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04화
마법사의 탑(17)
‘이게 무슨 개 같은 상황이야.’
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빨… 빨리 이쪽으로 오세요! 형들!”
‘갑자기 시바 왜….’
허겁지겁 이쪽을 향해 달려오는 빅보이와 칼턴, 그리고 칼턴에게 들쳐 업힌 상태로 오고 있는 유진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등 뒤에는 녀석들을 쫓아오는 키메라들이 있었고, 심지어 악마와 융합한 것처럼 보이는 개체들도 눈에 비친다. 그냥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라 진짜 제대로 된 악마 말이다.
“빨리! 빨리요!”
“너… 너!”
‘시바 궁금한 게 많은 표정이자너.’
“꼬맹이 너 이 새끼… 도대체 어떻게!”
‘아니, 나 마법 쓸 수 있다고 말했었잖아.’
다시금 설명을 필요로 하는 표정을 보이는 놈들의 얼굴이 보였지만 이 긴박한 상황에 놈들과 백분토론을 할 수 있을 리 만무.
빅보이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것을 보니 일단 꼬맹이가 살아 있다는 것이 기쁜 것처럼 보인다.
당연하지만 상황이 긴박했던 만큼 녀석을 향해 소리를 지를 수밖에 없었다.
“빨리 들어가세요! 아직 살아 있다고요!”
“뭐? 유… 유진이?”
“네! 그러니까 빨리 들어가세요!”
“너는?!”
“형들 들어갈 때까지는 막고 있어야죠! 빨… 빨리요! 더 이상 막기 힘들어요!”
싸구려 촉수로 만든 연금소환마법으로는 눈앞에 키메라를 막기에 역부족이다. 한 손으로 마법을 유지한 채로 다른 손을 가방에 집어넣어 용 숨결 물약을 꺼내 든다.
이윽고 용의 숨결이 놈에게 닿는 순간, 콰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키메라들이 허물어지는 것이 눈에 비쳤다.
특수 개체는 아직 살아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분명히 무시할 수 없는 피해를 입지 않았을까.
‘시바 안 쓰려고 했는데.’
다른 것도 아니라 무려 디아루기아의 드래곤 브레스를 축소시켜 담아놓은 물약이다. 물론 물약 자체가 탄생한 지는 까마득해 기억도 나지 않을 정도였지만 본래 용 숨결 물약이 낼 수 있는 화력은 결코 적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가 아니었다.
그걸 그동안 개량하고 개량하고 또 개량하기도 했으니 그 파괴력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정말로 용의 숨결이라도 지나간 듯 물약이 터지는 순간 폭발적인 마력이 선을 만들며 놈들을 긁고 지나가는 모습이 눈에 보였다.
“끄르르르르륵!”
“케에에기에에엑!”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콰드드드드드드득!
‘이래서 쓰기 싫었는데.’
그나마 빛 폭탄 물약을 쓸 상황이 나오지 않아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할까.
멍하니 그 참상을 바라보는 빅보이 일행도 기가 차는지 깜짝 놀랐다는 얼굴로 나를 바라보는 중, 물약을 던지는 순간을 보지 못했으니 정체불명의 마법을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는 모양이다.
‘시바 차라리 그렇게 생각하는 게 나아.’
“뭐… 뭐야… 꼬맹이… 너….”
“너… 너 이 새끼. 뭐야.”
“빨리 들어가요! 빨리! 빨리!”
“아… 제… 제길!”
“위험하다니까요! 빨리… 빨리!”
마치 괴물을 바라보는 것 같은 표정이었다. 그야 주워온 꼬맹이가 갑자기 이상한 마법을 펑펑 쏴대고 있으니 그럴 만도 했지.
특히나 빅보이의 얼굴에는 이해할 수 없는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분명히 내가 시바 마법 쓸 줄 안다고 했는데 정말로 내가 아는 그 꼬맹이가 맞나 하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지 않은가.
어쩔 수 없지만 곧바로 뒤를 돌아 허겁지겁 달리다 꽈당 넘어질 수밖에 없었다.
“어? 어!”
‘나 넘어졌자너!’
깜짝 놀란 빅보이는 닫혀가는 성문 앞에서 넘어지는 나를 바라보며 깜짝 놀란다.
결국 이를 악문 녀석이 다시금 성안을 빠져나와 나를 줍고 다시 성안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빅보이 형… 형.”
“제길. 너 이 새끼! 도대체 어디 가 있었어!”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제기랄! 내가 분명히 방 안에 있으라고 말했잖아! 젠장! 어디 가지 말고 거기서만 얌전히 지내고 있으라고 말한 거 기억 안 나는 거냐고!”
“죄, 죄송해요. 형.”
울먹울먹.
