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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78화 (1,27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78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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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겨내실 수 있습니다!”

희생과 부활의 성자의 응원이 회색빛의 용사에게 닿은 것일까.

-네!

이를 악물고 힘찬 기합 소리를 내뱉고 있는 라파엘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방금까지 한숨 섞인 목소리를 듣고 있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묘하게 텐션이 업되어 있는 듯한 모습이었다.

‘그래. 솔직히 얘가 열심히 살기는 했어. 암만 생각해도 우리 회색빛의 용사가 나태해질 리 없자너.’

타도 김현성을 외치며 열심히 수련하던 녀석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명하다.

방향성을 찾지 못하고 있었을 뿐, 녀석은 예전에 내가 믿고 의지하던 라파엘의 모습 그대로였던 것이다.

끊임없이 노력하고, 끊임없이 발전하려고 하는 모습, 막다른 길에 다다르더라도 끈질기게 벽을 뚫고 나아가려고 하는 녀석의 기질 때문에 녀석을 용사로 선택한 것이 아니었던가.

다른 사람이라면 몰라도 절대로 우리 라파엘은 타성에 젖을 만한 인물이 아니었다.

‘좋아. 시바. 좋자너.’

정진호와 검을 부딪치는 시간이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점점 더 새로운 움직임에 익숙해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이미 본인도 본인이 달라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는 상태였던 만큼 스스로 길을 찾아가기 시작한 것이다.

김현성은 녀석의 재능이 형편없다고 말하기는 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김현성이라는 천재의 기준점이 높기 때문이었다.

하나하나 엄밀히 따지고 들어가면 라파엘도 엄연히 천재의 영역에 발을 걸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맞다.

실시간으로 라파엘은 검술이 아니었던 것을 검술로 정립하기 시작한다.

많은 이들의 검을 보고 배운 경험, 김현성에게 처맞은 기억을 포함한 수많은 전투를 바탕으로 자신에게 맞는 검을 찾아 나서고 있는 것이다.

진짜 천재들이 만들어내는 수준에 비하면 비록 어색하고 부족하기는 하지만, 녀석은 이제야 자신의 것을 만들어내고 있다.

아직 젊은 나이를 생각하면 어처구니없을 정도의 성장세였다.

‘시바. 그거라고.’

-후우… 후우… 윽….

‘시바, 그거라고! 파엘아!’

콰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

퍼어어어어어어엉!!

당연하게도 주변은 이미 폐허가 되어가고 있었다.

우정 길드나 안기모, 그리고 녀석들과 맞서고 있는 여단원들에게까지는 영향이 미치는 것 같지 않았지만 평범한 모험가들은 다가올 수 없을 정도의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조금 의아했던 것은 정진호의 얼굴에 짜증이 들어서 있었다는 것.

우효열처럼 전투를 즐기는 타입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건 또 아니었던 것 같았다.

전투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걸 더욱더 중요시하는 것 같은 느낌.

어서 빨리 라파엘을 치워 버린 이후에 다른 놈들도 썰어버려야 할 테니 어찌 보면 놈이 짜증을 느끼는 것도 당연했다.

‘시바. 잘하고 있어! 라파엘!’

놈을 초조하게 만들기 위해 계속해서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마음에 든다.

그 와중에 엄살을 부리고 있는 안기모만 아니었다면 무척 만족스러운 전투가 되었을 것이다.

-으아아악! 이 새끼 진짜 마음에 안 듭니다! 부길드마스터!

-먹어도 될까? 너… 먹어도 될까?

‘아니, 좀 조용히 좀 해. 이 새끼야.’

-지원 좀 팍팍 해주시면 너무 감사할 것 같습니다.

‘지금 파엘이한테 지원할 손도 부족한데 무슨….’

혹시나 해서 잘 버티고 있나 고개를 돌려봤지만 별 이상은 없다. 오히려 여유가 있어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엄살을 부리고 있는 녀석.

한 합, 한 합에 목숨이 오가고 있는 라파엘을 보면서도 부끄럽지도 않은 것일까.

“라파엘 님. 잘하시고 계세요!”

-네!

“조금만 더….”

