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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1화 (1,29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1화

마법사의 탑(14)

어째서 김현성이 마음을 고쳐먹었는지는 모른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김현성의 행동 패턴이야 어렴풋이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든 소년의 필네스행은 단순히 계기일 뿐이다. 녀석이 움직이게 만드는 계기 말이다.

사실은 녀석 역시 두 눈으로 직접 모든 것을 확인하고 싶을 거라고 생각했다.

기절한 채로 파란 길드에 실려 왔을 테니 정확한 참상을 알고 있을 리 만무, 귀로 들은 정보 말고 자신의 눈으로 직접 확인해 보고 싶을 것이다.

조혜진이 정말로 죽었는지, 필네스가 어떻게 변했는지, 김현성이 저지른 일이라고 하기에는 뭣하지만 일단 자신에게 책임이 있다고 생각하고 있는 상황이었으니 정확히 마주해야 한다 여기고 있는 것 같았다.

아마 혼자였으면 용기가 생기지 않았겠지.

‘겁은 많아가지고 시바.’

앞서 말했듯 어디까지나 표면적인 이유는 꼬맹이의 보호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덕분에 빡빡한 일정 확 당겼자너.’

[마차는 안 타요?]

“내가 직접 널 거기로 데려다줄 거야. 다시 이야기하지만 너무 가까이 가면 위험할지도 모르니 근처까지만 데려다줄게.”

[그럼 누나는 어떻게 차자요?]

“그건… 내가 한번 찾아보마. 약속할게. 혹시 특정할 수 있는 물건 같은 게 있니?”

[글쎄요. 그런 건 모르는데, 생각해 보니 누나는 꽃모양 지팡이를 들고 다녔었어요.]

“그래.”

[근데 정말 사실이에요? 필네스가 사라졌다는 거.]

“…….”

‘그 와중에 누나가 죽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는 안 하네.’

이걸 어떻게 수습하려고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김현성은 이쪽을 안고 필네스로 달리기 시작했다.

헤르엔 쪽에서 실리아 방향으로 계속해서 가다 보면 협곡이 먼저 보이고 그 너머에 작은 도시가 있다.

2회 차에서도 지형적인 특성 때문에 크게 혜택을 누리지 못한 도시, 워프 게이트가 나타나기 이전에는 그나마 휴게소의 역할을 하기도 했었지만, 워프 게이트가 등장한 이후에는 모험가들이 쉬러 드나드는 장소,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아마 1회 차에서도 상황은 비슷할 것이다. 마차를 끄는 말들을 잠깐 쉬게 해주는 곳, 고속도로에 있는 휴게소 같은 느낌의 도시 말이다.

걸어가면 꽤 오래 걸릴 것 같았지만 김현성이 이쪽을 업은 채로 달리고 있으니 순식간에 배경이 슝슝 지나가기 시작했다.

“너무 빨라서 어지러우면 말해줘.”

“…….”

‘시바 빅보이한테는 뭐라고 말하지. 암만 빨라도 하루는 걸릴 텐데.’

변명거리가 있기는 있지만 이 자식이 개지랄을 떨 걸 생각하면 그다지 반갑지는 않았다.

정신없이 뛰어가고 있는 김현성의 속도가 점점 느려진 것은 몸이 조금 불편해질 즈음이었다.

본능적으로 필네스 협곡과 마을에 가까이 다가서고 있다는 느낌이 든 것은 당연지사. 막상 목적지에 다다르자 망설임이 생기고 있는 것이다.

공기가 변했다는 생각이 든다.

역겨운 냄새가 여기까지 코를 찌르고 있었다.

김현성이 자신이 걸고 있는 목걸이를 내게 넘겨준 이후에 조용히 중얼 거렸다.

“절대로 빼지 마라. 절대로 말이다.”

아마 역병을 막아주는 아티팩트 같은 것이겠지. 보지 않아도 뻔했기 때문에 일단은 멍하니 고개를 끄덕인다.

“여기서부터가 필네스 협곡이야. 가까이 가지 않는 게 좋을 거야. 마을은… 위쪽에서 봐도 충분하겠지.”

‘근데 이거 나 같은 어린애가 봐도 되는 장면인 거 맞아?’

김현성 역시 고민이 되는지 나를 살짝 돌아본다. 당연하지만….

[익숙해요.]

“…….”

[많이 봤어요.]

헤르엔에서 길바닥 생활을 하다 보면, 널브러진 시신 한두 구쯤은 보게 마련이다. 김현성도 그걸 인지하고 있는지 아무런 말도 해오지 않는다.

