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22화
1하얀(5)
‘이상하네.’
“…….”
“…….”
‘이상해.’
뭔가 벅차오르는 듯한 느낌이 든다.
순간적으로 감정이 주체가 되지 않을 정도로 정하얀의 위로가 마음에 와닿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조금 당황했을 정도, 뒤적뒤적 주머니에서 꺼낸 초콜릿도, 아플 정도로 꽉 껴안았던 팔도, 진심이 묻어나 있었다.
그녀는 꼬맹이 마법사가 가지고 있는 아픔에 공감했다.
‘내가 너무 메소드 연기를 한 것 같자너.’
마치 자신이 가지고 있는 아픔을 투영한 것처럼 작은 위로를 건넨 것 같았다. 물론 방식은 서투르다면 서투르다고 할 수 있었지만 오히려 그렇기 때문에 조금 더 마음속에 와 닿는다.
그냥 형식뿐만인 위로가 아니라 진심을 다하고 있다는 게 느껴진다.
슬그머니 손아귀에 잡힌 초콜릿을 만지작거린 것은 당연지사.
‘이거 왠지 먹기 아깝자너.’
왠지 모르게 간직하고 싶어진다.
그녀가 꼬마 마법사를 위로한 것처럼, 나 역시 그녀를 위로해 주고 싶다는 마음이 가슴 속 깊은 곳에서 생겨나기 시작한다.
‘이것 때문인가? 겨우 이 초콜릿 하나 때문에 정하얀을 살리고 싶어 하는 건가.’
그냥 인간적으로 그녀를 동정해서?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이야기이기는 했지만 합리적이지는 않다.
물론 1회차의 그녀가 불행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모르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가족들에게 버림받은 채로 대륙으로 떠 넘겨졌고, 어느 정도 위치에 오르는 것에는 성공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그녀는 혼자다.
“…….”
“…….”
사랑했다고 믿었던 사람은 그녀를 이용했을 뿐이었고, 하나뿐인 제자도 갈등 끝에 목숨을 잃었다고 하지 않았던가.
그녀를 좋아했던 사람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평범한 호의로 다가가기에는 그녀는 너무나 큰 존재였고, 인간으로서의 정하얀보다는 대마법사로서의 정하얀이 더 크게 자리하고 있었다. 마탑에서도… 여전히 그녀는 혼자였다.
심지어는 그녀의 유일한 친구였던 마법까지 그녀를 배신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그녀가 마법을 배신했다. 진리를 쫓고 탐구하는 것에 몰두하는 그녀가 스스로가 가진 힘으로 생명을 빼앗은 것이다.
당시 정하얀이 느꼈던 절망감이 어느 정도인지, 그녀가 이 전쟁에 참여하기 전까지, 그것을 결심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고민이 있었는지는 그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시바 구해줬더니 비난하는 새끼들도 그래.’
1회차의 정하얀은 강하고, 성숙했지만 2회차처럼 단단하고 무디지는 않다.
오히려 더욱더 유약하다.
여전히 쉽게 흔들리고, 여리다. 남의 고통에 더 쉽게 공감할 수 있는 것처럼, 자기 자신이 느끼고 있는 고통 또한 여실히 느끼고 있을 것이다.
‘봐.’
위로를 받은 것은 나일 텐데도 불구하고, 활짝 웃고 있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가득 고여 있다.
“괜찮아요….”
“…….”
“괜찮아요….”
라고 중얼거리는 그녀의 목소리가 마치 그녀 자신에게 말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여기서부터는 행복한 일만 생길 테니까요.”
“…….”
‘많이 힘들었나 보네.’
“정하얀 님도… 행복하신가요?”
“…….”
“…….”
“네.”
‘거짓말.’
“마탑은 즐거운 곳이에요.”
‘얘 거짓말 못 하네.’
1회차나 2회차나 똑같은 모양이다. 본인이 느끼기에도 진심이 담겨져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황급하게 말을 이어나가는 것이 시야에 비쳐왔다.
“물, 물론 매일매일이 즐겁지는 않아요. 다른 마법사분들과 마찰이 있, 있을 때도 있고… 술식이 생각했던 것처럼 풀리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지내기 좋은 곳이에요. 식, 식사도 맛있고… 논문들도 많이 볼 수 있고….”
“아.”
