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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10화 (1,30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10화

마법사의 탑(23)

“마법사님. 몸은 어떠십니까. 괜찮으십니까?”

“네… 네. 괜찮아요. 조금 나른한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아직 마력에 여유가 있으니까요.”

“혹시 어느 정도나….”

“당장 회복하기는 힘들지만… 그래도 몇 시간 푹 자고 나면 회복될 거예요.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왜 이렇게 꼬치꼬치 물어보고 난리야. 이 새끼는.’

“…….”

“…….”

“칼턴 님께 이야기는 대충 전해 들었습니다. 마법진에 대해서….”

‘그래?’

“네. 물론 확실하지는 않아요. 저도 예전에 본 게 어렴풋이 기억이 났을 뿐이라… 키메라 소환진이라는 게 황당하게 들리시겠지만….”

“아니요. 조금도 황당하게 들리지 않습니다. 사실 이미 레인저들과 마법사들에게 성 내에 마법진이 있는지 찾아보라고 지시를 내린 참입니다. 외부에서 오는 공격은 버틸 수 있지만 만약 내부에 키메라가 들어오기라도 하면 문제가 생길 테니 말입니다.”

‘벌써? 일 처리 한번 빠르네.’

“성과가 있을까요?”

“아직까지는… 정말 마법진에서 소환된 것이 맞다면 성 바깥까지 범위를 확대해야지 찾아볼 수 있겠지만… 쉬운 일은 아니니 말입니다. 원정대라도 꾸려야 할 텐데… 지원자를 찾기 힘든 상황입니다. 아시다시피 지금 밖에 나갈 수 있는 상황이라고 볼 수 없으니 말입니다.”

‘그럼 문제가 좀 커지는데.’

“하지만….”

“네?”

“어쩌면 기회가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

“적들이 저희를 얕보고 있으니까요.”

‘그래. 그 말이 맞기는 해.’

“아니, 얕본다는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지만… 틀림없이 적들은….”

“…….”

“헤르엔 영주성을 봐주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감이 좋네.’

사실 바보가 아니라면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헤르엔 영주성이 가지고 있는 뜻밖의 저력 때문에 키메라들의 공격을 버티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말이다.

‘누가 봐도 그냥 말려 죽이겠다는 심산이자너.’

혹은 그냥 괴롭히고 싶다든가….

말 그대로 저런 표현이 어울린다. 몇몇은 아직도 승리의 함성을 내지르고 있었지만 대충 둘러봐도 붕대를 감고 있는 인원들이 대다수다.

사망자는 적은 것처럼 보였지만 정작 전투를 치를 수 있는 인원은 얼마 되지 않는다. 눈앞에 승리에 기뻐할 뿐, 앞으로의 공격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전혀 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송수경의 눈에도 그게 보이고 있는 것이다.

물론 영주성의 방위마법과, 믿음직한 지휘본부를 믿고 있겠지만 그렇다고 해서 전력의 차이를 메울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특수 개체 하나도 참전하지 않은 수성전에서 이 정도의 피해를 입었다면 사실상 패배했다는 거나 다름이 없다는 거다.

물론 아무것도 모르는 기영이는 그 사실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지만 말이다.

“그… 그런가요. 저는 틀림없이 이긴 줄로만 알고 있었는데….”

어처구니없는 질문에 송수경이 살짝 미소 지으며 입을 열었다.

“물론 전혀 의미 없는 승리는 아닙니다. 사기도 올라갔고… 헤르엔 영주성의 목적은 어디까지나 적들의 섬멸이 아니라 원군이 올 때까지 버티는 거니까요.”

‘그래. 그러니까 네가 여기 붙들려 있는 거겠지.’

“그것보다 아무래도 마법사님의 숙소를 옮겨야 할 것 같습니다.”

‘그래? 숙소까지 옮겨?’

“네? 어… 어째서….”

“위험하시지 않았습니까?”

“아니요. 빅보이 형 덕분에….”

“빅보이 님 역시 위험에 처할 뻔했고요.”

“…….”

“…….”

‘와 이 새끼 진짜 프로네 프로.’

“틀림없이 빅보이 님께서도 위험한 상황이셨을 겁니다.”

‘가스라이팅의 프로야. 하기사 꼬맹이 하나 주무르는 건 일도 아니겠지.’

“아….”

곧바로 시무룩한 얼굴 되기.

송수경 역시 내 심정에 공감한다는 듯이 시무룩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아무래도 조금 더 전문적인 경호를 받을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결코 빅보이 님이 부족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조금 더 제3성벽에 가까운 곳에 숙소를 마련하고… 헤르엔 영지의 기사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어떻습니까.”

“…….”

