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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79화 (1,27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79화

배신(2)

입이 찢어져라 웃고 있는 멍청한 돼지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무조건 될 것 같자너.’

딱 봐도 생각 없어 보이는 녀석이었고, 탐욕스러운 녀석이었다. 처먹는 것 외에는 관심도 없을 것 같은 돼지. 겉모습은 역시 생각이라는 걸 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습이 아닌가.

미식을 즐기는 건지, 아니면 그냥 식욕에 휘둘리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어느 쪽이라고 해도 상관없다. 신의 성체를 먹게 해줄 수 있다는 건 놈에게 무척 매력적인 제안임이 분명했다.

고작 피 조금 마신 것만으로도 이 정도로 격정적인 변화가 있었다. 심지어 녀석이 피를 마시고 입맛을 다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 상황, 사실 제대로 보지는 못했지만… 침을 질질 흘리는 것만으로도 놈이 내 제안을 받아들일 거라는 것을 눈치챌 수 있었다.

찢어진 입으로 녀석이 입을 연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나간 직후.

-거… 거짓말.

예상과는 조금 다른 답변이었다.

‘아니….’

-거짓말… 이잖아.

‘거짓말 아니야. 시바.’

[진짜야…. (0/1)]

[플레이어 말틴 오시맨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하지 않았습니다.]

-보… 보상 없어. 거짓말이야.

‘이 새끼 시바.’

-단… 단장, 강해…. 나… 보상 없으면… 안 해. 세상에 거짓말쟁이들 너무 많아. 절대로 안 속아.

“…….”

-보, 보상 있으면… 생각해 볼 거야.

“…….”

-단장… 무서워… 죽을지도 모르는데… 거짓말… 안 해.

‘뭐냐고 이 돼지. 진짜… 아 보상 달기 진짜 찜찜한데….’

김현성을 퀘스트 보상으로 붙잡아 놓은 것만 생각해도 신의 약속이라는 것의 무게감은 평범한 약속과 궤를 달리한다.

만약 저 돼지가 정진호를 죽인다면 그대로 몸을 내줘야 하는 상황에 처할 수도….

‘있다는 거자너… 시바 여기 있는 새끼들 중에 제일 똑똑하자너.’

다른 놈들은 퀘스트 뜨자마자 득달같이 달려들었는데 유독 이 새끼만 이성적이다.

[전설 등급의 강제 퀘스트를 생성합니다.]

[정진호를 죽여(0/1)]

[플레이어 말틴 오시맨에게 전설 등급의 퀘스트를 전달합니다. 퀘스트 클리어 보상을 등록합니다.]

[보상을 확인합니다.]

[성체]

‘…….’

-거, 거짓말 아니야. 흐으….

찜찜하기는 몇몇 희망이 보이는 놈들에게도 퀘스트를 보낸 것은 당연지사. 받아들일지 받아들이지 않을지는 어차피 상관없다. 어차피 충성심이나 팀 스피릿 같은 게 없는 집단이었으니까.

놈들이 분열되지 않았던 것은 어디까지나 머리의 존재와 정진호가 녀석들을 잘 통제하고 있기 때문이었다. 거부하기 힘든 것을 던져 준다면, 냉큼 받아먹을 수 있을 거라 장담할 수 있다.

연락을 받은 놈들 사이에 괜스레 긴장감이 감돈다.

지능적인 돼지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 능청스럽게 닭다리 집듯이 사람 다리 하나를 가지고 달리고 있었지만 마스크를 쓴 여자와 평범해 보이는 남자 둘이 시선을 주고받고 있는 것이 확실히 시야에 비쳐왔다.

아마 대충 눈치를 챘을 것이다. 함께 행동하기를 원하는 동료가 있다는 것은 이야기해 주지 않았었지만 이상한 행동이라면 금방 눈에 띄게 마련이었으니까.

‘탐이 날 거야. 욕심 많은 놈들이니까. 분명히 탐낼 거야.’

욕망에 충실한 녀석들이다. 각자 원하는 바가 뭔지는 몰라도, 저 정도까지 성장한 플레이어가 힘에 대한 갈망이 없을 리 없었다.

정진호의 경우에는 그걸 내려놓은 것처럼 느껴지기는 했지만… 적어도 여단 내에는 이기영 솜사탕을 원하는 놈들이 많을 거라고 생각했다.

‘상품이 무려 어린 신의 성체자너…. 송빌런두 탐냈었다고… 이 새끼들이라고 다르겠냐고.’

평범하게 생긴 녀석이 검을 움켜쥔 것은 정진호가 다음 사냥감을 향해 몸을 날렸을 때였다.

‘훌륭한 기습.’

마스크를 쓴 여자 또한 곧바로 평범하게 생긴 녀석에게 호응해 온다. 사전에 말을 맞춘 것도 아닌데도 불구하고 완벽한 타이밍의 합격술이 뻗어 나왔다.

