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00화
마법사의 탑(13)
그동안의 서러움을 모두 터뜨리는 것만 같은 울음소리였다. 오죽했으면 내가 다 당황할 정도였을까.
“흐윽… 흐으으으윽….”
사이코패스 살인마 정진호처럼 애새끼마냥 울음을 터뜨리지는 않았지만 김현성의 눈에서는 둑이라도 터진 듯이 눈물이 계속해서 흘러나오고 있었다.
녀석이 손으로 닦아도 닦아도 끊이지 않고 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는다는 듯이 숨을 헐떡이며 계속해서 울고 있었다.
정말로 그동안 쌓여왔던 것이 터졌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지금까지 받아왔던 스트레스들이나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터져 나온 것이다.
‘튜토리얼 이후로 안 울었던 것처럼 울자너. 저번에 한 번 우는 거 보기는 했지만….’
그냥 시답지 않은 궁예질이었다. 꼭 그게 아니더라도 김현성이 정말로 오랜만에, 마음 놓고 운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책임감이나 녀석이 처한 입장상 슬픈 일이 생겼다고 하더라도 울 수 있을 리 만무, 남들의 시선을 신경 써야 했을 것이고, 실패한 이후에도 좌절하기보다는 마음을 다잡고 다음을 생각했어야 했을 것이다.
1회 차의 김현성을 쉴 수 있는 여유가 없었다. 파도에 떠밀리는 것처럼 계속해서 어디론가 향하기만 했을 뿐, 스스로 여유를 가지거나 감정을 다잡을 수 있는 순간이 없었다.
어째서 녀석이라고 엉엉 울고 싶지 않았을까. 조혜진을 잃었고, 많은 길드원들을 잃었다. 온전히 자신의 실수 때문에 말이다.
이 모든 것들이 지금 터져 나와 녀석이 쓰고 있는 책임감이라는 가면을 무너뜨리고 있었다.
‘그게 잘 모르는 꼬마 앞이라는 것도… 지분이 있을 거야.’
가끔은 정말로 가까운 사람보다는 조금 거리감이 있는 사람에게 감정을 털어놓는 게 편할 때도 있으니 말이다.
“흐윽… 어으… 으으윽….”
천천히 다가가 녀석을 꽉 껴안아 준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은 엄마한테 달라붙는 꼬맹이마냥 찰싹 안겨 다시금 울음을 터뜨렸다.
‘이제 그만 좀 울어라.’
“흐윽… 흐으으으으윽….”
‘그만. 뚝.’
“흐으으으으으윽….”
결국 녀석이 진정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 흐른 직후, 심지어 부끄러워하는 기색도 없다. 오히려 후련하다는 듯이 나를 바라보는 녀석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슬픔을 토해내면서 새롭게 각성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그건 아닌 건가.’
일단 반 정도는 왔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것 같았다. 이런 경우에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감정을 마주하는 것이 시작이었으니까. 모든 게 계획대로 되고 있는 와중에 약간의 불안요소가 있다고 한다면….
빵동생이 의외로 녀석의 안에 크게 자리 잡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스토리 텔링이 너무 좋았어.’
자신의 편은 모두 죽거나 다치고, 이제 그 누구도 자신을 지지해 주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을 때 나타난 정체불명의 병든 소년.
김현성이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기도 했고, 아직도 누군가에게는 사랑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려준 거지 꼬맹이.
스스로 느끼기에 인간성이 마모되었다고 느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예전의 그 20대 김현성으로 봐주고 있었던 정체불명의 그 새끼.
얼굴 한 번 보지 못한 빵형과는 다르게 제법 많이 얼굴을 마주쳤고, 특정하기도 쉽다.
“미안하구나. 내가 놀라게 했니?”
“…….”
‘엿됐자너. 벌써 눈에서 꿀 떨어지자너.’
“안으로 들어올래?”
‘벌써 집 안으로 들이려고 하고 있자너.’
“어디서 이렇게 다친 거니?”
‘걱정하고 있자너.’
“이럴 게 아니라 치료하는 게 좋겠다.”
‘어차피 주작이라 치료할 것도 없는데.’
감정을 수습하는 즉시, 녀석이 손을 잡아끌면서 오두막으로 나를 데리고 가기 시작한다.
슬쩍 거부하는 의사를 표현하기는 했지만 이미 막무가내인 녀석은 막을 수 있을 리 만무, 부어 있는 팔이나 다리 등을 걷은 이후에는 상처 입은 동물을 치료해 주듯 싸구려 포션을 바르기 시작했다.