“빅보이 님도 근처에 숙소를 마련할 수 있게 조치하겠습니다.”

당연히 이 순수한 꼬맹이는 빅보이와 조금 더 시간을 같이 보내고 싶을 뿐이었지만, 빅보이가 위험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도 가만히 있을 정도로 매정하지는 않았다.

생각해 보니 나를 3성벽까지 데리고 온 빅보이의 몸은 분명 상처투성이가 아니었던가.

이제는 지켜주겠다고 호언장담한 주제에 피투성이가 된 빅보이를 떠올린 꼬맹이는 어쩔 수 없이 슬쩍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네… 네. 괜찮아요. 그것보다 형은….”

“아, 빅보이 님은 잠깐 성벽을 보수하러 간다고 하시더군요.”

“그, 그런가요?”

“네.”

‘성벽 보수는 무슨… 아니, 진짜로 하고 있기는 하네.’

슬그머니 망원경으로 녀석을 바라보자 아니나 다를까 칼턴과 대화를 나누는 빅보이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빅보이 이 새끼야.

-왜….

-꼬맹이 새끼… 어떻게 할 거야? 딱 봐도 시무룩해 보이던데….

-…….

-저렇게 두고 볼 거야?

-뭘 두고 봐. 지금은 전쟁 중이고, 이 멍청한 놈아. 꼬맹이는 자기 역할에 충실히 하면서 회복하고 있는 것뿐인데. 별걸 가지고 다 시무룩하다고 표현해. 언제부터 그렇게 꼬맹이를 신경 썼다고 말이야.

-그걸 말하는 게 아니잖아, 빅보이! 잘했다. 응원한다. 한마디 정도는 해야 되는 거 아니냐고. 얼핏 보면 대단한 마법사처럼 보이지만 말이다. 꼬맹이는 그냥 꼬맹이야. 아직 세상 밖으로 빠져나온 지 얼마 되지도 않았다고. 누구보다도 너 같은 놈의 도움이 필요한 시기라는 걸 왜 몰라? 아까 표정 못 봤어? 꼭 버림받은 강아지처럼 보이더만….

-…….

-입 닥쳐. 칼턴.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야.

-뭐?

-슬슬 그 꼬맹이도 뭐가 옳고 그른지 알아야지. 제대로 된 삶이 뭔지도 알아야 하고… 우리가 녀석을 발견했다고 해서 녀석을 끝까지 책임져야 한다는 건 조금 그렇지 않냐. 불쌍하지 않냐고… 조금만 더 운이 좋았으면 더 좋은 삶을 누릴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하필이면 나 같은 새끼를 만나서 말이야.

-어이 빅보이. 꼬맹이가 그런 걸 신경 쓸 것 같아? 그 녀석은 그냥… 네가 있는 것만으로도….

-그 자식이 그런 걸 신경을 안 쓰니까. 신경을 쓰게 만들어야 된다는 거 아니야! 이 멍청한 새끼야. 지금부터 준비해야 된다고!

-왜 소리를 질러?! 이 새끼는! 씨발!

-우리는 언제 뒈질지 모르는 파리목숨이라고. 제기랄. 저 꼬맹이가 혼자 남겨지는 것보다 차라리 송수경인가 뭔가 하는 놈한테 맡기는 게 훨씬 낫지 않겠어?!

-…….

-칼밥 먹고 사는 하류 인생이 정말로 저 꼬맹이 보호자 노릇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 칼턴?! 어?! 대답해 봐.

-…….

-어디 대답해 보라고 이 새끼야!

‘아주 지들끼리 드라마 찍고 북 치고 장구 치고 난리 났네.’

눈물 없이는 볼 수 없을 지경까지 이른 것 같다.

-그냥 임시로 보호자 노릇을 하고 있었다고 생각하면 되는 거야. 그 꼬맹이는 정이 많아서 이렇게까지 하지 않으면 무슨 말을 하는지 못 알아먹는다고… 내 말이 틀린 것 같아? 칼턴? 억지로라도! 제기랄! 냉정하게 대해야 정신을 차린다고! 그 멍청이는!

-…….

-…….

-틀리지는 않지만… 이렇게까지 할 필요는 없잖아. 녀석도 기댈 곳이 필요하다고.

-오히려 이런 상황이기 때문에 더 거리를 둬야 하는 거야. 우리가 이 전투에서 죽으면 그 꼬맹이를 책임질 사람이 필요하니까.

-송수경… 그 새끼는 믿을 수 있고?

-그럼… 우리는 믿을 수 있다는 거고? 어차피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은 좋으나 싫으나 빌어먹을 살인자들이란 말이야. 냉정하게 말해서 우리가 뒈질 확률이 더 높아. 이후에 일어날 일은 생각해 봐야겠지만… 최소한 지금 이 순간만큼은 꼬맹이가 송수경과 친하게 지내는 게 나쁘지 않다는 이야기야.

