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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35화 (1,333/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35화

1하얀(18)

“흐으으윽… 스승님… 스, 스승님….”

“이거 놔…! 이거 놔!”

“흐윽… 끄으으윽….”

‘시바 너무 피폐하자너.’

“스승님… 흐어어어엉… 스승님!”

그녀의 시신을 둘러싸고 있는 제자들이 시야에 비친 것은 당연지사. 시체라도 건질 수 있었다는 걸 다행으로 생각해야 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기에나 할머니가 조용히 눈을 감은 채로 누워 있는 것이 시야에 비쳐온다.

그녀의 뜻에 함께했던 많은 제자들과, 그녀에게 영감을 받은 다른 마법사들이 계속해서 울음을 터뜨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마탑의 큰 별이 진 것이다. 심지어 그녀의 반대 파벌에 있던 마법사들 역시 그녀의 죽음과 위대함을 기릴 정도였으니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나 같은 경우에는 기에나 할머니를 그다지 특별하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들인 제자의 포지션에 들어간 만큼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려주는 것이 옳은 선택이다.

“스승님… 끄윽… 스승님!”

사람의 시신을 보는 것은 익숙하지만 가까이에 있는 이들의 죽음은 익숙하지 않은 꼬맹이의 열정적인 연기에 그녀가 가장 아끼던 제자였던 박주화 역시 꼬맹이를 위로해 줄 정도였다.

‘시바.’

정하얀은 그 모든 것들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마탑에서 장례를 치러왔지만….

“정하얀 님… 이건… 스승님이 남겨주신 편지입니다. 부디….”

이번에는 정말로 견딜 수가 없었는지 제자 중 한 명이 건넨 편지를 한 손으로 잡아챈 이후, 반대편으로 뛰어가기 시작했다. 그녀의 죽음을 회피하기로 마음먹은 것이다.

‘근데 그게 피해지겠냐고.’

아니나 다를까 조용히 방 안에서 편지를 읽고 있는 정하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편지의 자세한 내용은 알 수 없었지만 굳이 읽지 않아도 어떤 글이 쓰여 있는지 예상이 간다.

사랑한다부터 시작해서, 네가 힘을 냈으면 좋겠다. 뭐 단단해지거라. 정하얀에게는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조언들일 테고, 기에나 할머니가 그간 얼마나 자신을 생각했었는지 알려주는 내용이었겠지만, 그게 정하얀을 변하게 만들거나 강하게 만들 수는 없을 터였다.

어쩌면 정하얀은 자신이 기에나 할머니를 죽였다고 생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른다.

고개를 푹 숙인 그녀의 울음소리가 망원경을 통해 들려오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편지를 껴안고 엉엉 울음을 터뜨린다. 자신이 사랑받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은 것 같기는 했지만 이제는 그게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약간의 시간이 지난 이후에는 다시 한번 서랍을 뒤적거린다.

그녀가 꺼낸 것은 로프가 아니라 1기영이 보냈던 것으로 추정되는 편지였다.

정하얀은 점점 1기영에게 의지하고 있었다. 본인이 지금 죽으면 안 된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을 테니 그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수 없었겠지.

“…….”

“스승님… 흐윽… 스승님!”

실신하는 연기까지 선보이며 그녀의 장례식을 빠져나와 조용히 정하얀의 방문을 두드리자….

“정하얀 님….”

“…….”

“정하얀 님.”

문을 열고 나를 꽉 껴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쳐왔다.

“흐윽… 끄으으윽… 흐어어어어엉….”

‘얘 목 놓아 울자너.’

“흐으으으윽….”

‘나도 같이 울어줘야 되자너.’

아픔을 공유해야 되자너.

그게 최소한으로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정하얀의 죽음을 받아들이고 있는 것이다.

시간은 또 흐른다.

그녀는 슬픔을 수습할 새도 없이, 다시금 마탑과 전쟁터를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점 더 영웅으로 추앙받고 있었고, 모두가 그녀에게 희망을 걸고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녀를 주축으로 많은 승전보들이 들려오고, 그녀의 활약상을 칭송하는 이들이 많았지만….

다시금 정하얀은 방 안에 틀어박히는 시간이 많아졌다. 전쟁터를 다녀온 이후에는 항상 방 안에 틀어박힌다.

그녀의 방 안에는 점점 더 쓰레기 더미들이 쌓여가고 있었고, 어느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어떤 연구에 열중하고 있다는 것만이 내가 알 수 있었던 유일한 사실이었다.

스트레스를 풀려고 하는 것인지, 아니면 어떤 목적이 있는 것인지는 알 수 없었지만 나는 그녀가 마지막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끝났다.’

“…….”

‘이제 끝났구나.’

“…….”

‘이제 돌아갈 수 있구나.’

같은 생각들을 스스로 하게 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나 스스로가 생각하기에도 나는 지쳐 있는 상태였으니 말이다.

지혜 누나의 말을 부정하고 싶었지만 평소와 다르게 이기영 또한 지쳐가고 있었다.

‘너무 오랫동안 이곳에 있었으니까.’