“별 쓸모 없… 아니아니… 조금 부족한 논문들이 대부분인 게 사실이기는 하지만요. 그래도 열정적인 분들과 함께 연구하고, 혼자 연, 연구실에서 공식을 풀이하고, 다른 곳에서 오신 마법사분들과 가끔 교류하는 일은 즐, 즐거워요. 지금은 조금 변질되었지만… 분명히 즐거워요.”
“변질이요?”
“아. 그… 그 말은 신, 신경 쓰지 않으셔도 돼요. 그, 그, 그런 상황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니까요. 가, 가끔은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죠. 네. 어쩔 수 없는 일도 있는 거니까.”
‘책임감을 느끼고 있기는 한가 보네.’
정하얀이 보급한 주문이 여기저기에서 살상마법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이 편할 리가 없다.
‘마탑 늙은이들은 매일매일 하루가 멀다 하고 살상마법만 내놓으라고 닦달하고 있을 테고….’
그녀를 보호하려는 세력이 존재하기는 했지만 시대 상황상 규모가 작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아… 아무튼 그래서 결론은요.”
“네.”
“이제 다 괜찮아질 거라는 거예요. 가끔은 힘든 일도… 분명히 있겠지만 작은 마법사님께서 생각하고 있는 꿈을 펼치실 수 있으실 거예요. 사람들을 도울 수 있을 거예요. 워, 워프게이트도 언젠가는 분명 만들 수 있으실 테죠. 긴 전쟁이 끝났으니까… 새로운 전쟁이 들어설 거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긍, 긍정적으로 생각해야죠. 이제부터는 달라질 거예요. 헤헤….”
‘그래?’
근데 왜 그렇게 우울해 보여?
본인이 입을 열고 본인 입으로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얼굴이 어둡다고 느껴진다.
“행복해지실 거예요. 분명히.”
“네… 네!”
여기서는 힘찬 목소리로 대답하는 것이 국룰이다.
자신의 말이 꼬맹이에게 위로가 됐다고 생각했는지 정하얀은 다시금 살짝 작은 마법사의 머리를 쓰다듬는다.
“헤… 헤헤헤….”
‘갑자기 귀여워해 주네.’
“헤… 헤헤헤헤헤….”
기분 좋아진 것 같자너. 얘도.
근데 이제 그만 쓰다듬는 게 좋지 않을까.
같은 자리에서 약 14분 정도를 있었던 것 같았다.
머리 쓰다듬기에 열중했던 정하얀은 깜짝 놀랐는지 화들짝 손을 떼며 “미안해요. 미안해요.” 같은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지만 이미 사심은 전부 채운 이후다. 갑작스레 본인의 행동이 부끄러워졌는지, 마탑을 안내해 주겠다는 말은 까맣게 잊고 후다닥 도망가기까지.
“죄… 죄송해요!”
하는 말이 메아리처럼 울려 퍼진다. 심지어 콰당하고 넘어져서 무릎을 손으로 문지르고 계시다. 부끄러웠는지, 더욱더 빠른 속도로 멀어지는 꼴은 가관이다.
‘얘 개그 캐릭터였냐구.’
나를 여기 혼자 내버려 두면 어떻게 하냐고….
아무도 없는데 뭐 여기서 어쩌라는 거냐구….
주위를 둘러봤지만 정하얀이 떠난 자리에는 아무도 없다. 심지어 시간이 꽤 흘렀는지 날이 어두워지고 있다.
기에나의 제자라던 양반도 나를 정하얀에게 완전히 맡기면 된다고 생각했는지 지 할 일을 하러 떠난 모양인 것 같아 더욱더 어처구니없다.
‘아니야. 오히려 좋아.’
여기저기 둘러볼 수도 있으니까.
이번 사건에 힌트가 될 만한 점을 찾을 수도 있고… 복구된 지 얼마 되지 않았겠지만 마탑인 만큼 내가 모르는 이스터에그가 있을지도 모른다. 일단 들어왔을 때 봤었던 육망성이 아직까지 남아 있는지도 궁금하다.
살짝 고개를 끄덕인 이후에는 곧바로 정처 없이 떠돌기 시작,
‘합동연구실.’
“…….”
‘마법사 숙소.’
“…….”
‘수습 마법사 실습장.’
다음은 위층.
셀프로 마탑을 탐험하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달은 것은 마탑이 내 생각보다 꽤 크다는 것. 공간확장 마법을 사용한 덕분인지, 밖에서 보는 것보다 훨씬 넓다. 자칫 잘못하면 길을 잃을 수 있을 정도로 말이다.
