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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72화 (1,27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72화

김현성 백작(2)

“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럼 지금 당장이죠.”

“아… 네! 일단 알겠습니다.”

허겁지겁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는 안기모 녀석이 눈에 들어온다. 그 와중에 차희라의 축객령을 받아들인 김현성은 파란 길드와 함께 캠프를 빠져나가고 있는 중.

아마 정진호의 미국행 이벤트는 현시점부터 진행될 확률이 높을 것처럼 보였다.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인다. 붉은용병이 파란의 제의를 거절하고 독자적인 노선을 걷기로 한 것뿐이었으니까.

하지만 대략적인 타임라인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던 내 입장에서는 침을 삼켜 넘길 수밖에 없었다.

걱정하고 있는 것은 딱 두 가지였다.

‘시바.’

첫 번째는 이 이벤트가 무사히 끝을 향해 달려갈 수 있느냐는 것.

물론 아무 문제 없을 가능성도 높을 것이다. 이미 가면의 영웅들이 파란길드에게 정보를 넘겼다는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동안 헛물만 캐던 놈들이 전 병력을 움직이는 수를 감행했다는 것은 본인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에 확신하고 있다는 것 외에는 설명할 방법이 없었다.

이전과의 차이점은 붉은용병의 참전 여부 하나였겠지만 이 차이는 결코 무시할 수 없다.

다른 길드들은 몰라도 붉은용병이라는 집단의 존재 유무의 차이는 적다고 할 수 없다.

잘 훈련된 전위들이 포위망에 포함되어 있지 않다는 것, 그들을 통솔하는 차희라가 전장에서 이탈했다는 것.

본래 1회 차에서 진행되었던 것처럼 작전이 원활하게 진행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김현성과 파란길드도 그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이곳에 찾아오지 않았을까. 붉은용병 없이는 이 작전의 성패를 장담할 수 없다고 여기고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러했으니 정진호가 이 함정을 빠져나가지 못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그럼 최악인데….’

만약 정진호가 이 장소를 빠져나가 1기영을 죽이기라도 한다면 그 시점에서 2회 차는 끝.

아직 1회 차와 2회 차가 연관되어 있는지 없는지는 확신할 수 없었지만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다.

굳이 곧바로 1기영에게 해를 끼치지 않을지는 몰라도 이런 사이코패스 살인마가 가면의 영웅들의 적이 되는 꼴은 그다지 이로운 상황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는….’

이 여단 추격전이라는 이벤트가 붉은용병과 파란의 화합을 위한 이벤트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물론 두 길드가 화합을 한다고 하더라도 큰 그림이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둘의 화합 여부와는 관계없이 외신은 내려올 것이고 대륙은 멸망의 길을 걸을 테지만… 린델의 화합은 앞으로 다가올 이벤트에서 중요하다.

이번 장이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외신들이 내려오기 시작할 테니, 가면의 영웅들의 입장에서는 외신과 인류의 파워밸런스를 잘 맞춰줘야 할 필요가 있었기 때문이다.

1기영의 목적은 완전한 멸망이다. 그리고… 외신과 인류가 줄다리기를 하는 과정에서 1지혜는 죽는다.

놈이 회귀를 결심한 이유가 그 전인지 후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어떤 것 하나 녀석에게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게 없는 만큼.

예정되어 있는 커다란 이벤트들은 무조건 진행되어야 했다.

인류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하고 싸그리 외신들에게 밀려버린다면 회귀는 진행되지 않는다.

대륙이 회생 불가능한 상태가 될 때까지 계속해서 전쟁이 이어져야 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조금 잔인하게 들릴지는 몰라도….

1회 차가 있기 때문에 2회 차가 있을 수 있다.

허벅지를 툭툭 두드리며 다시 한번 생각에 빠지려는 찰나 안기모가 다른 파티원들을 모아온 것이 눈에 띄었다.

“부길드마스터. 준비됐습니다.”

너무 갑작스러운 소집에 당황스러워하는 인원들은 없다. 그야 지들 눈으로 평행세계의 김현성도 확인하고, 차희라도 직접 목도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라파엘은 그중에서도 가장 표정이 좋지 않았었는데… 아마 본인이 이상한 일에 휘말렸다는 걸 직감적으로 눈치챘기 때문인 것 같았다.

“이동하는 동안 얼마나 정보를 모았는지 들어볼게요.”

