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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09화 (1,307/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09화

마법사의 탑(22)

“제길… 제길… 씨발….”

계속해서 욕을 중얼거리는 빅보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하필이면 이게 지금 터지네.’

표정 또한 자기혐오로 얼룩져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온다. 마력으로 취기를 몰아내고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떡이 되도록 마셨으니 금방 회복될 리 만무.

몇 시간 동안 잠을 자기도 했지만 놈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이었다.

솔직히 폭발 소리에 바로 일어나 반응한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혀… 형 괜찮으세요?”

“제기랄… 괜찮다. 너는… 어디 다친 데 없지?”

“네. 폭발 소리는 다른 곳에서 들렸어요. 키메라들이 성을 공격하고 있나 봐요.”

“그… 그래. 어, 어디로 가야 했더라?”

“3성벽이에요. 여기서는 조금 떨어져 있지만….”

“그랬었지. 칼턴 이 새끼는 어디로 갔어?”

“잠깐 보고할 게 있다고 위로 올라갔어요. 아마 곧 합류할 거예요.”

“잘할 수 있지?”

“네. 형만 옆에 있으면 괜찮아요.”

“자식이 이런 상황에서 쓸데없는 소리나 하고 말이야.”

“헤….”

‘그래도 의외로 침착하기는 하네.’

짬에서 나오는 바이브가 있는 것 같기는 해.

정체불명의 꼬맹이 녀석 때문에 잠깐 흔들리기는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살아남은 용병답게 상황판단이 빠르다.

곧바로 해당 지역으로 나를 옮겨주려고 하는 것도, 최대한 안전한 방향으로 길을 옮기는 것도, 빅보이가 지금까지 허투루 살아남은 것이 아니라는 걸 설명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바깥으로 나오자마자 가장 먼저 보이는 것은 성벽으로 몰려들고 있는 키메라들.

불행인지 다행인지, 특수 개체들이 참가하지 않고 있었지만 헤르엔 영주성에 갇힌 모험가들로서는 일반 개체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틀어막는 것이 고작인 것처럼 보인다.

“제기랄! 막아! 올라오지 못하게 해!”

“죽어! 이 새끼들아! 죽어!”

“화살 더 필요해! 화살!”

“아무나 화살 좀 던져줘. 빨리! 거기! 가만히 구경하지 말고 제기랄! 뭐라도 하라고! 새끼야! 죽고 싶어?!”

빅보이와 함께 3성벽으로 자리를 옮기는 와중에도 계속해서 전투를 하고 있는 인원들이 스쳐 지나간다.

키메라들의 원거리 공격은 계속해서 성벽의 방위 마법을 때리고 있었고, 원거리 공격이 불가능한 개체들은 억지로 성벽을 기어 올라오고 있는 중.

이미 몇몇 개체는 성벽 위로 올라와 모험가들에게 팔을 휘두르고 있다.

“제기랄. 꽉 잡아라.”

“네… 네!”

마치 코알라마냥 빅보이의 상체에 달라붙자 녀석이 벨트로 내 몸을 고정시킨다. 내가 놈의 갑옷이라도 된 것 같아 슬쩍 불안하기는 했지만 한 손으로 나를 꽉 안고 있는 것을 보니 고기방패로 사용할 생각은 없는 것 같았다.

한 손 도끼를 들어 올린 녀석이 일반 개체를 향해 도끼를 휘두르자. 콰직! 하는 소리와 함께 일반 개체가 다시 성벽 아래로 떨어진다.

“비켜! 씨발! 이 새끼들아! 다 비키라고!”

“길을 열어! 마법사님이 지나간다!”

“길 열으라고 이 새끼들아! 마법사가 지나갈 테니까! 제길!”

“끄악! 으아아아아아아아아악!”

“기름 부어! 기름 부어!!! 아무거나 가져와! 올라온다! 이 개자식들이 올라온다!”

“전위들 뭐 해! 길 안 막아!?”

‘시바.’

“계속 밀어내! 개자식들! 올라오지 못하게 하라고!”

‘정신없네 진짜.’

“비켜! 비켜!”

전쟁터 한가운데 나를 가만히 들고 있을 수 없는지 무작정 사람들을 밀치며 이동하고 있는 빅보이의 모습에는 초조함이 감돈다.

그 와중에도 원거리 공격들이 계속해서 성의 방위마법을 때리고 있었기 때문에 귀가 다 아파올 지경, 빅보이 녀석이 있는 지역 또한 영향을 받았는지 살짝 휘청이는 놈의 몸이 느껴졌다.