-괜찮아요. 형. 버틸 수 있어요. 그리고… 분명 기회가 올 거예요. 저 녀석… 지금 조급해 보이거든요.

“네?”

-이유는 모르겠지만 급해 보여요. 놈의 검이 불안에 떠는 것이 느껴져요. 한번… 기회는 분명히 넘어올 거예요.

“그게 무슨….”

-바로 지금!

‘함정이잖아. 이 멍청한 새끼야.’

“그건 함정!”

이라고 말을 꺼냈을 때였다. 계속해서 수비적인 스탠스를 유지하던 라파엘이 어느 순간 태세를 전환한 것이다.

공세로 전환하는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다. 녀석은 확실하게 정진호의 검을 쳐냈고, 정진호는 빈틈을 드러냈으니까.

엄밀히 말하면 정진호에게 위기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입이 찢어지라 웃고 있는 놈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시바. 니가 잘 안 깨지니까. 일부러 낚은 거자너 이 멍청한 새끼야.’

칭찬해 주니까 시바 지가 뭐라도 되는 줄 알고… 시바!

성장한 것은 좋지만 너무 텐션이 올라왔다는 것이 문제, 아무래도 끌어 오르는 혈기를 참을 수 없었던 모양인 것 같았다.

정진호를 쓰러뜨려 자신을 증명하고 싶었던 건지 모르겠지만 지금 라파엘의 한 수는 악수라 부르기에 충분했다.

‘저 새끼 싸울 때는 머리 쓴다고!’

한순간 무너진 균형.

‘시바 그냥 버티기만 하면 되는 거였는데!’

-아!

-드디어 잡았다. 이 지겨운 거북이 같은 새끼!

-제… 제기….

푸욱 하는 소리와 함께 라파엘의 가슴에 정진호의 검이 들어간다.

가까스로 몸을 비틀어 심장을 피한 것 같기는 했지만 몸을 움직일 수 없는 것은 마찬가지.

녀석이 라파엘의 가슴에 박아놓은 검을 벽에 꽂아 넣자, 회색빛의 용사가 꼼짝달싹 못 하는 꼴이 되어버렸다. 마치 채집된 곤충처럼 보인다.

이후 움직임을 속박하는 스펠까지 이중으로 때려 박으니 절체절명의 위기라 해도 무리가 없는 상황, 정진호가 허리춤의 걸려 있는 검 중에 하나를 꺼내 검을 휘두르는 것이 보인다.

“김태건!”

라파엘을 구하기 위해 재빠르게 달려드는 김태건에게 말이다. 순식간에 보급형 박덕구의 한쪽 팔이 하늘로 치솟았다.

‘시바. 방패째로 잘렸어.’

방어력이 나쁘지 않아 보였는데.

-으으윽….

-훌륭하구나! 비명 한번 지르지 않다니!

-제길… 태건 씨!

이를 악문 라파엘이 곧바로 회색의 날개를 꺼낸다. 그것 외에는 선택지가 없다는 걸 깨달았겠지.

녀석은 날개를 활짝 펼쳤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놈을 구속하고 있는 모든 것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펑펑 소리를 내며 회색 비둘기를 속박하고 있는 마법이 깨진다.

결국에는 모든 날개를 꺼낸 이후에 검을 들고 정진호를 노려보는 라파엘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바 이 멍청한 새끼….’

꺼내지 말라니까. 시바.

라파엘의 날개를 본 정진호의 눈이 조금 변한 것 같은 느낌. 희생과 부활의 신 같은 존재감은 아니었지만 라파엘의 날개 역시 신비로운 존재감을 뿜어내기는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문제는 정진호가 아니다.

라파엘이 날개를 꺼내는 것을 목격한 사람이 있느냐는 것.

“…….”

멀리서 이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레인저의 존재, 숨이 끊어지기 직전의 상태에서 이 전투를 바라보고 있는 갤러리들….

때마침 김현성이 달려오고 있는 것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한테 들키면 안 되는데….’

-죄송해요… 형….

“날개 집어넣고 전열을 정비하겠습니다.”

-네….

“김태건 님도 팔 주워서 돌아오세요.”

-으윽… 네.

-정말 후퇴하는 겁니까?

‘저 새끼는 기다렸다는 듯이 도망치자너.’

