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15화
마법사의 탑(28)
‘시바.’
서둘러 망원경을 위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곧바로 여기에 있어서는 안 되는 인물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시바! 시바!’
급해 보이는 표정이다. 남은 파란 길드원들 몇몇과 조심스레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는 얼굴에는 긴장감과 다급함이 섞여 있었다.
‘이 미친 새끼. 어떻게 찾아온 거냐고.’
그것도 병력을 이끌고 올 거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이미 헤르엔은 끝나버렸다고 생각했었는데, 어떻게 된 일인지 김현성은 이곳에 있다.
격렬한 전투가 있었다는 것을 방증하듯이 몸 곳곳에 새겨져 있는 상처들이 눈에 띈다.
그야 수많은 키메라들을 뚫고 이쪽으로 향해 왔을 테니, 몸이 멀쩡할 리 만무.
하지만 녀석의 상처보다 더욱더 눈에 띄는 것은 녀석의 표정이었다. 누가 봐도 마치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은가.
‘빵동생 찾으러 온 거냐고… 굳이 다시 한번 후회하러 온 거냐고….’
이미 김현성과 파란 길드원 몇몇은 아래쪽에서 전투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다.
무작정 돌진해 왔던 빅보이와는 반대로 녀석은 더욱더 조심스러워 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 모양인지, 서로 수신호를 보내며 아래쪽으로 내려오고 있었지만… 단언하건대 내게 이로운 상황은 아니었다.
‘죽여야 돼. 아니, 최소한 얼굴이라도 뭉개버려야 돼.’
김현성은 송수경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김현성이 송수경 같은 잔챙이를 마음속에 계속해서 기억하고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기도 했지만, 그래도 위험한 상황은 피하는 것이 옳다.
송빌런은 비루한 체격과 야비하게 생긴 인상 때문에 중요하지 않은 듯했지만 의외로 2회 차의 서사에서도 큰 지분을 차지한다.
김현성이 녀석을 만나자마자 목이라도 날려 버린다면 중요 서사인 대륙던전화가 꼬이게 될 것이다.
“제기랄! 제길! 흐윽… 날 지켜! 이 무능한 놈들!!”
당연히 내 입장에서는 허겁지겁 송수경에게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제가 주인님을 지킬 거예요! 주인님! 주인님!”
“닥… 닥치세요! 제기랄!”
‘아직도 존댓말 해주는 거냐고!’
도망치려고 하는 송수경의 바짓자락을 점프해서 붙잡는다. 조금이라도 시간을 끄는 게 좋을 것 같아 했었던 행동이었지만 우당탕 넘어지는 송수경 녀석의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 새끼! 약골이구나! 나랑도 할 만하겠는데?’
스텝이 꼬인 것인지, 아니면 어깻죽지에 상처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노예기영의 몸통박치기 아닌 몸통박치기에 균형이 흔들려 앞으로 꼬꾸라진다.
이미 빅보이가 기사들과 마법사들을 처리하고 있었던 시점, 승패가 완전히 기울어 가던 상황에 송수경이 넘어지는 모습을 확인한 빅보이가 기사를 몸으로 밀치고는 허겁지겁 송수경을 향해 달려온다.
“막… 막으세요!”
‘내가? 왜?’
더 이상은 말 잘 듣고 착한 노예를 연기를 할 이유도 없다.
“주인님을 지킬 거예요! 주인님! 주인님!”
“제기랄! 저 전사를 막으세요!”
“네! 제가 지켜드릴게요! 막아드릴게요! 주인님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할 수 있다고요!”
“앵… 앵무새처럼 같은 말만 반복하지 말고 막으라고!”
‘노예기영 고장 났자너. 허접한 인신공양 마법진으로는 노예기영이를 컨트롤 할 수 없자너. 정말로 이런 고급 노예를 완전히 컨트롤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냐고.’
“네! 제가 막을게요! 저만 믿으세요! 주인님! 그 누구도 주인님께는 손가락 하나 까딱하게 하지 못하게 할 거예요!”
“제길! 이… 쓸모없는!”
고장 났다는 것을 더욱더 어필하기 위해서 쓸데없는 말을 내뱉는다.
“주인님! 아… 주인님! 주인님! 오늘은 무슨 실험을 하나요?”
“…….”
“아아! 기뻐요! 앗! 앗! 실험 좋아! 실험… 좋아아!”
“…….”
“주인님 식사 준비됐어요! 주인님만을 위한 식사예요!”