“설명은 꼭 해줘야 할 거다. 단단히 혼날 생각도 해놓으라고.”
‘혼도 내주는 거냐고! 젠장!’
“네… 네!”
당연히 아무것도 모르는 꼬맹이의 입장에서는 기쁨의 미소를 흘리는 것이 맞다.
꼬맹이의 입장에서는 혹시나 자신을 괴물로 바라보지 않았을까 걱정했을 테니 말이다.
아직도 빅보이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사랑해 준다는 것을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이 사회성 없는 꼬맹이의 눈에서는 기쁨의 눈물이 왈칵 튀어 오른다.
‘영화 같자너.’
마치 탈출영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은 느낌, 그동안 밀린 이야기를 짧게 나누는 중에도 뒤에서는 키메라들이 이쪽을 쫓고 있었고, 성문은 닫히기 일보 직전이다.
빅보이 녀석은 이제 더 이상 말을 할 여력도 없는지 이를 악물고 뛰어가기에 여념이 없다.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주연과 조연들은 이런 상황에서 아슬아슬하게 문 안으로 들어가게 마련, 아니나 다를까 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히고, 이미 성안에 들어와 있는 녀석들이 환호성을 보내주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시바 무슨 환호성이야. 전쟁 끝났어?’
“사제! 사제 있습니까!”
“제… 제가! 제가 치료할 수 있어요!”
당연히 아직 할 일이 남아있다. 곧바로 유진에게 다가간 이후에는 신성력을 내보낸다.
희생과 부활의 신 모드였다면 조금 나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으니 말이다. 일단 숨은 붙어 있게 하는 게 맞겠지.
“너….”
‘아니, 자꾸 놀라기만 할 거냐고요.’
“다리 주세요.”
“뭐?”
“다리요. 붙일 수 있을 때 붙여야 되니까요.”
포션을 꺼낸 이후의 유진 녀석의 입에 대고 먹이기 시작하자 금방 혈색이 도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뒤늦게 온 사제 역시 유진에게 치유주문을 외우자 슬슬 안정화가 되어가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이유와 과정이 어찌 됐든 간에 드디어 한숨 돌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후우….”
“제길… 산 거야? 유진이… 살아 있는 거야?”
“일… 일단 응급처치는 된 것 같아요. 칼턴 형.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니 안정을 취하게 하는 게 좋겠어요. 빅보이 형, 칼턴 형 좀 도와주세요.”
“당연히 그래야지. 근데 그전에… 설명할 게 있지?”
“…….”
“…….”
“말… 말씀드렸잖아요. 저… 마법 쓸 수 있다고.”
“지금 그걸 이야기하는 게 아니잖아. 나는 고작해야….”
“형, 형이 안 물어봐서….”
“후우… 그래 내가 물어본 적이 없지… 제길… 궁금해한 적도 없고… 그래도 말이다.”
살짝은 떨리는 목소리.
“혹시 실망하셨나요?”
라고 되물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
“…….”
“네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게 실망스럽다. 제기랄. 내가 분명히 방 안에 제대로 있으라고 했는데. 도대체 어딜 싸돌아다니고 있었던 거냐고!”
‘아… 이 새끼 너무 쉽자너.’
“그래. 꼬마야. 젠장. 너 찾으려고 얼마나 개지랄을 떨었는지 알아?! 하지만… 고맙다. 꼬맹이 새끼야! 유진을 살려줘서! 어떻게 신성력까지 쓸 수 있는 건지는 모르겠는데. 너 덕분에 살았다고!”
심지어 칼턴도 나를 얼싸안는다. 감정표현을 잘 하지 않는 빅보이 녀석 역시….
“일단 무사해서… 다행이다.”
라는 말을 남기고는 나를 살짝 안아주기 시작했다.
“헤… 헤헤헤….”
악어의 눈물 한 방울,
“무사해서 다행이야. 뭐가 어찌 됐건 간에… 이렇게 살아 있으면 다 된 거야. 다 괜찮아진 거라고… 유진도 안 죽었고 말이야. 멀쩡히 두 다리 다 붙어 있고….”
“헤헤헤….”
“유진 이 새끼. 기절하기 전에 꼬맹이 어쩌고 하더만 눈뜨면 까무러치겠구만. 천국인 줄 아는 거 아니야?”
“흐… 흐흐흐흐흐흐….”
물론 이후에는….
“어… 꼬맹아?”
“헤…헤헤… 어… 어라?”
‘어라?’
하고 쓰러지는 것이 국룰이었다.
천천히 눈이 감기고 쓸 수 있는 힘을 모두 썼다는 듯이 비틀거린다.
“꼬마야!”
“너… 너 이 새끼!”
“잠… 잠깐… 졸려서….”