이때 즈음 나 역시 정하얀을 찾지 않고 있었다. 의도적인지 아닌지 스스로도 판단할 수 없었지만 혼자만의 시간을 보내는 게 더 나을 거라고 생각했으니까.

내가 그녀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분명히 아무도 찾아와 주지 않기를 바라고 있을 거라 느껴졌으니까.

그리고 마침내….

1기영마저 그녀의 손을 저버렸을 때, 녀석이 쓸모가 다한 패를 버리기로 결정했을 때, 정하얀이 천장 위에 달려 있는 밧줄을 올려다보고 있는 모습이 망원경 속에 들어왔다.

저번에 봤던 것과 비슷한 풍경이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눈이 퉁퉁 부어 있다. 방 안에 있는 물건은 뭐라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어지럽혀져 있다.

편지를 계속해서 읽고 있다. 바보같이 웃으면서 편지를 읽고 있는 정하얀의 모습으로 보건대 저 많은 양의 편지에는 꽤 기분 좋은 추억도 적혀 있었던 것 같았다.

지금 보니 기에나 할머니가 주신 편지와 내가 쓴 편지도 눈에 보인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그녀의 얼굴은 일그러지고 있었다.

-좋아해요. 사랑해요….

의지할 곳이 전부 사라진 그녀가 마음을 놓을 수 있었던 장소는 1기영밖에 없었다는 것이 느껴진다.

-흐윽… 히끅… 그러니까 돌아와 주세요. 제가 잘못했어요. 제발 돌아와 주세요.

나야 녀석과 정하얀이 어떤 시간을 보냈는지 알 수 있는 방법이 없었지만 벼랑 끝에 내몰린 그녀에게는 1기영이 누른 스위치가 치명적으로 다가온 것이다.

-잘못했어요. 앞으로 더 잘할게요. 제발 그런 말은 하지 말아주세요. 이제 싫어졌다는 말은 하지 마요.

정하얀은 더 이상 버틸 수 있는 힘이 없다. 유일한 자신의 이해자에게 버림받았다는 것을 다른 누구도 아닌 그녀가 견딜 수 있을 리 만무했다.

-히끅… 흐그윽… 제발요. 부탁이에요. 보고 있다면 다시 말을 걸어줘요. 오빠. 평소처럼요. 이렇게는 싫어. 이렇게 헤어지는 건 너무 싫어.

-…….

-우리 처음 만났을 때 기억하잖아요. 저는 전부 다 기억해요. 용기 내서 고백한 것도 그때 깜짝 놀란 오빠 표정도, 그리고 우리가 맺어진 것도. 전부 기억해요. 처음 맺어진 날도, 그리고 싸운 날도, 오빠가 화를 낸 날도 전부 다 기억해요. 전부 다요. 보고 싶어요. 정말로 보고 싶어… 정말로…. 이제 다시는 싫다는 소리 안 할게요. 오빠가 시키는 건 전부 다 할게요. 이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돼도 상관없어요. 어떻게 돼도 괴롭지 않아요. 오빠만 있으면 돼요. 그러니까 다시 돌아와 주세요. 싫어졌다는 말은 하지 마요. 시키는 건 전부 다 할 테니까. 흐윽… 흐으윽….

-…….

-운명이라고 했잖아요. 우리가 만난 건 분명히 운명일 거라고 했잖아요. 다시 태어나도 우리는 다시 만날 거라고 말했잖아요. 계속해서 같이 있을 거라고 했잖아요. 히끅… 그건 너무 싫어. 오빠가 없는 건 너무 괴로워요. 아무것도 하지 못하겠어요. 아무것도요. 차, 차, 차라리 죽는 게 더 나아… 차, 차라리….

-…….

계속해서 머뭇머뭇거리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당시에는 쉬울 리가 없다고 생각했었지만 이미 몇 번이나 결심을 했던 그녀가 이토록 망설이는 이유를 모르겠다.

-히끅… 히끅….

하는 딸꾹질 소리도 들려왔고 계속해서 혼자 흐느끼는 소리가 들려온다.

천장을 바라보기도 하고 바깥을 바라보기도 한다. 의자 위에 올라갔다가 내려오는 것 역시 수차례.

-너무 괴로워… 아무 생각도 안 나… 무서워… 너무… 도와주세요. 오빠. 제발 도와주세요. 다시 예전처럼 웃어줘요. 히끅… 흐으으윽….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거나 이불을 뒤집어쓰기도 한다. 하지만 계속해서 시선은 천장 위에 매달려 있는 밧줄에서 떠날 생각을 하지 않는다. 괜스레 입맛이 쓰다.

-그래… 오빠가 말했어.

‘…….’

-우, 우리는 다음 생에서도 만날 수 있을 거라고. 그렇게 이야기했었어. 맞아. 잠깐만 아픈 것뿐이야. 잠깐만 괴로우면 편해질 거야. 깜깜해지지 않을 거야. 다음 생에서도 만난다고 했었으니까 그렇게 할 수 있을 거야. 히끅….

‘…….’