“괜, 괜찮냐?”

“네! 형은 괜찮아요?!”

“그냥 방위마법을 건드린 것 같다. 아직까지는 무사한 것 같은데… 그보다 몇 놈이 더 위로 올라왔어.”

“도, 도와줘야 되는 거 아닌가요?”

“일단 너를 안전한 곳으로 옮기는 게 먼저야.”

“하지만….”

“일단 그냥 계속 달라붙어 있으라고. 응? 나만 믿고 눈 꼭 감고 있어. 여긴 너무 복잡해. 네가 주문을 외울 수 있는 환경이 아니야.”

“네… 네!”

‘빅보이의 작은 모험 흥미진진하자너.’

물론 주변에서 호들갑 떠는 것에 비해 상황이 그리 위협적이지는 않은 것 같았지만 말이다.

‘특수 개체도 아직 안 풀었고….’

그렇게 죽자 살자 달려들고 있지도 않은 것 같은데?

‘전략이고 전술이고 없고… 그냥 닥치고 돌진밖에 안 하자너.’

냉정하게 말해서 헤르엔 영주성은 저 키메라들의 공격을 견뎌낼 여력이 없다. 적군 측에서 마음먹고 영주성을 무너뜨리고자 한다면 단언하건대 성이 공략당하는 데 몇 시간도 채 걸리지 않을 것이다. 그 간단한 작업을 구태여 시간을 질질 끌며 진행시키고 있으니….

당연히 경고의 의미일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김현성에게 시위 아닌 시위를 하는 것이라고 봐도 되지 않을까.

헤르엔 영주성에 있는 이들을 이대로 죽게 내버려 둘 거냐고 묻는 것처럼 느껴진다.

최소한 이번 전투에서 헤르엔 영주성이 무너질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되겠지만….

‘이제 카운트다운이라 이거네.’

공세는 오늘 하루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최소한 오늘은 막아낼 수 있었지만, 다음 날, 또 그다음 날, 또 그다음 날에도 피해자와 사망자가 계속해서 누적될 것이고, 결국 영주성에는 쥐새끼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될 것이다. 김현성이 이곳으로 오지 않는다면 말이다.

‘시바.’

“비키라고 비켜!”

첫 번째 웨이브조차 힘겨워 하고 있는 놈들을 눈에 담는 순간 내 생각이 맞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신할 수 있었다.

“허억… 허억….”

“형 괜찮으세요?”

“괜찮다니까. 젠장… 이제 곧이니까. 준비하라고.”

“네… 네!”

“어이 빅보이! 이 새끼야!”

“칼… 칼턴? 그리고….”

“마법사님!”

“송수경….”

‘당연히 마중 나와야지.’

송수경이 칼턴과 몇몇 전위들을 데리고 빅보이와 나를 마중 나오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당연하지만 빅보이도 안심하는 것 같은 모양새, 비로소 나를 내려두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는데 생각보다 잔 상처가 많이 나 있었다.

알게 모르게 영향을 끼친 전투의 여파들을 몸으로 전부 받아낸 것이리라.

‘이 새끼….’

“시… 시발… 으아… 왔구나. 드디어… 제길….”

심지어 긴장이 풀린 듯이 제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 모습. 칼턴이 그 모습을 보고 빅보이를 부축하기 시작했다.

“이 손 많이 가는 새끼….”

“너무 그러지 마라. 이 새끼야. 후우… 후우….”

“형… 형! 괜찮으세요?!”

“그럼… 괜찮지. 어여 올라가 봐라.”

“하지만… 어떻게….”

“난 괜찮으니까. 올라가 보라고. 그냥 긁힌 상처들이 대부분이라니까.”

‘빅보이 이 새끼 눈물 나자너.’

물론 녀석의 말대로 긁힌 상처들이 대부분이기는 했지만 말이다.

아무튼 송수경에게서 나를 인도한 빅보이 덕분에 안전하게 3성벽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마법사들과 함께 캐스팅. 일반 개체가 대상이었으니 구태여 용숨결 물약을 던질 필요도 없고….

‘화염마법 위주로 해볼까.’

마침 기름을 많이 뿌려놓은 것 같았으니까. 주문을 외우고 얼마 지나지 않아 허공에서 생성된 마법진에서 거대한 불의 거인의 상체가 형상화된다.

주변에서는 탄성이 터져 나온다. 일류 소환술사나 정령술사가 아니고서야 소환 불가능한 존재를 부리는 것처럼 비쳤을 테니 그럴 만도 했다.

