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77화
여단 조우(5)
“이… 새끼 완전… 또… 또라이 아니야? 이거?”
‘저… 저 미친 새끼…’
원래… 저렇게 미친놈이었었나? 같은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것이 당연했다.
물론 태생이 사이코패스 살인마였으니 미친 구석이 있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정진호는 내가 생각했던 정진호의 모습이 아니었다.
녀석은 기본적으로 본성을 숨기려고 하는 성향이 강하다. 실제로 이성적이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성적인 척 노력을 해왔던 것이 놈의 본모습이었다.
물론 내가 본 녀석의 모습은 고작 2회 차 초반이었지만 마음의 눈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성향은 계산적인 살인마.
그 성향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여전히 녀석은 계산적인 살인마였지만… 지금은 계산적인 살인마의 면모가 보이지 않는다.
본인이 희라 누나라도 되는 것처럼 이성을 잃은 모습으로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여 나가고 있었다.
너무 텐션이 올라가 있어 뇌 속에 약을 치는 효과가 있는 것은 아닌지 심각하게 고민해 봤을 정도.
당연하게도 다시 한번 마음의 눈으로 놈의 모습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스탯은 둘째 치고 확인하고 싶은 부분이 있었으니 말이다.
[플레이어 정진호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외로운 피 웅덩이]
‘시바.’
[플레이어 정진호의 고유기벽을 변화합니다.]
[플레이어 정진호의 고유기벽을 확인합니다.]
[피 웅덩이 속의 구도자]
갑자기 뭔 개소리야. 이 살인마 새끼가 언제 종교적 깨달음을 추구했다고 구도자야? 시바.
-너무 좋아! 너무 좋구나! 하하하하핫! 하하하하하!
‘아니, 시바 이게 뭐야.’
라파엘이 전장에 도착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콰아아아아아앙!!
갑작스레 여기에서도 폭음이 울려 퍼진다. 라파엘이 검과 미치광이 살인마 녀석의 검이 부딪친 것이다.
순식간에 연기와 먼지가 휘날린다. 여기저기서 콜록거리는 소리가 들려왔고 이후에 연기가 걷히며 파티원들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라파엘 그리고 우정 길드, 여전히 찜찜한 얼굴을 하고 있는 안기모 녀석.
너무나 전의를 상실한 모습이라 괜찮을까 싶기도 했지만 할 때는 하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별걱정은 되지 않았다.
-부상자들을!
-아… 이걸 어떻게 이기라고 하시는지… 참… 너무 하십니다. 누가 봐도 괴물처럼 보이는데… 후우… 저는 길드마스터가 아니란 말입니다.
-할 수 있겠어요? 태건 오빠?
-나야. 모르지. 희생과 부활의 성자님의 뜻에 맡길 뿐이다.
-후우… 후우… 완전 괴물이네요. 저거… 바하무트보다는 아니지만….
-저희 상황도 그때보다 좋지는 않습니다. 전력이 조금….
라파엘이 조용히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개자식.
-…….
-저 녀석은 제가 맡겠어요. 나머지 녀석들을 부탁드립니다.
‘애초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어요.’
물론 녀석들을 끝까지 싸우게 할 생각은 없다. 라파엘이 날개를 꺼낸다면 몰라도, 지금 저 파티의 스펙으로 강화된 여단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은 내가 가장 잘 알고 있으니까.
전술이니 진영이니 하는 것들도 어느 정도 레벨이 맞아야 되는 법이지만….
‘지지 않게 만드는 것 정도는 가능하자너.’
-아아아 그래. 그래! 너희들이 있었구나! 하하하하핫! 그는 어디에 있지? 어디에 있나!
-네놈… 목적이 뭐야.
라파엘과 녀석이 대화를 이어나가는 모습이 그다지 반갑지 않다고 느껴졌을 때. 안기모가 적절히 입을 열어왔다.
-완전히 미쳐 버렸군요. 저 녀석… 대화가 통할 상대가 아닙니다. 라파엘 님!
-미쳤다고?! 내가! 내가?! 아니! 그 반대다! 그 어느 때보다도 또렷해진 기분이야. 그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고 있는 것 같아. 드디어! 드디어! 내 정체성을 찾은 것 같은 기분이란 말이다. 흐…흐으… 콜록….
-개소리를….
-이해받음으로써 나는… 완전해질 수 있다. 녀석이 있음으로써 내가 완전해질 수 있는 거야.
‘이 새끼….’
“…….”
‘시바 그냥 비슷한 친구가 필요한 찐따였나?’
조금 저렴한 표현이기는 했지만 그것만큼 녀석을 잘 표현해 주는 단어는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비주얼 자체는 무섭다. 온몸에 피가 범벅이고, 내장조각 같은 것들을 덕지덕지 묻히고 있는 녀석이 침을 튀기며 광소를 터뜨리고 있는데 어떻게 찌질해 보이겠는가.
별별 미친놈들을 다 봐온 내 입장에서도 솔직히 오줌을 지릴 정도로 놈의 분위기는 무섭다.