기억력테스트라도 하라는 것인지 복도는 미로처럼 얽혀 있었고, 심지어 여러 가지 환영 마법이나 함정 마법도 상시 유지되고 있었다. 우스갯소리로 여기서 길을 잃어 아사한다고 하더라도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게다가….
‘아직 육망성은 있고….’
아직까지 육망성이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도 눈에 띄는 부분이었다.
파손된 부분은 바뀐 것은 아니었지만 여전히 육망성은 그 자리에 있다. 본래 알고 있기는 했지만 단순히 기물에 새겨진 것이 아니라 대륙 그 자체에 새겨져 있다는 표현이 무슨 뜻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해서 마탑의 위를 오르고 있었을 때.
“움직이지 마. 꼬마야.”
별안간 목에 드리워진 날붙이가 느껴졌다.
‘아니, 여기는 왜 이렇게 대놓고 칼부터 들이밀어?’
“천천히 손들어. 입도 뻥끗하지 말고….”
무기가 있는지 확인하려는 것인지 몸을 더듬는 손길이 느껴진다.
“묻는 말에만 대답해. 여기는 왜 왔지?”
“…….”
“대답.”
“시, 시험 보러….”
“뭐?”
“수… 수습 마법사 시험 보려고….”
“시험은 한참 전에 끝난 걸로 알고 있는데. 왜 여기서 서성거리고 있어?”
“네… 네? 길… 길을 잃어서.”
“길을 잃다가 도착한 곳이 하필 하얀이 언니의 방 근처다? 어처구니가 없네. 어디서 왔어?”
“진… 진짜예요. 저, 저는 기에나 님의 제자로 들어가기로 했고… 갑자기 정하얀 님이 찾아오셔서 잠깐 대화를 하자고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정하얀 님께서 사라지셔서….”
“…….”
“…….”
뒤를 잡혀 있었기 때문에 얼굴을 확인할 수 없어 망원경으로 그녀를 확인하자 본 적 있는 얼굴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아영.’
1회차, 그나마 정하얀과 가깝게 지내던 인물이다.
“파… 파란 길드에서 저를 마법사의 탑으로 보내줬어요. 박주화 님에게 안내를 받고 있는 도중이었는데… 갑, 갑자기 아무도 없어져서… 이곳저곳 찾다 보니까 이상한 환영마법도 만나고…무, 무조건 위로 올라가다가 갑자기….”
‘아무리 그래도 어떻게 날 암살자로 착각하냐고.’
상식적으로 생각해서 이 꼬맹이가 어떻게 암살자 짓거리를 할 수 있겠냐고.
잔뜩 긴장한 목소리와 움츠러든 몸, 목에 드리운 칼날이 두렵다는 듯한 스탠스를 취하자.
나 자신이 느끼기에도 횡설수설 말하고 있는 것 같았지만 본래 이런 태도를 취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다.
아니나 다를까 뒤쪽에서도 경계를 푸는 것이 느껴진다. 아무 힘도 없을 것 같은 꼬마가 무려, 대마법사 정하얀을 암살하려고 마탑에 단신으로 침입했다는 것보다는 정하얀이 갑자기 사라졌다는 증언이 더 그럴듯하게 느껴졌을 테니 말이다.
이윽고 슬쩍 목에서 단검이 떨어진다.
“흐음… 수습 마법사라고.”
“네.”
“하얀이 언니가 너를 찾아왔다고?”
“네… 네.”
“뭐… 그럴듯한 이야기이기는 하네. 거짓말처럼 들리지도 않고… 일단 알았어. 나중에 확인해 보면 알겠지 뭐. 길 안내를 해줄 수 있는 마법사도 한 명 불러줄게.”
“네! 감, 감사합니다.”
“감사할 필요 없어. 네가 정말 수습 마법사가 맞다면… 분명히 하얀이 언니가 날 혼낼 거거든…. 그러니까. 이번 일은 우리 둘만의 비밀이다?”
“아… 네!”
“응 응. 아주 좋아. 말이 통하는 꼬맹이잖아?”
씨익 웃고 있는 그녀는 이제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며 방문을 두드린다.
“하얀이 언니?”
“…….”
“하얀이 언니!”
이윽고 끼익 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리고.
“언니….”
“…….”
“언니?”
“…….”
“…….”
“꺄아아아아아아악! 언니! 언니이!!!”
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을 확인해 보지는 못했지만 본능적으로 무슨 일이 있는지는 깨달을 수 있었다.
“어… 어… 어?”
정하얀이 목을 매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