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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66화 (1,264/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66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6)

아마 안기모 역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건지, 여기가 어디인지 모르고 있었을 것이다. 당장 내가 눈치를 주니, 적당히 받아쳐 줬을 뿐이었다.

예전부터 느꼈었지만 확실히 눈치가 빠르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분위기를 읽는 능력도 뛰어나고 언제나 태연하다 보니 웬만해서는 잘 긴장하지 않는다.

다른 파티원들만 보더라도 갑작스럽게 변한 환경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는데 녀석 혼자만 여전히 웃는 낯짝으로 방금의 무용담을 주절거리고 있지 않은가.

“이야…. 정말 대단했습니다, 부길드마스터. 방금 제 연기력 보셨습니까?”

‘그래, 봤지….’

“갑자기 흙먼지에서 뒹구셔서 얼마나 당황했는지…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은 오더군요.”

“…….”

“…….”

“안기모 씨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네? 무슨….”

“지금 여기요.”

“다른 건 모르겠습니다만 제가 알고 있는 대륙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는 뭔데요?”

“그야 대륙에 저희 얼굴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저랑 아영 씨는 둘째 치고 라파엘 님을 모른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않습니까. 모험가로 활동하고 있다면 더욱더 말입니다. 갑자기 여단 여단 하는 것도 이상했고… 라파엘 님의 얼굴을 확인한 이후에도 대뜸 어디 소속이냐고 묻는 걸 보니… 저희가 알고 있는 대륙이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을 뿐입니다. 그래서 부길드마스터와 호흡을 맞출 수 있었던 거고요. 이게 전부 부길드마스터의 기지 덕분입니다.”

“…….”

“물론 제가 한발 늦기는 했습니다만… 아! 부길드마스터는 녀석들이 오기 전부터 준비하고 계셨던 것 같던데… 역시나 뛰는 사람 위에 나는 사람 있다는 걸 다시 깨달았습니다. 하하하하!”

‘얘도 참… 위기감 없네.’

보통은 불안해해야 정상이다. 안기모의 목소리에 귀를 집중하고 있는 우정 길드원들 역시 몹시 당황한 표정이 역력했다.

갑자기 다른 장소로 빨려들어 왔다니, 지금 있는 장소가 자신들이 알고 있는 대륙이 아니라니, 그럼 여기는 도대체 어디란 말인가. 하는 얼굴들을 하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녀석들 중 한 명이 궁금하다는 듯이 입을 열어온다.

“그, 그럼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이곳은 도대체 어딥니까?”

“글쎄요.”

“네?”

“보통 대륙의 역사가 던전화되는 경우가 많지만 이런 경우는 처음인 것 같네요. 무엇보다 던전이 아니라는 점에서 더욱더요. 어쩌면 평행세계일 가능성도 무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육망성은 그 평행세계와 우리 쪽 세계를 잊는 통로 같은 거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고요. 라파엘 파티가 끌려간 곳이 아마 이곳일 겁니다.”

“네?”

‘적당한 변명이네.’

과거나 미래라고 아니면 아예 다른 세계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 아싸리 이렇게 평행세계라고 못을 박아버리는 것이 맞다.

‘아는 얼굴들을 볼 수도 있으니까.’

돌발 행동을 할 가능성을 원천에 차단해야 했다. 당연히 1회 차라고 설명할 수도 없었으니 평행세계라는 말이 적당한 변명이 되어 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그럼 저희는… 대륙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겁니까? 던전을 클리어할 수도 없으니….”

“아니요. 왔던 길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 겁니다. 마법진을 발동시킬 수 있는 촉매도 있고요. 육망성이 그대로 남아 있는 것도 확인했으니 말입니다. 지금 확인 작업을 하고 싶지만 촉매가 부족해서 곧바로 사용할 수가 없네요. 라파엘 파티를 찾고 돌아가는 걸 이번 원정의 목표로 하겠습니다.”

“그렇군요.”

“너무 불안해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환경만 바뀌었을 뿐, 평소의 원정이라고 생각하고 임해주신다면 큰 문제가 생기지는 않을 겁니다. 조금 특별한 던전에 들어왔다고 가정하죠.”

“그럴 수도 있겠군요. 하하… 평행세계라니… 혹시 그렇게 판단하신 이유는….”

“방금 온 사람들… 아는 얼굴들이었거든요.”

“아아!”

“물론 아직 평행세계에 들어온 것이라고 확답을 지을 수는 없습니다만… 확률이 낮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해서….”

“성자님께서 그리 생각하신다면… 거의 확실하겠군요.”

‘이래서 사람이 신뢰가 중요하자너.’

“게다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현재 추적대가 편성되어 있는 것 같더군요.”

“네. 분명 저도 그렇게 들었습니다. 일일이 모험가들을 확인할 수 없을 정도로 대규모로 편성되어 있는 것 같았는데… 다행히 저희가 누구인지 확인할 시간이 없었나 봅니다. 지휘체계도 엉망인 것처럼 보이고….”