녀석의 입장에서는 꽤 품질이 좋은 것이겠지만 2회 차를 기준으로는 생각해 보면 동네 상점에서 파는 물약이나 다음이 없어 보이는 느낌이었다.
“헤르엔 신전에 있는 사제에게는 찾아가 본 거지? 다행히 큰 상처는 아닌 것 같은데… 괴롭히는 사람이라도 있으면….”
심지어 이 새끼가 얼굴에 감겨 있는 붕대도 벗기고 치료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단은 발버둥 칠 수밖에 없었다.
“잠깐 가만히 좀….”
후다다닥 달려간 이후에 책상에 있는 노트와 펜을 집어 든 이후 다시금 의사소통을 시작한다.
[실어요.]
“하지만 상처가.”
[실어요.]
“그러지 말고 일단….”
[실어요.]
알고 있겠지. 시바. 길냥이를 길들였다고 해서 방심하면 안 된다는 거. 길냥이가 싫어하는 짓거리를 하는 순간 바로 끝이라는 거.
너무나 완강한 태도에 김현성도 할 말을 잃은 듯이 나를 바라본다. 결국에는 내 의사를 존중한다는 듯이 포션병을 내려놓고 항복한다는 듯 두 손을 들기 시작했다.
“대신 포션을 하나 줄 테니 혼자 있을 때는 꼭 치료해야 한다. 아니, 아니면 내가 지금 오두막에 나가 있는 게 좋겠네. 사용법은 아까 대충 봐서 알고 있지?”
[네.]
‘이 새끼 이거 암만 봐도 오늘 집에 안 보내줄 것 같은데….’
아예 이대로 오두막에서 같이 살자고 할까 봐 무섭다. 아무리 그래도 두 집 살림할 수는 없지 않은가. 당장 오늘 저녁에 빅보이가 오랜만에 일찍 들어오는 날이기도 했으니 미리 가서 저녁을 준비해야 했다.
‘하… 시바 순식간에 너무 거리감이 없어진 것 같은데.’
다시 거리감을 벌릴 필요가 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일이 끝났다는 것을 알리기 위해 문을 두드리자 다시 걱정스러운 표정을 하며 나타난 김현성이 시야에 들어온다.
“꼼꼼히 발랐지?”
고개를 끄덕이자 내 얼굴을 자세히 보려고 얼굴을 가까이 가져다 대는 것이 보였기 때문에 슬그머니 시선을 피할 수밖에 없었다.
무언가 할 말이 많은 것 같은 표정, 아니나 다를까….
“너만 좋다면 상처가 다 치료될 때까지는 이곳에 있어도 상관없는데….”
라고 말을 걸어온다.
‘하… 시바 왠지 이럴 것 같더라니.’
그야말로 급발진의 아이콘이라고 해도 모자라다.
‘뭔 빵 몇 덩이 준 거 가지고 같이 살자고 난리냐구.’
사회성 없는 녀석에게는 웃어주지도 말라는 격언이 새삼스레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내가 가면 쓰레기의 끄나풀이거나 파란을 견제하는 타 집단의 세작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 이런 상황일수록 어린아이들을 조심해야 한다는 사실을 왜 모를까.
그렇게 통수를 맞아 뒤통수가 오목해졌음에도 불구하고 녀석은 여전히 사람을 믿고 있었다.
“너무 부담 가지지 않아도 돼. 내가 널 무섭게 한 것도 사실이고… 하지만 네가 몸이 다 나을 때까지 만이라도 편하게 지낼 수 있게 배려해 주고 싶어. 아… 그리고… 이전에 겁을 준 것도 정말로 미안하구나. 이 말을 맨 처음에 했어야 했는데… 미안해.”
‘말이 두서가 없어. 이 새끼.’
슬쩍 고개를 숙여오는 모습에 진심이 전해져 오기야 한다.
[실어요. 무서워요.]
“…….”
“…….”
“…….”
[농담.]
“아….”
[그리고 누가 무슨 빵 몇 덩이 가져다줬다고, 오두막에서 같이 살자고 친한 척을 해요? 누나가 그런 사람은 믿지 말라고 했어요.]
“나는 나쁜 사람이 아니라….”
[저번에는 나쁜 사람이라면서요.]
“그건….”
[형이 착하고… 나를 도와줘서 가져다준 거예요. 얹혀살거나 그러고 싶은 마음은 전혀 없어요. 빌붙을 생각은 없어요.]
“…….”
[친해지고 싶은 건 사실이지만 동정받고 싶은 게 아니에요.]
“동정하는 게 아니라… 그저….”
