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회귀자 사용설명서-1330화 (1,328/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30화

1하얀(13)

‘시바… 이 새끼는 그냥 집에 가만히 쳐 있지… 도대체 어딜 싸돌아다니다가….’

“…….”

“…….”

‘시바.’

몰래카메라를 찍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당황스럽다.

분명 현장에서 일하고 있었던 녀석이 갑자기 사냥 중에 치명상을 입고 의식불명이라니….

빅보이 새끼야 다치든 말든 아무 상관도 없지만 갑작스러운 타이밍 러쉬에 어처구니가 없어 생각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을 정도였다.

‘이 멍청한 새끼. 시바.’

내 표정이 일그러져 있는 것을 확인했는지, 정하얀도 이쪽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소식을 전하러 온 박주화 역시 표정이 어둡기는 마찬가지.

그야 전하기 좋은 소식이 아니었을 테니 부담스러울 만도 하겠지. 폐쇄적인 마탑에서 이런 식으로 외부의 소식을 들고 온다는 건….

‘뭐 뒈지기 직전이라도 돼?’

정말로 상황이 좋지 않았을 가능성이 높았으니 말이다.

“저… 그, 그럼….”

“일단 외출 수속은 전부 밟아 놓았습니다.”

나야 일반 수습마법사들과 다르기는 하지만, 수습마법사들은 보통 일정 기간이 끝나기 전까지 마탑 밖을 벗어날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갑자기 외출 일정도 잡아 준단다. 빅보이 이 새끼가 정말 오늘내일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것도 무리가 아닌 상황이었다.

“일단 가 봐야겠어요.”

“…….”

“…….”

‘아. 시바 망원경이 있었지.’

서둘러 발걸음을 옮기려다 곧바로 망원경으로 빅보이 녀석을 비추자….

-으으… 죽…겠네. 진짜….

-방금 일어난 새끼가… 너 진짜로 죽을 뻔했다고 이 새끼야.

창백한 얼굴로 칼턴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빅보이의 모습이 눈에 보여왔다.

‘시바 뒈지기 직전은 무슨. 멀쩡히 살아 있구만.’

하지만 창백한 모습을 유지해 주는 것이 국룰이다.

‘오히려 좋아. 오히려 좋아.’

정하얀이 나를 지켜보고 있으니 말이다. 순간적으로 당황한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당연지사.

여유가 넘치고 무대포처럼 보였던 꼬맹이가 마치 공황이라도 온 것마냥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은 가엽다 못해 안쓰럽게 비칠 것이다.

“어… 어떻게… 어떻….”

“…….”

정하얀이 계속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상, 상태는 어때요? 많이 심각하시지는 않은 거죠?”

“…….”

눈에서는 금방 눈물이 차오르고 결국에는 닭똥 같은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 가 봐야겠어요. 지금 당장….”

그 모습을 본 정하얀이 조용히 입을 연 것도 너무나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제가 데, 데려다드릴게요.”

‘그래. 너 워프마법 쓸 수 있자너.’

우리는 방금 전까지는 남이었지만 지금은 남이 아니자너. 1하얀의 성향상 저런 말이 반드시 나올 거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꼬마 마법사를 진정시켜주고 싶었는지, 손을 꽉 잡은 채로 주문을 외우는 모습, 시야가 변하는 것은 순식간이다.

방금 전까지는 분명 정하얀의 방 안이었는데 지금은 파란 길드의 정문 앞에 있다.

이대로 정하얀이 돌아가지는 않을까 걱정이 되기는 했지만 안절부절못하는 꼬맹이를 내버려 두는 것을 정하얀이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이쪽을 따라나서는 듯한 모습, 손을 꽉 잡아 준 채로 파란 길드의 병실 안으로 나를 데려다주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어떻게든 꼬맹이를 진정시키려고 하고 있었고….

“괜, 괜찮을 거예요.”

라는 말을 계속해서 중얼거린다.

그리고.

병실의 문을 열었을 때.

병상에 누워 있는 빅보이의 모습을 보고서는….

“뭐… 뭐야. 꼬맹이?”

정하얀의 눈을 의식하며 그대로 달려들 수밖에 없었다.

‘하얀아 보고 있지? 보고 있는 거지?’

“혀… 형!”

“뭐… 뭐야… 뭐야….”

‘일어난 지 얼마 안 된 것 같네. 시바. 고기방패들은 전부 다 튼튼하기는 한가 봐.’

온몸에 큰 상처들이 있는 것 같기는 했지만 그런 것보다는 정하얀에게 끈끈한 유대감을 보여주는 것이 먼저다.

마치 몸통 박치기를 하듯 빅보이에게 달려들자, 녀석이 잠깐 동안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린다.

하지만 이내 꼬맹이의 마음을 이해한다는 듯이 나를 꽉 안아준다.

