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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귀자 사용설명서-1341화 (1,339/1,590)

회귀자 사용설명서 1341화

귀환(1)

‘나… 나 지금 살아 있나?’

어깨와 다리, 등허리에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 가까스로 황금색의 비를 피할 수 있었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본다. 가장 먼저 시야에 비치는 것은 쓰러져 있는 사냥개와 마리엔의 모습이었다.

보일이 자기희생주문을 외워 보호마법을 펼친 모양인지, 그들도 무사한 것처럼 보인다. 금방이라도 숨이 끊어질 것 같았기 때문에 곧바로 그들을 향해 달려갈 수밖에 없었다.

“주… 주혁아….”

‘살아 있어.’

마리엔에게 먼저 달려가 품 안에 있는 포션을 먹인 것은 당연한 행동이었다.

이런 상황일수록 사제를 먼저 살려야 했으니 말이다. 그녀의 몸에 있는 황금색의 검을 뽑아낸 이후에 상처 부위에도 포션을 뿌려봤지만 생각보다 잘 아물지 않는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어떻게….’

“마리엔. 정신이 들어? 마리엔? 마리엔!”

“어… 어? 아영… 씨….”

“그래. 나야. 정신이 들어?”

“네. 주혁이는… 주혁이는….”

“사냥개는 괜찮아. 그보다 너희….”

묻고 싶은 것이 한두 개가 아니다. 여기저기에서 전투가 벌어지던 그 순간에도 말이다.

‘도대체 그 움직임은 뭐였지?’

사냥개도 사냥개였지만 이번 전투에서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이해할 수 없는 것투성이였다.

실력을 숨기고 있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었다. 자신도 바보는 아니었으니까.

하지만 이 정도로 다른 모습을 보여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사냥개도, 마리엔도, 그리고 파티에 다른 이들 역시 마치 다른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움직였다.

그 모든 게 위대한 존재로 인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걸 제외하고서라도 그들이 보여준 모습은 충격적이라고 하기에 충분했다.

자신은 단 한 번도 금발의 머리의 천사에게 닿을 수 없었지만 이주혁은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방금의 전투를 떠올려보자 사고가 정지된 것처럼 아무런 생각을 할 수가 없을 지경, 퍼뜩 다른 곳에 신경이 미친 것은 바로 그때였다.

‘그 수습마법사는?’

“하얀이 언니는?”

마지막 순간이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분명히 엄청난 숫자의 황금색 검이 계속해서 하늘에서 떨어져 내렸고, 파티가 그 검들을 막아내기 위해 최선을 다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정신이 없었기 때문에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도 이해가 가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그저 웅크리고 있을 수밖에 없었던 그 상황에서 말이다.

황급히 시선을 돌리자 시야에 비친 것은 덩치가 큰 세 사람과 하얀이 언니, 그것을 지켜보고 있는 어린 수습마법사였다.

어린 수습마법사가 하얀이 언니의 머리를 한 차례 쓰다듬은 이후에 멍하니 세 사람을 바라보고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빅보이….”

“…….”

“칼턴….”

“…….”

“유진….”

하얀이 언니와 저 수습마법사가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빅보이, 칼턴, 유진이라고 불리는 이들이 대신 방패가 되어준 것이리라. 그만큼 그들의 모습은 참혹했다.

“…….”

“…….”

그렇지 않아도 몸이 성해 보이지 않은 상태에서 온몸에 고슴도치처럼 검이 꽂혀 있다.

이해가 가지 않을 정도로 많은 양의 피 웅덩이가 고여 있다. 그들 셋이 만들어낸 것이 분명하리라.

최초의 수습마법사를 향해 몸을 던졌던 하얀 언니의 몸에는 몇 개의 검이 꽂혀 있는 것 같았지만 수습마법사는 상처 하나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이 만들어낸 피 웅덩이에서 구른 흔적들이 보였을 뿐이었다.

“괜찮….”

괜찮냐고, 하얀이 언니가 살아 있는 게 맞는지 당장 달려가 확인하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몸이 움직이지 않는다.

묵묵하게 세 사람의 몸에 꽂혀 있는 검을 뽑으며 중얼거리는 수습마법사가 신경 쓰였던 탓이다.

