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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27화 (1,325/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27화

1하얀(10)

정하얀의 죽음을 막았다는 것을 확신할 수 있었다.

‘됐다.’

물론 안심하기에는 시기상조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슴을 쓸어내리게 된다.

갑작스레 만난 꼬맹이보다는 본래 정하얀을 알고 있던 사람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시기.

운이 좋게도 정하얀을 아끼는 사람이 도착한 것이다. 그녀를 억지로라도 동굴 속에서 꺼내 줘야 하는 사람 말이다.

아니나 다를까 곧바로 정하얀의 팔을 잡아당기는 김아영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너무 늦게 찾아왔죠?

-아, 아니….

-그동안 저희 길드도 바빴거든요. 전쟁이 끝난 이후에 할 일이 너무 많아서… 들으셨는지 모르겠지만 헤르엔에서 키메라들의 습격이 있었거든요. 파란 길드마스터도 실종상태였었고… 다행히 헤르엔이 무너지는 걸 완전히 막기는 했지만… 요즘 분위기가 그래서 뒤숭숭해요. 마탑도 그렇죠?

-응… 으응….

-오늘 보니까. 수습 마법사들이 들어온 것 같더라고요? 어떠셨어요?

-그, 그냥… 아직은 잘… 아… 아! 다들… 아, 아니다… 한 명이….

-아 그래요?

-응. 으으응… 기에나 할머니의 제자로 들어가기로 했는데… 원로원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천재라고 하는 소리를 들, 들었어.

-네에? 정말요? 정하얀 님이 보시기에는 어떠신데요?

-글… 글쎄. 시연회 때 보인 마법은… 시동방식이 조금 다르고, 주문도 엄청 세련되게 다듬어진 것 같아서… 마법진도 마찬가지고… 깔, 깔끔하다고 해야 하나 군더더기 없다고 해야 하나. 이 시대의 마법진이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솔직히 곧바로 논문을 써주면 좋다는 생각이 들어서….

-네? 그 정도예요? 언니가 그렇게까지 이야기할 정도면….

-응. 사람들한테 도움을 주고 싶대.

-네?

-마법으로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주고 싶대. 신기하지?

-…….

-…….

-요즘 같은 세상에서… 흔하지 않네요.

‘그럼… 안 흔하지.’

-응. 마, 마도 왕국에서 온 것 같더라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겠지만… 정통마법사가 아니라 과거에 힘, 힘들었던 것 같고. 그, 그래서 그런 생각들을 하게 됐나 봐.

-생각보다 관심이 많으시네요?

-내, 내가?

-네.

-꼭, 그, 그렇지는 않은데.

-뭘 그렇지 않아요. 언니 표정만 봐도 딱 답이 나오는데. 원래는 수습마법사들한테 관심 없었잖아요. 마법 시연회도 매번 시큰둥하게 바라보셨다고 들었는데… 혹시… 혹시 제자로 들이실 생각은 없으세요?

-제? 제자…?

-…….

-…….

‘너무 템포가 빨랐잖아. 이 양반아.’

-글… 글쎄… 그건 좀….

유일하게 들인 제자가 싸늘한 시신으로 돌아왔다는데 다시 제자를 들이고 싶겠냐구.

김아영의 입장에서는 정하얀의 정신건강에 도움이 되겠다 싶어 제안한 것이겠지만 아무래도 역효과가 날 수밖에 없다.

김아영에게 잠깐 열렸던 정하얀의 마음이 닫히는 게 실시간으로 느껴질 정도, 김아영도 정하얀이 다시 동굴 속으로 들어가려고 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인지 서둘러 말을 이었다.

-역, 역시 지금은 시기가 그렇죠?

-으… 으응….

-머, 머리 아픈 이야기는 하지 말고 빨리 밥이나 먹으러 가요. 언니.

-아… 그, 그런데… 아영아….

-네?

-마, 마탑 안에서 먹으면 안 될까?

-네에?!

-마, 마탑 안에서 먹는 것도 맛있고….

-안, 안 돼요! 다른 건 몰라도 이건 정말로 양보 못 해요! 저번에도 마탑에서, 지난달에도 마탑에서 지지난달에도 마탑에서 먹었잖아요! 언니는 밖에 좀 나가야 된다니까요. 이, 이리 오세요.

-싫… 싫….

-아 빨리 오시라고요!

‘이건 잘했다. 야.’

-사람이 햇빛도 보고 이래야 건강해지는 거예요. 물론 탑에서 연구하시는 것도 좋고, 편하게 느끼시는 것도 좋지만 그래도 가끔은 밖을 돌아다녀야 기운도 나고 행복해지죠. 저도 집 안에만 있으면 우울해진다고요.

‘좋아. 그렇게 하는 거야.’

-그… 그치만….

-일단 오세요. 언니가 걱정하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을 테니까. 밖으로 나가요.