문제는 놈들이 우리를 쉽게 보내줄까에 있었지만….

‘뭐?’

오히려 반대쪽으로 뛰는 정진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시바… 뭐야. 도대체.’

파티의 탱커가 무너졌고, 라파엘도 큰 상처를 입었다. 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라파엘 파티를 마무리하는 것이 맞는 선택이다.

전열을 정비하면 다시 한번 자신의 발을 묶을 가능성도 존재했고, 이러나저러나 라파엘과 우정 길드원들은 까다로운 상대였으니까.

하지만 놈의 시선은 다른 쪽에 고정되어 있었다. 원을 그리며 이 전투를 구경하고 있었던 포위망, 아직 숨이 끊어지지 않은 병사들.

상처 입은 라파엘 파티보다 더욱더 사냥하기 쉬운 상대적 약자들….

-꺄아아아악!

-아아아아아아아악!

-살… 살려줘….

-흐윽… 죽고 싶지 않아… 제발… 제발 살려… 누군가….

-으아아악!

-도망쳐… 도, 도망쳐!!

여전히 녀석은 웃고 있다. 다친 다리를 이끌고 어떻게든 도망치는 이들의 머리를 붙잡고 그대로 목에 검을 집어넣는다.

-하나!

방패를 든 전위들이 들이닥치지만, 김태건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방패째로 보급형 박덕구들의 허리를 갈라 버린다.

-둘! 셋!

겁을 집어먹고 몸이 굳어버린 마법사의 손을 자르고 그대로 목을 날린다.

-넷!

더 이상의 전투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 무조건 몸을 뒤로 빼내는 부대원들을 사냥하듯이 쫓아가 기어코 놈들의 몸에 검을 찔러 넣고 있었다.

-다섯! 여섯! 일곱!

-도… 도와줘… 누가… 살… 살….

-여덟! 흐… 흐흐흐!

전투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 눈에 보이고 있는 것은 그냥 일방적인 학살이었다.

-열둘! 열셋!

캐스팅을 외우자 병력들이 뭉텅이로 휩쓸려 나간다.

-삼십오? 흐…흐흐흐… 하하하핫!

-형… 저… 저 녀석.

‘지랄 말고 그냥 와.’

“저는 분명히 후퇴하라고 말씀드렸습니다.”

-…….

“후퇴하세요. 상처를 치료하는 게 먼저예요.”

‘그리고 넌 시바 투 아웃이야.’

라파엘과 우정 길드원은 차마 저 모습을 바라볼 수 없는 모양인 것 같았다.

여단원들 역시 녀석을 따르고 있을 뿐, 우리 파티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 심지어 몇몇은 뿔뿔이 흩어지기까지 하고 있다.

애초에 머리를 잃은 녀석들을 통제할 수 있을 리 만무, 그나마 여단장으로서 놈들을 컨트롤하고 있었던 정진호조차 저 모양 저 꼴이 되었으니 헐거운 목줄을 하고 있던 짐승들이 사방으로 쏟아진 것이다.

이미 분에 넘치는 힘을 얻었으니 지들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겠지.

어쩌면 정진호 역시 그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김현성이 자리를 빠져나간 여단원 한 명과 마주친 것이 시야에 비쳤으니 말이다.

‘시간을 벌고 있는 거야.’

사이코패스 살인마는 한 사람이라도 더,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이들을 죽일 수 있는 시간을 벌려는 것처럼 보였다.

병력이 밀집되어 있는 곳을 최대한 피하고, 쉽게 사냥할 수 있는 이들을 먼저 노리고 있었다.

사냥감이 되어 몰이를 당하고 있는 녀석이, 어느새 사냥꾼이 되어버린 것이다.

딱히 뾰족한 수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곧바로 메시지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제일 멍청해 보이는 새끼한테….’

아직도 목구멍으로 계속해서 시체들을 욱여넣고 있는 놈. 몬스터인지 인간인지 구분이 안 가는 새끼.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정진호를 죽여(0/1)]

[플레이어 말틴 오시맨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어… 어? 어어어…어엉?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그럼 날 먹게 해줄게(0/1)]

[플레이어 말틴 오시맨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멍청한 돼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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