“제기랄… 칼턴! 내가 무슨 일이 생겨도 연락하지 말라고 했잖아! 제기랄!”

“그럼 이 새끼야, 오늘내일할지도 모르는데 꼬맹이를 안 불러? 내가 무슨 원망을 들으려고. 그러니까 몸조심 좀 잘했어야지!”

“별것도 아닌 상처 가지고… 왜 유난이야? 오늘내일? 이렇게 멀쩡히 살아 있는데 무슨 오늘내일이야!”

“지금이야. 괜찮은 거지. 이 새끼야. 너 진짜 뒈지기 일보 직전이었다고! 어휴 저 무식한 새끼 저거, 말을 말아야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백번은 뒈졌을 거다.”

‘상처가 깊기는 하네. 움직이는 것도 힘들어 보이고.’

쑥스러웠는지 빅보이는 괜스레 칼턴과 유진에게 성을 내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꼬맹이를 안은 손을 놓지 않고 있었다.

‘이걸 시바 어떻게 놓을 수 있겠냐고.’

눈물범벅이 된 꼬맹이를 말이야. 소리를 내어 엉엉 우는 것보다는 마치 강아지가 낑낑거리는 것마냥 흐느끼며 눈물을 쏟아낸다.

빅보이의 붕대로 감은 가슴이 눈물 자국으로 범벅이 되어버리고 있지 않은가. 객관적으로 봐도 아름다운 그림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여지가 없다.

“좀 떨어져라… 떨어져….”

‘왜 그러면서 더 꽉 껴안고 있는 건데. 이 새끼야.’

한참이 지나도 껌딱지처럼 달라붙은 꼬맹이는 떨어질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애매모호한 포지션으로 병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는 정하얀이 이걸 보고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지 모르겠다.

어색함이 감도는 병실 안, 분위기를 환기시켜 줄 수 있는 꼬맹이가 정신을 차린 것은 몇십 분이 지난 이후였다.

“제길… 별거 아닌 상처라니까. 무슨 치명상이니 의식불명이니.”

“…….”

“그냥 칼침 한 대 맞고 잠깐 정신을 잃었을 뿐이야.”

‘세상은 그걸 중상이라고 불러요. 이 무식한 새끼야.’

“다들 찾아와서 말이야. 쓸데없는 일에 유난 떨 시간에 응? 꼬맹이 너는 공부나 더 열심히 해야지. 그게 우리한테 더 도움이 되는 일이라니까. 여기는 또 어떻게 나왔어? 아니 그리고 말이야. 도대체가… 응? 별것도 아닌 상처에 다들….”

‘일단 이 새끼 입 좀 닥치게 만들어야겠다.’

“형이야말로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예요!”

삐약! 하고 소리를 지른 것은 당연지사. 아니나 다를까 꿀 먹은 벙어리가 되는 빅보이 녀석의 모습이 눈에 보여 왔다.

“몸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도대체… 돈은 충분하시잖아요! 이제 이런 험한 일은 안 해도 되는데!”

“…….”

“…….”

“이 멍청한 꼬맹아. 돈이 충분한 게 어디 있어? 여기저기에 들어갈 돈이 얼마나 많은데… 당장… 너한테 사줄 마법 물품들이… 아니, 이건 네가 몰라도 되고… 아무튼 그리고… 말이다. 원래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은… 이러는 게 당연한 거야. 이게 인마 다 훈장이라고 훈장!”

뭐라고 변명을 하려고 하는 빅보이의 얼굴이 보여왔지만 자신을 노려보는 꼬맹이의 모습에 기가 죽은 모양이다.

“그, 그러니까… 그게….”

“훈장?! 훈장!? 훈장이요? 지금 그게 말이에요!”

‘분노의 일갈!’

“그게… 그게 말이냐고요!!”

‘꾸짖을 갈!’

“공부하게 해준다면서요! 편하게 공부하게 해준다고 했으면! 이런 걱정은 끼치지 말았어야죠! 누가 일하지 말라고 하랬어요? 칼밥은 무슨 칼밥이야! 그냥 이런 일 좀 하지 말라고요! 아니, 누가 하지 말라고 말했어요?!”

“…….”

“칼턴 형. 제가 하지 말라고 했어요?! 제가 하지 말라고 했었나요?”

“아… 아니, 왜 나한테 불똥이 튀는지 모르겠는데… 나는 그냥 입 닥치고 있으련다.”

“형들도! 빅보이 형 좀 말렸어야죠! 물불 안 가리고 이런 위험한 일에 뛰어들어서 다치면! 제가 공부에 집중을 할 수가 있겠냐고요! 이런 일이 또 일어날지 어떻게 알아요! 흐… 흐윽… 어떻게 안심하고 마탑에 있을 수가 있겠…냐구요!”

눈물 일발 장전.

“흐으윽… 흐윽… 끄으으윽….”

