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19화
1하얀(2)
“말씀해 주신 대로 길드마스터께 올릴 보고서는 송수경을 완전히 배제한 이후에 진행했습니다.”
“괜찮네요.”
“그리고… 찾고 계신 소년도 훼손이 너무 심해 찾을 수 없다고 말씀을 드렸고요.”
“…….”
“…….”
“것도 괜찮고요.”
‘이러면 완전 없는 사람이 되는 거네.’
김현성과 벙어리 소년의 이야기는 딱 내가 원했던 대로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너무 사이가 깊어지기 전에 적절한 선에서 쳐내는 것에 성공한 것이다.
물론 감수성이 깊은 우리 현성이는 또다시 자책하고, 괴로워하며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것 같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털고 일어날 수 있을 것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둘러싸고 있는 상황이 그를 일어날 수밖에 없게 만들 거라고 생각했다.
‘머리끄댕이 잡고 기냥 일으켜 세우는 거자너.’
린델과 대륙은 빠른 재정비에 들어갔다. 린델 해상전투가 끝난 이후에는 모든 전쟁이 끝난 것처럼 행동하던 모험가들이 헤르엔에서 들려온 소식으로 다시 긴장감을 가지기 시작했고,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시작한 것이다.
‘솔직히… 이미 끝난 것 같기는 하지만… 오히려 좋지.’
가면 쓰레기라면 몰라도, 최소한 살라딘은 다시 한번 큰 전쟁을 치를 여력이 없다.
아마 당분간은 1기영도 조용하지 않을까. 키메라 건으로 여러 가지를 많이 소비하기도 했고… 녀석 역시 외신의 존재에 대해 눈치채고 있을 것 같았으니 말이다.
그렇지 않아도 여기저기에서 날개를 달고 있는 천사들을 봤다는 이야기들이 드문드문 들려오고 있었다. 그게 외신인지 아닌지는 확실히 알 수 없었지만 적어도 긴 전쟁이 시작될 지점에 왔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었다.
말 그대로 인류는 다음을 대비하고 있었다.
헤르엔 수성전으로 인해 긴장감이 생겨났고,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비해야 한다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파란 길드의 실패 역시 그들에게는 긴장감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전쟁의 끝은 또 다른 전쟁의 시작이라는 인식들이 들어섰다.
아마 1기영이 노린 게 이런 부분이라고 생각했다.
만약 녀석이 외신과 접촉하거나 그들의 존재를 깨닫고 있다면 필연적으로 인류의 전력을 높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을 테니 말이다.
2회차 때의 나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지 않았던가.
‘참 똑똑해.’
1기영도, 그리고 인류도 내실을 키우고 발전을 도모하는 시류를 타길 원하고 있으니 여러 가지 부분에서 플러스 효과가 일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물론 김현성 역시 그 시류에 참가해야 했으니….
“일어날 수밖에 없는 타이밍이기는 하죠.”
“네. 그 말이 맞습니다. 아무래도 저는 아직 대외적으로 활동할 수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현성이는 괜찮아요?”
“솔직히 말하면….”
“네.”
“괜찮아 보이지는 않으십니다. 그냥 괜찮으신 척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래. 그렇겠지.’
“억지로 털고 일어나시려고 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지만… 이곳의 길드마스터도 길드마스터니까요. 슬픔을 추스르기 충분한 시간은 아니지만 아마 잘 이겨내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충분한 시간은 맞지. 이름도 모르는 꼬맹이 하나 죽었다고 일주일 넘게 잠수를 타고 있었는데….’
“혜진 씨가 갑자기 살아 돌아왔다는 것에서는 어떻게 반응했는데요?”
“기뻐하시는 것 같았습니다. 믿을 수 없다는 반응도 보여주셨고요. 또 웬만하면 모습을 드러내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생각이 없지는 않네.’
슬그머니 망원경으로 김현성을 바라본다.
‘이 새끼 괜찮으려나.’
아직도 눈시울이 붉다. 어젯밤에도 한차례 눈물을 쏟았던 것일까.
‘얘가 완전 말랑이야. 말랑이.’
“아무튼 부길드마스터가 마탑에 들어가시기에도 적절한 타이밍입니다.”
“…….”
“그렇지 않아도 그곳에서 수습마법사들을 많이 구하고 있으니까요.”