억지로 나가기 싫다고 버티고 있는 정하얀과 그런 정하얀의 팔을 잡아당기고 있는 김아영, 정하얀이 마법사치고 근력 수치가 꽤 높기는 했지만 그래도 직군이 다른 김아영의 근력 수치를 이겨낼 수 있을 리 만무했다.

어째서 정하얀이 마탑 밖으로 나가기 싫어하는지 예상이 가기는 했지만 아마 정하얀이 걱정하는 풍경을 보지는 않을 것이다.

김아영이 그런 모습을 보여줄 리 없었으니 말이다.

파도에 떠밀려 익사한 시신이나, 무너진 건물들, 예전의 린델을 찾아볼 수조차 없는 참혹한 모습들 대신 자리한 것은 꽤나 활기찬 린델의 모습이었다.

이미 어느 정도 복구사업의 기초를 다지고 있는 모양인지, 예전에 그 참혹한 흔적들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이미 두 눈으로 확인하기는 했지만 정하얀은 처음 보는 모습일 터다.

‘시바. 린델에서 총력을 기울였는데… 당연히 저 정도 성과는 있어야지.’

아직 함선들을 옮기지는 않았는지, 린델 곳곳에 함선들이 자리해 있기는 했지만 오히려 그것 덕분에 풍경이 더 멋져 보인다.

정하얀 역시 꽤 놀란 것 같은 모양새. 토끼마냥 눈을 동그랗게 뜨고는 깜짝 놀랐다는 듯이 마탑 밖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

-복구 작업은 거의 다 끝나가고 있어요. 헤르엔에서 일어난 사건 때문에 분위기는 좋지는 않지만 다들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고요.

-으… 으으응….

-물론 아직 피해지역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곳이 있기는 한데, 곧 복구 작업이 완료될 거래요. 조금 더 둘러보실래요?

-으… 응….

‘좋아. 그거야.’

슬슬 날이 어둑어둑해지고 있기는 했지만 여전히 린델은 활기차다. 상인들도 활동을 시작한 지 오래, 무엇보다 아직까지 끝나지 않은 복구 작업 때문에 목재와 같은 자재들을 들고 다니는 녀석들이 눈에 띈다.

마법사들 역시 작업에 참여하기는 마찬가지, 애초에 중장비가 없는 이곳에서는 이런 종류의 작업을 할 때 마법사의 존재가 필수불가결하다.

사람의 몸으로 옮길 수 없는 자재들을 채우고, 아직까지 남아 있는 바닷물을 밀어내고, 쓰러진 나무들을 일으켜 세운다.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정하얀의 얼굴이 조금씩 풀리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긴장한 기색은 온데간데없이 헤헤… 웃고 있는 얼굴이다.

-나, 나도 도와줘도 될까?

-네? 그… 그치만 배고픈데….

-나, 나도 도와줄래. 도와주고 싶어.

-언니가… 그러고 싶다면 그렇게 해야죠. 대신… 조금만 해요. 진짜 배고프다구요.

-응… 으응….

잠깐이 될 것 같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김아영이 한숨을 푹 내쉰 이후에는 작업 중이던 인부에게 달려간다.

인부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작업반장을 부른 이후에는 환호성이 울려 퍼진다.

정하얀은 자신이 미움받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물론 소수의 멍청하고 생각 없는 몇몇은 동료나 가족의 죽음을 정하얀에게 전가시키고 싶겠지만, 이러나저러나 그녀는….

‘전쟁영웅이자너.’

린델을 구한 영웅이다.

특히 저런 전사들에게는 우상과도 같은 존재라고 봐야지 뭐.

-와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

-우왓! 정하얀 님이다! 정하얀 님이야!

-이 머저리들아! 정하얀 님께서 오늘 네놈들을 도와주신단다!

-와아아아아우와아아아아아아!

‘진짜 가슴 아프네. 김현성만 인기 없자너. 하얀이도 진짜 인기 많자너.’

우레와 같은 환호성이 들려오는 것도 당연했다. 쑥스러운 듯이 그 자리에 서서 얼굴을 붉히고 있는 정하얀의 삼촌, 이모 팬들이 한둘이 아니었는지 미친 듯이 열광하고 있는 모습들이었다.

그야 어떻게 봐도 인기가 많을 수밖에 없다. 첫 번째로 자신들의 목숨을 살려주기도 했고, 두 번째는….

‘솔직히 내가 봐도 귀여우니까.’

근데 또 천재 마법사 속성까지 가지고 있단다. 사랑받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소 음침한 모습이 있기는 하지만 저들 중에 정하얀의 실제 모습을 본 이들이 얼마나 될까.

애초 대중에게도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도 했으니 몇몇 녀석들에게 린델의 대마법사는 상상 속의 존재겠지.

-언니! 귀여워요!

-누나!

‘누가 봐도 너희들이 언니 오빠로 보이자너.’

심지어 환호성을 보내는 녀석들 중에는 빅보이와 칼턴, 유진도 시야에 비친다.

