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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62화 (1,26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62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2)

따지고 보면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만나지 못한 것도 아니었지만 체감상 오랜만이라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로헨에서 은근히 많은 시간을 보냈던 탓이다.

그나마 얼굴을 직접 볼 수 있었던 파란 길드원들과는 다르게 오스칼이나 바젤 교황, 김미영 팀장이나 혜지니, 다과회 무리들은 마주쳤던 순간 꽤 반가운 마음이 들지 않았던가.

라파엘의 경우에도 별반 다르지는 않았다.

‘얘는 안 그럴 줄 알기는 했는데….’

녀석과는 유대감이고 뭣도 없었으니까. 심지어 라파엘 이 새끼는 사람 자체가 조금 재미가 없다.

김현성도 재미없기는 마찬가지였지만 이 새끼는 그중에서도 단연 발군이었다.

만나서도 딱히 할 수 없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하지만 잔정이 남아 있었는지 제법 기쁘게 인사를 받아줄 수 있었다.

그동안 마음고생이 심했는지 허겁지겁 이쪽으로 발걸음을 옮겨오는 녀석, 얼굴에는 짙은 수심이 드리워져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내 모습을 확인한 순간 조금은 표정이 풀어진 것처럼 보였다.

물론 어려진 모습을 보고서는 긴장한 것 같기는 했지만 말이다.

“혀… 형 그 모습은….”

‘또 설명해야 되자너.’

곧바로 말을 이어나간다. 이 짓을 몇 번째 하고 보니까 무척 자연스럽다.

“조금 사연이 있습니다. 1년 후면 정상으로 돌아갈 테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라파엘 님.”

“혀… 형….”

왠지 모르게 이 새끼도 포옹을 해올 것 같아 살짝 거리를 둔다. 아무리 그래도 이 어린놈의 새끼에게 어린놈 취급을 받고 싶지는 않다.

정신없이 걸어오고 있는 녀석이 정체불명의 거리감에 움찔한 사이….

“일단 자리에 앉으시겠습니까?”

라는 말로 녀석을 자리에 앉힐 수 있었다.

아리스 역시 녀석의 반대편에 자리에 앉았고 나 역시 곧바로 자리에 몸을 앉혔다.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까 잠깐 정적에 휩싸인 사이 입을 연 것은 라파엘 녀석.

“형. 그동안… 잘 지내셨나요. 연락도 받지 않으셔서 정말로 무슨 일이 일어난 줄 알았어요.”

“작은 사건에 휘말려 몸이 조금 어려진 것 말고는 전부 괜찮습니다.”

“작은 사건이라뇨. 분명 대륙을 위해서… 보이지 않는 곳에서 노력하셨을 텐데… 정말 그것 말고는 다 괜찮으신 거죠?”

‘그래. 좀 노력하기는 했지. 얘가 사람 마음을 움직일 줄 아네.’

“아무튼 이렇게 보게 돼서 정말로 기분이 좋네요. 사실 형이랑은 이렇게 만나고 싶지 않았었는데… 조금 조용한 곳에서 오랜만에 쌓인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거든요. 같이 시간을 보낸 지도 오래됐잖아요. 근데 지금은 제가 좀….”

슬그머니 오스칼을 바라보는 라파엘 녀석이 시야에 비쳐왔다.

그러고는 곧바로 본론을 꺼내기 시작한다.

“오스칼 님. 사실… 자의적으로 구조대를 편성했어요. 이런 말씀 드리기는 죄송하지만 제가 지금 교국던전재난부에 의지하기에는 힘들 것 같아서… 우정 길드에게 지원요청을….”

“…….”

“해서… 지금 출발할 것 같아요. 신경 써주시고, 지원해 주신 것들은 감사하지만… 더 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오스칼은 살짝 당황하는 눈치였다.

‘얘 진짜 생각 급하자너. 내가 여기에 왜 있겠어. 오스칼은 너를 여기에 왜 불렀겠고.’

곧바로 라파엘의 말에 대답하는 아리스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혹시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더 이상은 시간이 없어요. 벌써 삼 일이나 지났다고요! 그동안 제 파티원들이….”

“이기영 님께서 도움을 주시기로 하셨습니다.”

그제야 내가 여기에 왜 와 있는지 이해한 모양이다.

“아!”

“…….”

“…….”

‘그럼 내가 여기에 시바 왜 와 있겠냐구….’