“이거… 놔!”
“놓지 않을게요! 주인님! 계속 붙잡고 있을 테니! 꼭 칭찬해 주셔야 해요! 주인님! 주인님! 절대로 놓지 않을게요. 그러니 오늘 저녁에도 칭찬해 주셔야 해요! 네? 네? 그럴 거죠? 내일도 실험에 참가하게 되나요? 네?”
“제기랄… 이 새끼 도대체….”
“하으아아… 싫어! 싫어요! 주인님! 아파요! 아… 아파! 이건 너무 아파요! 살려주세요! 아아아아악!”
“…….”
“아파요! 아프다고요! 하지만 주인님이 참으라고 하시면 참을 수 있어요!”
“…….”
“싫어요! 가기 싫어요! 제게 주인님은 주인님 한 분이세요! 싫어! 싫어어어어어!”
“…….”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주인님! 아아… 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라는 말을 하며 계속해서 송수경의 바짓자락을 붙잡는다. 전 주인과의 기억이 충돌을 일으켜 혼선을 빚고 있다는 설정이었지만 송수경에게는 이 상황이 꽤 공포스럽게 느껴질 것이다.
무표정으로 주인님을 외치며 자신의 바짓자락을 붙잡고 끈질기게 달라붙는 꼬맹이, 하얀이가 가끔 보여주는 표정을 선보이며 주인에게 집착 아닌 집착을 선보인다.
물론 나보다 더 신경이 쓰이는 것은 성난 황소처럼 달려들고 있는 빅보이일 테지만 말이다.
‘형! 얼굴이야! 얼굴 갈겨.’
그렇게.
나를 발로 차고 기어코 몸을 일으킨 송수경의 얼굴에 빅보이의 주먹이 틀어박혔다.
퍼어억!
우드득! 하는 큰 소리와 함께 녀석의 몸이 뒤로 붕 날아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직도 얼굴이 망가졌다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었지만 거기서 끝나지 않고 놈의 머리를 벽에 처박는 빅보이를 보니 최소한 겉모습 부분에서는 안심해도 될 것처럼 느껴진다.
비명이 지를 정신도 없는지 벽에 얼굴이 처박힌 채로 발버둥 치고 있는 미스터 송의 모습이 사뭇 안쓰럽다.
“이 개자식! 이 더러운 새끼!”
“히으아윽….”
“네가 인간이냐! 이 개자식! 어떻게 그럴 수가 있어! 이렇게 상처가 많은 꼬맹이를… 어떻게 배신할 수가 있냐고! 이 개새끼! 한번 죽어봐라.”
아직도 성에 차지 않는지 아예 녀석을 집어 던지는 빅보이 녀석, 그리고 종잇장 같은 녀석의 몸이 날아가 다른 쪽 벽에 처박혔을 때, 곧바로 몸을 일으키고 달아날 준비를 하는 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우으윽… 히윽… 제길… 제기랄… 모든 게 계획대로…였는데. 어째서….”
같은 말을 중얼거리며 위쪽으로 허겁지겁 달려나가다….
툭하고 무언가에 부딪힌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리고.
“어?”
녀석의 앞을 가로막은 김현성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 아… 아아아….”
송수경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은 김현성을 올려다본다.
“…….”
“…….”
“아아아… 아….”
“…….”
“메… 메시…아….”
같은 말을 중얼거리면서 말이다.
갑작스럽게 공기가 완전히 얼어붙은 것 같은 느낌에 숨을 제대로 쉬기가 힘들게 느껴질 지경. 열기가 가득했던 지하실 안이 차가워진다.
김현성이 조용히 살기를 내뱉고 있다는 것이 느껴진다.
송수경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빅보이를 두려워하지도, 자신의 노예를 찾지도 않고 멍하니 김현성을 바라보고 있을 뿐이었다.
마치 세상에 둘만 남겨진 것마냥, 녀석에게 시선을 고정시킨 이후에 김현성의 싸늘한 표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빅보이와 아직까지 살아남은 기사들도 마찬가지. 모두가 조용히 절대자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살려달라느니, 자신은 잘못이 없다느니 우리는 아군이라느니 그런 소리를 할 정신도 없었던 것 같았다.
모두가 신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는 죄인의 모습이 되어버린다. 저 앞에 선 저 절대자가 그 누구라도 단죄할 수 있다는 것을 여실히 깨닫고 있었다.
퍼뜩 정신을 차린 것처럼 보였던 송수경이 가장 처음 한 행동은 황급히 고개를 숙이는 것.