‘너네들은 시바 거기 왜 있어?’

분명히 파란 길드에서 월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었는데, 마탑에 들어간 꼬맹이를 위해 투잡이라도 뛰려고 하는 모양.

그야 마법사 꼬맹이 키우는 데에 돈이 한 두푼 들어가는 것이 아니니 본인들 나름대로 일을 해보려는 것이겠지만 그깟 푼돈으로는 그럴 듯한 로브 하나도 구매하지 못할 것이다.

-어이 빅보이? 진짜 정하얀인데?

-일단 소리 질러. 이 새끼들아. 오늘 작업은 꽁으로 먹겠는데?

정하얀은 그들의 환호성에 고개를 푹 숙인 채로 그저 주문을 외우는 데 열중하고 있었다.

거대한 배가 하늘로 두둥실 떠오르거나, 인간의 힘으로 치울 수 없는 잔해들을 손가락으로 간단하게 옮겨버린다.

며칠은 해야 끝나는 작업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해내는 모습에 멍하니 입을 벌리는 인부들의 모습이 보이기는 했지만, 두려움보다는 선망의 감정이 들어서 있었다.

가장 좋았던 것은 정하얀 본인이 매우 즐거워 보였다는 것.

정말로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보인다.

-하얀 언니… 배고프다고요.

라고 투정을 부리던 김아영 역시 정하얀의 그런 변화가 달가운 듯한 반응이었지만 정하얀은 이미 일에 열중한 지 오래다.

처음 환호성을 보내던 이들 역시, 퇴근 시간이 다가왔는데도 일을 하는 정하얀을 바라보자 눈치를 보기 시작했다.

‘얼떨결에 야근이자너. 빅보이 퇴근 좀 시켜줘라.’

-헤… 헤헤헤….

-너무 늦었어요. 이제 들어가요. 언니.

-조, 조금만 더.

-인부들도 퇴근해야죠.

-아… 아… 그, 그렇지.

-오랜만에 오붓하게 식사할 생각에 들떠 있었는데….

-내, 내일 먹으면 되지.

-어?! 정말요?

-응. 내일도 밖에 나가자.

정하얀은 정말로 기쁜 얼굴이었지만 불행하게도 언제나 좋은 것만 볼 수는 없는 법이다.

무거운 잔해들이 드러나며 처박혀 있는 시신들이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김아영은 최대한 정하얀이 그 것들을 보지 못하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 같았지만 눈에 보이는 것을 가릴 수는 없다.

인부들은 서둘러서 시신을 수습하기 시작하고, 여기저기에서 자신의 동료나 가족들을 알아본 이들의 울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물론 이미 한 차례 대규모로 시신을 수습했던 터라 그 수가 많지는 않아 보였지만 정하얀의 눈에 들어서기에는 충분했다.

갑작스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정하얀이….

-나… 나 들어갈래.

라는 말을 남기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수순.

-언… 언니… 알고 계시죠?

-…….

-언니 탓이 아니라는 거.

-들어갈 거야.

무척 당황한 김아영의 얼굴이 시야에 비쳤다.

‘시바 불안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네.’

-언니. 잠깐….

-갈… 갈 거야.

-언니!

1회 차의 정하얀이 얼마나 불안전한지, 또 그 여린 심성으로 많은 일들을 겪어야 했는지 깨달은 것은 당연지사.

가장 가까이서 그녀를 바라보는 것 외에는 답이 없다고 느껴질 정도로, 그녀는 매몰되어 있었다.

해야 할 일이야 뻔했다.

‘제자로 들어가야 돼.’

최대한 가까워 져야 돼.

그녀가 이전에 어떤 트라우마를 겪었든 간에 지금의 정하얀을 돌봐줄 사람이 필요했다.

김아영에게 그 역할을 맡길 수도 있다고 생각하기는 했지만… 당연히 혼자서는 역부족이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도 그녀의 삶이 있었고, 매번 정하얀에게 붙어 있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그녀뿐만이 아니라 전 대륙이 몇 가지 과업을 위해 달리고 있는 시기, 어떻게 해야 정하얀의 제자로 들어갈 수 있는지 생각을 조금 해보기는 했지만…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 금방 답을 찾을 수 있었다.

“…….”

“…….”

그렇게 일주일이 지난 직후,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에나 할머니와 그녀의 제자 박주화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허….”

“…….”

“…….”

“그러니까… 이걸… 벌써… 다 풀었다고…?”

‘뭘 별것도 아닌 공식 풀었다고 유난이자너.’

순진하고 당황한 얼굴로 할머니를 바라보며 말을 잇는다.

“네… 네? 뭔가 잘못된 건가요?”

당연히 잘못되기는 했지.

시바.

‘너무 천재인 게 잘못이자너.’

마치 제2의 정하얀을 바라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진짜. 미치겠다. 이기영. 너란 새끼. 이 똑똑한 새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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