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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64화 (1,262/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64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4)

김현성은 그다지 기억력이 좋은 것 같지는 않았지만 아마 중요한 사건 몇 가지는 기억하고 있을 것이다.

정확한 날짜와 시간을 기억하는 것은 무리더라도 특정 장소에서 특정 집단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정도는 알고 있지 않을까.

회귀한 이후로 본인 나름대로 타임라인을 정리하고 있었을 테니 대략적으로나마 1회 차가 흘러가는 흐름에 대해 정리하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교국혁명 때는 흑마법사들 족치고 다녔었지 아마….’

우리가 라이오스로 갔을 때도 김현성은 한참 바빴었지만… 이런 정보들이 필요한 것이 아니었다.

현재 시점이 전반기도, 중반기도 아닌 후반기일 확률이 높았기 때문이다. 정진호가 아무리 괴물이라고 한들, 초창기의 녀석이 지금의 라파엘과 동수를 이룬다는 건 설명이 되지 않는다.

정진호도 어느 정도 성장을 완전히 마친 상태로 조우했다는 게 설득력 있다.

시기상으로 생각해 보면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의 사망 직전과 외신이 들어온 사이의 이야기.

정확히 정진호가 뒈진 날짜를 모르니 알 수 없었으니 확신할 수는 없었지만 외신들이 나타나기 전후일 것이다.

‘일단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기는 한데….’

“너무 이상하게 보이겠지….”

최대한 이상하지 않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지금 같은 시기에 갑자기 정진호에 대해 물어보는 게 이상하게 느껴지지 않을 리가 없었다.

갑작스레 1회 차에 대해서 물어오는 것도 이상한데 그게 정진호라니.

아무리 김현성이 바보라고는 해도 무언가 이상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다.

연락을 하는 게 좋을지, 하지 않는 게 좋을지, 여신의 손거울을 만지작거린 것도 잠시….

옆에서 나를 부르는 김미영 팀장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부길드마스터.”

“…….”

“부길드마스터?”

“아! 네. 팀장님. 죄송합니다. 잠깐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손님이 오셨습니다. 우정 길드와 라파엘 님께서….”

“아… 벌써 그럴 시간이군요. 원정 준비는 다 끝났나요?”

“네. 말씀해주신 건 전부 준비했습니다. 그런데….”

“네.”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물론 안기모 님과 유아영 님, 박리안 님이 부족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덕구는, 알프스, 벨리에와 원정을 떠났고… 예리랑 창렬이는 바쁘잖아요. 엘레나 님도 마찬가지고… 하얀이와 소라는 결계를 새로 짜느라 정신없고… 움직일 수 있는 인선이 많지가 않네요.”

“조혜진 님이나 선희영 님은….”

“제가 없는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도 없으니 누군가는 남아야죠. 혜진이 같은 경우에는 길드마스터 대행, 부길드마스터 대행 업무를 수행해야 하고요.”

“네.”

‘얘들을 데리고 갈 수가 없는 게 문제지… 뭐….’

내가 없는 동안 대륙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 게 걱정되기도 했지만 사실 진짜 걱정되는 건 그런 게 아니었다.

‘최대한 익숙하지 않은 얼굴로 데려가야지 어쩌겠어.’

어쩌면 1기영이 있을지도 모른다.

마주칠 확률은 희박하겠지만 혹시라도 마주친다면 상황이 이상하게 꼬일 여지가 있다.

조혜진, 김현성은 물론이거니와 정하얀은 1회 차를 관통하는 중요인물들이다.

라이오스에서 발견된 편린이 어느 시점인지 정확하게 알 수 없었지만 죽었는지, 살았는지 모르는 인물들을 대뜸 데리고 나타날 수는 없었다.

‘2회 차가 시작되는 데 영향을 줄 수도 있으니까.’

엘레나 역시 엘프왕국의 유명인사였으니 제외, 살인 여단원이었던 선희영은 당연히 제외, 황정연이 어떻게 됐는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파란 길드원이었으니 제외.

김현성이 2회 차로 떨어진 이후 가장 먼저 들인 동료였던 김예리도 제외, 김창렬은 중요한 첩보 업무를 하고 있으니 제외.

언론담당관 스미스 대령도 어쩔 수 없이 제외, 돼지 새끼야… 두말할 필요도 없이 제외였다.

어차피 벨리에, 알프스와 함께 원정을 떠났기 때문에 돌아올 수도 없었지만 말이다.

