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289화
마법사의 탑(2)
어느 시대로, 어느 시점으로 떨어졌는지 제대로 파악할 시간이 있을 리 만무했다.
이미 전쟁이 진행 중이다. 아래를 내려다보자 저급 악마와 마물들이 탑을 기어오르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여기저기에서 고함 소리와 함께 비명 소리들이 들려온다. 당연히 몬스터 새끼들의 괴성도 귀에 꽂힌다.
이미 린델 곳곳이 잿더미가 된 지 오래, 폭풍우가 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불타고 있는 건물들도 눈에 띄었다.
검은 연기와 함께 여기저기에서 마법들이 터져 나오기 시작해 귀가 다 아플 정도였다.
콰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득!
퍼어어어어어엉!!
‘시바.’
“막아!!! 제기랄! 개자식들! 마탑 안으로 올라오는 새끼들 전부 처리해!”
“키에에에에에에에엑!”
“지원요청! 지원요청! 2층이 뚫렸다!”
“주문은 아직인가! 아직이냐고!!”
“사제! 사제에에!!”
팔을 잃은 전사가 떨어져 나간 팔을 내버려 둔 채로 둔기를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었고, 움직일 수 없는 궁수들이 주저앉아 화살을 쏘아 보낸다.
하지만 아귀 떼처럼 몰려 들어오는 악마들을 전부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으로 보인다.
되는대로 팔을 휘두르자 전사들 몇몇이 공중으로 튀어 오른다. 그나마 위안이 되는 점이라고 한다면 대군주가 직접 강림하지 않았다는 것.
심지어 도노반 같은 이들을 포함한 그들의 심복들도 눈에 보이지 않았지만 전투는 무척이나 격렬했다.
온건파들이 장난으로 대륙을 침략한 것이 아니라 정말로 린델에 있는 모든 것들을 지워 버리겠다는 느낌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27군단은 아닌가?’
정황상 가면쓰레기들과 당시 흑마법사 집단이었던 살라딘이 벌인 짓이라고 보는 게 옳지 않을까.
아마 정진호의 죽음 이후에 일어난 일처럼 보일 테니… 자세히 살펴보자 악마들 사이에 섞인 흑마법사들도 시야에 비친다.
“썩어빠진 놈들!!”
“지옥불의 군주께서 너희들을 심판하리라!”
“히… 히히힛! 크히히히히히힛!”
이미 맛탱이가 갔는지 광기에 찬 눈과 표정들이 시야에 비친다. 침을 튀기며 소리를 지르고 있는 놈들의 모습은 어떻게 보면 그들이 소환한 악마들보다 더 악마처럼 느껴질 정도.
약이나 환각 마법에 취한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어떤 맹목적인 광기가 느껴진다. 심지어 겉모습이 멀쩡한 놈들도 찾아보기 힘들다.
신체의 한 부분이 악마와 융합되어 있다든가, 내장이 드러나 있다든가, 촉수 같은 것에 온몸이 휘감겨 있다든가 하는 놈들이 대부분이었다.
“살라딘을 위하여!”라는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몸을 폭탄처럼 사용하는 놈들도 부지기수.
보는 것만으로도 질려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어째서 김현성이 2회차 회귀 직후 그렇게 흑마법사 처단에 열을 올렸었는지 알 것 같다. 당시 제국의 일을 포함한 여러 가지 일을 내팽개치는 한이 있더라도, 일단은 흑마법사들을 처리해야 한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은 아마 이 전쟁 때문이 아니었을까.
물론 이 전쟁 이전에도 수많은 사건들이 있었을 테지만… 적어도 지금 내 눈앞에 보이는 광경은 생지옥이라고 부르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전쟁은 언제나 참혹함을 동반하지만 지금 눈에 보이고 있는 광경은 참혹함을 넘어 비참하기까지 했다.
쓰러져가는 전사, 악마에게 산채로 집어 삼켜지는 이들, 역병에 감염된 채로 괴로워하는 병사들, 비명을 내 지르는 것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는 생존자.
그런 생존자들을 향해 다가서고 있는 마물들. 2회 차에 외신전을 치르고 있을 때보다도 지금 이 장면이 뇌리에 박힌다.
그야 이런 꼴을 본다면 흑마법사 처단을 1순위로 올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아아아아아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살려줘… 살려줘! 죽고 싶지 않아… 죽고 싶지….”
“히…히하하하하핫!”
“죽어! 이 새끼들아! 죽으라고!”
