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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17화 (1,31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17화

마법사의 탑(30)

뻔하디뻔한 스토리텔링이었다.

‘노예기영은 본래 마법사들을 동경하고 있었던 거시었어요.’

전 주인님과 함께 마법사의 탑을 들락거렸기 때문에 그 동경은 더욱더 커질 수밖에 없었다.

지금 떠올려보니 온갖 악독하고도 모진 실험을 당하는 와중에도 노예기영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미지의 학문에 대한 궁금증과 탐구 덕분이었던 것 같다.

가끔 주인님을 찾는 마법사들의 시중을 들고 난 이후에 그들이 하나둘씩 주문을 알려주는 주문을 복기하는 것은 행복하고도 즐거운 일이었던 것 같은 추억이 있다.

주인님과 함께 마법사의 탑에 가서 먼발치에서 수습 마법사들을 바라보는 것은 조금은 가슴 아픈 일이었지만 노예기영은 가끔 그들과 함께 마법을 배우는 상상을 하기도 했다.

물론 그게 자신에게 허락되지 않은 일이라는 것은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지만 말이다.

‘눈물 없이는 들을 수 없는 사연이자너.’

노예 기영은 마법사이기 이전에 주인님의 노예였다. 마도와 마법을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님의 실험체였고 장난감이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슴 속에 작게 품고 있는 꿈이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라는 것도 당연히 인지하고 있었다.

그렇게 꿈을 포기하고 있었을 때 갑작스레 들려온 소식.

상상 속에서나 그리던 마법사의 탑으로 갈 수 있단다.

그곳에서 미지의 학문을 탐할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단다.

지금의 노예기영은 빅보이를 우선적으로 생각하는 성향이 강해 대놓고 티를 낼 수는 없었지만, 빅보이 녀석은 꼬맹이의 눈에 숨겨진 갈망을 읽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

“…….”

생각이 많이 복잡해 보이는 녀석. 유진과 칼턴 녀석도 갑작스레 내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분위기를 보고 있자면 칼턴과 유진은 긍정적인 쪽, 빅보이는 그 반대, 성격이 급한 유진이 곧바로 말을 이어왔다.

“그러니까 그게… 언제부터 가능한 겁니까?”

“잠깐 입 다물어. 유진! 제기랄 아직 확실하게 결정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달리려고만 해?”

“너나 입 닥쳐. 빅보이. 제기랄. 이 눈치도 없는 새끼야. 이번 기회가 꼬맹이한테 얼마나 큰 기회인지 정말로 모르겠냐고.”

“전… 전 괜찮아요. 형들.”

“괜찮기는 개뿔.”

이윽고 조혜진을 배제한 채로 설전을 벌이는 세 녀석, 송수경 사태를 겪은 지 얼마 되지 않아 PTSD를 겪고 있는 빅보이는 꽤 강경하다. 자신들의 앞에 조혜진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 것처럼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모습은 가관이다.

그나마 가장 똑똑한 칼턴이 완전히 잊혀져 버린 조혜진을 떠올렸는지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어왔다.

“잠깐… 저희끼리 이야기 좀 해도 되겠습니까?”

“아… 네.”

“밖으로 나와 빅보이 이 새끼야.”

“이 미친놈들! 그래 나가 보자고!”

이윽고 밖에서도 커다란 목소리들이 들려온 것은 당연지사. 평소에는 술 처먹고 일어나는 논쟁이 맨정신에 일어나고 있었다.

거친 몸싸움까지 일어날 것 같아 슬그머니 망원경으로 녀석들을 살펴보자 아니나 다를까 몸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진짜 한심하자너. 셋 다 완전히 애어른이자너.’

“이 새끼야! 꼬맹이 눈빛 못 봤어?”

“아니, 보기야 봤지만… 그거랑 이거랑은 다르지! 그러다 또 잘못되면. 네가 책임질 거야? 응? 이번에는 운이 좋았던 거라고 이 새끼야! 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라는 보장이 어디 있는데?!”

“이런 기회가 어디 흔한 줄 아는 모양이네! 정신 차려! 빅보이 이 새끼야! 파란이야! 파란! 꼬맹이가 여기에서 후원을 받는 거라고! 그게 무슨 의미인지 정말로 모르겠어? 노예각인도 해결해 준다잖아. 파란의 추천장으로 마탑에 들어가면 분명히 모르긴 몰라도 윗급 마법사한테 배정해 줄걸?”

“아니, 그게….”

