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28화
1하얀(11)
평범한 원로 마법사들이 감당할 수 없다는 인식을 심어주기만 해도, 본인들끼리 지지고 볶고 알아서 해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이미 본인들이 어떻게 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섰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물론, 실제로 마법을 시연하거나 구현하는 단계에서는 그게 힘들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풀이 문제나 공식, 이론 같은 부분에서는 더 이상 자신들이 가르칠 것이 없다고 느끼게 해주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원시적이자너.’
마도공학과 연금술만 발전하지 못한 것은 아니다. 특정 마법이 기형적으로 발달한 시기였기 때문에 다른 마법들 같은 경우에는 2회 차 초중반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특히나 몇몇 분야에 있는 마법들은 처참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정하얀이 어린아이들 수준에 낮춰서 쓴 논문을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눈앞에 있는 기에나 할머니도 그런 사람들 중에 한 사람이었겠지만 아마 그녀 역시 모든 것을 이해하지는 못했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녀가 애기영에게 보내는 놀라움이 더욱더 클 수밖에 없었다.
아직까지 믿을 수 없다는 듯한 얼굴들, 정말로 자신이 본 것이 진실인지 궁금해하는 얼굴이 눈에 띈다.
‘누가… 감히 애기영을 가르쳐?’
“이… 이걸 도대체 어떻게….”
‘그걸 어떻게 대답해? 시바 홍시 맛이 나니까 홍시 맛이 났다고 이야기하지.’
“네? 그… 그냥… 혹시 제가 실수한 건가요?”
“아닙니다. 아니에요. 실수를 한 것이 아니라… 제가 놀라게 해드린 모양이군요. 혹시 다른 공식도 풀 수 있는지 한번 볼까요?”
“네!”
혹시나 해서 가져온 것을 푸는 것에도 몇 분이 채 걸리지 않는다.
애초에 답이 나오는 문제들이다. 특히나 마법진 영역에서는 저들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독보적이다 보니 문제지를 받는 순간 답을 적어 내려가는 퍼포먼스가 필요했다.
첫 시험 때는 인간미로 하나 정도는 틀리는 모습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자신이 보여주는 모습이 너무나 당연한 모습인 것처럼 탁 하고 필기도구를 내려놓는다.
“다… 다 풀었어요. 기에나 님.”
“…….”
‘이제는 질렸다는 표정이자너.’
첫 면접부터 혹시나 했던 마음이 현실이 되어버렸다.
믿을 수 없다는 눈으로 나를 바라보는 기에나 할머니가 조용히 자신의 제자의 이름을 부르기 시작했다.
“주화야.”
“네… 네. 스승님.”
“혹시 다른 원로 마법사들을 이곳으로 불러와 줄 수 있겠니?”
“아… 네.”
이럴 때도 꼬맹이 마법사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모르겠다는 듯이 그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것이 국룰이다.
다만 사람들이 연구실을 꽉 채우는 모습과 자꾸만 자신을 바라보는 기에나 할머니의 표정에 주눅이 든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다.
“괜찮습니다. 탓하려거나 벌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그 반대이니… 긴장 푸셔도 됩니다.”
“아… 네.”
“혹시 몇 가지 문제 풀이를 더 해볼 수 있을까요?”
“네! 물… 물론이에요!”
힘차게 대답하는 애기영.
이번에는 다른 원로 마법사들도 애기영을 지켜본다.
‘이건 딱 봐도 수준이 높네.’
이미 수습마법사들, 아니, 정식 마법사들이 풀 수 있는 영역을 넘어섰다. 대마법사의 칭호를 받아 마탑에서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영감들도 쉬이 풀 수 없는 공식이었지만 애기영은 즐겁다는 듯이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그 문제마저도 풀어버린다.
아마 정하얀이 처음 마탑에 들어왔을 때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아니, 사람에 따라서는 그것보다도 더 충격적일지도 모른다.
정하얀은 그냥 존재 자체가 마력의 축복을 받은 것처럼 느껴졌을 테니 이들이 이해할 수 없는 영역이었다면, 애기영 같은 경우에는 이들이 그나마 이해할 수 있는 영역에 있었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인간은 눈에 보이는 않는 것보다 눈에 보이는 것을 더욱더 두려워한다.
이해할 수 없는 것보다 이해할 수 있는 것을 더욱 무서워한다.
지금의 애새끼영이 딱 그랬다.
‘그냥 시바 천재자너.’
원로 마법사들이 다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허… 재능이 있을 거라고 생각은 했지만….”