드디어 깨달았다는 듯이 외마디 탄성을 저지른 녀석이 나를 바라본다. “혀… 형….” 하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바람에 부담스럽다. 왠지 모르게 의지해 올 것 같아 괜스레 몸을 뒤로 당긴다.

“정… 정말 도와주시려고 온 건가요?”

“네. 제가 도움이 될 수 있는 일이라면….”

‘너무 감동하지 마. 부담스럽자너.’

“물론 저야 도움을 받으면 좋겠지만… 혹시 형이 편찮으실까 봐… 아픈 곳은 정말 괜찮아지신 건가요?”

‘아 괜찮데두… 그리고 여기서 나 아니면 니들 도와줄 사람도 없어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일은 사안이 사안이니까요. 라파엘 님 최근 대륙정세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계십니까?”

“알고 있어요. 너무 떠들썩했으니까요. 진청 군사의 아들이 영웅적인 행동 끝에 숨을 거둔 것도… 공화국에서 갑작스레 이단 탄압이 시작되고 있는 것도… 파란 길드의 부지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진 것도 말이에요. 물론 저는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조금 늦게 소식을 접하기는 했지만… 현재 대륙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네. 예상하고 계시겠지만 라파엘 님에게 발생한 사건 또한 이번 일과 연관이 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안 그래도 육망성의 흔적을 쫓고 있었던 저희에게도 꼭 필요한 일이었으니 부담감 느끼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렇군요. 그럼 오스칼 님께서….”

“네. 라파엘 님. 부끄럽지만 제가 도움을 요청드렸습니다. 아무래도 일반적인 관점에서 보면 안 되는 일인 듯 보여….”

“확실히 이상하기는 했어요. 그날은 평소랑은 조금 달랐거든요.”

아까보다 훨씬 풀어진 얼굴, 아무래도 내가 직접 등판한다고 하니 내심 안심한 것 같았다.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어오는 녀석의 모습이 보였다.

물론 전반적으로는 쓸데없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말이다.

평범한 던전처럼 보이지 않았다는 것과 사실 이게 던전이 맞는지도 확실하지 않다는 것.

본래 이 세계에서는 여러 가지 기현상이 일어나고는 하지만 이번에 겪은 일은 대륙에서 일어난 일 중에서도 무척 이상한 일이었다는 말이었다.

‘얘가 그렇게 느낀다면… 그런 거겠지만….’

아무래도 길드 소속이 아닌 파티로 활동하는 라파엘이다 보니 사실 던전 공략 경험은 나 못지않을 것이다.

여러 가지 업무를 병행하는 파란 길드와는 다르게 얘네는 정말 용사파티마냥 전 대륙을 싸돌아다니는 게 일이니 말이다.

“일당 해당 지역을 먼저 수색하는 일부터 시작했어요. 실종자들의 흔적이라도 발견할 생각으로 주변을 샅샅이 뒤졌지만 실종자들을 찾을 수가 없었죠. 다행히 육망성과 관련된 녀석들은 발견할 수 있었지만요.”

“뭐 알아낸 게 있습니까?”

“아니요. 최대한 빠르게 제압하려고 해봤지만 그 자리에 있던 30여 명 모두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어요. 이후에는 정체불명의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였고요. 아마 영상을 보시는 게 더 편하실 거예요.”

마지막으로 봤던 영상이 아니라 해당 지역에서 첫 번째로 마주친 적이었던 것 같았다.

‘확실히… 처음 보는 형태기는 하네.’

이런 표현을 하자면 조금 웃기기야 하겠지만 대륙에서 자주 등장하는 몬스터들과는 살짝 디자인이 다르다.

뭔가 세계관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생김새. 직접적으로 설명하자면 뭔가 외계인 같은 느낌이었는데, 얼굴은 문어와 코끼리를 섞어놓은 것 같았다.

코와 입 부분이 모조리 문어 다리나 코끼리의 코, 촉수 같은 것들이었고 심지어 양팔과 양다리에도 이상한 촉수 같은 것들이 드문드문 붙어 있었다.

전체적인 느낌은 징그럽게 생겼다. 라는 것, 대륙에서 오만가지 촉수는 전부 겪었던 나였지만 이 녀석들은 확실히 느낌이 다르다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당연하지만….

‘우리 쪽에서 나온 물건은 확실히 아니자너.’

결단코 우리 쪽에서 창조해서 던져놓은 종은 아니다.

본래 새로운 종을 수입하거나 창조하는 것은 어마어마한 신성을 필요로 한다.