“그게 무슨 뜻인지 몰라? 잘나가는 마법사가 귀족이나 다름이 없다는 거 네가 제일 잘 알지 않아? 꼬맹이 인생이 필 수 있는 기회인데 그걸 제 발로 걷어차 버리겠다고? 그것도 네 욕심 때문에?”

“멍청한 실수를 또 되풀이할 수는 없어. 칼턴. 제기랄.”

“이번에는 다르다고! 이 새끼야! 조혜진이라고! 조혜진! 조혜진 누군지 몰라? 그 신창 조혜진이 보증해 준다고!”

심지어 목소리가 여기까지 들려온다. 퍼뜩 정신을 차린 것은 나를 노려보는 조혜진의 시선이 느껴졌을 때였다.

“…….”

“…….”

조금은 긴 침묵.

“…….”

“…….”

예상하기는 했지만….

‘얘 화났자너.’

솔직히 화날 만도 해… 갑자기 이런 데 끌려와서 김현성의 행정 인원이 되어버렸으니까.

슬그머니 눈치를 보기 시작한 것은 당연지사. 둘이 편하게 이야기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조혜진은 쉽사리 입을 열지 않는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다. 다른 사람은 그냥 넘길 수 있기는 하지만 조혜진이 저런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은 확실히 무섭고 불편하다.

“기영아.”

‘시바, 반말했자너.’

“너 미쳤어?”

당연히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아 그녀가 겪어야 했던 고생에 대해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같은 타이밍에 조혜진도 소리를 질러온다.

“아니, 죄송합니다. 일이 이렇게 될 줄 몰라서… 일 남은 거 있어요? 지금 가져오면 내가 도와드릴….”

“평행세계 뭐? 미쳤다고 이런 곳에 혼자 와?! 내가 진짜 기가 차서….”

서로 생각하는 것이 달랐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순식간이다.

‘혜지니가 걱정해 줬자너.’

아까보다 더 긴 침묵이 감돈다.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다. 아마 능글맞은 내 표정 때문이지 않을까.

‘혜지니가 걱정해 주고 있자너.’

조혜진 본인도 자신이 흥분했다는 걸 눈치챘는지 얼굴이 붉어져 있는 것이 보인다.

“…….”

“…….”

당연하게도 은근슬쩍 운을 띄울 수밖에 없었다.

“걱정했어요?”

“안 했습니다.”

“아니, 난 또 며칠 잠 못 자서… 그런 줄 알았네… 일 때문에 힘들어서 화내는 줄 알았지. 걱정한 거 맞죠?”

“제가 왜 부길드마스터를 걱정합니까?”

“아니, 걱정했잖아요. 그래서 소리 지른 거잖아. 미쳤냐면서요. 그럼 걱정한 거 맞네, 뭐.”

“아닙니다.”

“나 참… 사람이 솔직하지 못해가지고.”

“아니….”

“걱정되면 걱정된다고 솔직하게….”

“아 걱정 안 했다고!”

“걱정한 거 맞구만.”

“…….”

“…….”

“그… 그래! 이 새끼야! 걱정했다!”

‘어?’

갑작스레 마구잡이로 눈앞에 있는 서류들을 집어 던지는 조혜진이 시야에 비친다.

“걱정했다! 걱정했다고! 뭐 어쩔 건데! 걱정했는데! 뭐 어쩔 거냐고.”

“아… 아니….”

“그래. 말 나온 김에 하나만 물어보자. 진짜 너 제정신이야? 또 죽고 싶어서 그래? 아주 죽고 싶어서 환장을 한 것 같은데. 혹시 살기 싫은 겁니까? 이 미친 새끼야? 왜 항상 일을 벌이는 건데? 왜 죽지 못해서 환장을 하는 거냐고!”

그걸로도 분에 풀리지 않는지 기어코 내 볼을 잡아당기고 있다.

“내가 얼마나 황당했는지 알아? 갑자기 평행세계로 오라는 말은 둘째 치고 처음 이곳에 떨어져서 상황을 확인한 이후에 얼마나 황당했는지 아냐고! 이 모지리야! 다 큰 몸으로 온 것도 아니고 그렇게 어린 모습으로 여기저기 위험한 곳 싸돌아다니는데 그게 걱정이 안 돼? 왜? 난 걱정하면 안 돼?”

“아…으… 그르늬까….”

“너 진짜 이번에는 선 넘었어.”

‘아니, 멱살은 왜 잡아. 네가 날 위험하게 만들고 있다고.’

“빅보이 들어올지도 몰라요! 빅보이!”

