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32화
1하얀(15)
“정하얀 님이… 정… 정하얀 님이….”
“…….”
“흐윽… 흐으으으윽….”
여기저기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온다.
나 역시 멍하니 사람들 사이에 껴 그녀를 올려다본다.
‘아니… 도대체….’
정하얀이 첫 번째로 목을 매달았을 때 느꼈던 혼란스러움은 없다. 곧바로 안에 있는 것들을 게워낼 것만 같은 감각보다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이 머릿속에 차오른다.
그녀의 상태가 좋아지고 있다는 것을 내가 직접 확인하고 있었기 때문에 더욱더 이해할 수 없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을 정도로 절박한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더욱더 현 상황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지난번과 다르게 깨끗하게 정리가 된 방 안에서, 그녀는 조용히 매달려 있었다.
“…….”
“…….”
이후 달려온 마법사들이 그녀를 내려놓고, 기에나 할머니가 그녀를 꽉 안아주는 것은 이전에 보았던 광경이다. 김아영은 자리하지 않았지만 서럽게 흐느끼고 있는 할머니가 그 자리에 있었다.
그녀를 아끼고 사랑하던 많은 마법사들의 울음소리가 들려온다.
‘도대체 뭐야. 어디서부터 잘못된 거지? 분명히… 분위기 좋지 않았었나?’
이성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그것밖에 없다.
빅보이 사건 이후에 그녀와 자주 마주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만날 때마다 좋은 대화를 분명히 나눈 기억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어린 수습 마법사는 자주 정하얀의 방으로 찾아가 즐거운 대화를 나누기도 했고, 그녀와 별것 아닌 추억을 공유하기도 했다.
‘전부 의미가 없었다는 건가.’
어쩌면 정하얀에게는 이 모든 것들이 필요 없고, 의미가 없었던 것이 아닐까.
치유하거나 케어할 단계를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 아닐까. 이미 모든 정리를 끝마친 것이 아닐까. 더 이상 살아갈 힘이 없다고 여기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물론 그럴 가능성을 무시할 수는 없겠지만 나는 정하얀이 여전히 열정적이라고 믿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사랑하는 것들에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빅보이와 함께 이야기하며 마법에 대해 열변을 토했던 것도, 마탑이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그녀가 아직은 불꽃을 가지고 있다는 증거였을 것이다.
물론 그것마저도 더 이상 의미가 없다고 여겼을 수도 있겠지만… 여전히….
‘이해가 안 돼. 제기랄.’
애초에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것도, 스스로를 낭떠러지로 밀어버리는 것도 전부 이해가 되지 않는다.
멍하니 정하얀을 바라보고 있는 나를 바라보며 기에나 할머니의 제자 박주화가 조심스레 손을 꽉 잡아주는 것이 보인다.
주변의 시선을 너무 신경 쓰지 않았다고 생각했다고 느끼는 것은 순식간, 조용히 눈물을 뚝뚝 떨어뜨릴 수밖에 없었다.
‘시바… 무슨 개복치도 아니고… 왜 자꾸 죽고 난리냐고….’
“괜찮니?”
“괜… 괜찮아요. 시신을 보는 건… 익숙해요.”
이후에는 정하얀의 시신을 수습한 기에나 할머니가 조심스레 말을 이었다. 뭐, 당연한 수순이다. 최근 그녀와 가장 가까이 지내고 있던 건 나였으니까.
“정하얀 님께서는….”
“좋, 좋으셨어요. 같이 있으면 자주 웃으시기도 하시고… 저, 저는 잘… 어째서… 이러신 건지 이해가 되지 않아서….”
“…….”
“정말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아픔이 많은 아이였어요. 이곳에 들어오기 전에도, 이곳에 들어온 이후에도 말이에요. 고통스러웠던 게지. 불쌍한 것.”
객관적으로 바라볼 때 정하얀은 타인의 눈에 성공한 삶을 산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누군가 어디에 위치해 있는 것과는 관계없이, 누구에게나 고충은 있다. 그리고 사람마다 견딜 수 있는 고통은 다르다. 그 누구도 객관적으로 고통의 무게를 저울질할 수 없다.
정하얀에게는 자신 때문에 누군가 죽었다는 것이 너무나도 고통스러웠을지도 모르겠다. 아니라면 마탑의 정점에 있다는 책임감이 그녀를 짓눌렀을지도 모르겠다.
