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83화
옳은 방향(3)
‘저… 저 미친놈….’
다시 한번 숨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이건 또 뭐냐고… 시바….’
내가 내린 퀘스트마저 올바른 방향으로 가기 위한 정사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당연지사.
내가 내린 퀘스트로 녀석의 이야기가 완성됐다.
핏물이 고인 눈으로 하늘을 바라본 채 눈을 감은 녀석의 모습은 뭐라고 형용할 수 없는 기분을 느끼게 했다.
등 뒤로 오싹한 무언가가 느껴진다. 놈의 마지막도 마지막이었지만 내 의도와는 상관없이 맞춰진 기이한 퍼즐이 이질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할 말을 잃은 채로 현 상황을 바라보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아직도 놈의 눈에는 핏물이 고여 있었다. 마지막으로 바라본 세상이 퍽이나 아름답게 비쳤는지는 몰라도 입가에도 비릿한 미소를 흘리고 있었다.
심지어 죽은 것 같지 않다. 놈의 초점이 또렷하게 위를 향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미 몸이 식어가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금방이라도 벌떡 일어나 다시 한번 검을 휘두를 것 같아 보였다.
‘시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퀘스트를 내리지 않았으면 결과가 달라졌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는 했지만 어차피 의미가 없는 질문이다.
결론을 내리지는 못 했지만 이미 한번 생각을 정리한 상태였으니까. 달라진 것은 없다.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주변 분위기 때문인지는 몰라도 조금 착잡한 기분이 든다.
-…….
-…….
-…….
분명히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환호성 같은 것은 들리지 않는다. 드디어 정진호를 잡았다는 말이나, 여단의 끝을 알리는 폭죽이 터지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전투의 끝을 알리는 신호탄이라고 보기에는 너무나도 조용한 장내는 주변 사람들이 녀석의 최후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실감하게 하고 있었다. 모두가 다 질렸다는 표정이다.
지구와는 전혀 다른 곳에 떨어져 살인이나 범죄행위에 무감각해진 플레이어들도 정진호의 모습을 보고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있었다.
어처구니없지만 분위기는 마치 녀석을 추모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서로 눈치만 볼 뿐, 정진호의 죽음에 기뻐하지 못하고 있었다. 아니, 진짜로 녀석이 죽었다는 것 역시 믿지 못하고 있었다.
‘확실하게 죽었자너.’
김현성도 그런 분위기에 동화되고 있는지 말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조용히 중얼거린 목소리가 장내에 울려 퍼졌다.
-저거… 진짜로 죽은 거 맞아?
-…….
-…….
-누가 가서 확인 좀 해봐.
-제길… 네가 가라고. 나는 가기 싫으니까.
-누가 좀 확인 좀 해보라고! 저거 진짜로 죽은 거 맞아?
-이… 이 겁쟁이 새끼들….
저벅저벅 걸음을 옮긴 것은 명령을 받은 녀석이었다.
길드마스터로 보이는 녀석도 직접 확인하기는 싫은 모양인지, 쉽사리 발걸음을 옮기지 않는다.
무척 조심스럽게 정진호의 옆으로 이동한 녀석은 조용히 정진호의 코끝에 손을 가져다 댔다. 정진호의 시신이 중력을 이기지 못하고 다시 한번 바닥으로 쓰러지자.
-으아아아아아아악!
하는 소리와 함께 비명을 내지르며 줄행랑을 친다. 평소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그 꼴을 보고 비웃음을 보냈겠지만 여기서 녀석을 비웃는 이들은 아무도 없다.
그야 본인들도 저 꼴사나운 녀석과 별다른 점이 없다고 생각했겠지.
-확인했어?
-숨, 숨은 쉬지 않는 것 같았습니다.
-아니, 그래서 죽었냐고! 살았냐고!
-죽, 죽었습니다! 죽은 것 같았습니다!
-같았습니다?
-확, 확실하게 죽었습니다.
-시… 시체 수거해.
시체를 수거하는 운반책들도 방패를 들고 정진호에게 접근하는 꼴을 보니 웃음이 다 나올 지경, 이윽고 확실히 녀석의 죽음을 확인한 놈들이 서로 고개를 끄덕이기 시작했다.
-정진호 사망 확인했습니다!
하는 목소리가 들린 이후에야 긴장이 풀렸는지 한 차례 숨을 내뱉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보였다.
당연하지만 꽤 기뻐 보이는 모습, 이후 논공에서 받을 재화나 보상을 생각하고 있음이 틀림없겠지.