그 모습에 화들짝 놀라 나를 내려놓기는 했지만 그래도 꿀밤은 때려주고 싶은지 손을 들어 올리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얘 이상해졌다. 시바.’

“너는 진짜… 진짜….”

“아니….”

“내가 말을 말아야지. 원래 이런 새끼인 걸 알았는데… 말을 해도 알아듣지를 못하는 놈이라는 걸 알고 있었는데. 내가 진짜….”

심지어 눈에 눈물도 맺혀 있는 것을 보니 어지간히 분했던 것 같았다. 조혜진이 한참이나 씩씩거리길 십여 분째 결국에는 조용히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미… 미안해요.”

‘얘 왜 울라고 그래.’

1현성 때문에 쌓인 스트레스가 심했던 것일까.

“아니, 미안합니다. 혜진 씨. 진짜. 그런데 저도 할 말이 없는 건 아니에요. 원래 다른 사람들이랑 같이 들어왔었는데 이번에는 사고로 끌려온 거라서….”

“어쩌라고….”

“…….”

“…….”

“울어요?”

“울긴 내가 왜?”

“우는 것 같은데.”

“안 운다고….”

“아니, 울고 있잖아.”

“아니, 안 운다고! 사람 화나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고!”

“아니… 울지 마요.”

“안 운다니까! 진짜!”

‘아니, 눈에 눈물 맺힌 거 뻔히 보이는데….’

생각보다 조혜진에게 더 걱정을 끼친 것같이 느껴진다.

‘아니… 얘 진짜….’

물론 그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화나는 것이 당연한 상황으로 느껴지기야 했다. 그녀도 이번에 일을 처리하면서 1회 차가 대충 어떻게 굴러가고 있는 곳인지 눈치를 챘을 테니 말이다.

김현성에게 올릴 보고서를 작성하면서, 자신에게 올라온 보고서를 보면서 이 평행세계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눈치챘을 것이다.

거기에 헤르엔에서 키메라 습격사태가 일어나고 있었으니 눈이 돌아가지 않을 리 만무.

미래 시간선의 이기영이 분명히 헤르엔으로 와서 자신을 구해달라고 말했을 테니 더더욱 당황했을 것이다.

눈물을 보일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지만 조혜진 나름대로 여러 가지 생각이 많이 든 것처럼 보인다.

아마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도 분명 영향이 있었겠지. 내가 한 번 죽어봐서 그런지 더 심경이 복잡해 보인다.

“…….”

“…….”

뭔가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슬그머니 조혜진의 손을 잡으며.

“누… 누나 울지 마요.”

라고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

“…….”

“징그럽게 하지 말고 저리 가라.”

‘기운 차린 것 같자너.’

“누나 화 풀렸어요?”

“그거 하지 마세요. 진짜.”

“아이이잉… 누나아…. 화 풀렸쪄?”

“하지 마.”

“우리 누나 울면 기영이 슬퍼 슬퍼.”

“너 진짜 짜증 난다. 이기영.”

“어린 기영이는 마음이 너무너무 아픈걸.”

“아! 하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진짜. 부길드마스터!”

활짝 웃어주자 아니나 다를까 꿀밤이 날아온다. 그래도 힘 조절은 했는지 아프지는 않았지만 공기가 환기된 것 같았다. 어처구니없는 애교로 조혜진의 기분이 조금은 풀어진 것이다.

싸늘하게 얼어붙을 것 같았던 분위기도 조금은 녹고 있었기 때문에, 이제는 슬슬 본론으로 들어갈 타이밍, 조심스럽게 눈치를 보며 말을 이을 수밖에 없었다.

“…….”

“…….”

“그래서….”

“…….”

“갑자기 마탑은 웬 마탑이에요? 제가 마탑으로 보내 달라고 말했었나 봐요?”

“…….”

“…….”

“뭐, 그렇게 말하기는 했습니다. 그 시간선 대에 자신이 아마 물어봐 올 거라고 이야기를 듣기는 들었지만….”

“뭔데요?”

“궁금하십니까?”

“아니. 장난치지 말고 쫌.”

“지는 실컷 장난치더니….”

“네?”

“아무것도 아닙니다. 그러니까….”

“…….”

“부길드마스터가 평행세계의 정하얀 님을 살리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네?”

“평행세계의 정하얀 님을 살리고 싶다고… 부길드마스터가 제게 자신을 마탑으로 보내달라고 하셨습니다.”

전혀 예상할 수 없었던 대답에 입이 저절로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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