아니, 그것보다는 아마 본인이 날 챙길 여력이 없을 것이다. 정신이 없는 것은 녀석 역시 마찬가지, 떨리는 마음으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발걸음을 옮기던 녀석은 어느새 협곡의 높은 곳에 위치해 아래를 내려다보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뒤엉켜 있는 시체들이었다. 그 수가 엄청나게 많은 것이 눈에 띈다.

버려진 무기들과 꺾여서 나뒹굴고 있는 파란 길드의 깃발 같은 것들도 눈에 보였다.

시체들은 고통스럽다는 듯이 몸을 웅크리며 죽어 있었는데 아마 생화학 마법에 당한 흔적들로 보였다.

저기에는 김현성의 부하들이나 동료들도 섞여 있겠지. 하지만 유노와 함께 본 장소는 아니었다.

‘함정은 여기서부터 시작된 거야.’

머릿속에 장면들이 그려졌다.

병력들이 한꺼번에 생화학 마법에 노출된 채로 전투가 시작됐고, 예상보다 많은 군세에 뭔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한 병력이 협곡을 지나 도시로 후퇴한다.

도망치다 죽은 이들이 수백 명, 아군을 버리고 갈 수밖에 없었지만 이미 필네스 역시 살라딘에게 점거당한 상황이었기에 독 안에 든 쥐 꼴이 되어버린 것이다.

처음부터 모든 게 함정이었던 것이다. 애초 린델에서 일어났었던 전쟁에서 패배한 것 역시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나치게 커진 살라딘의 세력을 줄여야 했을 거고… 김현성도 담금질했어야 했겠네.’

나를 내려준 이후에 멍하니 그 참상을 내려다보는 김현성의 눈에서 그때의 상황이 비치는 듯했다.

이윽고 천천히 아래로 내려간 녀석은 시신을 계속해서 바라보기 시작한다.

“잠깐 여기서 기다려 줄 수 있겠니?”

아직 수습이 되지도 않은 것들을 불에 태우려고 하는 것이다.

‘묻어줬으면 좋겠지만….’

감염된 시신들이니까.

저게 최선이겠지.

‘아… 근데 시바 너무 오래 걸릴 것 같은데….’

시신들을 모으는 것도 일, 고통스럽게 웅크려져 있는 시신들을 하나하나 펴준 이후에 똑바로 눕혀주는 것도 일이다.

단언하건대 절대로 혼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녀석이 초인이 아니었다면 하루 종일도 모자랐겠지.

하지만 꼭 하고 싶어 하는 것처럼 보였다. 김현성 나름의 방식대로 추모를 하고 있는 것이다.

‘뭔 사제들이… 시바 정화작업 하고 있다면서… 보이지도 않는구만… 언플은 시바. 하여간 이빨 털면서 애들 민심 잡으려고 하는 건 우리나 여기나 똑같아요.’

물론 이 꼬맹이는 순진하게 김현성이 모든 일을 끝날 때까지 기다려 주지 않는다.

‘하루 종일 걸리자너.’

빠르게 필네스로 가면 없어진 거 알고 알아서 쫓아 오겠지, 뭐.

지금 내게는 조혜진의 죽음을 확인하는 게 가장 중요했으니 말이다.

시신들을 수습하고 있는 김현성을 뒤로 하고 협곡 아래로 내려가 발걸음을 옮기자 폐허가 시야에 비친다.

‘여기야.’

익숙하다.

황정연마냥 초기억력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확실하지는 않았지만 무척이나 익숙한 장소였다.

‘여기가 맞아.’

완전히 폐허가 되어버린 장소, 처음 어떤 곳이었을지에 대한 흔적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세계의 종말이 오면 이렇게 변할까 싶을 정도로 폐허 곳곳에 기형적인 것들이 눈에 띄었다.

시체들이 곳곳에 들어서 있었고, 아직도 부패하고 있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붕대를 뚫고 냄새가 들어오는 터라 숨을 제대로 쉬는 게 힘들 정도였다.

분명 이곳이었다. 이 장소에서 조혜진은 김현성을 살려달라고 가면 쓰레기에게 구걸 아닌 구걸을 했었고, 가면 쓰레기는 조혜진을 죽이고 난 이후에 검은색 불꽃으로 그녀를 태운다.

다른 시체들과는 다르게 조혜진에 대한 예우를 지킨 것이다.

‘싫어하지 않았다고 했었으니까.’