“도망치지 마! 도망치면 다 죽어! 이러다가는 다 죽는다고! 이 개새끼들아!”
“키에에에에에에엑!”
“꺄아아아아악!”
‘시바. 한소라….’
당연하게도 나를 이곳에 홀로 버려둔 한소라에 대한 원망이 차오른다.
‘내가 얼마나 잘해줬는데….’
옆쪽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뭐야. 수습 마법사인가?”
“…….”
“수습 마법사냐고 묻잖아!”
‘시바 나 부르는 거였어?’
“네… 네?!”
“여기서 뭣 하고 있어! 도대체! 정신 똑바로 안 차려?! 죽고 싶어서 환장했어?!”
‘아니… 시바… 죽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어요.’
“어이 칼턴! 도대체 왜 수습 마법사가 여기 있는 거야?!”
“나도 몰아! 제길! 일단 올려보내!”
“이 새끼 완전히 굳었다고! 병신처럼 눈만 꿈뻑꿈뻑 뜨고… 누가 이런 핏덩이까지 전쟁에 참가시키라고 했어?!”
“뭔 개소리야! 수습들은 전부 위층에 대피해 있는데… 미쳐 못 빠져나간 거겠지! 제기랄! 여기 화살 좀 더 줘!”
“이 멍청한 수습 새끼야! 자리 차지하지 말고 빨리 꺼지라고!”
잔뜩 흥분한 궁수가 내 몸을 팍 밀친다. 넘어지고 싶지 않았지만 자연스럽게 몸이 쓰러진다. 그걸 본 덩치 큰 전사가 크게 소리쳤다.
“혼자서는 제대로 걷지도 못하잖아! 이 병신 새끼 제기랄!”
‘아니, 너네가 밀쳤잖아. 당연히 넘어지지.’
“병신처럼 몸이 완전히 굳었다고! 이 병아리 새끼! 씨발! 오줌까지 지렸어!”
‘뭔 개소리야. 시바 비 맞아서 그런 거잖아.’
“네가 들고 올라가! 빅보이!”
“제길! 미쳤어? 지금 이 상황에?”
“일단 올려보내! 그 새끼 뒈지면 마탑에서 지랄할 게 뻔하니까!”
“이런 상황에서도 애새끼 뒤나 봐줘야 된다고?!”
“그럼 그대로 뒈지게 내버려 둘 거야?! 마탑 영감들 미치는 꼴 보고 싶어?! 일단 올려보내라고!”
“입 닥쳐! 뒈지면 뒈지는 거지!”
빅보이라는 별명에 걸맞은 거대한 덩치를 가지고 있는 전사가 탐탁지 않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당연하지만 이곳에 있다가는 제 명에 못 살고 뒈질 것 같은 느낌, 이미 악마 새끼들이 마탑을 오르고 있는 상황이었고, 빅보이 녀석도 커다란 도끼를 계속해서 휘두르고 있는 상황이었다.
용기를 냈다는 듯 소리쳐야 살 수 있단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저, 저도 싸울 수 있어요!”
“뭐?”
“이익… 저도 싸울 수 있다고요!”
“저… 저 미친 병아리 새끼가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야?!”
이미 공포에 질려 오줌까지 지려버린 상태였기 때문에 주문을 외우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이 수습 마법생은 어떻게든 마탑을 지켜내고야 말겠다는 심정으로 떨어져 있는 검을 집어 들고 탑을 오르는 악마들에게 휘두른다.
물론 그게 효과가 있을 리 만무, 검이 제대로 닿지도 않을뿐더러, 튕겨지는 모습은 위태롭기 짝이 없다.
제대로 걸을 수도 없는 주제에 무작정 검을 휘두르고 있다니 이 용기 있는 수습 마법사를 어떻게 그냥 내버려 둘 수 있을까.
“이야아아아아아!!”
‘빅보이 이 새끼야. 이거 두고만 보고 있을 거냐고!’
“씨발 저 꼬맹이 뭐야! 야! 진짜 뒈지고 싶어?!”
“위험해! 위험하다고!”
“죽어! 죽어어어! 흐윽… 끄으윽….”
“지금 뭐 하는 거야! 빅보이! 저 병아리 새끼 진짜 저대로 뒈지게 내버려 둘 거야?!”
“제… 제길.”
결국에는 빅보이 녀석의 심금을 울린 모양이다. 누가 봐도 당황하는 듯한 얼굴, 주문을 외울 수도 없는 상태에서 아무렇게나 검을 휘두르고 있는 병아리의 모습은 중년의 전사를 감격하게 하기에 충분했던 것 같았다.