“대비하겠다. 이거죠?”
“네. 이 시기가 얼마나 갈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폭풍 전의 고요라고 생각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살라딘들과의 소규모 전투도 종종 일어나고 있고… 대륙 곳곳에서 이상현상과 전조들이 발견되고 있으니… 지금은 최대한 대비하고 또 대비해야 한다고 느끼고 있을 겁니다. 평행세계의 파란도 같은 생각인 것 같으니 길드마스터께서도 일어나신 거겠죠. 교국, 아니, 제국이나 공화국, 왕국연합, 연방 모두가 힘을 키우고 있습니다. 긍정적인 방향으로 말입니다.”
“그래요?”
“네. 살라딘의 흑마법사와 키메라들 때문입니다.”
“그쪽도 습격을 받았나 보네요.”
조혜진이 살짝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줄 알았어.’
그동안은 인류를 분열시키기 위해서 움직였다면 지금은 그들을 하나로 묶으려고 하고 있다. 어떻게 봐도 1기영의 작품이라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게다가 이번 튜토리얼 역시 유례없이 크게 진행된 것 같습니다.”
“영입 전쟁도 치열하겠고….”
“네.”
‘잠깐은 쉬는 시간으로 생각할 수는 있어도.’
실상은 그게 아니다.
“아무튼 편지로 이쪽 상황을 조금 더 상세히 전해드릴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네.”
조혜진과의 짧은 대화가 끝난다.
“그럼 부길드마스터.”
“아… 네네. 슬슬 쟤네들도 오네요. 저 아저씨들 잘 부탁드려요.”
“네.”
타이밍 좋게 빅보이 칼턴, 유진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아니나 다를까 벌써 눈물 콧물을 전부 다 빼고 있는 듯한 모습, 억지로 울음을 참고 있는 듯한 빅보이는 목이 메는지 제대로 말도 하지 못하고 있었고….
“열… 열심히 해야 한다.”
칼턴 역시 마찬가지였다. 마치 먼 군대에 들어가는 아들내미를 배웅하는 듯한 모양새에 이 새끼들도 참 정이 많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형.”
“누, 누가 걱정을 했다고 그래? 어차피 너는 거기 가서도 잘 해낼 테니까. 밖에 나올 때마다 늘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 자주자주 나오라고.”
“네!”
유진은 결국 울음을 참지 못했는지 아예 등을 돌려버렸다. 작별인사를 할 여력도 없어 보인다. 그래도 꽉 껴안는 타임을 가지고 싶었는지 덩치 큰 세 녀석이 다가와 나를 둘러싸기 시작했다.
‘숨 막혀 이 새끼들아.’
조혜진도 몇 발자국 뒤에서 이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다.
어찌 됐건 간에 슬슬 떠나야 할 타이밍, 나 말고도 마탑에 들어가기로 한 사람들이 지인이나 가족, 친구들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나이는 모두가 제각각, 보통 20대 초반들이 가장 많은 것처럼 보였는데 어린 친구들이나 그것보다 더 나이가 지긋한 사람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저런 사람들은 걍 수습마법사로 인생 끝나겠네.’
“예비 수습마법사들은 마법사의 탑 입구로 와주시기 바랍니다.”
“…….”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비 수습마법사들은 마법사의 탑 입구로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꼬맹아. 끄윽… 꺼윽. 우리 없다고 너무 외로워하지 말고.”
‘니들이 더 외로워 보이는데.’
“다시 한번 말씀드립니다. 예비 수습마법사들은 마법사의 탑 입구로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형. 이제 가 봐야 될 것 같은데.”
“그… 그래. 인마. 햄비어 고기는 걱정하지 마라. 팍팍 넣어줄 테니까. 편지 하루에 한 번씩 해야 한다.”
‘아 무슨 군대 가냐고.’
“잠깐만 빅보이. 꼬맹아. 마력을 올려주는 아티팩트란다. 원래는 반지로 해주고 싶었는데 반지는 매물이 좀 비싸서… 귀걸이도 괜찮지?”
“아….”
‘너희들 이거 어떻게 샀어?’
“나랑 유진이 같이 해주는 거니까. 꼭 소중하게 간직하라고.”
“네… 네!”
당연히 눈시울이 붉어진다.