[제 눈에는 동정하고 싶은 것처럼 보여요. 사양할래요.]
바로 같이 헤 웃으며 순진무구한 컨셉을 유지하고 싶기는 했지만 이 새끼의 답답함에 자꾸만 본성이 나오려고 한다.
‘아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게 맞아. 병든 소년은 독립심이 강하니까.’
김현성도 병든 소년의 역린을 눈치챈 모양이다.
“미안하구나. 네 심정을 이해하지 못 해줘서.”
김현성이 사과를 세 번 이상 한 거면 이미 베프나 다름없자너.
[아니에요. 그냥 폐 끼치기 싫어서 그리고 어차피 내일부터는 못 오거든요.]
“왜?”
[누나 찾으러 가야 해요.]
갑작스럽지만 새로운 설정이었다.
마치 정말로 오랜 시간 동안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듯, 품 안에서 빵 몇 덩이를 더 꺼낸다.
“어디 멀리 가는 거니? 아니… 그전에 누나는….”
[그냥 헤르엔에서 친하게 지냈던 누나예요.]
“뭐?”
[오 일 후에 돌아오기로 했는데 안 돌아왔거든요. 혹시 무슨 일이 생겼는지 궁금해서… 글도 누나가 가르쳐 줬어요.]
‘개연성도 채우고 좋네.’
[누나는 모험가거든요.]
“뭐…?”
[유명하지는 않은데… 일이 있다고 하고 계속 안 돌아왔어요.]
“…….”
[거지 아저씨들 말이 누나가 전쟁터에서 죽었대요.]
“어?”
[전쟁에 참가했다가 죽었대요. 흑마법사들이랑 싸우다가 죽었대요. 그래서 안 오는 거래요.]
“…….”
[거짓말쟁이들이에요. 누나는 안 죽었는데… 그래서 직접 확인해 보려고요.]
‘이런 막장 설정 하나 즈음 있어서 좋자너. 거리감도 좀 다시 벌려주고….’
조혜진이 정말로 어떻게 됐는지도 확인하고….
무엇보다 김현성이 이 참상을 제대로 마주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일이니까.
아니나 다를까 김현성의 동공이 탭댄스를 추는 것마냥 흔들리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방금 전까지 웃으며 잠깐의 행복을 누렸던 것도 잠시, 부정하고 싶어지는 충격적인 사실에 식은땀을 흘리는 게 눈에 보였다.
‘네가 뭘 상상하던, 항상 상상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자너.’
“혼자 간다고?”
[네. 거리가 조금 되는 것 같은데… 근처까지 마차를 얻어 타기로 했거든요.]
“혹… 혹시 거기가 어디인지는 알고 있니?”
[정확히는 몰라요. 근데 어떤 아저씨가 누나를 필네스에서 본 적이 있대요.]
‘알고 있지?’
“…….”
할 말을 잃은 듯한 녀석.
‘거기서 발렸잖아.’
정확히 말하면 근처의 협곡에서 함정에 빠진 것이었지만, 후퇴하던 김현성의 동료들의 마지막을 맞이한 장소였다.
이미 오염지역이 된 지 오래, 사실 필네스는 더 이상 존재하지도 않는다. 그냥 잿더미와 시체들만 있을 뿐이었다.
김현성이야 원정대에 참가한 병든 소년의 누나를 알지도 못하겠지만 모든 대원들의 이름을 기억할 리 만무할 테니 대충 예상만 하고 있겠지.
자신이 이 소년과 친하게 지내던 누나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사실을 말이다.
‘근데 어쩌겠어. 네가 직시해야 할 건 확실히 직시해야지.’
“언제….”
[오늘 출발할 거예요.]
“거긴 가면 안 되는 곳이야.”
‘그래서 뭐 어쩌라고.’
“거긴….”
‘뭐.’
“그곳은 위험해.”
‘네가 어떻게 나를 말릴 수가 있겠어. 우리 사실 거의 남남인데.’
가면 안 된다는 말에는 구태여 답을 해주지도 않았다. 어차피 이 병든 소년은 누나를 찾기 위해 필네스로 향할 작정이었으니까.
열심히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당연히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보낸다. 무슨 말을 해오든 간에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 그냥 나갈 채비를 할 뿐이었다.
결국 여러모로 생각이 많은 듯한 얼굴을 하고선 김현성이 말을 이었다.
“나도….”
“…….”
“나도 같이 가도 되겠니?”
병든 소년이 위험해지는 것을 두고 보기 힘들다는 게 표면적인 이유였겠지만….
왠지 모르게 김현성 본인이 직접 그 장소로 가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