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75화
여단 조우(3)
당장 라파엘을 불러 이놈들을 단매에 때려죽이는 게 좋은 선택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변화는 격정적이었다.
녀석들의 입에 맞을지 모르고 내밀어 봤던 메뉴였지만 아무래도 궁합이 무척 좋았던 모양이다.
물론 어느 정도 변화가 있을 거라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녀석들의 변화는 내 예상을 벗어난 상태였다.
엄밀히 말하면 내가 템플러 비슷한 것을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게 이렇게 된다고? 아무것도 안했는데?’
알타누스의 템플러였던 바하무트나, 시몬, 추억 속의 그 이름 템플러 젠과는 사정이 다르다.
녀석들이 알타누스의 혈액으로 스펙업을 한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오랜 세월과 시간을 갈아 넣을 수 있기 때문에 만들어진 결과물이었다.
계속해서 흘러내리는 알타누스의 피를 정제하는 과정을 거쳤을 것이고, 녀석들만의 의식을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더 효율적인 방법으로 알타누스의 피를 복용했을 것이다.
연금술이 활성화되어 있지 않았을 때의 이야기라 기술 수준이 그리 높지는 않았겠지만 그래도 명색이 비밀집단이었다.
원액으로 들이켜는 것보다야 개량에 개량을 거친 것이 효과도 좋고 부작용도 없을 것이라는 건 상식이 아니었던가.
양도 적었고, 순도도 낮았음에도 불구하고 녀석들이 보여주고 있는 변화가 너무 인상적이라 혼란스러웠을 정도였다.
‘시바. 이거 어떻게 해.’
“으… 으아아아아으윽….”
소화시키기 어려웠는지 괴로워하는 놈들이 눈에 띈 것은 당연지사.
‘시바. 이거 지금 목 날려야 되는 거 아니야? 그냥 죽여야 되는 거 아니야?’
몸이 괴물처럼 변하지 않고 있다는 것이 그나마 안심할 수 있는 부분이었지만 이걸로 기뻐하는 것이 맞는지 알 수가 없었다.
놈들의 뒤에 후광이 비친다.
‘시바.’
날개가 튀어오르지는 않았지만 명백하게 내 것과 비슷한 신성력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하… 하하… 하하하….”
몸의 세포가 변하는 과정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변화를 눈치챘는지 정진호가 계속해서 키득거리며 웃는 소리가 들려온다.
놈들의 몸 곳곳에는 성흔이라고 말할 만한 것들이 새겨지고 있었다. 괴롭다는 듯이 여기저기를 부여잡고 있는 놈들이 눈에 띈다.
지금 펼쳐지고 있는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대륙을 관리하는 신으로서의 경각심이 부족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내가 대륙의 오고 나서 얻은 상처들이 그대로 정진호의 몸에 새겨지고 있는 것 같다.
이를 악물며 김현성에게 칼빵을 맞은 배때지 부근을 부여잡는 정진호의 모습이 보인다.
핏속에 내재되어 있는 기억과 내가 받았던 고통을 받아들이고 있는 과정을 겪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내게 있어서는 이미 지나간 기억에 불과했지만, 모든 차원을 관장하는 시스템은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을 지나칠 수 없는 서사 같은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그냥 조금 파워업 하고 말겠거니 생각했던 게 너무나도 안일했던 것이다.
‘시바. 시바. 시바.’
“아아아아악!”
갑작스러운 비명과 함께 정진호의 반쪽 몸이 빛으로 휘감기기 시작한다. 괴로운지 손을 가져다 대지만 빛줄기들은 뱀처럼 놈의 몸을 꾸역꾸역 좀먹고 있었다.
‘죽… 죽나? 죽나?’
마치 둠현성이 어둠에 뒤덮여 얼굴을 잃는 것 같아 보였지만 놈의 얼굴은 여전히 남아 있다.
대신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몸의 반쪽이 빛으로 뒤덮여 있었다. 형태만 빛으로 되어 있을 뿐 있을 뿐, 놈의 왼쪽 팔은 명백히 짐승의 그것이었다.
길게 자라난 손톱에, 옷까지 전부 찢어져 있었기 때문에 접합 부위라고 할 만한 것이 눈에 들어와 있었는데….
빛의 뱀들이 놈을 물고 늘어지는 것처럼 보였다.
“하아… 하아… 하아….”
“…….”
“…….”
