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23화
1하얀(6)
현실성 없는 일이 벌어졌다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
“어?”
“…….”
몇 시간 전에 서로 대화를 나누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조금 더 당황스럽다.
물론 그게 타인이었다면 전혀 신경 쓰지 않았을 것이다. 동요할 필요도 없고, 당황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눈앞에 있는 것은 정하얀이다. 1하얀과 2하얀은 분명 다른 사람이었지만 막상 그녀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는다.
심지어.
“우욱.”
“…….”
“우우욱.”
튀어 오르는 구토감을 억누르기가 힘들다. 당장에라도 안에 있는 것을 게워내고 싶은 욕구가 생겨난다.
이상한 일이었다. 누군가가 죽는 모습을 바라본 것이 처음이 아니고, 오히려 더 잔인하게 훼손된 시신을 수도 없이 봐왔을 텐데… 제대로 그녀를 바라보기 힘들었다.
정하얀의 모습은 이전에 봤던 모습 그대로였다.
방 안에는 여기저기 찢겨진 종이 같은 것들이 눈에 띄었다. 그것뿐 만이 아니다. 작은 폭탄이라도 터진 것처럼 엉망인 방 안이 보였다.
산처럼 쌓인 서책들, 그리고 치운 지 오래되어 방치된 것 같은 쓰레기들, 희미한 약품 냄새와 그녀가 지금까지 연구했던 결과물들, 그릇에 그대로 담겨진 음식이나, 스스로의 손으로 뜯어낸 것 같은 머리카락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발을 디딜 틈이 보이지 않는다.
어째서 이 지경이 되도록 그녀를 내버려 뒀는지 이해할 수 없을 정도였다.
환한 미소를 보내고 작은 마법사를 위로했던 그녀의 모습과는 대조적이다. 본래의 정하얀 역시, 이런 일들에 서투르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건 그 수준을 넘어섰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풍경이었다.
“언… 언니….”
정신적으로 문제를 겪고 있다고 밖에 설명할 수 없다. 마치 이 방 안이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이 방 안이 본인에게 허락된 유일한 탈출구이자 유일한 공간인 것처럼, 그녀는 자신의 모든 것을 방 안에 쌓아두고 있었다.
조금은 멍한 상태로 그녀의 모습을 다시금 바라보고 있었을 때, 김아영의 찢어질 듯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니… 언니이!”
여기저기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
“사제… 사제 불러와 누가 좀!”
“정… 정하얀 님이… 말… 말도 안 돼….”
“거기서 멍하니 구경하고 뭣 하고 있어?! 사제 불러오라고 제기랄!”
흥분한 김아영의 목소리가 복도를 가득 메운다.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마탑의 마법사들이 정하얀의 방문 앞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할 말을 잃은 듯이 조용히 방 안을 들여다보던 이들의 표정이 일그러진다. 모두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인지하고 있다.
정하얀이 죽었다.
“정하얀 님… 정하얀 님이….”
“아… 안 돼.”
같은 소리들이 여기저기에서 울려 퍼졌다. 김아영이 허겁지겁 매달려 있는 정하얀을 밑으로 내린 이후에 포션을 먹이기 시작한다.
심장이 멈춘 것을 확인했는지 가슴에 귀를 가져다 댄 이후에는 손바닥으로 가슴을 강하게 압박하기 시작한다.
뒤늦게 도착한 상주 사제들은 계속해서 신성력을 뿌리고 있었지만 정하얀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고 있었다.
“언… 언니…이… 흐윽… 흐으윽… 언니이… 제발… 제발….”
“…….”
“이건… 이건 꿈이야. 흐윽… 말도 안 돼. 말도… 안 된다고….”
“…….”
“뭣 하고 있어! 빨리 신성주문 외워!”
이미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김아영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을 터였다. 이미 눈물범벅이 된 그녀가 미친 사람처럼 사제 한 명의 멱살을 붙잡는다.
“내 말 안 들려?! 주문 외우라고!”
“…….”
“…….”
“흐어어어어엉… 주문… 주문 외우란 말이야! 제기랄!”
“이… 이미 정하얀 님께서는….”
“입 닥쳐!”
“…….”
“김아영 님. 심정은 이해하지만 이건….”
“…….”
“이건 마탑의 일입니다. 외부인은….”
“외부인? 내가 어떻게 외부인이야! 이 미친 새끼들아! 내가 그 누구보다 하얀이 언니를!”