결국에는 빅보이 녀석이 내 몸을 들어 올리는 것이 느껴진다. 당연히 발버둥 칠 수밖에 없다.
“이… 이거 놓으세요! 이거 놓으라고요!”
“…….”
“저… 저도 싸울 수 있어요!”
“제길… 너 이 병아리 새끼… 몰래 빠져나와서 전투에 참가라도 하고 싶었던 거냐?”
“그… 그건….”
“너 같은 꼬맹이들의 손을 빌릴 정도로 절박하지는 않다. 제길… 아무리 세상이 망하려고 해도 그렇지… 어떻게… 아무튼 너는 안에 처박혀 있는 게 우리를 도와주는 거야. 알아들었냐?”
“하지만….”
“알아들었냐고!”
“…….”
“…….”
‘빅보이 이 자식… 감성적이자너.’
“이렇게 방해만 하고 말이야… 제길….”
“흐윽… 흐으윽….”
“울, 울지 말라고… 제기랄….”
무력한 수습 마법생의 눈물이 다시 한번 놈의 감성을 자극한 것 같았다.
여기저기서 전투가 펼쳐지고 있는 가운데 빅보이 녀석은 나를 안고 마탑의 위로 올라가기에 여념이 없다.
간헐적으로 폭음이 들려오고 마탑이 흔들리기는 했지만 쉽게 무너지지는 않을 것이다.
‘방어마법이 있으니까.’
쉽게 공략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실제로 린델이 무너진 것은 악마들이 아니라 외신이 쳐들어 왔을 때 즈음이다.
아무리 악마 놈들이 설치고 지랄하고 난리를 치든 간에 아직까지 이곳은 공략되지 않는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아마….
‘우리 하얀이가 있겠지.’
인류 최후의 보루, 대륙 최고의 대마법사.
2회 차에서도 그렇고, 1회 차에서도 더더욱 그렇다. 지금 싸우고 있는 인원들이 죽어라 마탑을 지키고 있는 것을 보면 답이 나온다.
누군가의 주문이 완성되기는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한순간에 전황을 바꾸어버릴 수 있는 대마법사의 존재, 악마 새끼들도 그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거칠게 몰아붙이고 있었지만 모험가들을 쉽게 밀리지 않는다.
문제는 어떤 마법이냐는 것.
‘뭐지? 뭘로 뒤집으려는 거지.’
주문의 완성이 직전인지 탑의 꼭대기에서 커다란 마력이 느껴진다. 망원경으로 위를 바라보자 2회 차와는 조금 다른 복장을 하고 있는 정하얀이 주문을 외우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그녀가 주문을 외우면 외울수록, 비바람이 더욱더 거세지는 중, 마치 태풍이라도 상륙한 것처럼 느껴진다.
여기저기에서 번개가 떨어지고, 그 영향을 받은 악마들이 그 자리에서 쓰러진다.
여기저기에서 목소리들이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작전 시작! 작전 시작이다!”
“올라타! 제기랄! 빨리! 온다! 온다!”
‘뭐에 올라타라는 거야. 뭐가 온다는 건데?’
정하얀이 소리를 지른 직후 거대한 파도가 린델을 덮친다.
어처구니없게도 정말로, 린델에 파도가 치고 있었다. 물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곳에서 갑작스레 파도가 밀려들어 오고 있다. 잊고 있었던 김현성의 말이 떠오른다.
‘1회 차 정하얀은 교국을 통째로 옮기기도 했었고….’
둥! 둥! 둥! 하는 북소리가 들려오며, 커다란 고함 소리가 들려왔다.
“닻을 올려! 닻을 올려라!!”
“움직여! 빨리 움직여! 제기랄! 올라타! 올라타라고!”
“하하하… 하하하하하하! 대마법사! 대마법사! 우리한테는 대마법사가 있다고!”
린델이 천천히 잠기기 시작했고, 마침내 거대한 함대가 파도에 휩쓸리는 악마들에게 들이닥쳤다.
“미… 미친….”
“닻을 올려!!! 악마 새끼들을 쓸어버리자고! 제기랄!”
정하얀이 여전히 양손 지팡이를 하늘 위로 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나는,
김현성이 입에 담은 적 있었던 대사를 중얼거렸다.
“정하얀은 교국을 통째로 옮기기도 했었고… 육지를 바다로 만들기도 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