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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2화 (1,300/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2화

마법사의 탑(15)

“어이 빅보이!”

“…….”

“빅보이! 이 새끼야!”

“…….”

“야! 빅보이!”

“어… 어?”

“뭔 생각하고 있어? 이 새끼야!”

“뭐 뻔하겠지. 그 꼬맹이 생각하고 있는 거 아니겠어?”

“무… 무슨 개소리야! 칼턴!”

아니나 다를까 다짜고짜 성을 내는 빅보이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 새끼는… 진짜 솔직하지 못하다니까. 뭐… 원래 이런 놈이기는 했는데….’

아무리 그렇다고 하더라도 너무 솔직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었다. 일을 한 지 며칠이 지난 시점, 계속되는 늦은 귀가에 혼자 방에 남아 있을 꼬맹이를 걱정하고 있는 것이다.

한 번의 의뢰로 끝날 것 같은 일이 반고정으로 바뀌었고, 그만큼 꼬맹이가 혼자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작용을 발견하게 된 시점에서 상황이 꼬여 버렸으니 빅보이가 정신을 내놓고 다니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그래도 할 수밖에 없었지만 뭐….’

당연하게도, 평소의 빅보이라면 아마 이런 종류의 수상한 의뢰는 받아들이지 않았을 것이다. 생긴 것답지 않게 녀석은 무척 신중한 성격이었고 그만큼 의심도 많았으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살아 있는 것은 그런 빅보이의 기질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만큼 녀석은 도박을 하는 것을 즐기는 성격이 아니었다. 한데 하는 일에 비해 너무나도 많은 골드를 얻는 일을 하고 있으니….

‘뭔가 구린 구석이 있다고 생각하겠지.’

아니나 다를까 빅보이 녀석도 짜증 난다는 듯이 말을 이어왔다.

“분명히 구린 구석이 있을 거라고. 젠장….”

“뭐?”

“이 일 말이야. 유진. 하는 일에 비해 받는 골드가 너무 많아. 편하기는 하지만 수상한 점도 한두 가지도 아니고… 몇 번은 괜찮지만… 슬슬 손절할 때가 되지 않았나 싶다.”

“글쎄… 생각보다 안전하기도 하고… 괜찮지 않아? 무엇보다 지금 돈 필요한 건 맞잖아. 빅보이.”

“돈도 돈이지만… 제기랄! 언제까지 이 일을 계속할 거냐고. 표면적으로 안전해 보일 뿐이지. 누가 봐도 불법이잖아. 혹시라도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을 거라는 보장 있어? 만약에 흑마법 같은 거에 관련되어 있는 일이면 어떻게? 이단 심문관이랑 템플러들이 들이닥칠 텐데….”

“개소리 좀 작작해 빅보이! 교황청은 개뿔, 이단 심문관들이야 지금 생포한 살라딘들 족치느라 한창 바쁠 텐데… 그리고 뭐? 템플러? 템플러 그 양아치 새끼들을 본 적은 있고? 차라리 꼬맹이가 걱정된다고 해.”

“아니….”

“사실 나도 마찬가지야. 칼턴.”

“너까지 왜 그래? 유진.”

설마하니 유진까지 이런 생각을 하고 있을 줄은 생각하지 못했다.

“나도 처음에는 벌리는 골드를 보고 잠깐 미쳐 있었는데… 빅보이 말대로 슬슬 끊는 게 맞아. 이 일이 우리 생각보다 안전한 것도 맞고, 딱히 리스크도 없어 보이기는 하는데… 일이 너무 커졌어. 너무 깊게 들어 와있다고… 더 연관되기 전에 잘라내야 돼. 평생 이 일 하면서 먹고살 거 아니잖아? 안 그래?”

“…….”

“또, 꼬맹이도 꼬맹이고….”

“…….”

“생각해 봐라. 칼턴, 계속 상자 아니면 실험실에만 있던 놈인데… 이제는 방에만 있잖아. 낙인을 지울 수 있는 마법사도 아직 못 찾은 상태에서 무턱대고 골드만 만진다고 일이 해결되는 게 아니야. 계속 여기에 있으면 도대체 린델에는 언제 돌아갈 건데?”

“…….”

“이 시골 바닥에 마법사가 있기나 한 것 같아? 최소한 마도 길드나 마탑에 의뢰라도 해봐야지 않겠어?”

“그건 그렇지만….”

“네가 지금 골드 때문에 잠깐 눈이 돌아간 거라니까. 일단 우리가 보호자가 됐으니까. 뭐라도 책임을 지기는 해야지. 안 그래?”

‘도대체 언제 너까지? 보호자가 된 거야? 왜 나까지 거기 껴 있는 거고.’

빅보이와 유진이 함께 이쪽을 빤히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을 지경이었다.

