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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38화 (1,336/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38화

1하얀(21)

‘가능해.’

충분히 가능해.

여전히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기는 했지만 급한 대로 퍼즐들이 모였다. 내가 예상한 퍼즐도, 예상하지 못한 퍼즐도 말이다.

‘좋아.’

“어… 어째서 명예추기경님께서….”

“조용히 해 마리엔.”

그 와중에 눈치 빠른 사냥개가 조용히 마리엔에게 손짓한다. 지금 그게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는 것이다.

조금은 나이가 들어버린 것처럼 보이는 녀석들, 그간 새로운 환경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궂은일을 해왔다는 걸 증명하는 것만 같은 모습들이 눈에 띈다.

어쩌다 이곳으로 흘러들어왔는지는 전혀 궁금하지 않지만 김아영과 함께 있는 걸로 봐서는 아마 그녀의 길드에 가입되어 있거나 용병으로 활동했었던 것 같다.

‘그나마 쓸 만한 놈들이야.’

대륙에서도 용사파티라고 한다면 열 손가락 안에 드는 파티였으니까. 물론 라파엘이 포함되어 있을 때의 이야기였지만 놈들도 이곳에서 놀기만 한 것이 아니다.

어느덧 중년이 되어버린 사냥개가 기른 허세 가득한 수염마냥, 놈들의 스펙과 경험도 함께 올라가 있다.

‘김아영도 괜찮은 수준이고….’

무엇보다 정하얀이 이곳에 있다. 세라핌 역시 크게 당황하는 모습이 눈에 비친다.

“아… 이러면 안 되는데….”

당연히 이쪽에서도 입을 열 수밖에 없었다.

“제가 지휘할게요.”

“네. 맡기겠습니다.”

“뭐? 사냥개. 미쳤어? 저런 꼬마한테….”

“그만. 김아영. 일단은 말씀에 따른다. 그렇지 않으면 힘든 상대야.”

“뭐야… 지금… 너… 저 수습 마법사를 알아? 그리고 도대체…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마리엔 뭐라고 말 좀 해봐. 너희들 뭐야? 단체로 미치기라도 했어?”

“온다.”

김아영은 누군가가 자신에게 이 사태에 대해 설명해 줄 것을 요구하고 있었지만 아쉽게도 그럴 시간은 없다.$

세라핌이 다시 한번 날개를 펼치자 마리엔이 신성주문을 외운다.

“버티기 힘들어. 주혁아!”

그사이에 사냥개 이주혁이 검 한 자루를 손에 꽉 쥔 채로 세라핌에게 쇄도하기 시작했다.

‘이 새끼. 쓸 만해졌어.’

그동안에도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녀석이었다. 조금만 더 익으면 한 번쯤은 써볼 만하다고 생각하고 있었던 게 몇 년 전이었던 것 같은데….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계단을 뛰어넘은 상태로 달려와 주니 입꼬리가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김아영 역시 그런 이주혁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놀랐다는 반응이다. 아마 그동안 실력을 숨기고 있었다는 거겠지.

라파엘의 라이벌을 자처하기에는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부족했던 녀석이었지만 단언하건대 지금의 녀석은 라파엘의 옆자리에 서기에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평범한 인간의 몸과 평범한 재능으로 자신을 극한까지 단련한 것이리라.

망원경으로 시야를 넓히고, 녀석을 위한 무대를 마련한다. 사냥개 역시 내 의도를 알겠다는 듯이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서비스 해주겠다 이거야. 시바. 원래는 너 같은 애들은 별루 상대 안 해주는 거 알지?’

세라핌이 당황하며 아무렇게나 손을 뻗자, 빛의 화살들이 쏟아진다. 기적의 사제 마리엔과, 라파엘 파티의 늙은 마법사는 최대한 방어주문을 외우며 화살들을 막아내고 있었고,

[움직여요.]

사냥개는 내가 알려준 길을 그대로 따라가며 화살들을 전부 피해내고 있었다.

심지어 피해내지 못할 것 같은 것들은 몸으로 받아낸다. 사냥개라는 별명처럼 녀석은 마치 세라핌을 물어뜯을 것처럼 달려들고 있었다.

악착같이, 그리고 독기를 가득 채운 얼굴로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빠르게 전진한다. 전위는 후위를 지키기 위해 웅크려야 하지만 놈은 오히려 세라핌을 밀어내는 것을 선택했다.

‘사실 내가 선택한 거자너.’

그게 이 새끼한테 조금 더 어울리자너.

공격이 최선의 방어, 녀석과 세라핌의 성향을 생각해 보면 가장 정답에 가까운 수였다.

