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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297화 (1,29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297화

마법사의 탑(10)

물론,

‘정체는 숨겨야겠지.’

두말하면 잔소리, 황급히 두건으로 얼굴을 칭칭 가린 것은 당연지사. 숨을 쉬는 게 조금 불편하기도 하고 얼굴에 있는 압박감도 기분 나빴지만 슬쩍 거울을 보니 꽤 그럴듯해진 모습이 눈에 보였다.

전염병인지 화상인지 모르겠지만 얼굴을 포함한 몸 전체에 큰 상처를 입거나 후유증을 앓고 있는 소년처럼 보이고 있었으니까.

‘꽤 사실감 있자너.’

당장 헤르엔 밖에만 나가도 이런 꼬맹이들이 꽤 눈에 밟힌다. 오갈 데 없어져서 길바닥 생활을 하고 있는 놈들, 어디 한두 군데 상처를 가지고 있어 특정 부위를 붕대로 칭칭 감은 녀석들, 병에 걸려 썩어 문드러진 피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는 환자들….

이런 꼬맹이 한두 명이 더 바깥으로 나 돌아다닌다고 한들, 아무도 신경 쓰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이 선다.

빅보이 녀석이 말한 대로 이곳의 법칙은 ‘타인에게 신경 쓰지 않는다.’였으니까.

일을 위해 떠난 빅보이 무리가 돌아오기까지 꽤 오랜 시간이 걸릴 터, 이곳에 들어오기는 쉬웠어도 장물을 전달하는 절차가 꽤 복잡하고, 받을 것도 있을 테니 최대 다섯 시간 정도 후에 돌아오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정문으로 나가는 것보다는 창문으로 나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아 살짝 아래를 내려다보자 충분히 뛰어내릴 수 있을 것 같은 높이가 눈에 보인다.

심지어 여관에 있는 쓰레기더미도 눈에 보였기 때문에 재빠르게 몸을 날렸다.

“으… 씨발 냄새….”

그리고,

헤르엔의 전경이 다시 한번 눈에 들어왔다.

각각 제 갈 길 가기에 바쁜 사람들, 구석에 쭈그려 앉아 술을 마시고 있는 노숙자들, 전부 다 포기한 듯이 주저앉아 하늘만 바라보고 있는 멍청이들까지.

가끔 경비병들이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그저 형식적인 순찰로 보일 뿐이었다.

이미 예상했듯이 두건으로 머리를 칭칭 꼬맹이에게 관심을 가지는 녀석들은 보이지 않는다. 가끔 자기 분노를 표출하는 멍청한 새끼들만 제외하면 말이다.

“꺼져! 이 더러운 새끼야! 씨발… 냄새난다고!”

“씨발!”

아예 대놓고 몸으로 치고 가는 놈이 있는가 하면 가까이도 가기 싫다는 듯이 멀찍이 피해가는 새끼들도 보인다.

무너져 가는 허름한 상점의 주인은 가게 앞에 얼쩡거리지 말라며 고성을 치고 있었고, 심한 경우에는 바구니에 담은 오물을 뿌리려고 하는 것이 보일 정도였다.

“여기서 당장 꺼지라는 소리 못 들었어?!”

‘아니 지금 가고 있잖아요.’

“구걸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서 하라고!”

‘아니, 시바 그냥 지나가는 중이잖아요.’

“…….”

“제기랄. 재수가 없으려니까. 너 이 새끼 역병 아니야?”

‘역병은 개뿔.’

“다시는 얼씬도 하지 마. 이 새끼야!”

허겁지겁 자리를 옮겨도 이 죽일 놈의 혐오는 도대체 멈출 기색이 보이지 않는다.

무난하게 김현성의 오두막으로 향할 수 있을 거라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다른 의미로 발걸음을 옮기는 게 험난해지고 있었다.

기어코 좁은 골목을 위주로 돌아다닐 수밖에 없었고, 쫓기다 보니 김현성의 오두막과는 점점 멀어지고 있다.

‘진짜 이런 새끼들이 사는 곳에서 빅보이 같은 인물이 나온 게 기적이네. 기적이야.’

험난한 길이기는 했지만 그만큼의 성과도 있다. 분장하기는 했지만 약간은 어색했던 모습이 점차 현실적으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슬쩍 망원경을 통해 본 내 모습은 내가 봐도 탄성이 다 나올 정도, 적어도 몇 년은 길바닥에서 굴러먹던 꼬맹이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고작 몇 시간 걸었음에도 불구하고 헤르엔과 완전히 동화되어 있지 않은가.