지금 진 군사의 사업이 망하며 그 정도로 투자를 감행할 능력이 없고, 무엇보다 베니고어가 저런 흉물스러운 디자인을 승인했을 리가 없었다.

‘걔는 이상하게 디자인에 유독 민감하니까.’

아마 말도 안 되는 디자인이라며 제안서를 찢어버렸겠지. 한쪽은 천사, 한쪽은 날개를 가진 혼종을 승인할지언정, 절대 저런 흉물을 데리고 올 리가 없었다.

“당시에는 악마라고 생각했지만….”

“혹시 샘플이 있습니까?”

“네.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실 전투가 꽤 격렬하게 이어지는 바람에… 완전한 샘플을 구하기는 힘들었거든요. 녀석들은 신기한 능력을 사용했어요. 신체 능력도 꽤 높고… 뭔가 완전히 새로운 종족처럼 느껴졌죠.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마 육망성들이 숭배하던 게 녀석들일 거라고 생각해요.”

‘그거야 뭐 너무 뻔한 거고….’

“이후에도 비슷한 전투가 서너 번 정도 있었어요. 어렵기는 했지만 원정을 종료할 정도는 아니라고 생각했고요.”

“혹시 균열은….”

“아! 균열박물관의 그것 말씀이시군요.”

“네.”

‘이질적인 거 하면 사실 하나밖에 안 떠오르니까.’

균열에서는 온갖 것들이 튀어나온다. 다른 차원의 물건이나 다른 차원의 종, 이것도 균열에서 왔다는 게 이상한 추론은 아니다.

“비슷한 기운을 느끼지는 못했어요. 제가 신경을 쓰지 않아서일 수도 있고요… 하지만 생각해 보면… 정말 균열에서 나온 존재들일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가능성은 낮다고 봐요.”

‘낮기야 하겠지. 저런 것들이 뭉텅이로 튀어나올 정도의 균열이라면 라파엘이 그냥 지나칠 리 없었을 테니까.’

하지만 확인은 꼭 해봐야 했다.

“혹시 샘플을 지금 받아볼 수 있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일단 균열박물관 관리인에게 맡기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아! 바로 문제가 해결되겠네요.”

아무래도 원정을 떠나기 전에 막스도 한번 찾아가는 게 좋을 것 같았다.

나도 확률은 낮다고 생각하지만 이런 건 전문가가 보는 게 가장 확실할 테니까.

누가 알겠는가. 혹시나 균열이 열렸고, 균열의 존재들이 이쪽의 인간들의 머릿속에 들어갔을지.

손가락으로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는 사이 라파엘이 다시 한번 말을 이어온다.

“사실 문제는 이다음이었어요.”

“네.”

“제 파티원들이 사라진 마지막 전투요.”

“적은 몇 명이었습니까?”

“자세히 모르겠어요.”

“어떤 능력을 사용했는지는….”

“그것도 잘 모르겠어요.”

“같은 놈들이었습니까?”

라파엘은 고개를 저었다.

“아니요. 상대는 인간이었어요.”

“…….”

“가면을 쓴 사람들이요.”

“…….”

“…….”

“이상한 가면을 쓴 사람들이었어요.”

‘가면 이야기 좀 그만해.’

“한쪽 다리가 없는 사람이 기억에 남네요. 조금 어려 보이는데 목소리가 비슷해 보이는 두 명도 있었고….”

‘쌍둥이들 아니지?’

“마르고 키가 큰 사람도 있었고요.”

‘시바 나 가면 울렁증 있다구… 여단 멤버들인 것 같은데… 지혜 누나가 풀지는 않았을 텐데….’

“그중에서도 저와 맞부딪친 사람은 정말로 강했어요. 수련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생각했는데도… 정말로… 오랜만에… 김현성… 아니, 파란 길드마스터 외에 강한 사람을 본 것 같아요.”

“…….”

“그 녀석은 검과 마법을 동시에 사용했는데… 살기가 너무 강해 꺼림칙할 정도였어요.”

라파엘이 말이 뱉어지는 순간, 상대가 누구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지혜 누나가 사람을 푼 것이 아니다.

물론 말이 안 된다는 것은 알고 있다.

내가 가정하고도 스스로 어처구니없는 망상같이 느껴졌지만….

‘시발….’

라파엘은 분명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와 살인여단을 묘사하고 있었다.

‘그 새끼들이 도대체 왜 나와.’

“…….”

“…….”

라파엘 파티는 1회 차와 조우했다.

그게 내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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