-네 말에 딱히 반박은 못 하겠다만… 나는 최소한 꼬맹이한테 선택권을 쥐여주는 게 맞다는 생각이 든다. 빅보이. 그게 녀석도 더 행복할 거야.

-우리 같은 놈들이랑 어울려서 좋을 게 없어. 칼턴. 다른 건 몰라도 그거 하나는 확실하다고….

벽돌을 나르면서 씁쓸한 웃음을 보이는 빅보이의 얼굴이 괜스레 눈에 밟혀온다.

칼턴 또한 빅보이에 정론에 딱히 반박할 수 없는지 조용히 욕만 집어삼키고 있었다.

‘시바… 너네 안 뒈진다니까.’

어느 정도 무대가 만들어진 듯한 느낌.

‘이제 슬슬 현성이 부르고… 송수경 이 새끼한테… 대충 당하는 척해주면….’

라고 생각했을 때.

일순간,

피유우우우우웅.

“어….”

헤르엔 영주성을 지키고 있었던 방위마법이 꺼지는 것이 느껴졌다.

나만 그것을 느낀 것이 아니다. 오히려 송수경이 더 빠르게 반응한다.

곧바로 창문을 확인하는 녀석의 얼굴이 창백해지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

“…….”

“아… 아아….”

‘시발… 경고가 아니었어.’

1기영을 너무 물렁하게 봤다는 것을 깨달은 것은 당연지사.

김현성을 압박하거나 헤르엔 영주성을 조금 더 오래 지켜보겠다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이곳을 내버려 둘 리가 없다.

‘그냥 밀어버리려고?’

여러 가지 생각하지 않고 그냥 밀어버릴 작정이다. 굳이 여기가 아니더라도 김현성을 일으켜 세울 장소는 많다고 판단했거나, 아니면 그냥 이 상황이 마음에 들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뭐가 어찌 됐건 간에 녀석은 헤르엔을 지도에서 지우기로 작정했다.

‘이렇게 쉽게? 민간인들도 있는데….’

이렇게 쉽게 전부 다 죽이겠다고?

기가 차 말이 나오지 않을 정도, 그동안 많은 쓰레기들을 봐오기는 했지만 이 새끼는 진짜였다.

일반 개체들뿐만이 아니라 특수 개체들도 시야에 비치는지 송수경의 동공이 흔들리는 것이 느껴진다.

나 역시 멍하니 창문을 바라보고 있을 때.

“움직이지 마세요.”

하는 소리와 함께 단검을 든 송수경이 눈에 들어왔다.

‘와… 너 이 새끼…’

“주문을 외우거나 수인을 맺는 기색을 보인다면 찌르겠습니다.”

‘이 미친 사이코패스 같은 새끼.’

평소에 봐왔던 송수경의 눈과는 다르다. 누가 봐도 눈이 맛탱이가 가 있는 것처럼 보인다.

1회 차의 송수경은 2회 차 때처럼 최소한의 양심도 없는 모양.

아니, 그것은 녀석뿐만이 아니다. 정진호도 그랬고, 1기영도 그랬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살아남은, 살아가야 할 놈들은 모두가 어딘가 망가져 있었다.

송수경의 눈동자가 마치 뱅글뱅글 돌고 있는 것만 같다.

‘이 새끼 미쳤어.’

이게 1회차 송수경의 진짜 녀석의 모습이라는 것을 깨달을 것은 당연지사.

심지어 단검을 아랫배에 들이대고 있지 않은가.

“여기에… 뭐가 있는지… 알고 있어요. 히흐… 히히….”

‘씨발 도대체 이 상황에도 존대하는 거 뭐냐고. 돌았냐고….’

“네…?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입 닫으라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정말로 찌를 테니까요. 당신은 듣기만 하세요.”

심지어 얇은 단검이 살갗을 파고든다. 조용히 피부가 갈라지는 것이 느껴지고 셔츠가 붉은색으로 물드는 것 또한 느껴진다.

순간적으로 배때지 사건이 떠오른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저도 모르게 움츠러들고 몸이 빳빳하게 굳는 것처럼 느껴졌다.

나 자신도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호흡이 점점 가빠진다. 어지럽고 그대로 바닥에 주저앉고 싶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웠을 때.

“걸으세요.”

“…….”

“지하실로 갑시다. 그곳에 헤르엔 영주성을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있습니다.”

녀석이 조용히 단검으로 셔츠를 갈라 노예 낙인을 확인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이 미친 새끼. 시바. 이… 돌은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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