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귀자 사용설명서 1337화
1하얀(20)
콰아아아아아아앙!
“뭐… 뭐야….”
“빅보이 이 새끼야 일어나!”
“뭐야!!!”
콰드드드드득! 콰아아아아아아아앙!
“제기랄!”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했다. 그렇게 표현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쟁의 안전지대였던 린델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습격이 일어나고 있다.
하늘에서는 날개를 단 잡것들이 내려오고 있었고 여기저기서 폭음과 굉음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있으나 마나 한 린델의 방위마법이 순식간에 뚫려 버린 것이다. 갑작스러운 습격에 여러 가지 비명과 고성이 뒤섞여 들려온다.
익숙한 풍경이라면 익숙한 풍경, 자신은 이미 수차례 이런 풍경을 봐왔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 지금 이곳은 전쟁터였다.
“제길!”
“습격이야? 습격이냐고!”
“보면 몰라! 이 새끼야? 날개 단 놈들이야.”
“시발… 시발… 이 개새끼들….”
“아아아아아아아악!”
“살려줘! 살… 살려!”
“무기 들어! 모두 무기 들어!”
“습격이다! 전투 준비해!”
“제길! 마탑은 도대체 뭘 하고 있었던 거야. 이렇게 갑자기? 이게 말이 돼?”
“북부 전선에 있다는 놈들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 거냐고!”
파란 길드 역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 이미 적이 내부에 침투해 있던 것처럼 여기저기에서는 이미 전투가 벌어지고 있었다.
자기 자신밖에는 챙길 수 없는 이런 상황에서 빅보이와 유진 녀석의 안색이 창백해지고 있었다.
그야 그럴 수밖에 없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 자신 역시 신경 쓰이는 게 있었으니까.
‘마법사의 탑….’
콰아아아아아아아아아아앙!!
하는 소리가 울려 퍼진다. 마탑에서부터 시작된 굉음과 함께 사방에 있던 것들이 휩쓸려 나간다.
명백하게도 이번 전투의 시작은 마탑에서부터였을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게도… 거기에 놓고 온 멍청한 꼬맹이 놈 하나가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저번과 같다. 아니나 다를까 빅보이 녀석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이 새끼 진짜….’
헤르엔 키메라 습격 당시, 잔뜩 흥분해 스스로 무덤을 파고 들어가는 것마냥 행동했던 녀석의 모습이 떠오른 것은 당연지사.
마치 똥을 씹어 먹은 표정으로 창밖의 마탑을 응시하는 녀석의 얼굴은 안 좋은 생각을 떠올리고 있는 것 같았다.
사실 녀석뿐만이 아니다. 자신과 유진도 마찬가지였다.
부끄러운 표현이었지만 이미 그 꼬맹이는 가족이다. 멍청하게 여기에 발이 묶여 계속해서 금화를 모으는 것도, 편하게 놀고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하지 않는 것도, 모두가 그 꼬맹이 때문 아니었던가.
유진이 조심스레 눈치를 보며 말을 이어왔다.
“어, 어쩔 거야. 빅보이.”
“어떻게 하긴 뭘 어떻게 해? 넌 어떻게 할 건데.”
“가야지.”
“그럼. 가야지. 제기랄….”
이번에는 고민조차 하지 않는다. 마탑으로 향하는 것이 너무나 당연한 것처럼 허겁지겁 장비들을 챙기는 놈들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문제는 거기까지 닿을 수 있느냐는 것이겠지만….
‘제기랄… 어떻게든 되겠지. 뭐.’
어떻게든 될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마탑에 두고 온 꼬맹이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일반 등급의 퀘스트가 생성됩니다.]
“어이. 빅보이. 퀘스트 떴는데?”
“무시해. 제기랄. 우리는 마탑으로 가는 게 먼저니까.”
“그래. 알겠다. 후우… 후우….”
“유진 긴장했어?”
“아니… 긴장할 리가 있냐. 그냥….”
“꼬맹이는 괜찮은 거다. 그래도 천재라느니, 마탑의 미래라느니 같은 소리를 듣는 수습 마법사니까… 놈들이 그렇게 허무하게 꼬맹이를 잃지는 않겠지.”
“칼턴 넌 길이나 잘 봐.”
“너야말로 흥분하지 마. 빅보이 이 새끼야. 저번처럼 또 설치다가 유진 팔 날리지 말고… 그리고… 길 잘 볼 수 있는 궁수를 구하는 거였으면 다른 놈을 알아봤어야지. 제기랄. 매번 하는 생각이지만 실수였어.”
“뭐가.”