“제가 말하지 않았습니까. 제2의 정하얀 님이 나타났을지도 모른다고… 괜히 파란 길드에서 저 꼬마를 후원한다고 했겠어요?”
“천재라는 건 예상하지 않았습니까?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누가 천재인지 몰라서 이러는 줄 압니까? 까놓고 이야기해 봅시다. 여기서 저 수습마법사를 누가 감당할 수 있겠어요?”
‘그래. 내가 원하는 스토리자너.’
“괜히 기에나 원로 마법사가 저희들을 소집한 줄 아십니까? 원로 마법사들도 한참을 들여다봐야 하는 공식들을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어린애 장난치듯이 풀고 있어요. 누가 저 꼬마를 가르칠 겁니까?”
“…….”
“…….”
“칼리투스 원로 마법사. 당신이 할 겁니까?”
“저… 저는 조금 최근에 바빠서…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최근에 연구가… 큼… 큼….”
“그럼… 베리엠 원로 마법사. 당신이 할 거예요?”
“저도….”
“마탑의 원로 마법사들도 감당하지 못하는데… 파란 길드에는 뭐라고 말할 거냐 이 말입니다. 받은 후원금을 다시 뱉어내고, 이 꼬마는 저희가 감당할 수 없으니 돌려보내야겠습니다. 그리 말해야 됩니까?”
“…….”
“…….”
“마탑의 체면이 땅에 떨어질 겁니다. 한 번 이런 전례가 생기면 누가 마법사를 마탑에 맡기고 싶어 하겠습니까?”
“이렇게 급하고 심각하게 대처할 필요가 있겠습니까? 아무리 저 꼬마 마법사가… 천재라고 한들, 아직 마력이….”
“나이가 어려서 그렇지, 마력이야 금방 올라올 겁니다. 지금도 자신의 부족한 마력을 마법진으로 메우고 있고요. 아마 모르긴 몰라도 몇 년 안에는….”
“그렇게 빠르겠습니까?”
“그건 모르지요. 어쩌면 시간이 더 단축될 수도 있을 거라고 봅니다.”
“허….”
“기에나 원로 마법사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그래도 일단 제자로 들이기로 했으니….”
기에나 할머니 역시 사뭇 진지한 표정이다. 고민이 많은 것 같은 얼굴.
‘그래도 이 할머니는 정이 가자너.’
정하얀이 죽었을 때 슬퍼한 사람이기도 했고… 인자한 미소가 참 마음에 든다. 물론 지금은 무척 심각한 얼굴로 주변을 둘러보고 있었으니 말이다.
“솔직히… 가르칠 것이 없어요. 아니, 가르칠 것이 없다기보다는 제 존재가 저 아이에게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마음이 큽니다. 틀에 박힌 공식이… 오히려 창의적인 사고와 자유로움을 막는 것이 아닌지….”
“…….”
“가르칠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오히려 방해만 될 거예요. 명목상으로는 스승의 자리를 유지해도 좋을지 몰라도… 저는 저 아이를 감당할 자신이 없습니다.”
“…….”
“…….”
‘그럼 답은 나왔네. 그렇지?’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정하얀 님에게 보냅시다.”
라고 말이다.
“허… 미쳤어요? 제자 이야기만 나와도 발작을 일으키시는 분인데….”
“누가 제자로 들이잡니까? 그냥 보내자 이 말이지요. 뭐 조수가 됐든, 뭐가 됐든 간에 일단 붙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그래도 마법에 관심을 가지고 계시고… 재능 있는 마법사들을 좋아하시는 분이니 혹시 압니까? 붙어 있으면 몇 수 가르쳐 주시고… 그러다 보면 제자로 들이실 생각이 들지 말입니다.”
“나쁜 생각은 아닌 것 같지만….”
“뭐 연구 보조원이든 뭐든 간에 그냥 제자라는 직함만 빼고 일단 보내버립시다. 그게 맞아요. 정하얀 님도 저 꼬마 마법사에게 관심을 가졌다고….”
“네. 분명히 직접 마탑을 안내해 주셨다고….”
“그럼 그렇게 합시다. 딱히 다른 방안이 있는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어떻습니까?”
“그렇게 해야지요. 정하얀 님이 받아들이실지 받아들이지 않으실지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뭐 가만히 손 놓고 있는 것보다는 좋지 않겠습니까? 혹시 압니까. 정하얀 님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지도….”
‘순식간에 결정되자너.’
사실 딱히 다른 방안이 없다는 것이 가장 주요했을 것이다.
“언제 보내는 게 좋겠습니까?”
“쇠뿔도 단김에 빼라고 지금 보내는 게 가장 좋지 않겠습니까? 마침 연구를 하고 계실 시간이니.”