“…….”

“…….”

“사실 이주혁 님이나 마리엔 님에 대해서는 듣지 못했습니다.”

‘예상했어.’

“적어도 캠프 내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 같더군요.”

우정길드의 이철호가 말을 마친 이후, 국민지가 곧바로 입을 열었다.

“저는 소각장에 다녀왔어요. 다행히 라파엘 님의 파티분들은 확인하지 못했고요. 현재 이 캠프와 긴밀한 연락을 취하고 있는 캠프 내에서도 잡혀 온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으니… 저희와는 다른 방향으로 움직인 것 같아요.”

“근처에 이런 캠프들이 총 몇 개가 있는지 본인들도 제대로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적어도 수십 개 이상이라는 것밖에는….”

“그렇군요.”

“현재 특정 집단을 쫓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처음에는 그게 라파엘 이주혁 님이 아닐까 생각했지만… 쫓고 있는 자들의 신원을 확실하게 파악하고 있는 만큼… 다른 캠프에 정착하고 있다고 생각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아직 국경을 벗어나지 않은 것만은 확실한 것 같았습니다.”

“네. 캠프는 조금 허술해 보이지만… 해당 지역을 중심으로 나가는 인원에 대해서는 확실하게 체크하고 있는 것 같았거든요. 마치 몰이사냥을 하는 것처럼 수많은 캠프들이 이 지역을 빙빙 둘러싸고 있어요.”

“…….”

“쥐새끼 한 마리 빠져나가지 못하게 말이에요. 따로 은신처를 두고 있거나, 다른 캠프에 몰래 숨어 있는 것은 가능해도… 이곳의 사람들이 포위하고 있는 공간을 빠져나가는 건 불가능할 것 같아요.”

“심지어 다른 병력은 아예 들어오지 못하게 하도록 완전 격리되어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만큼 이번 작전에 사활을 걸고 있는 거겠죠. 어쩌면 근처 마을에 있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꽤 괜찮네.’

뭐 뻔한 내용이기는 했지만 우정길드 역시 잠자코 있지 않았던 모양인 것 같았다. 박물관에 함께 갔을 때의 그 멍청한 파티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증명하고 있다.

특히나 길드마스터 이철우와 국민지는 그중에서도 꽤 두드러진다.

그야 국민지는 클래스 특성상 첩보업무에 더 이점이 있었지만 말이다.

덕분에 이 장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완전히 격리시켜 놨구나.’

교국과 라이오스 국경 근처에 있는 커다란 숲을 수십 개의 캠프들이 둘러싸고 있는 모양새였다.

단순히 숲뿐만이 아니라 주민들이 사용하는 호수나 편의시설, 심지어 화전민들이 모여 있는 마을들도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에 다시 한번 이놈들이 답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2회 차였으면 고소당했어요.’

아마 사전공지도 뭣도 없었을 것이다. 자그마한 마을에서 살고 있는 주민들은 졸지에 사이코패스 살인마 집단과 함께 커다란 우리에 가둬진 셈이었다.

‘1기영이랑 1지혜는 아마 따로 활동하고 있겠지?’

아직 그들의 정체를 알고 있는 놈들은 없다.

가짜 신분 몇 개는 가지고 있을 테니 캠프 안에 숨어 있거나 적당한 마을에 체류하고 있겠지, 그들의 사정 역시 이주혁과 마리엔과 다르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황상 쫓기고 있는 것은 정진호를 포함한 몇몇 여단 멤버들 뿐이다.

“일단은 따라붙는 게 좋겠네요.”

“아. 파란 길드마스터를 말입니까?”

“네. 하지만 그쪽 말고 다른 집단에 편승하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현성이랑 같이 움직이는 건 위험하고….’

당시 김현성은 직접적으로 전투에 참여하지 못했었으니까.

“붉은용병 길드마스터에게 신원을 보장받았으니 독단적으로 움직이는 것도 문제없을 겁니다.”

“아. 그렇군요. 고생하셨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

“어쩌면 라파엘 님의 파티도 이 포위망에 합류했을 수도 있고… 확률은 낮지만 이주혁 님과 마리엔 님이 쫓기고 있을 가능성도 있으니… 주변을 잘 살펴주세요.”

“네.”

“수상한 행동은 최대한 자제하고… 만약 누군가 신원을 묻는다면 지금 나누어드리는 인장을 보여주시면 됩니다.”