하기사 전설 등급의 촉매를 이용해 연성한 녀석이었으니 틀린 표현도 아니었다.

‘시간제한이 짧은 게 흠이지만….’

불의 거인이 팔을 휘두르자 키메라들이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진다. 불길에 휩싸여 괴로워하는 꼴은 가관, 심지어 드래곤마냥 입에서 불길을 내뿜는 모습은 더욱 위협적이다.

비주얼 하나만큼은 압도적인 모습인지라, 아군의 사기가 더욱더 오를 수밖에 없었다.

‘멋있자너.’

각자 자리를 잡은 마법사들 역시 화염마법을 계속해서 키메라들에게 떨어뜨리니 어느새 놈들의 숫자가 줄어나가는 것이 느껴진다.

그렇게 의욕이 없는 공성 측과 목숨을 걸고 싸우는 수성 측이 드잡이질을 한 지 몇 시간이 지난 시점.

‘슬슬 갈 때가 됐는데.’

아니나 다를까 천천히 후퇴하기 시작하는 키메라들이 눈에 보였다.

“도망친다! 키메라 개자식들이 후퇴하고 있다고! 하하핫! 살았어! 살았다고!”

‘내일 2차 웨이브 몰려올 텐데 지나치게 기뻐하자너.’

“우리가 해냈어! 제길!”

“하아… 으윽… 하아아….”

“…….”

“하아….”

“괜찮으십니까? 마법사님?”

“네. 괜… 괜찮아요.”

“정말로 수고 많으셨습니다.”

“당연히 해야 할 일인걸요.”

“너무 무리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슬슬 송수경이는 빅보이한테 작업 들어가겠네.’

마침 타이밍도 딱 적절했으니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빅보이에게 다가가고 있는 송수경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잠깐 이야기 좀 가능하시겠습니까?”

“뭐… 그렇게 하지.”

“자리를 옮기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만….”

“…….”

‘뭔 말 할지 너무 뻔해.’

아직도 몸에서 술 냄새가 나고 있었으니까.

-혹시 술 드셨습니까?

-…….

-…….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믿을 수가 없군요. 중요한 수성전을 앞둔 이 상황에서… 음주라니…. 마법사님의 보호자라는 자각은 있으신 겁니까?

‘딱 저 대사 칠 줄 알았자너.’

-마법사님께서 얼마나 당신을 믿고 있는지 알고 있으시지 않습니까. 후우….

-…….

빅보이는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어 보인다.

-저 역시 그런 마법사님의 의사를 존중해 당신에게 마법사님을 맡긴 것이었는데… 물론 무사히 마법사님을 데리고 오신 점에 대해서는 감사의 인사를 드리는 게 맞습니다만… 전시 중에 술을 드신 것을… 제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뭐라 할 말이 없군. 제길… 실수였다. 바보 같고 멍청한 짓이었어. 진심으로 사과하지.

아마 그 누구보다도 녀석이 자괴감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안 그래도 정말로 자신이 마법사에게 올바른 보호자가 맞는지, 자신 같은 멍청한 놈이 저런 꼬맹이를 맡아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던 타이밍이 아니었던가.

송수경이 원색적인 비난을 퍼부은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빅보이의 표정은 점점 일그러져 가고 있었다.

-후우… 당신이 마법사님과 어떻게 만났는지, 평소에 마법사님과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

-그는 조금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마땅한 아이입니다.

-…….

-솔직히 말해서… 당신 같은 사람에게 어울리는 분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이번 헤르엔 수성전의 성공 여부와는 관계없이 자신에 대해서 한번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셨으면 합니다. 부탁드리겠습니다.

나름대로 결정타라면 결정타였다.

‘그거다. 수경아. 시바. 그래. 가스라이팅은 그렇게 하는 거다.’

녀석의 검은 그림자가 벌써 드리우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빅보이 형?”

“…….”

송수경과의 대화 끝에 나를 아무 말 없이 지나친 빅보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빅보이 형!”

“제길… 지금은 잠깐 내버려 둬라 꼬맹아.”

“형. 왜 그러세요?”

“아니 잠깐 내버려 두라고 했잖아! 젠장!”

“…….”

“…….”

“빅보이. 왜 애한테 화풀이야? 괜찮냐? 꼬맹아?”

“제길.”

오해가 쌓인 두 사람, 송빌런의 더러운 손길이 순진한 노예를 향해 뻗어지고 있다는 것을 빅보이 녀석은 아직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제가 모시겠습니다. 마법사님.”

“네? 아… 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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