괜히 안기모 녀석이 이 자리를 꺼리던 것이 아니다. 차라리 몬스터와 부딪치는 것이 덜 부담스러울 지경, 몬스터도 몬스터지만 그런 짐승들보다 더 무서운 것은 저런 진짜배기 미친놈들이 아니었던가.
왠지 모르게 엮이기 싫고, 길거리에서 만나면 피하고 싶어지는 종류의 인간이 바로 지금의 정진호의 모습이었다.
계산적인 이성을 완전히 걷어버린 녀석, 어째서 놈이 갑작스레 저렇게 변했는지도 당연히 깨달을 수 있었다.
지 입으로 그렇게 떠벌리고 다녔으니 눈치채지 못하는 것이 이상하다.
‘진짜… 이해받았다고 생각한 건가.’
-미… 미친 자식!
-죽여주마!! 머저리들!!
‘왜 여단을 창설했는지 알 것 같자너.’
그냥 혼자 상상해 보는 것에 불과했지만 그래도 나쁘지 않은 스토리가 한 편 완성이 된다.
‘그냥 지랑 비슷한 사람 찾고 싶었던 거 아니냐고….’
사이코패스나 소시오패스와는 거리가 먼 내가 놈의 마음을 알 수 있을 리 없겠지만 아마 놈은 자신의 존재 자체에 의문을 느끼고 있었을 거라고 생각했다.
아무리 반사회성장애를 가진 사이코패스라고 한들, 자신에 대해 의문을 느끼지 않았을 리가 없었으니까.
오히려 그 누구보다도 자신에 대해 의문을 느끼면서 살아왔을 것이다.
‘나는 왜 다른 사람들과 다른가’로 시작된 질문은 어렸을 적 놈이 작은 동물들을 죽여 왔을 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미제로 남았을 거다.
자신에 대해 탐구하던 시기를 거치고, 또 거치다 놈은 대륙에 떨어졌고, 어쩌면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이곳에서는 서로를 죽고 죽이는 일이 흔했으니까. 물론 그들과 자신이 차이가 있다는 것은 금방 깨달았겠지만 희망을 버리지는 않았을 것이다.
자신과 비슷한 사람들이 더 있을지도 모른다는 가능성.
그것 때문에 놈은 여단을 창설했다. 애초에 살인여단은 더 문브레이커 녀석들처럼 달을 부순다는 거창한 목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확실한 목표나 방향성이 없는 쓰레기들의 집단이었다.
누군가는 재미를 위해서, 누군가는 복수를 위해서, 또 누군가는 스스로를 알아가기 위해서, 누군가는 종교적 신념 때문에, 또 누군가는 세상에 버림받았다고 생각해서….
정진호는 그저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을 모은 것뿐이었다.
‘그랬는데도 이해받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었자너.’
“쓰레기들도 종류가 여러 가지니까 뭐….”
살인을 즐기는 쓰레기들 중에서도 정진호는 자신과 비슷하다고 생각한 사람들을 찾지 못했던 것 같았다.
계속해서 인간을 목구멍으로 넘기기 여념이 없는 저 돼지도 분명히 정진호와는 다르다.
-으음… 으으음….
그를 역겹다는 듯이 바라보는 마스크를 쓴 여자도 정진호와는 다르다.
-저것 좀 어떻게 하면 안 될까요? 보기 거북한데요?
키가 큰 사내도 분명히 정진호와는 차이가 있다.
-신… 신… 신기하구나… 이 힘은….
그나마 평범해 보이는 녀석도… 정진호와는 다르다.
-저분은 오늘 평소보다 더 드시는 것 같군요. 그런데… 이름이 뭐였더라….
그런 녀석이 위기의 순간에 신을 목도한 것이다.
조금 더 죽이고 싶지 않냐고, 도와주겠다고 말하는 신을….
‘내 표정이 너무 사이코패스 같았었나?’
그냥 평범하게 좀… 장난스럽게 말했던 것 같은데….
‘시바. 좀… 그래 보였나?’
정말로 이해받았다고 생각했는지 주문을 외우며 검을 휘두르는 꼴은 가관, 당연하지만 공격에는 날이 서 있었다.
계속해서 여기저기서 병력이 밀고 들어오는 통에 다른 여단 멤버들이 분산되는데도 불구하고 라파엘은 이를 악문 채로 그를 상대하고 있었다.
‘진짜 여유 없어 보이자너.’
그래도 대륙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강자다. 아무리 날개를 꺼내지 않았다고는 하지만 라파엘이 보여주는 모습은 약간 실망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물론 정진호 쪽에서 진화를 하기는 했지만… 그것 이상으로 이 새끼가 보여주는 모습에 짜증이 치솟는다.
“후우….”
-형?
어째서 한숨이 터져 나왔는지 알고 있는 모양인지,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크게 달라지는 것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평화에 젖었나?’
“하아… 진짜….”
‘이 새끼… 용사파티라고 대접받으면서 싸돌아다니기만 하고… 수련을 너무 게을리한 거 아닌가?’
-…….