-우리가 잡았다! 제길! 우리가 정진호를 잡았다고!
-하하하하핫! 좀 더 웃어. 웃으라고 이 새끼들아! 그 괴물 새끼를 우리가 잡은 거니까! 희생은 조금 있었지만… 그래도 우리가 정진호를 잡은 거야!
-하… 하하하….
-다들 축하해야지. 응? 몬스터 새끼보다 더 괴물 같은 새끼였는데 말이야. 퉤. 어이, 거기… 파란 길드마스터는 좀 아쉬워 보이네?
-그렇지 않습니다.
-그런데… 표정이 좋아 보이지 않는데. 시체를 제국한테 바치지 못해서 아쉽기라도 한가 봐. 응? 이런 건 원래 우리 제국의 영웅의 몫인데 말이야. 이번에는 어떻게… 우리가 더 운이 좋았나 봐.
-…….
-혹시나 해서 하는 말인데 여기에는 관심 가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네가 녀석이랑 한바탕했든 말든 간에 관계없이 결국 녀석을 죽인 건 우리니까.
-아니요. 그렇지 않습니다. 딱히 그저… 그냥 믿기지 않을 뿐입니다. 그 정진호가 죽었다는 것도, 이걸로 여단이 완전히 끝났다는 것도… 솔직히 믿기지 않습니다. 공을 훔칠 생각은 하지 않았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그럼….
-…….
-…….
-쳇. 재미없는 자식.
김현성은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한참이나 빤히 정진호의 시체를 쳐다보기는 했지만 주먹을 꽉 쥘 뿐 다른 분풀이는 하지 않았다.
정말로 믿지 못해서라기보다는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마 궁금한 것이 많았을 것이다. 어째서 자신을 괴롭힌 것인지부터 시작해서 풀리지 않은 의문들이 많이 남아 있었겠지.
하지만 답을 줄 수 있는 정진호는 이미 죽었다. 게다가 김현성 나름대로도 아마 결론을 내리지 않았을까. 딱히 아무런 이유도 없었다는 것으로 말이다.
정진호가 그냥 미친놈이었을 뿐이다. 녀석은 근본부터 다른 존재였고, 이해할 수 없는 놈이었다는 걸로… 그렇게 마무리했을 확률이 높다.
내가 보기에도 저 인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으니 말이다.
놈은 벼랑 끝에 선 순간, 자신을 이해해 주는 이해자를 만났다고 생각했지만 아쉽게도 그렇지 않다.
이 자리에서 정진호를 이해할 수 있는 인간은 아무도 없었다.
‘뭐… 대충 마무리됐네.’
전투에서 죽은 시신을 수습하고… 여러 가지 뒷정리가 남아 있기는 하지만 뭐….
‘이 정도면 깔끔하게 마무리된 건가.’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저… 형.”
‘얘 아직도 이러고 있었네.’
“일은 어떻게 된 건가요?”
“녀석은 죽었습니다.”
“네?”
“포위당한 채로 화살에 맞아 죽었어요. 제 눈으로 직접 확인한 사항이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
“허… 그 사이코패스 살인자 놈이 정말로 죽은 겁니까?”
“네. 그런 것 같네요.”
“그럼 저희는… 이제….”
“글쎄요. 일단 이주혁 님과 마리엔 님을 찾아야 되지만… 지금 상황에서는 쉽게 찾을 수 있을 것 같지가 않네요.”
“그… 이곳에 붉은 용병에게 협력을 요청하는 건 어떻겠습니까?”
‘아… 시바 약속.’
그래도 반은 지켰다. 결과적으로 파란과 붉은용병은 화해 아닌 화해를 한 것처럼 보이기도 했고, 이유야 어찌 됐건 그녀가 정진호를 마주한 것도 사실이었으니까.
‘연락도 내가 넣었으니까. 대충은 알고 있겠지.’
“그것도 괜찮겠네요. 일단 적당히 무리에 섞이는 게 좋겠어요.”
“이대로 도시로 들어가실 생각이십니까?”
“네. 일단 린델로 향하는 게 좋겠어요.”
“그 말씀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사실 아까부터 몸이 너무 찝찝해서 말입니다. 몇 시간 전부터 목욕을 그렇게 하고 싶었는데… 푹신푹신한 침대도 그립고… 제 입으로 이런 말 하기는 조금 그렇기는 하지만 부길드마스터도 저와 같은 심정 아닙니까?”