‘그야 엉망일 만하지.’

일단은 여신의 손거울이 존재하지 않는 것이 일차적인 이유였다. 이곳은 전산화되어 있지가 않다.

아마 신분, 소속을 가리려면 본대와 교신해 공책을 뒤져야 하지 않을까. 지휘체계 역시 주먹구구식일 것이다.

1회 차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상황이기도 했으니까. 각 국가나 집단끼리의 동맹 관계도 헐겁겠지.

당연히 집단들 사이의 커뮤니케이션도 원활하지 않을 것이다. 공화국 놈들은 공화국 놈들끼리, 교국, 아니 여기서는 제국이었으니 제국은 제국 놈들끼리. 연방이나 연합도 지들끼리 소통하며 허울뿐인 동맹을 이어나가지 않았을까.

당장 여단을 잡기 위해 뭉치기는 했지만 캠프와 일차적인 정보만 공유할 뿐, 아무것도 이루어진 게 없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었다.

1회 차 놈들의 무능함이라기보다는 아마….

‘1기영, 1지혜 때문일 거야.’

체계적으로 국가 간의 갈등을 키워왔을 거고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을 것이다.

당장 같은 교국에 포함되어 있는 린델과 실리아조차 사이가 좋지 않다.

“그럼 부길드마스터… 앞으로는 어떻게… 이대로 캠프로 들어가시는 겁니까? 아니면 따로 독자적으로 활동하는 게 좋겠습니까?”

‘그게 문제기는 해.’

“글쎄요. 기왕이면 캠프에서 도움을 받으면 좋을 것 같기는 한데….”

“캠프 안에 들어가는 게 조금 부담스러우신 거군요.”

“네. 신원확인을 아예 안 하지는 않을 테니… 들어가서도 문제고요. 모험가 길드에 등록만 되어 있다면 좋겠지만… 뭐, 일단 들어가는 것부터 생각하죠.”

“네? 그러니까 그걸 어떻게….”

‘뭘 어떻게야. 일단 들이대고 보는 거지.’

“아영 씨, 아픈 척 좀 할 수 있어요?”

“네? 아… 그건….”

조금 의아한 표정을 하고 있는 유아영이 얼떨결에 고개를 끄덕인 순간, 방향성이 결정됐다.

대규모 캠프를 눈앞에 둔 안기모가 유아영을 안은 채로 허겁지겁 뛰어 들어가기 시작한다. 다른 동료들 역시 마찬가지.

라파엘은 그중에서도 가장 어색한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애초에 녀석에게는 불가능한 미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할을 줄일 수밖에 없었다.

우정 길드의 국민지가 제법 표정이 괜찮다. 안기모 하나로는 살짝 불안했는데 적당한 원군을 얻은 셈이었다.

곧바로 달리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안기모가 커다란 목소리로 입을 여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제! 사제!!!! 제길! 빨리 문 열어!!”

국민지도 질세라 커다랗게 목소리를 높인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제 동료가!!”

“제기랄! 비켜!!”

‘진짜 리얼루 박진감 넘치자너….’

지구에서 배우 활동을 했던 게 폼은 아니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간이로 지어진 목책에서 보초를 서고 있는 경비병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당황으로 물든다.

안기모의 품에는 피투성이가 된 유아영이 안겨 있었다. 누가 보기에도 당장에라도 숨이 넘어갈 것처럼 호흡이 거칠다.

“지금 당장 문 열라고! 제기랄! 사제 없나?! 사제부터 불러와!”

“소… 소속 확인하겠….”

우정 길드의 이철호가 빠르게 말을 잇는다.

“자유용병소속….”

물론 그 목소리는 안기모의 성난 목소리에 묻힌다.

“문 열라고 제기랄!”

거칠게 경비병들을 밀어붙이기까지 깜짝 놀란 녀석 한 명이 창을 겨누려고 하지만 울컥울컥 피를 내뱉고 있는 유아영을 보고서는 저도 모르게 창을 거두고 있었다.

“기… 기모 오빠… 나… 나 죽는 거야?”

“네, 네가 죽기는 왜 죽어? 쓸…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절대로 잠들지 마. 아영아… 절대로 잠들지 말라고… 조금만 있으면 도와줄 사람이 올 거야. 조금만 버티면….”

“오, 오빠… 나… 사… 사실….”

“말하지 마! 아영아! 제길! 빨리 비키라고!”

아무래도 어디에선가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던 경비병들은 무척 마음이 약한 모양인 것 같았다.

“일단은 소속 신분을 확인을….”

“사제부터 불러오자… 캐넌….”

“뭐? 알렉스… 너 제정신이야?”

“저대로 죽게 내버려 둘 거야? 아이도 같이 있잖아. 제길… 일단 들어오시죠.”

“알렉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 감사합니다!”

“혹시 소속을 증명할 수 있는 신분패가 있습니까?”

“여기… 여기 있습니다.”