유진은 자신과 함께 빅보이를 놀리는 게 기억도 나지 않는 모양이다. 이제는 ‘우리’가 보호자란다.

‘이 새끼들… 미쳐도 단단히 미쳤어. 이딴 세상에서 무슨 애를 키운다고….’

것도 어디서 주워왔는지 모를 노예 꼬맹이를 말이야.

물론 최근에 그 꼬맹이 덕분에 웃는 날이 많아지기는 했다. 누군가 집에서 맞이해 준다는 느낌이 든 적도 엄청 오래됐고…. 왠지 모르게 이 꼬맹이가 가족으로 느껴질 때도 많았다.

‘집안일도 기가 막히게 하고 말이야.’

굳이 하지 말라고 하는데도 본인이 직접 요리를 해올 때도 있었고….

‘맛있기는 하지.’

딱히 뭐라고 정의하기 힘들지만 정말로 집밥 같은 느낌의 감동이 있었다. 물론 단순히 집밥이라고 하기에는 조금… 뭐라고 설명할 수 없기는 하지만 그 정성과 따뜻함은 분명 진짜였다.

‘어디서 배웠는지도 모르겠단 말이야.’

고급노예로 취급받아왔을 테니 아마 여러 가지 음식을 먹어본 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그런 주제에 본인은 햄비어 고기를 가장 좋아하고 있으니 웃기기도 참 웃긴 꼬맹이였다.

요즘 애들답지 않게 애교도 넘치고 말은 또 얼마나 잘 듣는지… 실수라도 했다 하면 눈물을 찔끔찔끔 흘리고 또 언제 울었냐는 듯이 밝게 웃는다.

생각해 보니 여러모로 그 꼬맹이에게 호감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이었지만….

‘어…?’

그래도 가족이나 보호자라고 하기에는….

‘어….’

맞나?

지금 이미 그렇게 하고 있나?

“어….”

이상하다… 내가 골드를 왜 벌려고 했더라….

내가… 왜 골드를 벌려고 했더라….

“제길….”

분명히 처음에는 좋은 술을 마시고 좋은 집을 한 채 구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어느새 인가 목표가 바뀌었다는 생각이 든다.

바보 같은 꼬맹이의 낙인을 지워주고, 마법사들을 찾기 위해서 골드를 벌고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순식간이다.

마치 개구리가 끓는 물에 천천히 익어가듯 꼬맹이 쪽으로 비중이 기울어져 가고 있었다.

“제기랄… 이게 뭐냐고.”

“왜 갑자기 지랄이야? 칼턴.”

“그냥 가만히 내버려 둬 빅보이. 뭐 깨달은 게 있나 보지.”

“…….”

“…….”

결국에는 눈치를 보며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아니… 나는… 보호자… 보호자 정도는 아닌 것 같고… 너희들의 조력자 정도로… 생각해 주면 좋겠는데.”

“저 병신 새끼. 저거….”

“하하핫! 내가 저럴 줄 알았다니까. 칼턴 저 무식한 새끼. 아직도 지가 정이 많은지 몰라요.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일은 그만둘 거야?”

“그건 조금 더 고민해 봐야 돼. 유진. 제길… 네 말도 일리는 있지만… 정확하게 그 꼬맹이 낙인 지우는 일에 돈이 얼마나 들어갈지 알 수 없으니까. 일단 마법사를 찾을 때 까지만이라도 일을 계속하는 게 좋지 않을까 싶은데… 내 말이 틀려? 빅보이?”

“뭐 얼마나 들겠어?”

“야 이 병신아. 고급노예라고! 고급노예! 그건 단순한 인장이 아니라니까. 만약에 뒷골목에서 못 찾으면 검은백조에 의뢰라도 해야 될지도 모르는데… 만약에 골드가 더 필요한 상황이 오면 어떻게 할 건데. 그때 가서 다시 여기 찾아와서 받아 주라고 말하기라도 할 거야?”

“씨발….”

“린델에 돌아가서 무슨 일을 하든지 간에 우리 쥐꼬리 월급으로는 부족해. 일단 당장은 무리야. 시간을 들이고 천천히 우리끼리 회의라도 하는 게 맞아.”

‘괜히 신경 쓰이네. 제길.’

그동안은 아무 생각도 없었지만 한 번 의식하자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특히 유진이 말 한 부분이 가장 신경이 쓰인다. 예전에는 상자와 실험실 안에서만 지냈었고, 지금은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제길….’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니다. 아침에 나가 저녁에 들어오는 일이 잦았으니 12시간 이상을 혼자 방 안에서만 지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그 긴 시간 동안 어떻게 시간을 보내는 것인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불평불만도 한마디 없다니….

‘쓸데없는 걸 말해줘서….’