“뭐야. 이게 무슨 일이야. 칼턴. 사제! 여기 사제!”
“별… 별거 아니…에….”
하고 눈을 감자 곧바로 나를 받아드는 손길이 느껴졌다. 허겁지겁 어디론가 달려가는 빅보이 녀석은 아마 사제를 부르러 가지 않았을까.
일이 커지는 것은 바라지 않았기 때문에 살짝 걱정했는데 다행히 칼턴이 브레이크를 잘 밟아준 것 같았다.
“제길… 제길! 꼬맹이 새끼야!”
“진정해, 빅보이. 일단 그냥 잠든 것뿐인 거 같으니까.”
“어떻게 이 상황에 진정을 해? 꼬맹이가….”
“그러니까. 잘 봐. 그냥 잠든 것뿐이라고… 숨도 제대로 쉬고 있고… 분명히 마력을 너무 많이 사용한 거겠지. 그냥 무리한 거야.”
“어….”
“…….”
“…….”
“우, 우리가 뭘 주워온 거냐. 칼턴.”
“나도 몰라. 이 새끼야. 뭐든지 나한테 묻지 말라고.”
“…….”
“이미 전에도 나눈 이야기였지만 예상했던 것처럼 평범한 노예는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해서 전투노예로 보이지도 않고… 손발이 너무 곱거든… 아무리 마법사라고 해도… 전투노예라면 이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지는 않았을 거야. 내 생각을 말해줘? 이 꼬맹이도 전투가 처음이야. 처음 만났을 때는 무서워서 바지에 오줌이나 지리는 꼬맹이였는데 녀석 나름대로 용기를 낸 거라고. 너를, 유진을, 우리를 구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러니까 너무 의심하지 마.”
“누가 의심을 했다고 그래! 젠장. 그, 그건 제쳐두고 일단 이 꼬맹이가 어떻게 그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는지….”
“그걸 내가 어떻게 알아! 이 새끼야! 나한테 뭐든지 묻지 말라니까. 그냥 실험의 결과물이겠지. 꼬맹이는 거짓말을 하는 놈은 아니니까. 실제로 본인도 하루 온종일 자기가 마법 쓸 수 있다고 말했었잖아. 그러니까 데리고 가 달라고. 적어도 수십 번은 넘게 말했겠다. 이 새끼야. 안 들은 게 누군데?”
“그건 그렇지만… 그냥 이 녀석이 생떼 쓰는 줄 알았지.”
“게다가 아까 그 튀어나온 촉수 마법 같은 건 진짜로 듣도 보도 못한 마법이었다고. 뭔 이상한 빛이 튀어나오는 것도 마찬가지고… 실험실에서 썩었다고 본인 입으로 분명히 말했으니 그냥… 이런저런 마법을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받거나 실험을 받았거나 한 거 아니겠어? 꼭 내 입으로 이런 소리를 해야 알아 쳐 듣겠냐고 빅보이.”
“…….”
“젠장.”
‘왜 침울해하는 건데?’
“근데… 유진은 괜찮냐.”
“알잖냐. 이 자식 명 하나는 질긴 거. 벌써부터 잠꼬대 중이다. 저 새끼 말고 꼬맹이나 잘 돌봐줘. 그리고 빅보이 너는 유진 일어나면 꼭 고맙다고 인사하고. 저 새끼 아니었으면 너… 죽었을 거다.”
“그래… 유진이 내 목숨을 살렸지.”
“아무튼 빅보이 너 이 새끼야. 꼬맹이가 연관되면 물불 안 가리는 습관 좀 고쳐야겠어. 그러다 제명에 못 죽을 거다.”
“누가 물불 안 가린다고 그래? 나는 그냥….”
빅보이와 칼턴이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물론 여기저기에서 살았다. 같은 함성 소리도 들려온다.
일단 헤르엔의 영주성에 들어왔으니 일차적으로 목숨을 구했다고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독 안에 든 쥐 신세가 된 줄도 모르고 시바.’
누가 보기에도 억지로 몰이를 당한 그림이 맞다는 생각이 드는 상황이었다.
영주성에 걸려 있는 방위마법이야 키메라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하루도 안 돼서 빠개질 게 분명할 테고, 지금 밖에 있는 키메라들이 이쪽으로 들어오지 않고 있는 것은 어떻게 생각해도 한 사람을 기다리고 있다고밖에 설명할 수 없다.
누구인지야 너무 뻔해 구태여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다.
“…….”
“…….”
김현성.
문제가 있다면….
‘시바. 그 새끼. 린델 갔다고 시바.’
지금 녀석이 헤르엔에 자리하지 않았다는 것.
‘우리 현성이 린델 갔다고 시바.’
엇갈린 타이밍에 실소가 다 나올 지경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