동료의 습격에 대해 전혀 예상하지 못했는지, 아니면 사냥을 하기 위해 다른 곳에 집중할 여력이 없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정진호의 옆구리에는 놈의 칼이 박힌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흐… 흐흐….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실 쪼개고 있는 정진호의 모습은 확실히 놈이 미쳤다는 걸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래… 너희들도 죽여야겠지.

배신을 당한 충격 같은 것은 당연히 보이지 않는다.

평소에 여단원들을 어떻게 생각했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피 웅덩이 속에 구도자가 된 이후에는 녀석들도 그냥 사냥할 대상으로 보이는 것이 아닐까. 아니면 그냥 머리가 뜨거워져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았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심지어 통수를 친 녀석들 너무나 자연스럽게 반응하고 있었다.

-후우… 확실히… 눈치가 빠르시군요. 확실히 심장을 노린 것 같았는데… 근데 이거 어떻게 해야 죽는 겁니까?

-목을 날리면 회복할 수 없겠죠. 아니면 심장을 찌르거나… 그래도 목을 날리는 게 제일 효과적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회복력이 괴물같이 올라갔으니까요. 저것도 금방 회복되잖아요?

-저희도 목만 조심하면 된다는 거군요. 이거 영 불리한 싸움은 아니게 된 것 같습니다.

-동감. 사실 그동안 궁금한 것도 있었거든요. 단장이 강하다는 건 알고 있기는 했지만… 어느 정도인지… 시험해 볼 때가 온 것 같네요.

-뭐 단장이라고 다르겠습니까. 목이 잘리면 죽는 건 다 똑같은데….

키가 큰 멀대 녀석은 아직도 노선을 정하지 못했는지 멍하니 정진호와 배신자 둘을 살펴보고 있다.

-어….

-함께하시겠습니까?

-으… 으음….

-근데 당신… 이름이 뭐였죠?

-으… 응… 응.

이미 세 명이 정진호에게 붙었다. 남아 있는 특징 없는 놈들에게도 계속해서 메시지를 보내자 결심했는지 마스크를 쓴 여자 쪽에 붙는 놈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조금 불안한 점이 있었다면 가장 처음에 꼬신 돼지가 몸을 숨기고 있었다는 것이었다.

커다란 나무 뒤에 숨겨지지 않은 몸을 웅크리고 여전히 살점을 뜯어먹고 있는 놈.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지만 개싸움에는 합류하지 않겠다는 의지가 전해져 온다.

‘저 새끼가 제일 먼저 죽어야 되는데. 시바… 다른 애들은 몰라도 저 새끼는 진짜 죽어야 되는데….’

저 돼지가 자신을 향해 뚱뚱한 손을 뻗을 준비를 한다는 걸 아는지 모르는지, 녀석은 눈앞에 있는 놈들을 향해 이빨을 드러내기 여념이 없었다.

-흐… 흐흐흐… 하하하하핫!

나지막히 웃던 녀석이 광소를 터뜨리며 몸을 움직이는 순간, 여단원들이 순식간에 놈을 포위한 채로 달려들었다.

정진호의 검을 휘두르자, 평범한 인상의 남자의 손가락이 잘려 나갔지만 남은 손으로 검을 주워 다시 한번 검을 내질렀다.

잘려 나간 손가락 따위는 상관도 하지 않는 모습, 그야 곧바로 회복이 된다는 것을 이미 확인했으니 신경 쓰는 것이 이상할 것이다.

다른 놈들도 마찬가지, 기본적으로 몸에 상처가 생기는 것을 의식하지 않고 있다. 팔다리가 날아가는 것도 개의치 않는다. 곧바로 자신의 팔을 적합 부위에 붙이는 놈이 있는가 하면, 아예 새로 낫기를 기다리는 녀석도 있다.

‘시바. 회복력 뭔데.’

초재생력이라고 불러도 부족하다. 시간을 되돌린 것처럼 없었던 팔이 본래대로 복구되는 모습은 신기함을 넘어 경이롭다.

‘이게 템플러의 힘이자너.’

-제기랄! 벌써 팔이 두 번이나 날아갔잖아! 이 새끼야!!

-흥분하지 마요. 어차피 장기전으로 들어가면 무조건 우리가 이기는 싸움이니까.

-추격대도 오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이거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죽여야죠. 뭐.

-으… 응….

-단장도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요?

그 말대로, 곧바로 달려 들어오는 놈들에게 주문을 외우는 놈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다른 여단원들도 다르지 않다. 주변을 정리하는 게 먼저라는 생각은 변함이 없는지 계속해서 장소를 이동하며 사냥감들을 죽여 나가고 있었다.

‘미친….’

그 와중에도 계속해서 서로에게 검을 주고받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도대체 이게 뭔 상황인지 제대로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 심지어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상처 입은 몸이 모조리 회복된다.

물론 초조하지는 않았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저 모든 행동들이 전부 에너지를 소모하고 있는 행동이었으니 말이다.

‘부작용은 올 거야! 분명히 올 거야!’