그것도 아니라면….
‘1기영.’
그녀는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있고, 사랑하고 있다는 것에 대해 남들보다 더욱더 민감했으니까.
너무 녀석을 배제한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 것은 당연지사. 애초 1하얀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유가 녀석이었다는 것을 생각해 보면 녀석이 관계가 없다고 판단하는 것이 더 이상하다.
“주화야. 이만….”
‘남아 있어야 돼.’
“저도… 저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으면 도울래요.”
“…….”
“돕고 싶어요.”
‘시바 허락 안 해주겠지?’
뒤져봐야 할 것이 있다.
1기영과 주고받은 편지들이 있는지, 그녀가 남긴 것들이 뭐가 있는지 말이다.
하지만 꼬맹이를 저런 현장에 남겨 둘 수 있을 리 만무, 아직 어린 나이인 것은 둘째 치더라도 정하얀이 남긴 것들의 가치를 생각해 보면 현장조사는 단순한 유품 정리가 아니다.
쌓여 있는 논문의 일부분 같은 것들을 이후 분배한다고 생각해 보면, 두 파벌이 신경전을 벌일 가능성이 높다.
‘이 할머니는 그나마 말이 통하니까.’
“…….”
“…….”
똑 부러진 얼굴로, 정확히 얼굴을 바라보며 말을 걸어보자. 뭔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으로 말이다.
“꼭… 꼭 필요한 일이에요.”
“무언가… 켕기는 일이라도… 아니….”
‘뭔가 눈치챈 것 같은데.’
“그렇게 하세요. 주화야.”
“네. 스승님.”
“네가 이 아이를 잘 돌봐주렴. 나는….”
“네. 스승님. 들어가 쉬세요.”
아무래도 기에나 할머니는 충격을 감당하기 힘든 모양이었는지, 조금은 휴식을 취할 시간이 필요한 것 같았다.
이후에는 본격적으로 조사가 벌어지기 시작, 언제나 그렇듯 타살의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에 외부에서 레인저들을 불러 누군가 침입한 흔적이 있는지를 조사하고, 여기저기서 조사관들이 감식 마법들을 외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당연하지만….
‘뭐가 나올 리가 없지.’
누가 봐도 명백한 자살이었으니 말이다.
‘분명히 있을 텐데. 1기영이랑 접촉한 게 맞다면 분명히 어디에 편지들이 있을 텐데.’
이후에 들어온 마법사들은 정하얀이 써놓은 논문이나 주문 같은 것밖에는 관심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곧 여기저기서 고성이 들려온다.
“아니! 지금 뭘 가져가는 겁니까!”
“내려놓으세요!”
“내려놓으라고 말했습니다!”
“정하얀 님의 연구는 마탑 전체의 소유가 아닙니까. 일단은 다른 곳에 보관을 하려고….”
“일단 내려놓으시라고요! 연구 물품들은 아무것도 건드리지 마세요. 원로 마법사님들께서 향후 처우를 결정하실 테니… 아무것도 건드리면 안 됩니다. 원래 현장보존이 원칙 아닙니까?”
“아니. 평소에는 정하얀 님한테 관심도 없다가… 저 욕심만 많은 놈들이….”
“관심 있는 당신들은 도대체 뭘 했길래 일이 이 지경이 될 때까지 지켜보고 있었던 겁니까!”
‘시바 진짜 구역질 나오는 새끼들을 다 보겠네.’
나를 돌봐주겠다는 박주화 역시 갑작스레 일어난 싸움을 말리느라 정신이 없다. 서둘러 마음의 눈으로 주변을 둘러본 것은 당연지사. 정하얀이 소중하게 간직해 놓은 뭔가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아마 마법으로 묶여 있겠지.’
여기 있는 수준 낮은 마법사들로는 그걸 눈치챌 수 있을 리가 없다.
‘공간 확장 마법 열쇠도 아직 못 찾고 있는 놈들이 무슨….’
아직까지 캐비닛을 열지도 못하고 있지 않은가. 정하얀의 방은 마치 작은 던전과도 같다. 온갖 술식과 마법과 결계로 점철되어 있는 모습, 혹여나 실수를 하면 자료들이 잘못될까 전전긍긍하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보인다.