‘솔직히 그렇기는 한데….’
이 새끼랑 똑같은 생각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니까 괜히 자존심 상하자너.
“중간에 라파엘 님의 파티를 찾으면 금방 돌아갈 거예요. 이제 곧 이 지역에 있는 봉쇄령도 해제될 테니… 이주혁 님과 마리엔 님도 금세 찾을 수 있겠죠. 제가 지금 찾고 있기도 하고요.”
말 그대로 숲을 샅샅이 뒤지는 중이었다.
여단을 찾을 때처럼 큰 힌트가 있는 것은 아니었지만 사람들 속에 섞인 파티 하나를 찾는 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여러 개로 나뉜 캠프도 전부 제 갈 길을 갈 테니 아마 이주혁이나 마리엔 같은 경우에는 린델로 향할 가능성이 높지 않을까. 일단 익숙한 곳으로 가고 싶어 할 테니 말이다. 어쩌면 처음 소환된 장소로 찾아올지도 모르겠다.
“일단 무리에 합류해요.”
“하하하. 네. 그렇게 하겠습니다.”
‘아주 싱글벙글 신났자너. 이 새끼 괜히 얄밉게….’
“아영 씨. 부길드마스터 좀 부탁드려도 되겠습니까?”
“아… 네. 기모 씨.”
“아니, 아영 씨 말고 기모 씨가 들어요.”
“네?”
‘어딜 시바 편하게 가려고.’
“어차피 가볍잖아요.”
“하아… 네. 알겠습니다.”
왠지 모르게 조금 아쉬워하는 유아영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지만 지금은 최대한 안기모 녀석을 귀찮게 만들고 싶었다.
그렇지 않아도 어린 몸으로 끊임없이 눈깔을 돌리고 있는데, 가장 꿀을 많이 빤 것 같은 녀석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계속해서 녀석의 등 뒤에 탄 채로 눈알을 돌리고 있었던 그때였다.
‘찾았….’
누군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은 시선이 느껴진 것. 정확히는 내가 녀석을 살펴보고 있었을 때, 녀석 역시 나를 바라보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놈은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을 알지 못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무언가가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 시바. 안 왔을 리가 없지. 직접 눈으로 확인하고 싶었겠지.’
“계획은 취소하겠습니다.”
“네?”
“지금 곧바로 돌아갈 거예요.”
“네? 지금 당장 말입니까?”
“그, 그게 무슨 소리예요? 형?”
“일단 지금 돌아간다고!”
누군가가 망원경을 추적하고 있는 것이 느껴진다.
‘예상은 했지만 시바… 역시 계약한 상태였구나.’
녀석이 아니라 더 위에 있는 어떤 존재의 힘이 느껴진다. 현재의 놈으로서는 아마 쉽게 다룰 수 없는 힘일 테니, 위의 존재가 갑작스레 나타난 이레귤러에게 흥미를 느끼고 있다는 표현이 옳겠지.
하늘에 스멀스멀 그림자가 덮이는 것을 보고 있는 라파엘 역시 사태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입술을 꽉 깨물며 계속해서 이동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어, 어디로 향하면 되는 겁니까? 부길드마스터?”
“어디긴 어디야! 이 새끼야! 왔던 곳이지.”
“그 폐허 말입니까?”
“…….”
‘시바. 잡힌다.’
곧바로 주문을 외운 이후에 촉매를 육망성에 뿌린 것은 당연지사.
배경이 바뀌었다고 생각했을 때.
평범한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먼 거리에서….
가면을 쓴 남녀가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쳤다.
* * *
“벨리알. 방금 뭐였지?”
[조금 흥미로운 게 있더군… 한번 접촉하려고 했을 뿐이다. 거절당했지만 말이야.]
“당연하지만 방금 거에는 대가를 지불하지 않을 거다. 네 멋대로 설친 거였으니까.”
[…….]
“…….”
“너무 예민하게 굴지 말아요. 오빠. 골칫덩어리였던 정진호도 죽었잖아. 우리 여기서 이러고 있을 게 아니라… 집에 가서 파티라도 하죠? 손님도 와 있잖아요?”
“그래… 누나.”
“표정이 왜 그래요? 뭐 마음에 걸리는 거라도 있어요? 아니면… 혹시 저 사이코패스 살인마한테 미련이라도 남아요?”
“농담하지 마. 누나. 그냥….”
“네?”
“아무것도 아니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