그런 의미에서 두 병아리들과 같이 떠나지 못하는 게 아쉽기는 했지만… 파란 길드에서 1회 차와 연관이 없는 인간이 또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일단 붉은 용병이었던 안기모.

성기사라는 특이성이 있기는 하지만 붉은 용병이 워낙 머릿수가 많은 터라 쉽게 기억할 수 없을 것 같아 포함. 심지어 이 새끼는 붉은 용병을 떠나고 싶어 했으니 후반기 즈음에는 어딘가 나돌아다니고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유아영.’

1회 차는 생산직 바람이 불지 않았을 테니 그녀가 각광받는 일도 일어나지 않았을 확률이 높다. 처음 만났을 때, 김현성이 그녀에게 별 관심을 두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 보면 아마 1회 차 유아영은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홀로 퇴장했을 것이다.

‘박리안도 그렇지.’

김현성이 데리고 오기는 했지만, 내 호위로 뽑은 인선이었기 때문에 포함.

1회 차에 활약했을 수도 있지만 암살자 직군들은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는 특성이 있었기 때문에 선택했다.

거기에 라파엘도….

‘1회 차는 회색빛의 용사고 뭐고 없었으니까. 얘는 그냥 2회 차 용사 콘테스트로 뽑힌 애고….’

어떻게 떡상했는지 모를 우정 길드야 두말할 필요도 없었다. 아마 얘네는 1회 차 때 가면 쓰레기에게 휩쓸려 그냥 나자빠진 엑스트라 1, 2, 3이 아니었을까.

“라파엘 님께… 밖에서 조금 더 기다리라고 전하면 되겠습니까?”

“아니요. 금방 나간다고 전해주세요.”

김미영 팀장과 대충 인사를 한 이후에는 곧바로 집무실을 나서자 일단 집무실 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두 명이 눈에 보인다.

“부길드마스터와 함께 이렇게 소규모 원정을 떠나는 건 처음인 것 같은데… 하하. 잘 부탁드립니다. 근데… 부길드마스터. 이거… 다른 길드원들한테는 비밀입니까?”

능청스럽게 인사를 건네는 안기모와….

“열, 열심히 하겠습니다. 부길드마스터.”

양 주먹을 꽉 쥐고 있는 유아영이었다.

아마 박리안은 어딘가에 숨어있을 것이다. 사태의 심각성을 아는지 모르는지 안기모는 정신없이 떠들고 있었다.

그냥 간단한 임무를 하고 온다고 거짓말을 해 놨기 때문에 부릴 수 있는 여유였을 것이다.

창렬이와는 다르게 얘는 조혜진한테 다 일러바칠 수도 있으니까.

“근데 부 길드 마스터… 이거 원정이 어느 정도 걸릴지 미리 알려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글쎄요….”

“하하하. 다들 고생하고 있는데… 저희만 이렇게 놀러 다녀온다고 생각하니 조금 미안해서… 특히나 예리 씨가 바쁜 걸 생각하면… 절로 웃음이 나오더군요.”

“정확히 놀러 가는 건 아니죠. 엄연히 원정인데요.”

“그래도 영웅 등급의 던전이라면….”

“기모 씨. 그래도 방심은 금물이에요.”

“제가 방심한다는 게 아니라… 그냥… 하하… 죄송합니다. 요즘 상황도 좋지 않은데… 제가 기분이 조금 들떠서… 그래도 이번 원정은 확실히 맡겨 주셔도 됩니다.”

하지만 녀석의 여유도, 풀 장비를 맞춘 채 응접실에 대기 하고 있는 라파엘과 우정 길드를 본 이후에는 천천히 사라지고 있었다.

“저… 부길드마스터?”

평범한 원정이 아니라는 걸 깨달은 것이다.

“저… 이거 영웅 등급의 던전으로 가는… 파티가….”

라고 홀로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대답해 줄 수 있을 리 만무. 앞에 있는 다른 인원들과 인사를 나누는 것이 먼저였다.

“형…”

“네. 라파엘 님.”

“정, 정말 괜찮으신가요?”

“…….”

“그야 저는 형이 함께 해주시면 너무 든든하지만… 아무래도 죄송스러워서… 몸도 좋지 않으시고… 파란 길드도 한창 바쁜 상황인데… 이렇게까지….”

“그동안 라파엘 님께 받은 걸 생각하면… 당연히 도움을 드리는 게 이치에 맞습니다.”

라파엘이랑도 인사하고….

“파… 파란 부길드마스터를 뵙습니다!”

“명예추기경님을…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을 뵙습니다!”

기합이 잔뜩 들어간 우정 길드원들과도 인사를 나눈다.