“아아… 흐윽… 아아아아.”
하고 눈물을 뚝뚝 떨어뜨린다. 녀석에게는 죽을 수도 있다는, 김현성을 실망시킬지도 모른다는 감정보다, 자신의 형편없는 모습이 더욱더 신경 쓰이는 것 같았다.
자신의 메시아를 처음으로 영접하는 자리에서 이렇게밖에 있을 수 없다는 걸 후회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 사이코패스 새끼.’
당연히 이런 식으로 만나는 것을 바라지 않았을 것이다. 망가진 모습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 마냥 슬픈지, 얼굴을 최대한 가리며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었다.
“흐윽… 아흐으으윽… 메시아… 메시아….”
그리고.
“메시…아…. 시….”
별안간.
송수경의 머리가 잘려 날아가는 모습이 시야에 들어왔다.
‘아니… 시바.’
“…….”
“…….”
‘아니… 아니… 아니….’
김현성은 송수경에게 시선을 두지 않는다. 하지만 잘려 나간 목은 여전히 김현성을 시야에 두고 있었다.
“…….”
“…….”
“으…아아아악! 도망쳐!”
“도망쳐! 제기랄! 파란 길드마스터가… 어째서….”
살아남은 기사들과 아군들은 알아서 도망치려고 하고 있었고, 남은 파란 길드원들은 그들을 뒤쫓는 중.
유진과 칼턴은 빅보이와 함께 나를 꽉 감싸 안기 여념이 없다.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김현성이 내게 해를 끼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는 것이다.
“파란… 길드마스터?”
“…….”
“꼬마야. 괜찮냐? 꼬마야!”
“형… 형?”
하지만 내가 말을 한 것을 들은 이후에는 자신이 찾던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지 발걸음을 멈칫하는 것이 눈에 보였다. 녀석이 찾고 있는 것은 벙어리였으니 말이다.
“꼬맹이… 너 이 새끼….”
“형…? 정말 형 맞아요?”
“그래. 맞다. 이 새끼야. 흐윽… 끄으윽… 형 맞다고….”
“흐으으윽… 끄윽….”
“제가… 지금 어딨….”
‘혼돈이자너.’
무작정 도망치고 있는 기사들과 나를 껴안고 기뻐하기 여념이 없는 빅보이 일행.
허망한 얼굴로 터벅터벅 발걸음을 다시 옮겨 위로 올라가는 김현성과 그런 김현성을 아직까지 바라보고 있는 송수경의 잘린 목까지.
파란 길드 쪽에서도 일이 어떻게 된 건지 대충 눈치챈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는 정리가 필요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때, 김현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알아서 처리해 주세요… 저는… 저는… 린델로 돌아가겠습니다.”
“네. 길드마스터.”
“이곳에서 일어난 일은 보고서로 작성해 제 집무실에 올려두시면 됩니다.”
“네… 길드마스터.”
“그리고… 그….”
“네. 최대한 찾아볼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익숙한 목소리를 한 인형이 천천히 다가오는 게 보인다.
혹여나 나를 빼앗아 가려고 하지는 않을까.
나를 숨기며 빅보이와 그런 나를 꽉 껴안고 있는 칼턴, 무기를 고쳐 들고 있는 유진의 사이로….
“만나서 반갑습니다. 파란 길드의 부길드마스터. 조혜진이라고 합니다.”
조혜진이 입을 열어왔다.
‘어….’
“고생하셨습니다.”
‘어?’
“그리고… 너무 늦어 죄송합니다.”
“당신… 죽은 게….”
“운이 좋았습니다.”
“…….”
틀림없이 내가 알고 있는 2회 차의 조혜진이었다. 나를 바라보며 인상을 살짝 찌푸린 그녀의 모습을 보고서는….
‘갔구나.’
미래의 내가 그녀에게 부탁 아닌 부탁을 했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소년에게 해를 끼칠 생각은 없으니 안심하셔도 됩니다. 일단 네 분 모두 파란 길드에서 보호하겠습니다. 아직 전투가 진행 중이니 조심히 따라오시길 부탁드립니다.”
“…….”
“…….”
믿을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빅보이의 얼굴을 스쳐 지나간 것 같기는 했지만….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 외에는 다른 선택지가 없었을 것이다.
‘혜지나….’
이상하게도 조혜진의 웃고 있는 얼굴이 나를 욕하는 것처럼 보였다.
‘반가운 거 맞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