말고 일단 빠져나오라고. 전부 거기서 실종됐대자너. 왜 꼭 공포영화 나오는 애들은 저러는 거냐고.’

-꼭 이런 상황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던데….

‘그런 농담도 하는 거 아니에요.’

아니나 다를까 사냥개 이주혁 녀석이 가장 먼저 소리치기 시작한다.

-제길! 전투 준비! 라파엘!

-알고 있어!

순식간에 전투가 시작된다.

답답했던 것은 도대체 어떤 전투인 건지 감이 잡히지 않는다는 것. 여기저기에 흔들리고 있는 전투캠 때문에 적이 누구인지, 숫자는 몇 명인지 하는 정보가 확인되지 않는다.

다른 사람도 아니라 라파엘의 전투캠이 정신없이 움직이고 있었다. 대륙에서도 손꼽히는 강자에 랭크되어 있는 녀석이 여유가 없다는 것이 느껴질 정도였다.

심지어 중간에는 전투캠이 벗겨져 버렸기 때문에 멍하니 천장만 비추고 있다.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목소리뿐이었다.

-이 녀석들 강해! 방심하지 마!

-알고 있다.

-라파엘!

-응!

‘이 새끼들 이 정도였나?’

육망성 놈들이 던전을 점거하고 있는 것인지, 아니면 놈들이 던전에서 빠져나온 놈들인지는 모르겠지만 라파엘 파티를 고전시킬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당황스럽다.

물론 아무렇지도 않게 파란 유소년 교육시설을 왔다 빠져나간 것으로 충분히 놈들의 위험성을 인지할 수 있었지만….

기본적인 전투력이 내 예상을 상회했기 때문에 조금은 당황스럽다.

조금 이상한 놈들이 섞여 있기는 했지만 단일 파티로는 거의 최강의 전투력을 뽐내는 녀석들이 아니었던가.

곧바로 길드로 발족해도 곧바로 유명길드들의 뒤를 따라올 수 있다 봐도 무방했다.

심지어 라파엘 개인의 전투력을 넘어설 수 있는 놈들도 찾기 힘들다.

계속해서 격렬한 전투가 이어지고 있었지만, 갑작스레 일순간 모든 것이 멈춘 것마냥 한순간에 소리가 끊겨 버렸다.

영상에 이상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너무나 갑작스레 전투가 끝나버렸다.

직후에는 당황스러워하는 라파엘의 목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뭐야… 다들 어디에 있어?

-…….

-어….

아까까지만 해도 무척 시끄럽고 정신없었던 장소였는데 일순간 정적이라도 맞은 것처럼 조용하다.

방금 전까지 전투를 하고 있었던 인원들의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는다. 계속해서 쓸데없는 소리를 지껄였던 사냥개 이주혁도, 계속해서 신성주문을 외우고 있었던 기적의 사제 마리엔도… 그 누구의 기척도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일순간 라파엘을 제외한 모두가 사라져 버린 것이다.

-이게… 뭐야….

‘그러게… 시바. 이게 뭐야.’

커다란 동공에 라파엘 혼자만 우두커니 서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은… 도대체 뭐였던 거야….

‘내 말이… 시바… 뭐였던 거냐고.’

-다들 어디로 간 거지… 적들은… 주혁아… 마리엔? 다들… 다들 어디에 있어.

그리고 거기서 영상이 끊기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솔직한 평가를 하자면….

“당황스럽네요.”

“…….”

“그래도… 생환자가 있다는 게 고무적이에요.”

“다행이군요.”

‘어쩐지 일주일 전부터인가 계속 연락하는 것 같더라니….’

아쉽게도 너무 바빴기 때문에 볼 기회가 없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미리 연락을 받는 게 나을 뻔했다.

아직 영상에 대한 파악이 끝나지 않았지만 앞서 말했던 것처럼 생환자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만족스럽다.

보통 이런 일이 벌어지면 생환자가 없는 일이 허다하니 말이다. 맨땅에 헤딩을 하는 것보다는 적어도 사건을 겪어본 사람과 함께 움직이는 게 도움이 된다.

그게 라파엘 정도의 모험가라면 다른 말을 할 필요도 없다. 사태에 대해 어느 정도 파악하고 있을 테고, 던전이나 특정 장소에 대한 기믹도 모조리 파훼하고 있겠지.

“부탁이라는 건 이 장소에 대한 조사와 공략이겠네요.”

“네.”

“라파엘 님은 지금 어디에 계시나요?”

“아마 이곳으로 향하고 있으실 거예요. 혹시… 그 모습으로 만나기 불편하시다면….”

“아니요. 괜찮습니다. 아리스 님.”

‘걔도 동료 범주에 넣어줄 수 있으니까.’

“…….”

“…….”

말이 끝나자마자 허겁지겁 안쪽으로 들어오는 놈이 눈에 보였다.

“오스칼 님을 뵙습니다. 어… 어? 혀… 형?”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많이 수척해진 얼굴. 조금 나이를 먹어 달라졌을 거라 생각했는데 너무나도 예전에 봤던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진짜 형이… 맞아요?”

당연히 자애로운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오랜만입니다. 라파엘 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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