그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는 듯이 놈은 종횡무진 날아다니고 있는 중, 중심을 잡아주는 라파엘이 있어야 좋은 파티라는 인식이 강하기는 했지만 지금은 그 회색 비둘기가 생각나지도 않는다. 이주혁도 이주혁이지만 다른 파티원들의 성장 또한 눈이 부시다.

결정적으로….

‘여기는 정하얀 보유국이자너.’

그녀가 캐스팅을 외울 수 있는 시간을 벌어 줄 수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다.

“말… 말도 안 돼… 이…이런 미친… 이게….”

김아영이 멍하니 이쪽을 바라보는 것이 느껴진다.

‘현대문물을 처음 본 원시인이 되어버렸자너.’

라파엘 파티가 보여주고 있는 모습은, 어떻게 봐도 1회 차의 일반적인 파티가 보여줄 수 있는 것과 차원이 달랐으니 말이다. 아니, 사실은 그것 이상이라고 봐도 무리가 없다.

사냥개가 움직이는 곳마다 적절한 버프 마법이 떨어지고, 녀석 하나를 위해 파티 전체가 유기적으로 움직이고 있는 모습은 그녀의 눈으로 봤을 때는 충분히 비상식적인 모습이었다.

마치 잘 짜여진 각본마냥 파티가 움직이고 있다.

그 중심에 있는 게 눈앞에 있는 수습 마법사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그녀가 저리 놀라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얘는 내가 지금 뭘 하는지 알면 뒤집어지겠네.’

도움이 필요한 것은 라파엘 파티뿐만이 아니었으니까.

진작에 이성을 잃어버린 희라 누나는 논외였지만 쓰로누스와 검을 마주하고 있는 김현성, 갑작스러운 기습에 대열을 정비하고 있는 린델의 모험가들이 이쪽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여기저기에서 개싸움을 하고 있었던 린델의 모험가들이 퀘스트에 맞춰 대열을 정비한다.

개인은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지만 하얀색 놈들과 린델의 모험가들이 천천히 분리되고 있는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처음에는 자신들이 뭘 하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던 모험가들도,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하늘에서 떨어지는 퀘스트의 목적이 무엇인지 이해하고 있을 터였다.

‘개싸움은 불리해.’

네임드들이야 둘째 치고 일반적인 모험가들과 녀석들과의 스펙 차이가 심했으니까.

개개인이나 소규모 파티가 싸울 수 있는 환경보다는 집단과 집단이 싸울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쓸모없는 건물도 좀 밀어버리고.’

“…….”

‘우리 쪽 엄폐물은 좀 남겨두고.’

일단은 맵을 만들어주는 것이 먼저였다.

-이… 뭐야. 도대체… 이게….

-나도 몰라. 이걸 보고 있는 신중에 하나가 도움이라도 주려나 보지.

-일단 밀어내! 미친 비둘기 자식들… 여기가 어디라고!

영문도 모른 채로 한 집단이 되어있는 린델 녀석들은 이제는 이쪽의 조언 없이도 스스로가 해야 할 일을 잘 알고 있었다.

마법사들을 한쪽에 모아 대공방어마법을 외우고, 전위들을 눈앞에 세우고, 병력들을 세분화한다.

방어 전선을 구축하고, 웅크리며 때를 기다리는 것 정도야 저 원숭이들도 할 수 있을 터였다.

‘그래도 손 좀 봐줘야겠자너….’

전투에 참여할 정신도 없었는지, 마탑의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김아영은 점과 점들이 흩어지며 면과 면이 되는 그 모든 과정을 지켜보고 있었다.

‘아니, 시바 얘는 싸울 생각이나 좀 하지.’

“너… 너… 정체가 뭐야. 도대체….”

“눈앞에 있는 적한테 집중하세요.”

“너… 이건… 퀘스트는… 혹시… 대, 대륙의 주신…이신가요? 그, 그것도 아니면 드… 드래곤? 위… 위대한 존재시여….”

“옛날 소설에서나 나올 만한 대사 날리지 말고 눈앞에 있는 비둘기한테나 집중하시라고요. 누나.”

“아… 네… 네!”

그제야 정신을 차린 김아영이 검을 들고 뛰쳐나가기 시작했다.

‘아직 1페이즈야.’

정하얀의 마법들은 온전히 녀석을 위해 사용할 수 없다. 린델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싸움에, 그녀의 화력은 여러 곳에 활용하는 것이 맞다.