“너희들이랑 같이 파티 한 게 실수였다고 제기랄! 적당히 돈 벌고, 적당히 은퇴해서 조용히 살려고 했는데… 어쩌다 보니까 계속 같이 어울리게 되고… 또 어쩌다 보니까 이상한 꼬맹이도 주워 오고… 난 원래 이렇게 정이 많은 타입이 아니라고 제기랄….”
“지랄.”
“아무튼 간다.”
“이번에는 진짜 죽을 것 같은데 말이야.”
“죽을 뻔한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원래 칼밥 먹고 사는 놈들은 말이야.”
“칼밥, 칼밥… 그 이야기 꼬맹이가 하지 말라고 했잖아. 빅보이.”
“그러네.”
그렇게 녀석이 고개를 끄덕이는 순간, 유진과 빅보이가 눈을 마주치며 시선을 교환한다. 서로 신호를 주고받은 이후에는….
“가자.”
빅보이 녀석이 방 문을 쾅! 하고 걷어차기 시작했다. 퉁! 하는 소리를 내며 형편없이 날아가는 방 문의 뒤로 이미 전투가 시작되고 있는 파란 길드의 안이 눈에 들어왔다.
“지원! 지원 좀 해줘!”
당연하지만 이런 곳에서 시간을 끌릴 여유는 없다.
“싸움은 최대한 피해.”
“아아아아아아아아악!”
“무시해. 유진. 제기랄!”
“알고 있어. 알고 있는데….”
콰과아아앙! 하는 소리와 함께 옆 벽면에서 사람 하나가 튕겨 나온 것은 바로 그때였다.
“으윽!”
“…….”
“…….”
‘김현성?’
반파된 건물 안에서 다시금 몸을 일으킨 파란의 길드마스터가 검을 들고 긴 장검을 쥐고 있는 천사와 대치한다.
긴 은빛 머리를 휘날리고 있는 녀석, 어떻게 봐도 천사라고밖에 설명이 되지 않는 녀석이 다시 한번 밑으로 떨어지며 김현성과 검을 부딪친다.
콰앙! 하는 소리와 함께 놈들이 서로 합을 주고받는 것이 눈에 비쳤다.
‘제길.’
심지어는….
“안전한 곳으로 피하십시오!”
날개를 단 것들에게 둘러싸인 신창이 자신들을 바라보며 입을 열고 있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시라는 말 못 들었습니까?!”
‘여기 안전한 곳이 어디 있다고.’
“제가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거기서 움직이지 마시고 후위들과 함께… 윽.”
‘숫자가 너무 많아.’
파란의 조혜진이 날개를 단 천사들에게 둘러싸인 것은 순식간이다. 그 와중에도 은빛 머리의 천사와 검을 마주하고 있는 김현성을 도와주기에 여념이 없는 모습.
어째서 조혜진이 자신들을 보호하려고 하고 있는지 너무나 잘 알고 있었지만 그녀의 말대로 안전한 곳에서 보호나 받을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오히려 분하다.
‘그 꼬맹이 자식.’
분명히 그 건방진 꼬맹이 녀석의 주문이 있었겠지.
생각해 보면 이상한 일이었다. 그냥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았을 뿐이다.
어째서 자신들이 파란 길드에서 이런 대우를 받고 있는지, 어째서 자신들이 위험한 전쟁이나 전투에서는 모조리 배제되고 있는지, 린델 방위군이라는 웃기지도 않은 이름으로 이 전쟁통에서도 여유롭게 시간을 때울 수 있었는지, 어째서 이런 상황에서조차 조혜진이 자신들을 보호하려는지, 바보가 아니면 모두 눈치챌 수 있을 것이다.
마탑에서 졸업한 이후에는 파란 길드로 들어가기로 이야기가 되어 있든, 자신들은 알지 못하는 계약이 있든 간에 무언가 뒷이야기가 존재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란 길드에서 쓸모없는 녀석들을 세 명이나 보호하려고 발버둥 칠 이유가 없다.
처음에는 이쪽이 녀석의 보호자였을지 몰라도, 지금은 녀석이 우리들의 보호자를 자처하고 있는 것이다.
“가자.”
“…….”
“하지만 조혜진이.”
“가자고! 제기랄!”
그 사실을 알고 있는 빅보이 역시 괜스레 화를 내며 바쁜 발걸음을 옮겼다. 물론 그게 쉽지는 않았지만 말이다.
괜히 초월자들이라고 불리는 것이 아니라고 증명하는 것처럼 은빛의 천사와 파란의 길드마스터는 계속해서 검을 주고받고 있었다.
이제는 린델의 영웅이 된 청년 검사는 계속해서 발버둥 치지만 조금씩 조금씩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문제는 그들의 싸움이 자꾸만 주변에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는 것,
커다란 소리가 들려올 때마다 무너지고 있는 건물의 파편들이 떨어진다. 사방팔방에서 놈들이 쏘아내고 있는 마법 탓에 움직일 곳을 찾기도 쉽지가 않다. 퍼엉! 퍼엉! 하는 뭔가가 터져 나가는 소리도 정신이 없다.