검과 검이 부딪치는 순간 커다란 소리가 들려온다.
언뜻 호각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밀린 것은 회색빛의 용사. 라파엘은 언제나 저런 상황에서의 자신감을 가지고 있었다.
그나마 장점이라고 할 게 스테미너와 넘치는 마력, 에너지 같은 것 정도였으니까.
검술에도 능통하기는 했지만 어떻게 봐도 김현성의 수준이라고 하기에는 턱도 없이 부족하다.
여러 가지의 강자를 봐오기는 했지만 라파엘은 그중에서도 가장 애매모호한 검술을 가지고 있는 녀석이었다.
그나마 밸런스 있고 묵직한 기술을 구사하기는 했지만… 김현성과 비견될 만한 검술을 가지고 있었던 쓰로누스나, 기본기에 충실한 템플러 젠에는 미치지 못한다.
심지어 아예 본능과 육체의 재능으로만 승부를 보는 차희라, 우효열이나 바하무트와 비교하자면….
‘피지컬도 애매모호한 편이지.’
가지고 있는 것은 시바 젊음이의 패기 하나.
심지어 이제는 젊지도 않고 점점 늙어가고 있다.
‘이 새끼 손절할 때가 얼마 안 남기는 했어.’
모든 부분이 괜찮은 밸런스 있는 검사이기는 했지만 지금의 녀석은 장점이 다 바래버렸다.
쓸모도 없는데 늙어빠져 피지컬도 떨어지고 있는 놈을 품고 있을 이유가 뭐가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라파엘 이 새끼는 안고 있어 봐야 떡락이 예정되어 있는 주식이었다.
숙성되는 게 아니라 가면 갈수록 썩어가는 종류의 검사다.
‘정 안되면 불러서 한 잔 권하면 되니까. 솔직히 쳐낼 때도 됐고….’
솔직히 정진호가 더 노련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실용적이자너.’
군더더기 없고, 깔끔하고, 위협적이다. 겉멋이 빠져 있고 무척이나 실용적인 검술을 추구한다는 게 느껴질 정도로 녀석의 검은 사람을 죽이는 것에 특화되어 있었다.
검술로서의 완성도는 쓰로누스, 김현성보다 떨어질지 모르겠으나 애초에 저건 검술이라고 부를 수도 없을 것 같았다.
그냥 사람 죽이는 법이지.
부족한 검술을 지원해 주는 것은 주는 것은 여러 가지의 마법, 정하얀처럼 대규모 살상마법을 계속해서 던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놈의 마법은 날카롭고, 자유분방하며, 스펠 하나하나가 치명적이었다.
애초에 저렇게 전투를 진행하며 캐스팅을 외울 수 있는 것만으로도 천재라 불러도 부족함이 없다.
계속해서 빛의 형태를 한 무언가가 바닥과 허공에서 나타날 때마다 라파엘은 몇 발자국씩 뒤로 물러서는 중, 이를 악물고 있었지만 그냥 이를 악물었을 뿐, 다른 것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조금 수비적으로 운영하겠습니다.”
-아니요. 저… 저… 할 수 있어요.
“후우… 아뇨. 제 말 들으세요.”
‘그냥 뒈지시든가. 시바… 이 새끼 진짜 꼴도 보기 싫자너.’
-으득.
‘너 이 새끼 지금 불만 품은 거임?’
억울해 보이기는 했지만 몸은 착실히 내가 이끄는 루트를 따라가고 있는 중, 라파엘이 움직임이 점점 변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근데….’
은근히….
‘강점이 있네.’
김현성에게 무자비하게 처맞았던 기억 때문인지는 몰라도….
‘안 아프게 잘 얻어맞네?’
박덕구나 유아영 같은 탱커와는 종류가 다르다. 양손검을 사용하는 라파엘은 방패를 들지 못했으니까.
커다란 면적을 막아줄 수 있는 쇳덩이가 없지만 녀석은 양손검을 활용하여 선 수비 후 공격에 집중하고 있다.
‘이거… 성장에 여지가 좀 보이는데?’
실제로 이 회색 비둘기는 전투 중에 성장하고 있었다.
본인도 본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는지, 무게중심을 잡으며 전투를 장기전으로 끌고 가고 있는 중, 심지어 수비에서 공격으로 이어나가는 과정이 굉장히 부드럽다. 어떻게 보면 한 동작으로 느껴질 정도로 말이다.
어려운 일이었지만 라파엘이 가지고 있는 장점이었던 균형 잡힌 무게중심이 그걸 가능하게 만든다.
선을 넘지 않게, 상대방이 지치거나 틈을 보이기를 기다리면서, 절대로 흔들림 없이, 뿌리 박혀 있는 거목처럼.
그동안 볼 수 없었던 검술이 녀석의 몸에서 터져 나왔을 때.
‘뭐… 뭐냐구!’
너무나 당연하게도,
‘이 자식 성장하는 거냐구!’
정의를 위해 싸우는 어린 용사를 응원할 수밖에 없었다.
“힘… 힘내세요! 라파엘 님!”
“…….”
“이겨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