아직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대충이나마 진화의 과정이 끝난 것이다.
당연하게도 현시점에서 가장 합리적인 선택을 내릴 수밖에 없었다.
‘튀자.’
“기모 씨 이동할게요.”
“네? 네? 부길드마스터?”
“여기서 최대한 빠르게 멀어져 주세요. 빨리.”
“부, 부길드마스터… 무슨 계획이신지 말씀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지, 지금 저건 괜찮은 겁니까? 대체 무슨 짓을 하… 하신 겁니까? 저건….”
“아니, 일단 튀자고! 이 새끼야!”
“아! 네!”
‘이러다가 시바 감금당해서 하루 웬종일 피만 빨리는 꼴이 될지 누가 알겠냐구.’
방금 전까지는 우리 파티가 놈들보다 강하다고 생각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게 아니다.
특히나 내 피가 효과가 있다는 걸 직접적으로 체감한 만큼, 이 욕심 많은 미치광이 살인마들이라면 정말로 이 여린 육체에 몹쓸 짓을 할지도 모른다.
라파엘한테 몇 잔 권하면 금방 이길 수야 있겠지만 그게 라파엘에게 어떻게 적용할지 어떻게 알겠는가.
“빨리 뛰어요! 빨리!”
“제가 안아드리겠습니다.”
“라파엘 님! 라파엘 님!”
“형… 형? 무슨 일이세요! 그 팔은?”
“도망쳐요! 라파엘 님!”
“네? 설마 그 개자식들이… 으득.”
“협상은 결렬이에요! 곧 전투가 벌어질 테니 최대한 이곳에서 멀리 벗어나겠습니다.”
저 멀리서부터 광소가 들려온다.
“하…하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하! 있었다니… 정말로 있었다니!! 하하하하하하하하!”
‘있기는 뭐가 있어 이 새끼야. 뭔지 모르겠는데 시바 아무것도 없어!’
“하하하하하! 하하하하하하하핫! 드디어! 드디어! 보답받았다고!!”
‘무슨 보답이야? 시바!’
“리안 씨!”
“네. 부길드마스터.”
“지금 당장 캠프로 가서 녀석들을 발견했다고 전해 주세요!”
“네. 명대로.”
‘이길 수 있나? 현성이랑 누나가… 이길 수 있나?’
희라 누나한테도 한 잔 권해야 되나?
‘아니야. 에바야.’
나쁜 상황은 아닐 수도 있다. 저만큼 효과가 좋다고 한다면 부작용도 못지않을 것이 분명하다.
꼭 쓰러뜨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이쪽 모험가들이 조금만 버텨준다면 결국 놈은 자멸할 것이 분명했다.
문제는 버티는 게 가능하냐는 것. 일순간이나마 신의 편린을 손에 쥔 녀석들을 상대로 현시점의 차희라와 김현성이 비빌 수나 있을까.
여기 있는 놈들도 전부 도망가는 게 나은 선택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듣기는 했지만, 내 바람과는 다르게 여기저기에서 소란스러운 소리들이 들려온다.
“발견했다! 여단이다! 여단 놈들이다!”
“정진호 이 개자식!”
“당장 보고해! 여단 놈들이다!”
“드디어 그 개자식들이 뒈지는 꼴을 보겠구만 퉤!”
소리 지르고, 빛도 뿜어져 나오고 그 지랄병이 났었는데 눈치를 못 채는 게 병신이겠지.
이미 템플러로 변태하는 사이에 마법도 풀려 버렸을 테니 추격대가 들이닥치는 건 순식간일 것이다.
가장 먼저 녀석을 발견한 레인저들이 곧바로 신호탄을 터뜨리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모험가들이 알아볼 수 있는 마력의 폭죽이 하늘에서 펑펑 터지기 시작하고, 한순간 수풀이 흔들리는 것이 보인다.
그동안 촘촘한 포위망을 유지하고 있었던 이들이 일순간 속도를 높이기 시작한 것이다.
이미 인간의 한계를 벗어난 놈들인 만큼 순식간에 해당 지역으로 쇄도하는 것이 보인다. 심지어 이쪽을 지나치는 녀석들도 보여….
“여단이다! 구해주세요!”
라고 크게 외쳤을 정도였지만 지금 가는 선발대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시바 개죽음일 거야.’