“그럼 그렇게 합시다.”
‘추진력 진짜 빠르네.’
정하얀이 나로 인해 마음을 여는 것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일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특히나 기에나 할머니의 경우에는 더욱더 그런 기대감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였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하얀에게 잘 보이기 위해 꽃단장 아닌 꽃단장을 시켜주는 것이 눈에 보인다.
제법 깔끔한 옷으로 갈아입히고, 마법사처럼 보이게 하는 것이 전부였지만, 과한 것보다는 딱 적당한 것이 좋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하얀의 방으로 찾아가는 와중에도 이것저것 신경 써야 할 것을 알려주기 시작하는 모습을 보면 정하얀에게 애착 아닌 애착을 많이 가지고 있었던 모양, 사실 정하얀에게 연민을 느끼고, 그녀를 소중히 하는 기에나라는 인물이 어째서 정하얀과 그리 가까워지지 못했는지 궁금하기는 했지만….
‘뻔하자너.’
그냥….
‘마법사니까 그렇겠지.’
손녀딸을 바라보는 심정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녀에게 정하얀은 손녀딸이 아니다.
차라리 다른 모습으로 만났으면 상황이 달라졌을 수도 있었겠지만 기에나 할머니는 마도에 몸을 담고 있는 학자였고, 그 정점에 있는 정하얀을 평범한 사람처럼 대하기는 힘들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녀를 경외시하거나 존경하는 마음을 뿌리치기 힘들었겠지.
“정하얀 님.”
“…….”
“정하얀 님.”
이라고 그녀를 부르는 목소리만 봐도, 그녀가 정하얀에게 품고 있는 감정들이 느껴진다.
“기… 기에나 님?”
“잠깐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조금 갑작스럽지만….”
빼꼼 문밖으로 고개를 내민 정하얀, 기에나 할머니와 함께 있는 나를 확인한 순간, 무슨 말이 나올지 예상했는지, 살짝 표정이 안 좋아진다.
“정하얀 님. 그러니까….”
“저, 저는 괜찮아요.”
“일단 말씀을….”
“괜, 괜찮으니까. 돌아가 주세요.”
“제자가 아니라….”
“그, 그러니까 괜찮아요.”
‘다들 너무 어려워해서 문제야.’
차라리 기에나 할머니가 정하얀한테 바깥으로 나오고, 사람답게 살라고 호통이라도 쳤으면 일이 이 지경까지는 안 왔을 텐데 말이다.
가끔은 예의에 어긋나는 짓도, 그녀의 의사를 거절해야 하는 일도 필요하다.
정하얀에게는 지금까지 그런 것이 없었다. 골방에 틀어박히는 게 편하다고 해서, 평생 저곳에만 있을 수는 없지 않은가.
역시 안 되나… 시기상조였나.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기에나 할머니의 표정을 뒤로하고 오히려 내가 한 발자국을 앞으로 내디딘다.
“안, 안녕하세요! 정하얀 님의 이번에 연구 보조로 파견된….”
“그러니까 괜, 괜, 찮다고요. 저는….”
문을 닫으려고 하는 정하얀이 보였지만 발을 문으로 집어넣어 억지로 정하얀의 방 안으로 몸을 들이민다.
‘시바 추하기는 해도 이 방법밖에는 없자너.’
“아… 아니… 그러니까 괜찮다고….”
처음에는 무슨 무례냐 나를 말리려고 하는 기에나 할머니 역시, 그 모습을 바라만 보고 있다.
“제, 제가 도와드릴게요!”
“아니… 그러니까 괜, 괜찮다구…요….”
“도와…드리고 싶어요!”
나를 밀어내려고 하는 정하얀의 근력에 버틸 수가 없었을 때, 은근슬쩍 나를 도와주는 손길이 느껴진다. 최선을 다해 방문을 닫으려고 하는 정하얀이 잡고 있는 문을 한쪽 팔로 붙잡으며 버티고 있었다.
‘이 할머니 근력 수치 왜 이래. 무슨 전사 수준인데?’
요즘 마법사들은 체력단련도 하는 거냐고.
결국에는 꼬맹이는 엉망이 된 정하얀의 방 안으로 몸을 욱여넣을 수 있었다.
마치 쓰레기장 같은 방 안이 눈에 띄었기 때문에….
“일단 청소부터 해야겠네요!”
황당하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정하얀을 뒤로 하고, 헤실거리는 미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참 눈치 없는 꼬맹이자너.’
하지만 1하얀에게는 꼭 필요한 캐릭터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