대열을 갖춘 전쟁이 아니라 여기저기에서 펼쳐지고 있는 시가전이었기 때문에 발걸음을 옮기면 옮길수록 다양한 광경들이 눈에 보였다.
붉은 용병의 용병여왕은, 커다란 낫을 든 푸른 머리의 천사와 몸을 부딪치고 있다.
이미 이성을 잃은 붉은짐승이 푸른 머리의 천사의 머리카락을 한 손으로 잡은 채로 계속해서 벽면으로 후려치고 있다.
‘저건… 또 뭐야.’
가까스로 차희라의 손에서 빠져나온 푸른색 머리의 천사가 그녀를 발로 쳐내자 그녀가 순식간에 멀어지며 땅에 처박힌다. 곧바로 몸을 일으키며 뒤엉키기 시작한 둘은 주변은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이 서로에게 팔과 발을 내지르고 있었다.
퍼어어어어어어엉!
상황이 이렇다 보니 몸에 상처가 쌓일 수밖에 없었다. 여기저기에서 파편들에 튀고, 어디선가 날아온 마법의 충격에 몸이 이상한 곳으로 날아가 벽에 처박히고….
생각지도 못한 놈들을 보기도 했다.
“너희 뭣 하고 있어! 이 새끼들아!”
“캐넌? 너 이 새끼 살아 있었어?”
“빨리 지원 좀 해줘! 제기랄! 퀘스트 못 들었어?! 지금 우리가 몰아붙이고 있다고! 퀘스트가 도와주고 있다니까!”
“우린 마탑으로 가야 돼. 이 병신 새끼야!”
“뭐… 뭐?”
“아무튼 설명은 나중에 한다! 알렉스랑 조지한테 안부 전해!”
“너 이 새끼… 몸은 괜찮아? 지금 너….”
“나중에 보자! 이 새끼야!”
“칼턴. 괜찮아?”
“어… 어… 시발 괜찮다.”
충격 때문에 몸이 만신창이지만 그래도 마탑으로 가야 할 수밖에 없었다.
달려가면 30분 안에 도착하는 거리가 오늘따라 왜 이렇게 멀게 느껴지는지, 오히려 점점 더 멀어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 때 즈음에 무너져가는 마탑의 위에서 금색 머리의 천사와 마주하고 있는 이들이 시야에 들어왔다.
김아영?
‘사냥개?’
죽었다고 들었었는데….
‘기적의 사제 마리엔까지.’
“정하얀.”
그리고
그 옆에 정하얀에게 안겨 있다시피 한 꼬맹이까지.
“보인다.”
“어!?”
“살아 있어. 지금 살아 있어. 정하얀 님 옆에 달라붙어 있어. 그 꼬맹이 새끼.”
“진, 진짜야?”
“그래. 전투 중이다. 김아영도 보이고, 사냥개랑 마리엔도 같이 있어.”
“사냥개? 죽었다고 하지 않았었나?”
“몰라 이 새끼야! 아무튼 중요한 건 우리 꼬맹이가 살아 있다는 거 하나야. 빨리 올라가자. 빨리.”
“그 꼬맹이 새끼….”
아마 올라간다고 해도, 자신들이 뭘 할 수는 없을 것이다. 눈 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수준이었으니까.
김현성이나 차희라, 정하얀 정도가 아니라면 네임드 천사들에게 대적할 수 없다는 사실을 누구보다도 알고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가만히 있을 수가 없다. 헤르엔에서 있을 때,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키메라 앞에 선 빅보이를 멍청하다 욕했었지만 이제는 자신 또한 그런 심정이 이해가 간다.
‘우리가 죽더라도.’
그 꼬맹이는 살려야 돼.
그 꼬맹이가 인류의 미래이기 때문에, 마탑과 파란 길드의 지원을 받은 천재이기 때문이 아니다.
녀석이 우리들의 가족이기 때문이었다.
만난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지만 그 꼬맹이는 틀림없이 자신들의 가족이었다.
부모도 없고, 오롯이 믿을 것은 셋뿐인 자신들의 품에 처음으로 들어온 가족이었다.
예전에는 빅보이를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타인을 위해 희생하는 이들을 이해할 수 없었지만 지금은 이해할 수 있다.
“위험한 상황이야?”
“그건 몰라. 그래도….”
“그래. 우리 꼬맹이는 데려와야지.”
내 기억이 확실하다면 아마 이번만큼 세 명의 뜻이 하나로 뭉친 적은 없었을 것이다.
“우리 꼬맹이 말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