-후우… 후우… 오빠도 알아줄 거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알아줄 거야. 내가 죽, 죽었다는 걸 알면 평생 기억해 주겠지? 어쩌면 후, 후, 후회할지도 몰라. 슬퍼할지도 몰라… 나는 사라지지만 평생 기억 속에 남을 수도 있을 거야. 잊혀지는 것보다는 그게 더 나아. 응. 그, 그게 더 나아… 다음 생에서도 우리는 만날 거니까. 오빠가 그렇게 이야기했으니까. 으응… 맞아.

‘…….’

-아니야. 어, 어쩌면 구해주러 나타날지도 몰라. 오, 오빠는 항상 내, 내가 괴로워할 때 와줬으니까.

뭔가 이상한 것을 깨달은 것은 바로 그때였다.

-갑자기 짠하고 나타나 줄지도 모르잖아.

‘누구였지?’

-어쩌면 그럴 수도 있을 거야. 히끅… 어쩌면 그럴 수도….

‘지금까지 정하얀을 구해준 게 누구였지?’

얘는 정말 나를 평범한 수습 마법사로 생각하고 있었을까?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혹시 나를 1기영으로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자신을 지켜봐 주고 위로해 주기 위해 정체를 숨기고 몰래 찾아온 1기영일 거라는 가정을 정말로 해본 적이 없었을까?

정하얀은 눈치가 빠르다. 처음에는 깨닫지 못했을지도 몰라도, 점점 시간을 같이 보내면 같이 보낼수록, 작은 습관이나, 행동 같은 것들로 눈치챘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그녀가 1기영의 손을 들어준 것도 어린 이기영의 존재가 있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힘들 때마다 찾아왔던 나로 인해 보살핌받고 있었다고 느꼈을 테니 말이다.

‘정말로 아예 가능성이 없는 건가.’

정하얀이 나를 몰래 찾아온 1기영이라고 착각했을 가능성이 아예 없는 건가.

애새끼영의 존재가 정하얀이 1기영에게 더 의지하게 된 계기가 되지는 않았을까.

정하얀의 목소리가 점점 떨려온다. 숨소리는 조금 씩 조금씩 거칠어지고 어느 순간부터는 흐느끼는 소리 외에는 아무런 목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히끅… 흐으으으윽… 히끅….

“…….”

-흐으으윽… 히끅… 제발… 제발….

‘정말로 얘는 나를 그냥 그저 그런 수습 마법사로 생각하고 있었나?’

작은 힌트는 있었다.

-켁… 켁….

‘정하얀의 결계를 뚫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이 나 말고 또 누가 있었지? 마법들이 눈에 보인다고 말했던 게 힌트가 됐나?’

눈 바로 앞에서 바둥바둥거리는 정하얀이 시야에 비친다.

-구… 구해 줄… 켁… 올 거야… 오빠는… 올 거야….

당연하지만 1기영은 와줄 리가 없다.

생각할 시간은 없다. 본능적으로 그녀의 방으로 달리기 시작한다.

어쩌면 내가 그녀에게 스스로의 삶을 정리하기 위해 줬던 시간이 오히려 그녀를 더 궁지로 몰았을지도 모르겠다.

“정하얀 님! 정하얀 님!”

-와줬어. 구하러… 와줬어.

“정하얀!”

점점 더 추욱 늘어지는 몸이 보인다. 달려들어 저 밧줄을 끊고 싶지만 문이 굳게 닫혀 있다.

곧바로 주문을 외워봤지만 주문이 먹히지 않아 가방에 있는 물약을 꺼내 들 수밖에 없었다.

본래의 미래에 갑자기 난입한 꼬맹이를 본 적은 없었다.

‘바꿀 수 있어. 바꿀 수.’

-다행… 다행… 이제는… 정말… 함께….

버둥버둥거리는 몸으로 손을 뻗으며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고 있다.

-사랑….

콰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은 당연한 수순, 곧바로 그녀에게 달려가 주문을 외운 이후에 로프를 자른다.

쿵! 하는 소리와 함께 정하얀이 바닥으로 떨어진다.

‘시바. 시바. 시바.’

곧바로 숨을 쉬는지 확인한 이후에는 계속해서 그녀의 입으로 공기와 포션을 불어넣는다.

‘살아 있어. 살아 있어.’

미래는 바뀔 수 있다. 지금, 내가 미래를 바꾼 것이다.

“정하얀 님! 괜찮으세요?! 정하얀 님….”

“…….”

“어? 어… 오… 오…오…빠….”

“하얀아?”

그리고.

“안녕… 하세요….”

“…….”

“…….”

“정… 정말로 있었네요. 변수가. 그… 그의 말이 맞았군요.”

웅크린 몸으로 나를 바라보고 있는 세라핌이 눈에 보였다.

“미안해요… 하지만… 당신들은 죽어주셔야겠어요.”

미래를 바꿀 수 있는 것은 나뿐만이 아니었다.

‘이 개새끼… 눈치채고 있었어.’

1기영은 내가 시간을 되돌리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다음 페이지에 색기영 일러스트가 첨부되어 있습니다.

흙수저 : 색기영 일러스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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