‘이 새끼들… 대출받았나 보자너. 돈도 없는 새끼들이… 지팡이에… 귀걸이에….’
“절대 무시당하지 마라. 조혜진 님한테 이야기 들었지? 넌 재능도 있고… 목표도 있어. 과거가 어찌 됐든 간에 신경 쓰지 말고 네 할 일 만 열심히 해라. 응?”
“네.”
“예비 수습마법사들은 마법사의 탑 입구로 향해주시기 바랍니다!!!”
‘너희들 때문에 못 들어가고 있자나. 시바. 대놓고 우리보고 소리치는 거 안 보이냐고. 젠장.’
마탑의 경비병들의 눈초리가 사납다.
심지어는….
“어이! 빅보이! 빨리 보내! 뭣 하고 있어!”
하는 반말도 날아 들어온다. 한때 마탑 하청 업체에 있었던 만큼 많은 녀석들이 빅보이를 알고 있는 것이다.
“빨리 네 우렁각시 이쪽으로 보내라고 이 새끼야! 제기랄!”
“쪼금만 더 기다려….”
“마법사님들 기다리고 계신다고! 제기랄!”
“아… 알았다! 제길! 알았다고!! 아무튼 꼬맹아. 내가 한 말 절대로 잊지 마라. 절대로 무시당하지 마라. 누가 부모 없는 놈이라고, 애미 애비도 없는 놈이라고, 어디서 굴러먹다 온 놈이라고 말해도 절대로 기죽지 마라. 우… 우리가 네 보호자가 되어 줄 수 있으니까. 응?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겠지? 응? 혼자가 아니라는 거 그것만 기억하라고! 어?!”
“네! 형.”
‘좀 빨리 가라. 새끼들아. 어차피 밖에 나오면 볼 거잖아.’
뒷걸음을 계속 치려고 해도 이 새끼들이 잡은 손을 놓아주지 않는 것이 문제,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 아쉽다는 얼굴로 나를 슬쩍 놓아주는 빅보이 녀석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뒤돌아보면 또 시간이 끌릴까 뒤도 돌아보지 않고 마탑 안으로 들어선다.
그리고….
“…….”
“…….”
그럴듯한 모습의 마법사의 탑이 시야에 비쳤다.
“우와아아….”
하는 탄성 소리들이 들려온다. 아무래도 일반인들에게는 비공개인 마탑인 만큼 처음 보는 모습에 탄성을 내지르는 것이다.
여기저기 둥둥 떠 있는 신기한 아티팩트들과 일반 도시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들이 입구를 채우고 있다.
전쟁 통에 봤던 것과는 또 다른 모습이었다. 전형적인 판타지 세계에서 볼 수 있을 것만 같은 모양새. 당연하지만 우리 회차와는 차이가 있다.
‘우리 쪽도 초반에는 이런 모습이기는 했지.’
정하얀이 마법사의 탑으로 들어간 이후에, 정확히 말하면 한소라가 마탑에서 실질적인 역할을 맡게 된 이후에는 조금 더 연구소 같은 모습으로 변해버렸다.
로브 대신 가운을 입고 다니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고, 첨단 아티팩트들이나 여신의 거울이 쫘르륵 깔려 있었다. 조금 더 실리적으로 바뀌었다는 표현이 어울릴 것이다.
사실상 저런 화려한 아티팩트나 마법 물품들이 저기 있어야 할 이유는 없다. 저거는….
‘그냥 겉멋이네.’
겉멋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는 거다.
하지만 마법사들의 얼굴에는 하나같이 자부심이 들어서고 있다. 2회 차보다 더 마법사가 귀한 상황이었고, 마법사들이 많이 풀렸던 2회 차 와는 다르게 귀족 대우를 받을 정도라고 했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
본인이 마탑의 일원이라는 것만으로도 어깨에 힘 좀 주고 다닐 수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리고….
“정하얀 님 들어오십니다.”
제대로 보는 1하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쳤다.
1회 차 마탑의 상징이자, 마법사의 정점, 린델 해상전 이후로 일선에 서기로 작정을 한 것인지, 본래 마탑 안에서는 가끔 모습을 드러냈던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알던 정하얀의 모습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었다.
‘쟤… 쟤 왜 저렇게… 정상처럼 보이지?’
분위기가 너무 달라 적응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