다시 한번 천천히 발걸음을 옮긴다. 마음의 눈으로 보이는 것들이 생각보다 많았지만 쓸 만한 것들은 없었다. 그냥 여기를 봐도 시신, 저기를 봐도 시신이었으니까.

어차피 숫자일 뿐이지만… 김현성에게는 또 다른 의미로 다가오겠지.

그리고… 조금 더 폐허의 중앙으로 자리를 옮기자….

“…….”

“…….”

한 자루의 창이 눈에 들어왔다.

바닥에 꽂혀 있는 창은, 원래부터 그 자리에 있었던 것처럼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래에는 재처럼 보이는 무언가가 눈에 보인다. 바람이 불어와도 날아가지 않았는데 이상하게도 내가 한 걸음을 더 내딛자 천천히 흩어지며 어디론가 날아가기 시작했다.

대륙이라도 한 바퀴 돌고 싶은가 싶어 괜스레 하늘을 올려다보자 처음부터 없었던 것마냥 눈에 보이지 않는다.

‘조혜진이 맞아.’

구태여 확인할 필요도 없다. 창 근처에 있던 흔적을 본 순간, 왠지 저게 조혜진일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으니까.

‘괜히 짜증 나네.’

엄밀히 말하면 1혜진은 나와는 별로 연관이 없는 사람이었지만….

‘짜증 나.’

어쩌면 이걸 통해서 2혜진의 죽음을 투영하고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럴 일은 없을 테지만 말이다.

등 뒤에서 목소리가 들려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기서 뭐 하고 있어!”

“…….”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잖아. 얼마나 찾았는 줄 알아? 여기는 위험한 곳이라고 분명히….”

“…….”

“분명히 내가….”

‘그래. 너도 보이지? 혜지니. 저거… 보이지?’

성큼성큼 다가오던 녀석의 눈에도 창이 보이는 모양이다.

“내가… 그렇게… 말했… 는데….”

성을 내며 다가오던 것도 잠시였다. 천천히 걸어오던 녀석의 눈에 조혜진의 창이 눈에 들어오자 온갖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것이 느껴진다.

마치 할 말을 잃기라도 한 것마냥, “내가… 말했….” 같은 말을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너무나 당연하게도 시선은 그녀의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 자리에서 쉽게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 정도야 인지하고 있었겠지. 하지만 그걸 인정하고 죽음을 실제로 마주하는 것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어려운 일이었나 보다.

1현성과 1혜진이 가지고 있는 유대를 생각해 본다면 더욱더 그렇다.

결국에는 조금씩 조금씩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주 자연스럽게 말이다.

“아… 아아….”

‘시바 보기 힘드네.’

“아… 흐윽… 아아아… 흐으윽….”

‘진짜 보기 힘들어.’

“흐윽… 으아아… 아아아아….”

‘그래도 필요해.’

“끄으윽… 흐윽….”

창 앞에 무릎을 꿇은 채로 울고 있는 김현성이 보인다. 조혜진의 시신은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지만 녀석도 직감적으로 조혜진이 죽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흐윽… 으아아아….”

여전히 그 모습이 보기 힘들기는 하지만….

괴로워하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지 않기는 했지만….

‘그래도 한번 와봤어야 했어.’

이것 역시 김현성을 더욱더 단단하게 만들 테니 말이다.

동료와 친구의 죽음을 제대로 마주하는 일, 행동에 대한 책임감을 가지는 일, 그냥 떠넘기는 것이 아니라 정확히 알고, 그걸 극복하는 것은 김현성에게 꼭 필요한 일이다.

그렇게 계속해서 창을 붙잡고 눈물을 흘리는 김현성을 눈에 담을 수 있었다.

물론 녀석만큼이나 나 역시 심정이 복잡한 것은 마찬가지, 이미 망원경으로 사전에 확인을 마치기는 했지만 일이 이렇게 되니 정말로 타임라인이 꼬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와 꽂힌다.

‘모두 정상이었어.’

배경, 그리고 죽음의 방식, 꽂혀 있는 창.

모든 게 카스가노 유노와 함께 본 검은색 세계에서 일어났던 것 그대로.

다른 것은 시간의 순서뿐이었다. 정하얀이 죽기 전까지 살아 있어야 할 조혜진이, 외신전에서도 활약을 해야 할 조혜진이 눈에 보이지 않는 다는 것을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머릿속에 떠오르는 정답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

“…….”

어쩌면….

어쩌면 이후의 타임라인에 등장할 조혜진은….

1회 차의 조혜진이 아니라 2회 차의 조혜진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아니면 더미겠지. 시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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