이미 1회 차에도 한 번 가 본 적 있었던 김현성의 오두막으로 들어가면 들어갈수록, 인기척이 사라지기 시작한다.

도시의 중심부보다는 숲과 더 가까운 장소, 발전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은 1회 차이다 보니 더욱더 도시와 멀어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그리고….

‘김현성이다.’

마침내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치기 시작했다.

겉모습이나 표정이나, 출발 전에 망원경으로 봤었던 모습과 다르지 않다.

이미 한 차례 흐느낌이 끝나기는 했는지, 인생을 포기한 것만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

“…….”

‘그래도 부활 가능할 것 같자너.’

최소한 둠기영 사건 때 모든 것을 포기했던 때 정도는 아니다. 온몸에 무기력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지만 그래도 눈빛이 완전히 죽지 않은 것은 보인다. 실제로 갑작스레 자신을 찾아온 꼬맹이를 눈치채고 있지 않은가.

슬쩍 나를 바라보는 녀석, 하지만 이내 관심을 꺼버린다. 그다지 신경 쓰고 싶지 않은 것이 분명하리라.

어떻게 이야기를 해야 할지, 어떤 말로 녀석을 일으켜야 할지 계획된 것은 없었지만 대충 어떤 방향성으로 움직여야 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구태여 말을 걸거나 대사로 녀석을 일으킬 필요는 없다. 분명히 김현성은 내게 자신이 몇 개월간 헤르엔에 체류했다는 사실을 이야기했었고, 이건 단기 프로젝트가 아닌 장기 프로젝트였으니 말이다.

물론 극단적인 방법을 사용한다면 시기를 앞당길 수야 있겠지만….

구태여 그렇게까지 하고 싶지는 않았다. 이런 건 자연스러운 게 중요했으니 말이다.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김현성과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는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 역시 별다른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었다. 멍하니 있을 뿐, 다른 움직임이 없다.

‘길 잃은 애완동물마냥 접근해야 하는 거자너.’

우린 방금 우연히 마주쳤잖어. 그렇지? 헤르엔에서 쫓기던 꼬맹이 하나가 여기저기 떠돌다가 우연히, 아주 우연히 마주친 거자너.

“…….”

“…….”

이 꼬맹이는 무해한 꼬맹이다. 소년병이나 어릴 때부터 키워진 암살자 같은 게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적어도 이 꼬맹이에게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있을 것이다.

김현성이 내게 관심을 가지지 않은 이유도 바로 그런 이유였다.

헤르엔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특별할 것 없는 꼬맹이 하나. 린델의 삼대 길드, 파란의 길드마스터였던 녀석에게는 길가의 돌멩이 같은 존재라고 해도 무리가 없었으니 말이다.

먹이사슬의 최약층에 있는 이 꼬맹이는 처음 본 외지인이 신기한지 자꾸만 주변을 맴돌기 시작한다.

당연히 김현성은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는다.

“…….”

“…….”

병든 소년이 김현성에게 관심을 가지는 것 또한 지당했다. 자신에게 욕을 퍼붓거나 때리거나 하지 않고, 자신이 다가가도 아무런 반응도 하지 않을 외지인이 신경 쓰일 만도 하다.

세상에 버림받았지만 여전히 세상을 환하고 즐거운 곳으로 알고 있는 꼬맹이에게 이 우연한 만남은 꽤 신나는 일이었다.

“크워어어어어어!”

하는 소리가 뒤에서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

‘키야 타이밍 한번 죽여 주자너.’

단언하고 말하건대 이번 상황은 주작한 것이 아니다. 무리에서 이탈한 몬스터 한 마리가 힘없는 꼬맹이에게 쇄도해 오는 상황은 정말로 우연이 만든 결과물이었다.

물론 몬스터를 끌어당기는 체취를 살짝 흘린 것 같기는 했지만 정말로 이곳의 몬스터가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꽤 거대한 크기의 몬스터. 병든 소년 정도는 한 손으로 짓눌러 버릴 수도 있을 것 같다.

저 주먹이 내 몸에 닿으면 분명히 나는 온몸의 뼈가 으스러지겠지. 곧바로 내장이 터져 즉사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저 커다란 입에 그대로 삼켜질 수도 있다.

‘그냥 내버려 두는 건 아니지?’

“……!”

‘아무리 인생 포기했어도, 눈앞에 꼬맹이가 죽는 걸 그냥 지켜보려고 하는 건 아니지? 그렇지 않을 거지?’