아무래도 휴가가 가능한지 물어보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근처라도 돌아다니다 오면 꼬맹이 기분도 조금 나아지겠지.

그렇게 녀석을 볼 생각을 하며 천천히 숙소로 이동한 것은 당연지사. 방금 전의 무거운 주제로 이야기를 했기 때문인지, 묘하게 분위기가 가라앉아 있었다.

또 꼬맹이에게 한 소리를 들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무리하게 텐션을 올리려고 시도하는 유진이 시야에 들어왔지만 가라앉은 기분이 좀처럼 되돌아올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괜스레 큰 목소리를 내뱉으며 문을 확 열었을 때였다.

“어이 꼬마! 잘 있었냐!”

언제나처럼 미소를 지으며 기다렸을 것 같은 꼬맹이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항상 창문을 들여다보다 후다닥 달려오던 모습 역시 어디에도 없다.

“뭐… 뭐야….”

나라라도 잃은 것 같은 빅보이의 목소리가 가장 먼저 들려왔다.

“뭐야. 어디… 어디 갔어?”

성큼성큼 방 안으로 들어간 녀석이 방 안을 둘러다 본다.

“이게 뭐야… 유진, 칼턴… 꼬맹이 어디로 갔어?”

“…….”

“…….”

“아! 어디로 갔냐고!”

“…….”

“아니! 어디로 갔냐고 묻잖아!”

“제기랄!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제길… 제길! 제길!”

빅보이 녀석이 나무 탁자를 내려치자 탁자가 으스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눈은 흔들리고 있었고 지나치게 흥분해 있는 것 같다. 가끔 녀석이 이성을 잃을 때 보여주던 모습보다 더 격해지고 있는 것이 눈에 띈다.

일단 바깥으로 나가 녀석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무작정 밖으로 나가는 것이 보여 놈의 손목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

“뭐야. 칼턴.”

“진정해 빅보이 이 새끼야.”

“씨발! 이 상황에서 내가 진정하게 생겼어?! 그 꼬맹이가 제기랄 갑자기 사라졌는데? 어떤 새끼가 납치한 거면… 응?! 무슨 일이 생긴 거면 어떻게 하냐고! 제길! 내가 그래서 빨리! 제기랄! 지금 이러고 있을 시간이 있어?”

“나라고 이 새끼야. 마음 편할 것 같아? 진정하라고! 그냥 꼬맹이가 궁금증에 밖에 나갔을 수도 있잖아. 일단 헤르엔 경비들한테 알리고… 여러 가지 조치를 취해보자. 주변 놈들한테도 한 번씩 물어보고… 제길… 유진.”

“응. 내가 경비들한테 물어보고 올게. 그 새끼들이 아는 게 있는지 모르겠지만.”

“빅보이 너는… 애들 좀 모아봐.”

“후우….”

“납치당하거나, 노예 상인한테 잡혀가거나 이런 건 전부 최악의 상황이야. 생각보다 별거 아닐 수도 있으니까… 어쩌면 낙인의 부작용 때문에 그냥 멍하니 거리를 떠돌고 다닐 수도 있고… 헤르엔 놈들은 남한테 좀처럼 관심을 안 가지니까. 그냥 길거리 꼬맹이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제길… 씨발. 이래서….”

“지금….”

그렇게 막 밖으로 자리를 옮기려고 했을 때.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순간적으로 모두의 시선이 창문으로 향한다.

“뭐야! 뭐야! 이거! 뭐야!”

“어! 어?”

시야에 비치는 것은….

“저게… 저게 뭐야. 빅보이?”

악마들을 엮어서 만든 것만 같은 키메라들이었다.

“살라딘… 살라딘 새끼들이야?”

“아냐… 저건… 저건 조금 달라.”

소환된 악마가 아니다. 말 그대로 저건 누군가가 인조적으로 만든 물건에 가까워 보인다.

순식간에 헤르엔을 점거한 놈들 때문에 사방팔방에서 비명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일상을 보내고 있었던 도시가 지옥으로 변화하는 것은 순식간.

“아악!”

“아아아아악! 살려줘! 도망쳐!”

같은 소리들이 들려와 안색이 창백해진다. 아마 지금, 모두가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꼬맹이.”

“꼬맹이.”

“꼬마.”

“제기랄! 칼턴 활 챙겨!”

“알겠다. 빅보이.”

“유진!”

“준비할게.”

“싸울 거야? 빅보이?”

“우리는 꼬맹이만 구하고 튄다.”

“어디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고.”

“몰라! 씨발! 저 괴물 새끼들 족치다 보면 나오겠지!”

그냥 도망치는 게 낫다고 이성이 슬그머니 고개를 내밀었지만….

‘우리가 저 괴물들을 이길 수는 있겠냐고… 제길.’

그것 이상으로 길 잃은 꼬마 하나가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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