‘우정 길드 마스터, 이철우… 그리고 걔 친구 김태건… 그리고 이철우 좋아했던 국민지… 그 외 여성 3인방이랑… 나머지 길드원들은 처음 보는 얼굴들이네.’

처음에는 이름도 잘 기억나지 않았었는데 한 명 한 명 찬찬히 마음의 눈으로 살펴보니 이기연이었을 때 일어났었던 작은 사건이 떠오른다.

그때는 추레하기 짝이 없었는데 지금은 아이템이 싸그리 명품으로 도배되어 있는 것으로 모자라 보급품들도 최상품을 들고 다니는 것 같았다.

‘무슨 책 판 돈으로… 투자까지 해서 떡상했다고 했었나?’

내 기억이 맞다면 천재검사와 연금술사가 사라지는 법 무삭제 판이었을 것이다.

두더지 성녀에서도 한 번 본 적이 있기는 했지만 착용하는 장비 못지않게 실력도 올라온 것 같아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물론 녀석들을 품평하기보다는 감사를 표현하는 게 먼저였다.

“이렇게 도움을 주신다고 해서 얼마나 기쁜지 모릅니다.”

“당… 당연한 일입니다! 파란 부길드마스터!”

“다들 처음 보는데 처음 보는 것 같지가 않네요.”

“영광입니다!”

‘기합도 잘 들어가 있자너.’

“지금 제 모습이 이래서 죄송합니다. 조금 정상적인 모습으로 여러분을 맞이하고 싶었지만…”

“네. 이미 라파엘 님께 전해 들었습니다. 절대로 이기영 님의 모습을 발설하지 않을 테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래 주시기로 결심하셨으니 감사할 뿐입니다. 그럼… 이제 갈까요?”

“네!”

준비물은 다 챙겼고….

‘촉매도 잘 챙겼고…’

마치 도살장에 끌려가는 것처럼 보이는 안기모의 표정만 제외하면 원정 준비는 완벽하게 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파란 길드 완전판보다야 전력이 떨어지기는 하겠지만, 파티의 밸런스는 나쁘지 않다.

라파엘이 중심을 잡아줄 거고, 유아영도 전위로써 폼이 많이 올랐다. 우정 길드의 김태건과 좋은 듀오가 될 것 같았고….

마찬가지로 우정 길드의 이철우도 사제로서 충분한 역량이 있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선희영과 엘레나가 비정상적일 뿐이지 대륙에서 저 정도면 충분히 최상위라 불려질 만했다.

만약 모자란 부분이 있다고 해도 성기사인 안기모가 메워 줄 테니까. 공수가 확실하게 준비된 셈이었다.

일단은 워프 게이트가 닿는 곳까지 이동하고 난 이후에 본격적으로 행군을 시작한다.

‘이 짓도 오랜만이네.’

얼마 걸리지 않는 거리라고 했지만 우려 4시간 이상을 행군해야 하는 거리였기 때문에 안기모가 메고 있는 가방에 올라타 아까 하려고 했던 걸 하기로 결심했다.

‘금방 나오겠지.’

피곤해서 한숨 때린다는 명목하에 눈을 감은 이후에는 회귀자 사용설명서를 활성화하기 시작한다.

곧바로 김현성에 대한 모든 게 느껴진다. 지금 조금 심심해하고 있다는 것도, 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을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전부 알게 됐지만 내가 궁금한 건 그런 게 아니었다.

‘1회 차… 1회 차를 보자.’

김현성의 머릿속에 있는 1회 차였다. 너무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터라, 도서관에서 책을 찾는 것마냥 계속해서 머릿속을 유영한다.

‘왜 이렇게 정리가 안 되어 있어? 시바.’

머릿속이 엉망진창이라 기억을 꺼내기가 쉽지 않을 정도, 일단은 정진호와 라이오스에 대한 것을 뒤져보려고 한 발자국을 더 앞으로 내디뎠던 바로 그때였다.

순간적으로 누군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은 느낌에 움찔한 것도 잠시… 다시 한번 1회 차의 기억에 손을 뻗어 봤지만 텅 하는 소리와 함께 사념이 막히는 것이 느껴졌다.

당황하기는 했지만 이윽고 일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어?”

“…….”

“뭐야… 왜 안 보이지?”

“네? 무슨 일이 십니까? 부길드마스터.”

김현성이 출입을 거부하고 있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녀석은 누군가가 1회 차의 기억을 뒤지는 것을 원치 않는 것처럼 보였다. 아마도….

무의식적으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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