비명도 지르지 못한 채 깜짝 놀란 얼굴로 몬스터를 바라보고 있던 소년은 공포심을 이기지 못해….

‘현성아. 제발 나타나 줘야 돼.’

눈을 꽉 감는다.

‘제발.’

그리고 아무 일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이후 살짝 눈을 떴을 때.

“…….”

“…….”

‘시바. 믿고 있었다고!’

“…….”

“크… 크어… 워….”

‘외면 못 할 거라는 거 알고 있었다고!’

병든 소년의 앞을 가로막고 몬스터의 손을 붙잡은 김현성을 바라볼 수 있었다.

“크워어어어어어어어어!”

더욱더 흥분한 덩치가 괴성을 내 지르며 김현성에게 재차 주먹을 뻗었지만, 전투라고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쉽게 몬스터가 나가떨어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검도 잡지 않았건만 곧바로 놈의 목을 꺾어버린 것이다.

쿠웅 하는 묵직한 소리와 함께 쓰러지는 몬스터, 병든 소년은 깜짝 놀랐다는 듯이 김현성과 몬스터를 재차 바라본다.

말을 할 수가 없는 소년은 김현성을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뭐가 뭔지, 지금 대체 어떤 상황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이 형이 자신의 목숨을 구해줬다는 사실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지는 않다.

꼬맹이는 아주 조심스럽게 김현성에게 손을 뻗으려고 하지만….

‘여기서 당장 꺼지라는 소리 못 들었어?!’

“아….”

‘구걸을 하려면 다른 곳으로 가서 하라고!’

“…….”

‘제기랄. 재수가 없으려니까. 너 이 새끼 역병 아니야?’

“…….”

‘꺼져! 이 더러운 새끼야! 씨발… 냄새난다고!’

헤르엔에서 살아오는 동안, 줄곧 자신에게 위협적인 모습을 보였었던 어른들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약간 움츠러들 수밖에 없었다.

병든 소년은 평생 누군가에게 도움을 받은 적이 없었다는 설정이 숨어 있었다.

말인즉슨 눈앞에 있는 처음 보는 외부인이 병든 소년에게 처음 도움을 준 사람이 된 셈이다.

어찌 됐건 간에 자신을 도와줬으니 이상한 호기심이 호감으로 변화하는 것이 당연하지 않은가.

“아으….”

용기를 내서 슬그머니 김현성의 후드를 붙잡았지만 이후에는 깜짝 놀라는 액션을 취한다.

반사적으로 눈앞에 있는 사람의 심기를 거스르게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한 것이다.

하지만 김현성은 병든 꼬맹이를 슬쩍 지나칠 뿐, 아무런 리액션도 취하지 않고 있었다.

본래 앉아 있던 자리에 그대로 앉아 소통을 거부한다.

‘이 새끼 더럽게 시크하자너.’

살짝 멀어졌던 거리감이 조금 좁혀진다. 조금 더 용기를 낸 꼬맹이는 김현성에게 한 걸음 더 다가갔고, 김현성은 꼬맹이를 굳이 피하지 않았다.

귀찮았다는 표현이 더 어울릴 것이다. 조금만 더 있으면 병든 꼬맹이는 흥미를 잃고 금방 떠나겠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말이 맞기는 해.’

하지만 꼬맹이는 거기서 한 발자국 더 용기를 낸다. 마치 사람을 믿지 못하는 고양이가 자신을 도와준 사람에게 한 발자국 다가서는 듯한 느낌으로 말이다.

완전히 믿지는 못해 경계심을 전부 다 풀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조금씩 조금씩 다가서고 있었다.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을 만큼의 거리.

김현성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던 병든 소년은 주섬주섬 품 안에서 무언가를 꺼내 보은하듯 건넨다.

‘빵 한 조각.’

누가 봐도 튜토리얼에서 먹은 빵과 비슷했었던 것 같은 모양의 빵 한 조각이었다.

의문이 담긴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김현성이었지만 해줄 수 있는 말은 적다.

어서 먹으라는 듯 손으로 리액션을 취하자 다시 한번 멍하니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직후 도망치듯이 오두막을 빠져나온 이후.

망원경으로 김현성을 살펴보자.

아주,

아주 조심스럽게 빵 한 조각을 입에 머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

“…….”

-맛있네.

첫 만남치고는 나쁘지 않은 이야기였다.

-맛있어.

-…….

‘플래그 꽂았다.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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