마탑에서 뻗어 나간 마법들이 하늘에 그물처럼 펼쳐지자 하늘을 놀이터처럼 유영하고 있었던 비둘기들이 땅바닥에 내려앉는다.

-공격! 공격해!

-놈들이 바닥에 떨어진다. 정하얀 님이야!

사소한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너무 많이 보여주고 있는 것 같은데.’

어디선가 이 전투를 지켜보고 있을 녀석에게 너무나 많은 것들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이었다.

녀석과 대립하는 것이 거의 반 확실시되어 버린 이상, 최대한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숨기는 것이 맞다.

물론 이 정도는 내가 할 수 있는 것의 반의반도 되지 않지만, 그래도 습관이나, 전술적으로 어떤 움직임을 추구하고 있는지 같은 것들을 파악당하고 있을 확률이 높다.

‘시바 그래도 어쩌겠어. 지금 이렇게 해야지 일단 이놈들이 살아남을 수 있는데.’

세라핌과의 전투가 지속되고 있고, 얼핏 보면 우리가 밀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승리를 확정 지을 수 없다는 사실을 그 누구보다도 내가 더 잘 알고 있다.

세라핌을 던전 보스에 비유하자면 지금 약 2페이즈에 돌입한 시기.

근접전에 약한 만큼, 자신을 물려고 하는 사냥개를 부담스러워하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별 무리 없이 사냥개를 몰아내고 있었다.

쓰로누스나 케루빔처럼 근접 전투에 익숙한 녀석은 아니었지만 혹시 모르게 날아올 정하얀의 마법을 주의하는 것을 보면 영 맹탕은 아닌 모양.

어쩌면 1기영의 지시를 받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실제로도 정하얀은 계속해서 쏘아대고 있는 마법은 피하거나 막아내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물론 이것도 모두 견제기에 불과하다.

‘한 번에 죽여야 돼.’

허튼짓을 하기 전에 말이다.

“정하얀 님!”

이라고 그녀를 부르자 준비한 마법이 그녀의 손에서 튀어나간다.

‘좋아.’

2하얀의 주문을 알려줘도 무리 없이 소화하는 모습은 놀라울 지경.

한눈에 보기에도 불길해 보이는 검붉은 구체가 모든 것을 삼킬 것처럼 세라핌을 향해 쏘아져 나간다.

소리소문없이 주변에 닿는 것들을 압축시키며 나아가고 있는 모습에 당황하고 있는 세라핌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죽어. 이 미친 비둘기 새끼야.’

피하려고 날개를 펼치기는 하지만 도망칠 곳은 없다. 그동안 쏘아 보냈던 마법과 의미 없었던 전투는 모두 이 한 방을 위해서였으니까.

그렇게 놈이 검붉은 구체에 닿았을 때.

“아… 아아아아악!”

하는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을 거라고 여겼지만….

“…….”

“…….”

‘시바.’

세라핌을 안은 채로 손을 뻗고 있는 누군가의 모습을 보고서는 내 계획이 실패했다 판단할 수밖에 없었다.

‘도미니온스.’

천사들 중에서도 마법과 유틸에 특화되어 있는 그녀의 모습이 시야에 비친다.

당연하지만 세라핌의 모습은 성하지 않다. 날개들로 막으려고 했었는지 날개가 완전히 꺾여 있었고, 온몸에 붉은색이 칠해져 있는 것처럼 보였다.

“아… 아파! 아파! 흐윽… 아파 도미니온스!”

‘지랄.’

“왜 이렇게 늦었어… 도미니온스! 아파… 아프다고… 흐윽… 난 싫다고 했잖아. 나는….”

“추태 부리지 마세요. 세라핌.”

“그렇지만… 너무 아픈걸… 도미니온스… 끅….”

“우리의 일원이라는 자각을 가지셔야 해요. 당신은 너무 유약합니다. 세라핌.”

“하… 하지만 도미니온스.”

“저는 도와주지 않을 겁니다. 이번에는 말이에요.”

말은 그렇게 하기는 했지만….

녀석을 위로해 주고 싶다는 듯이 머리를 쓰다듬거나 등을 쓰다듬는다.

심지어 도미니온스의 손이 닿자 세라핌의 모습이 천천히 회복되는 모습이 시야에 비쳐온다.

물론 전부 회복할 수 없었는지만 움직이기에는 충분한 것처럼 보였다.

‘이러면 나가리인데.’

“…….”

“…….”

‘도망치는 게 맞는데.’

아니나 다를까.

“심판….”

“천… 천벌.”

수많은 황금색 검들이 하늘을 수놓기 시작했다.

“집중해요.”

저도 모르게 눈가가 파르르 떨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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