다시 한번 참아왔던 눈물이 뚝뚝뚝 떨어지기 시작한다. 여기까지 오면 빅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그저 칼턴, 유진과 함께 나를 꽉 껴안아 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것이 전부가 아닐까.

물론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남아 있다. 아름다운 해후가 끝난 이후에는 한쪽 구석에 애매하게 자리 잡고 있는 정하얀을 바라본다.

아직도 아까의 눈물의 여운이 가시지 않았지만 더 이상 그녀를 혼자 내버려 둘 수는 없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가 정하얀이 병실에 함께 있다는 것을 이제야 눈치챈 모양인 것 같았다.

‘이 새끼들 진짜 주변에 무신경하네. 어떻게 이걸 지금 알지?’

“우… 우와앗! 깜짝이야! 정하얀이다!”

“뭐, 뭐야?! 정, 정하얀 님… 정하얀 님?”

“어? 어?!”

‘와 나랑 같은 종족인지 의심스럽자너.’

멍하니 있던 정하얀 역시 조금 수줍은 듯한 모습으로 손을 들어 올린다.

“안, 안녕하세요.”

대충 눈물을 닦은 이후에는 교통정리를 할 수밖에 없다.

“어, 어떻게 정하얀 님이 이런 누추한 곳에….”

‘누추해? 여기 파란 길드야. 이 사람아. 너네 집 아니라고.’

“내, 내가 지금 꿈을 꾸고 있는 건가? 그런 거 아니지? 칼턴.”

“내 볼 좀 꼬집어 줘. 유진… 나도 지금 황당하니까.”

“…….”

“…….”

“이번에 정하얀 님의 연구 보조로 들어가게 됐어요. 기에나 스승님의 특별지시로요.”

“우… 우와아아앗! 정말?”

“뭐. 뭐야. 우리 꼬맹이 진짜 천재였어?”

“별, 별일 아니에요. 그냥 말 그대로 잡일을 도와드리는 거니까. 형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대단한 일이 아니라고요.”

“그래도 인마! 정하얀 님이잖아! 정하얀 님!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진… 진짜 천재였나 본데? 어이 빅보이? 이 새끼야. 네가 주워 온 게 진짜로 천재였나 보다.”

라고 호들갑을 떠는 것도 잠시, 다시금 정하얀의 앞이라는 것을 깨달은 녀석들은 갑작스레 몸을 일으켜 아부 모드로 들어간다.

심지어 빅보이 새끼도 몸을 일으키려고 했기 때문에 급하게 녀석을 다시 눕혔을 정도였다.

“저, 저희 꼬맹이 잘 부탁드립니다.”

“혹… 혹시 사인 좀….”

“네? 사, 사인이요… ? 그, 그런 거 없는데.”

“제가 가진 돈이 이것밖에 없는데… 꼬맹이 좀 잘 좀 봐주셨으면 좋겠습….”

‘저 정신 나간 새끼. 저거. 촌지를 주려고 하고 자빠졌네.’

진짜 어디 내놔도 부끄러운 놈들이라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분위기 좋네.’

이런 떠들썩한 분위기였기 때문에 더욱더 좋아 보인다. 의도한 바는 아니었지만 정하얀에게 보여주고 싶었던 모습이기도 했다.

“어, 어떻게… 식사라도 하고 가시는 게 어떻습니까.”

“네? 아니… 저… 저는….”

“여기 밥상 좀 차리자. 엉?”

“안정을 취해야 하는 데 무슨 밥이에요! 그냥 얌전히 주무세요. 좀!”

정리되어 있지 않고, 떠들썩하고 정신없기는 하지만… 그래도 뭔가 가족이라는 느낌을 준다. 구태여 피가 이어져 있지 않아도 말이다.

결국에는 어영부영 병상에 식탁이 차려지기 시작하고, 분위기를 뿌리치지 못한 정하얀 역시 착석했다.

마치 어색한 친구 집에 놀러와 얼떨결에 밥을 얻어먹는 중학생 같은 얼굴을 하고 있었는데, 그 얼굴이 무척 귀여워 보인다.

“정하얀 님 혹시 술 드십니까? 제가 폭탄주 하나는 막히게 말아드릴 수 있는데.”

“이 새끼 표현 저렴한 거 봐. 정하얀 님이 그딴 싸구려 럼주를 드실 것 같아? 제가 좋은 술을….”

‘진짜 왜 그 새끼가… 지네 엄마 아빠가 부끄럽다고 표현했는지 알겠자너.’

차마 고개를 들 수가 없었다.

“그러지 마세요! 형들!”

“넌… 넌 좀 가만히 있어 봐. 다 널 위해서 그러는 거니까.”

자리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 다행이었지만….

정하얀은 이 분위기가 싫지 않다는 듯이 쿡쿡 웃음을 내보이고 있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