“적당히 좀 하십시오! 김아영 님!”
“뭐… 뭐?!”
“여기는 마탑 안입니다! 정하얀 님은 마도길드와 마탑에 소속되어 있는 인물이고 정하얀 님의 죽음을 조사하고 대처하는 것은 김아영 님의 의무가 아니라 저희의 의무입니다.”
“뭐? 그게 무슨 개소리야!”
“정말로 제 말뜻을 알아듣지 못하시겠다는 겁니까? 용의선상에 올리지 않은 것만으로도 저희가 할 수 있는….”
“용의선상?! 내가 언니를 죽였다고? 내가?! 이 개새끼들! 너희들이지? 너희들이 언니를 죽였지?! 이 개새끼들아! 아니… 그게 아니지. 네놈들이 직접 죽인 게 아니더라도 결국 언니를 죽음으로 몰아 넣은 건 너희 개새끼들이야! 이 더러운 전쟁광 새끼들아!”
“…….”
“네놈들의 그 더러운 욕심이 언니를 죽인 거야!”
잔뜩 흥분한 김아영 덕분에 안 그래도 혼란스러운 상황이 더 혼란스러워진다. 사실상 마탑의 이름 모를 마법사가 한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으니 말이다.
김아영은 그저 받아들이기 힘들 뿐이라고 생각했다. 그냥 인정할 수 없었고 그냥 화를 풀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다.
그녀의 화가 가라앉은 것은 기에나 할머니가 등장한 이후. 그녀뿐만이 아니다. 마치 폭발할 것만 같았던 분위기가 그녀의 등장으로 인해 조금은 진정된 것 같은 느낌이었다.
할머니는 믿을 수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천천히 정하얀에게 다가가 그녀의 시신을 꼭 껴안는다. 그리고 계속해서 어깨를 떨기 시작한다.
“흐… 흐으윽….”
흐느끼는 소리만이 계속해서 들려오고 있었다.
정하얀은 사랑받고 있었다. 정하얀이 자신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었든, 나는 그녀가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었다고 생각했다.
기에나 할머니의 울음소리를 들은 김아영은 눈을 질끈 감는다.
“김현성….”
“…….”
“김현성 이 개새끼. 전부 그 새끼 때문이야.”
“…….”
“김현성 그 새끼 때문이라고….”
같은 목소리를 내뱉고는 조용히 사라졌다.
기에나 할머니의 제자 박주화가 내게 다가와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묻고, 대충 자초지종을 설명한 이후에야 용의선상에서 벗어난 것 같았지만 사실상 형식적인 절차처럼 보이기도 했다.
그야….
‘타살이 아니야.’
고도로 숙련된 레인저든, 감식 마법에 특화되어 있는 마법사든 간에 이 현장에서 타살의 증거를 발견하기 어려운 상황이었으니까.
아니, 불가능할 것이다. 명백히 스스로 목숨을 끊은 정황들이 보인다.
마탑과 마도길드의 핵심 중역들이 모여, 아무 말 없이 정하얀의 방 안을 바라보고 조사해 봐도 아무것도 발견할 수 없는지 한숨을 푹 내쉬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제야.
어째서 미래의 내가 조혜진에게 정하얀을 살려야 한다고 말했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정하얀이 무대에서 퇴장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
‘도대체 무슨 생각이지?’
이해하려고 해봐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도대체 왜… 왜 죽은 거지? 왜 하필 지금….’
꼬여도 너무 꼬인 것 같아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지금까지 가정했던 것들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 같다.
정말로 1기영이 이 타이밍에 정하얀을 쳐낼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더 당황스럽다.
매번 말했던 것처럼 정하얀은 놈에게 중요한 존재다. 그냥 던지고 싶다고 던질 수 있는 패가 아니다.
‘아니… 이게 1기영이 벌인 짓이 맞기는 한 건가?’
현 시점에서 1기영과 정하얀이 서로 연락을 주고 받고 있었나? 그만큼 깊은 관계로 발전한 시점인가?
아직 외신전은 시작도 하지 않았다.
‘외신전은 길어. 무척 길다고.’
2회 차 때처럼 다소 빠르게 정리된 것이 아니라 몇 년이 넘게 전쟁이 지속된다.
현 시점의 정하얀이 1기영과의 접점이 있었다는 것도 확신할 수 없었고, 녀석과 깊은 관계가 되었다고 확신하기는 더욱더 힘들다.