정리할 수 있는 것은 오롯이 겉으로 드러난 자료들뿐이었다.
‘전문적인 인력이 투입돼야 어느 정도 정리가 되겠지.’
내 눈에 들어온 것은 정하얀이 로프를 보관하고 있었던 작은 서랍장이었다. 살짝 서랍장을 열자, 아무것도 없는 빈 공간이 시야에 비친다. 겉으로 보기에는 말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보이지 않은 자물쇠가 보였다. 마력을 곧바로 집어넣은 이후에 슬쩍 돌리자, 딸칵 하는 작은 소리와 함께 숨겨져 있는 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예상했던 것처럼 편지 뭉텅이들이 눈에 보여 곧바로 품에 숨긴 것은 당연지사. 여기저기 고성과 함성이 오가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편지를 챙긴 것을 알아챈 사람은 없다.
“…….”
“…….”
“돌아가요.”
“어… 벌써?”
“네.”
“그, 그럼 잠깐만 스승님 좀 모셔올 테니까.”
“네.”
박주화에게 돌아간다는 의사를 전달한 이후에는 곧바로 정하얀의 방 안을 빠져나간다.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지만, 엄청나게 많은 편지들이었다.
‘서로 얼굴도 몰랐을 때부터 주고받았네.’
만나는 것이 기대된다는 편지도 보이고, 사랑을 속삭이는 것 같은 편지들도 보인다. 온갖 달콤한 미사여구가 붙어 있었고, 정하얀과 자신이 운명이라느니 하는 장황한 개소리들도 쓰여 있다.
배경이나 신분 같은 것들도 모두가 다 거짓, 진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게 단 하나도 없는 편지였기 때문에 읽는 게 의미가 있을지 고민했을 정도.
위로 아닌 위로를 하는 편지들도 눈에 띈다.
그녀의 처지에 대한 공감, 그리고 동정….
그리고….
함께해주기를 바란다는 것까지.
“…….”
“…….”
낭만적인 프러포즈 따위가 아니었다. 곧 커다란 전쟁이 일어날 거고, 인류에 대한 심판이 있을 거라는 내용이다.
어처구니없고 터무니없는 내용이라고 볼 수 없다. 정하얀 역시 이걸 그냥 농담으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을 것이다. 최근 일어나고 있는 이상현상과도 관련이 있었으니까.
‘외신?’
역시 준비하고 있는 건가?
지금은 북부에 있나?
그 편지가 마지막이었다. 함께해줄 수 없다면, 더 이상 함께할 수 없다는 이야기였고, 잔인한 양자택일을 강요하는 내용이었다.
담담하게 쓰여 있기는 했지만, 그 글 안에 담긴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것 때문인가?’
아무것도 선택할 수 없어서?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했나?
‘이건 내가 일으킨 나비 효과야?’
본래의 1회 차의 정하얀은 1기영의 손을 들어준다. 표면적으로는 인류의 편이었지만 정하얀은 분명 1기영의 손을 잡고 있었다.
어쩌면 지금은 그런 선택을 할 수 없었던 게 아닐까. 변수가 너무 많아 뭐라고 확정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가능성이 낮지는 않다.
어쨌든 중요한 것은 정하얀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것이었지만… 이것 역시 의문이 들 수밖에 없었다.
‘그녀를 살리는 게… 또 맞는 건가?’
어쩌면….
‘아니… 아니면 내가… 정하얀을 계속 죽이고 있는 건가.’
본래의 미래로 달려가기 위해서, 계속해서 시간을 되돌리고 정하얀을 살리고, 죽이고, 살리고 죽이고, 또 살려서 결국에는 예정된 운명을 맞이하게 만들어야 하는 건가?
정진호의 사례를 생각해 보면 이것 역시 무시할 수 있는 추론이 아니다. 내가 무슨 짓을 하든 간에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결과가 예정된 미래로 이어지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어떤 발악을 하든 간에, 1회 차가 예정된 대로 이루어지도록 퍼즐이 만들어진다면….
정하얀은 결국에는 죽는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녀가 예정된 죽음으로 인도하는 것밖에는 없다.
“…….”
“…….”
만약 그게 맞다면….
‘시발 진짜 어린 죽음이었잖아.’
정진호의 유언은 개소리가 아니라… 저주이자 예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꽉 채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