여단 놈들이 신나게 사람을 죽이고 다녔을 테니 박리안이 주변에 있는 신분패를 주워오는 건 문제도 아니다.

이철호가 건넨 신분패를 확인한 이후에는 곧바로 고개를 끄덕이며 우리들을 이끈다. ‘곧바로 의무실로 가시면 될 겁니다.’ 같은 소리를 지껄이며 말이다.

당연히 허겁지겁 의무실로 달리기 시작했다.

‘확실히 아직 발전이 덜 됐네.’

미개하다기보다는 발전할 시간이 없었겠지.

전쟁이 끝나면 전쟁을 하고, 조용해지려고 하면 테러가 일어나고… 이런 상황에서 1회 차의 모험가들이 내실을 키울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주변 모험가들이 장착하고 있는 장비들도 거의 대부분이 던전에서 나온 아이템들로 보였고 간혹 눈에 띄는 수제는 처참하기 딱히 없었다.

유아영이 새끼발가락으로 제련해도 훨씬 더 좋은 물건을 양산해 낼 수 있지 않을까.

캠프 자체도 무슨 움막집을 보는 듯하다. 제대로 된 캠핑 전용 장비의 양산화로 인해 질 좋은 간이 텐트를 마련할 수 있는 2회 차와는 다르게 이놈들은 너무나도 원시적이었다. 이게 원정대가 사용하는 캠프인지, 아니면 빈민촌인지 구분이 가지 않을 정도였다.

‘의무실도 마찬가지자너.’

위생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 그걸 실행할 시간이나 자원이 부족한 것이리라.

정말로 중세시대에서나 볼 법한 천막으로 둘러싸여 있는 공간이었기 때문에 같은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전염병이 옮을 것 같다.

심지어 사제도 많지 않다. 인력 부족이 얼마나 심각한지 느낄 수 있을 정도였다.

‘얘네들 왜 망했는지 알겠자너.’

버틴 게 기적이다. 지들끼리 싸우고 지랄병 난 건 둘째 치고 외신들이 인간 청소를 하러 왔을 때는 어떻게 버틴 건지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전투력은… 높은 건가….’

“으아아아아아아아… 살….”

“아흐윽… 아파… 엄마….”

“살려줘… 살려….”

여기저기에서 들려오는 비명 소리, 당장 옆에서 죽어가는 놈들이 있는데도 사제들이 없어 아무것도 할 수 없지 않은가.

“사제! 사제에에!!!”

그 상황에서 안기모는 데시벨을 높이며 사제를 찾는 중, 결국 얼굴과 온몸에 피가 잔뜩 묻은 사제 하나가 달려와 유아영에게 달려들기 시작했다.

“증세가 어떻죠?”

“저, 저도 잘 모르겠습니다. 갑자기 피를 토하더니….”

“독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영아. 괜찮아? 괜… 괜찮은 거지?”

“하아… 하아….”

“일단 역병처럼 보이지는 않네요. 제가 모르는 증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먼저 해독주문을 외워드릴 거예요. 만약 회복되지 않는다면 방법이 없어요. 제국에 있는 교황청에 찾아가는 수밖에… 여단 놈들의 함정에 당했다면… 아마… 그래도 역병이 아니라… 다행이네요.”

‘그런 말이 어디 있어? 일단 주문 외우고 안 되면 제국으로 가라는 게 말이야 방귀야.’

“사제님… 제발… 무슨 방법이 없는 겁니까?”

“지금 당장은 어쩔 수 없어요. 일단 비켜보세요. 주문부터 외워드릴 테니까.”

‘그냥 주먹구구식이네.’

“제발… 제발….”

신파극을 찍고 있는 안기모와 유아영을 내버려 둔 이후에는 비위생적인 실내를 슬그머니 나선다.

그리고….

우연치 않게 익숙한 인형을 시야에 담을 수 있었다.

정리되지 않은 붉은 머리를 한 여자가 내 앞을 스쳐 지나간다. 코끝에는 익숙한 냄새가 맴돈다. 더 피 냄새가 진했다는 차이점은 있었지만 말이다.

아니, 그것 말고도 차이점은 더 있다.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는 손을 자세히 보니 손가락이 두 개가 사라져 있다.

얼굴에는 지금은 없는 흉터들이 가득했고, 온몸에도 흉터가 가득하다. 얼마나 거친 삶을 살아왔는지 알 수 있을 것처럼 말이다.

심지어 한쪽 눈을 가로지르는 흉터가 두드러진다.

언제나처럼 당당한 걸음걸이로 발걸음을 옮기자 홍해 갈라지듯 사라지는 인파들이 시야에 비쳤다.

저절로 아첨하고 싶어지는 분위기.

본능적으로 고개를 숙이고 싶게 만드는 패왕색의 패기.

얌전히 품에 안겨 술이나 따르고 싶게 만들고 싶어지는 저 포식자의 눈빛.

‘나대지 마. 심장아….’

눈앞에 보이는 것은 1회 차의 차희라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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