오히려 발전할 수 있는 타이밍이 있다고 한다면 정하얀이 한계에 내몰린 것처럼 보이는 지금의 타이밍이 가장 합리적이다.
어쩌면 1기영과는 관계없이 그냥 정하얀 스스로가 죽음을 택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상황과 자신이 겪고 있는 일들, 앞으로의 일어날 전쟁의 두려움이나, 떨어진 자존감 같은 것, 현실과 이상의 차이가 그녀를 죽음으로 내몬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녀가 단상에서 했던 연설은 마탑에게 전하는 그녀의 마지막 외침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뭐가 어찌 됐건 간에 순수한 인간으로서 그녀에게 동정심이 든다.
아니, 다른 사람도 아니라 그 정하얀이었기 때문에 더욱더 동정심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말뿐인 동정이 아니라… 그녀가 작은 마법사의 아픔에 이해하고 공감하듯, 나 역시 정하얀에게 공감하고 이해하고 있었다.
‘아직 끝난 게 아니야.’
당연하지만 아직 끝난 것이 아니다.
미래의 이기영이 조혜진에게 말해 미래와 과거를 바꾸려고 했던 것처럼, 나 역시 바꿀 수 있다.
‘절대로 정하얀이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정하얀이 무대에서 퇴장할 시기가 잘못되었기 때문에 그것을 바로잡으려고 하는 것뿐이다.
곧바로 육망성으로 향한 것은 당연지사.
“…….”
“…….”
“후우….”
“…….”
육망성의 문어 촉수 괴물 새끼들의 촉매는 거의 다 떨어졌지만 분명히 2회 차로 다시 이동할 수 있을 것이다.
녀석들이 이 차원문을 관리하고 있는 것이 맞고, 1회 차에 오류가 발생했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나를 2회 차로 보내줄 것이다.
아니, 이미 나는 2회차에 도착한 적이 있다. 조혜진에게 린델로 향하라고 말했던 것은 분명히 나였으니까.
‘갈 수 있어. 그리고 바꿀 수 있을 거야.’
그렇게… 천천히 육망성에 손을 가져다 대자.
“…….”
희미한 빛과 함께 순식간에 시야가 뒤바뀌기 시작했다.
“오, 오빠가 어디 갔는데?”
“네… 네? 정하얀 님. 그러니까 부길드마스터가….”
“어… 어디 갔지? 오빠가….”
“저, 저도 잘 모르겠어요. 갑자기 사라지셔서….”
‘왔다.’
당황한 한소라의 목소리와 멘탈이 망가지기 일보 직전의 정하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안, 안 느껴져… 오, 오빠가 안 느껴진다구! 오… 오빠가!”
“곧, 곧 돌아오실 거예요. 그러니까 잠깐….”
다시 한번 눈을 뜨자 주먹을 질끈 쥐고 있는 정하얀과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는 한소라의 얼굴이 눈에 들어온다.
정하얀은 방금 본 1하얀과는 다른 모습을 하고 있었다. 다소 화가 난 것처럼 보이기는 했지만 평소대로 작고, 귀엽고, 고집스러운 모습 그대로를 하고 있었다.
“어? 어? 정… 정하얀 님!”
“어?!”
“부, 부길드마스터예요! 부길드마스터가 왔다고요!”
“오, 오빠! 오빠!”
그 모습을 본 순간, 나도 모르게 그녀를 꽉 껴안는다.
아니, 오히려 순간적으로 기쁜 얼굴의 정하얀이 팔을 쫙 벌려 나를 안은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리기는 했지만….
‘아… 아프자너….’
“헤… 헤헤헤… 흐…히히힛….”
“…….”
“헤…흐… 킁…킁…. 헤흐헤헤헤헤헤….”
‘냄새는 왜 이렇게 맡아.’
솔직히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오, 오… 오빠… 헤…헤헤헤….”
“…….”
“헤…헤헤헤헤헤… 우리 오, 오빠 너무 귀엽다. 헤헤….”
정하얀이 활짝 웃으며 나를 꽉 안아주고 있는 모습에서….
“히히… 히헤헷… 괜찮아요.”
‘위로하지 마. 뭐 위로받으려고 안긴 것도 아닌데. 이때다 싶어서 갑자기 동생을 위로하는 누나 스탠스 취하지 말라구. 그런 거 안 어울리자너.’
“괜찮아요. 오빠. 저… 저, 저 여기 있어요.”
1하얀의 모습이 비쳐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