조용히 있던 라파엘이 한마디 보탠다.

“형… 뭔가 느낌이 안 좋아요.”

‘그래서 뭐 어쩌라고….’

“불안해요.”

‘아니 좀 꺼져. 형 바뻐. 시바.’

지금은 라파엘의 개소리를 들어주는 것보다 정진호를 찾는 것이 더 중요했다.

‘찾을 수 있을 거야.’

1기영과 1지혜가 정진호에게서 떨어진 것이 맞다면 지금 정진호는 자신들을 숨길 수단을 잃어버렸을 확률이 높다.

물론 완전히 잃어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녀석은 마검사였으니까. 그것도 꽤 수준이 높은 마검사 말이다.

당연히 정하얀과 비교할 수는 없겠지만 녀석이 떨치고 있는 악명을 생각해 보면 웬만한 마법사의 눈을 속일 수 있을 정도는 될 것이다.

녀석을 제외한 다른 여단원들 역시 마찬가지, 내 눈으로 직접 확인한 멤버들은 거의 대부분이 근접직군이기는 했지만 쌍둥이들도 어느 정도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쪽에 특화되어 있는 멤버가 하나둘 정도는 더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

결론을 말하자면 현재의 정진호와 친진호를 외치는 여단 멤버들은 마법을 활용해 포위망을 빠져나가고 있을 확률이 높다. 그리고….

나는 놈들의 속임수를 볼 수 있는 눈을 가지고 있다.

거기에 망원경까지 가지고 있으니 이 넓은 지역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상현상을 잡는 데에는 사실상 특화되어 있는 셈이었다.

오히려 일반적인 방법이라면 사막에서 바늘을 찾는 것 같은 그림이 되었겠지만 마력의 일그러짐을 찾아내는 것 따위는 일도 아니었다.

파티가 다른 병력들과 섞여 이동하고 있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눈을 돌리며 주변을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그래도 범위가 범위였고, 아군 수색대 측에서도 마법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 아니었던 지라 조금 헷갈리는 부분이 있기는 했지만….

성과가 없을 리가 없었다.

유독 이상하게 일그러져 있는 장소가 시야에 비친다. 자세히 보지 않으면 지나칠 정도로 마력의 농도가 낮았지만….

틀림없이 정체불명의 마법이 공간을 일그러뜨리고 있었다.

“따라오세요.”

“네?”

“부, 부길드마스터.”

“모두들 따라오세요.”

“그렇게 앞서가시면 위험합니다! 부길드마스터!”

“일단 따라와요.”

“저… 형!”

‘아니 시바.’

“아영 씨.”

“아… 네! 안아드릴게요. 부길드마스터.”

한창 달리고 있는 와중에 유아영이 내 손을 들어 올린다. 양팔에 날 꼭 붙잡고 내가 안내하는 길로 달리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이때가 기회다 싶었는지 무척 꽉 껴안아 왔기 때문에 숨을 쉬기가 약간 곤란해지기는 했지만 이동속도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다.

“저… 부, 부…길드마스터. 근데 저희는 지금 어디로 향하고 있는 겁니까?”

“…….”

“형. 뭔가 발견하신 건가요?”

“일단 따라오세요.”

길다면 길고 짧다고 짧은 시간을 계속해서 달리고 있는 파티원들의 얼굴에 의구심이 들어 있었지만 한가롭게 설명하고 있을 시간이 없다.

‘알고 있나?’

정진호가 추적이 붙었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움직이는 것은 우리뿐만이 아니다. 녀석들 역시 어떻게든 포위망과 우리 파티의 추적을 뿌리치기 위해 계속해서 움직이고 있는 중.

이런 곳에서 술래잡기를 할 줄은 생각하지 못했지만 확실히….

‘보통은 아니네.’

놈들이 움직임을 멈춘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전투준비.”

“네?”

“최대한 조용하고 소란스럽지 않게.”

그리고.

익숙한 검 한 자루가 날아오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유아영은 방패를 들어 올렸고, 라파엘은 이를 악물고 나에게 날아들어 온 검을 향해 손을 뻗는다. 당연히 저 검의 정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었다.

1회 차에서 정진호가 사용하던 애검. 2회 차에서는 창고 지킴이가 되어버린 비운의 명검.

저주를 내리는 검 율리에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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