데미지를 입는 것은 여단원들뿐만이 아니다. 정진호의 몸에도 계속해서 상처들이 쌓이고 있었다.

팔이 날아가거나 다리가 날아가는 종류는 아니었지만 허벅지나, 옆구리에 검이 관통한 상처들이야 많다. 다대일 전투인 만큼 팔이 잘리는 게 곧 목이 날아간다는 것과 같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이해하고 있는 것이다.

심지어 녀석은 여단원들에게만 신경 쓸 수 없다. 더 많이, 더욱더 많이 한 놈이라도 더 데려가야 했으니까.

-아아아아! 벌써 다섯 번째야…. 제길… 왜 자꾸 한 번에 잘려나가는 거냐고! 빌어먹을!

-어차피 금방 회복되잖아요! 엄살 부리지 말고 빨리 들어가!

-응… 으응….

-멀대! 당신 말고요!

-알… 겠다….

-모두 신중해지세요. 다들 알고 계시겠지만 회복속도가 늦어지고 있습니다. 뭐… 그만큼 회복됐으니 이상하지도 않지만… 궁금하지 않습니까? 한 모금 마신 걸로 이 정도로 극적인 반응이 일어나는데… 그 몸속에 있는 피를 전부 마시면 어떻게 변 할지….

-…….

-이크… 제법 날카로웠습니다. 단장. 어?

-…….

-…….

-…….

-이… 런… 제… 기….

평범한 녀석의 목에 실선이 생겨나더니 그대로 목이 분리된다.

-목… 목이 잘렸네…. 제… 길… 이건… 회복… 안 되려나? 아아… 죽기 싫은데….

심지어 목이 잘려 나간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입을 열고 있는 꼴은 가관, 그 모습을 본 다른 여단원들이 다시 한번 녀석에게 달려든다.

정진호는 떨어져 나간 남자의 머리를 발로 터뜨린 이후에 검을 던졌다.

-율리에나야! 조심해!

-나도 봤어요! 버프 걸어줄 테니까. 몸으로 막아요!

-제길!

한 녀석의 가슴이 율리에나에 의해 뚫린다. 아직 살아 있었지만 전세가 기우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한 놈이 죽었고, 한 놈은 중상. 이제는 좀처럼 곧바로 회복이 되지 않는다.

이상했던 것은 정진호는 아직까지 힘을 크게 상실하지 않았다는 것, 물론 초반과는 확실히 차이점이 있었지만 그걸 감안하고서라도 다른 이들에 비해 힘을 잃는 속도가 저조했다.

‘신앙과 관련이 있나?’

조금 더 마셔서 그럴 수도 있지 않나.

‘그래도….’

“지쳤어.”

같은 템플러인 여단원들과 함께 드잡이질을 했으니 한계가 오지 않을 리가 없다. 새로운 힘 때문에 본인이 인지하고 있지 않을지는 몰라도, 정진호는 확실하게 지쳐 있었다.

돼지새끼가 갑작스레 몸을 일으킨 것은 바로 그때.

‘어?’

잠깐의 정적, 정진호와 여단원 둘 모두가 잠깐 숨을 고르고 있었던 찰나. 너무 짧은 순간이라 제대로 파악할 수 없을 정도에 돼지가 정진호에게 몸을 던지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안… 안 돼! 시바.”

계속해서 몸을 웅크린 것은 추진력을 얻기 위함이었을까.

내 생각보다 더 엄청난 속도로 쇄도하는 돼지새끼의 움직임은 마치 김현성을 떠올리게 했을 정도, 거대한 덤프트럭이 돌진하는 것 같은 박력에 저도 모르게 불안한 눈빛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

‘시바 왜케 빨라!’

심지어 정진호도 제대로 반응하지 못하는 것이 시야에 들어온다. 미리 메모라이즈 된 주문을 발동시키기는 하지만, 돼지의 내구가 상상 이상인지 놈의 속도를 떨어뜨리지 못했다.

커다랗게 벌린 입.

정진호의 머리를 한순간에 삼켜 버릴 것처럼 크게 벌려진 아가리는 누가 보기에도 인간이라고 하기에 무리가 있다. 그, 정진호의 눈빛에 당황스러움이 서린다.

“안 돼! 시바! 안 돼!!!”

어쩌면 진짜로 돼지에게 먹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감돌았을 때.

콰드드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정진호가 뒤로 나가떨어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누군가 정진호를 구한 것이 아니다.

-뭐야? 이 새끼들 뭐 하고 있어?

‘희라 누나?’

-아니, 내가 지금 정진호를 도와준 건가? 혹시 너희들 서로 싸우고 있었어? 단원들이 단장 배신 때리고? 딱 봐도 그렇게 보이는데….

“…….”

-이 새끼들 완전히 괴물이 됐네.

그리고,

-아무래도 서로 전투 중이었던 것 같습니다. 차희라 님.

그녀와 함께 온 김현성도 눈에 띄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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