모닥불로 돌진하는 불나방이나 다름이 없어 보인다. 진화하기 전이었다면 선봉대가 놈들을 포위한 상태로 대열을 유지하겠지만 쥐새끼들이 뭉친다고 호랑이를 포위할 수 있을까.
아니나 다를까.
“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악!”
“뭐… 뭐야… 이 자식들….”
“도대체 뭐냐고!!”
“지원요청! 지원요청!!! 지원요청해!!! 도대체 뭘 하고 있는 거야!”
“으아아아! 도망쳐!”
“당장 도망쳐! 제기랄!!”
예상했던 것처럼 여기저기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건 아니지? 그렇지?’
“놈들이 이상하다! 조심해!”
“대체 이번에는 뭐냐고… 제길… 이 괴물들은… 대체….”
“하… 하하하하핫! 크하하하하하하핫!”
‘안 오고 있는 거 확실하지?’
“살… 살려줘… 살려줘! 제발! 제발!”
‘엑스트라들은… 죽어도 되는 거 맞지? 미래에 큰 영향을 주는 엑스트라들은 없는 거 확실하지?’
피어나는 불안감에 망원경을 들고 정진호 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검으로 선량한 피해자들을 난도질하는 놈의 악마 같은 면모가 시야에 비쳐왔다.
방금 전의 모습에서 더 변하지는 않은 것인지 여전히 반쪽 몸이 빛으로 둘러싸여 있다.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는 전투, 아니… 전투라기보다는 그냥 일방적인 학살처럼 보일 정도였다.
절대로 단번에 목을 베지 않는다. 이 사이코패스 살인마 자식은 어떻게든 상대에게 고통을 선사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대상의 표정이 고통으로 일그러져 있는 모습을 보고 있는 놈의 얼굴에 구역질 나는 미소가 서린다.
무표정을 고수할 스타일 같아 보였는데 놈은 어떤 충족감을 느끼는 것마냥 황홀해하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명백히 힘에 취한 것이리라.
놈이 주문을 외우며 손을 뻗는 순간, 거대한 빛의 괴물이 땅바닥에서 튀어나와 선량한 모험가들을 아그작아그작 집어삼킨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아아아아악!”
동시에는 검으로 상대를 난도질 하고 내장을 헤집는다. 피가 튀는 게 당연했지만 전혀 개의치 않는 모양새, 오히려 즐기는 듯하다.
자신에게 마지막일지도 모르는 기회가 온 것마냥 최대한 이 상황을 음미하는 것처럼 비쳤다.
대륙에서 온갖 잔인한 것들을 많이 봐온 나였지만 이 미치광이 살인마들은 진짜로 지옥도를 만들어내고 있었다.
“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시바. 이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들….’
“형….”
라파엘과 우정 길드의 눈빛이 느껴진 것은 당연한 수순. 이 어린 용사의 눈은 우리가 지금 이 사람들을 도와야 한다고 이야기하고 있었다. 하지만….
“안 돼요.”
이곳은 우리의 대륙이 아니다. 평행세계의 이야기는 어디까지나 이곳에서 그들 스스로의 힘으로 해결해야 했다.
엄밀히 말하면 그들의 이야기를 외부인이 바꾸는 셈이었으니 초월자의 관점에서 허용될 수 있을 리 만무했다.
그 사실을 녀석들 역시 깨닫고 있을 것이다. 우리는 외부인이라는 것, 우리가 할 일은 그저 이곳에 먼저 빨려들어 온 파티를 구하는 것뿐이라는 사실을 말이다.
하지만….
‘참을 수 있을 리 없자너….’
희생과 부활의 성자가 아무런 죄 없는 이들의 죽음을 가만히 바라볼 수 있을 리가 없었다.
저 미치광이 살인마가 날뛰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리 없었다.
‘인간 같지도 않은 개자식들….’
어떻게 놈들이 선량한 이들의 피로 목욕을 하는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 있겠는가.
어떻게 녀석들이 쾌락을 위해 선한 이들을 학살하는 것을 보고만 있겠는가.
희생과 부활의 성자는 그런 사람이 아니었고, 그런 사람이 될 수도 없었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살려….”
처절한 비명 소리가 귀에 들려온 순간, 당연하게도….
“참을 수 없어….”
주먹을 꽉 쥐며 어떻게든 참아보려고 했지만….
“절대로… 용서 못 해….”
희생과 부활의 성자는 놈들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용서 못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