소년은 울고 있지 않았지만 저 소년이 얼마나 슬퍼하고 있는지는 전해져 온다.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얼마나 짜증 내고 있는지가 전해져 온다.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린다.

이상한 일이었다. 살기도 아니고 마력이 퍼져 나가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묵묵하게 검을 뽑아내고 있는 장면에 저도 모르게 몸이 굳어버리고 있다니, 저 모습을 바라보면서 움직일 수 없다니, 어느새 정신을 차린 마리엔과 이주혁 역시 조용히 그 모습을 바라보고 있었다.

“마리엔….”

“…….”

“저… 저 위대한 존재… 아니… 저 수습마법사는 도대체….”

“알려고 하지 마라… 김아영….”

“사냥개. 너는….”

“마리엔… 보일 영감은 살아 있나?”

“아니… 흐윽…. 죽, 죽은 것 같아.”

“제길… 명예추기경님은….”

“명예추기경님은 도대체 뭐야. 저 수습마법사가 어떤 종교집단에 수장이라도… 아니, 그보다 너희들은 도대체….”

“지금은 알려고 하지 마라. 나중에 설명할 수 있을 기회가 온다면 설명해 줄 테니까.”

“주혁아… 명예추기경님이….”

“나도 보고 있다.”

보일 영감의 상태를 확인하며 수습마법사를 바라보는 이들도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고 있는지, 그들에게 다가가려고 하지 않고 있다.

“일, 일단 저 수습마법사를 말려야지. 정하얀 님도 치료가 필요해. 포션을 먹은 것 같았지만….”

“…….”

“어떻게 할 거야. 그냥 지켜보고만 있을 거야?”

당황스러워서 자신도 모르게 내뱉은 헛소리에는….

“선택은 우리가 하는 게 아니야. 김아영. 저분이 하시는 거지.”

이해할 수 없는 대답만 들려올 뿐이었다.

어린 소년의 눈에서 검은 피눈물이 뚝뚝 떨어지기 시작한 것은 바로 그때였다.

“어?”

마치 누군가 수도라도 틀어놓은 것처럼 소년의 눈에서 피눈물이 뚝뚝 떨어진다.

그 모습을 본 마리엔이 화들짝 놀라 눈을 꼭 감는 것이 시야에 비친다.

“아… 아아아… 아아아…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전지전능하신 베니고어시여.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뭐라고… 뭐라고 말하는 거야.’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리엔! 도대체 뭐 하는 거야? 이주혁! 보고만 있을 거야?”

“눈 감아.”

“뭐?!”

“눈 감아. 김아영.”

“도대체 뭐라는 거야! 사냥개!”

“닥치고 눈 감아!”

무언가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은 알고 있다. 하지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는 알 수가 없다. 어린 소년의 머리카락이 순식간에 하얀색으로 탈색되기 시작한다.

“어?”

머리카락들이 스스로 꼬여 뱀의 형태를 만든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나 나왔던 메두사처럼, 소년의 머리가 금방 뱀의 머리로 탈바꿈된다.

쉬식거리는 소리들이 들려온다. 안 그래도 창백해 보였던 소년의 피부는 더 창백해지고, 눈동자 역시 붉은색으로 뒤바뀐다.

등에서는 날개가 뻗어 나오기 시작한다. 저걸 날개라고 표현해야 할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소년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이 보인다. 전투에 흔적 때문에 거의 반나체 상태가 되어버린 몸을 뱀들이 감싸기 시작한다.

“뭐야… 뭐… 뭐야….”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리엔, 이주혁! 저게 도대체 뭐냐고!”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저의 죄를 용서해 주시옵소서.”

마치 마리엔이 고장 난 것만 같다. 무슨 죄를 말하고 있는 건지, 누구에게 기도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녀의 목소리는 지금껏 자신이 들어온 목소리 중 가장 절박해 보였다.

목소리는 들려오지 않았지만 답을 확인할 수는 있었다.

[색욕과 영면의 군주가 강림합니다.]

“…….”

“…….”

“색욕과… 영면의… 군주… 악… 악마?”

아니… 저건 악마 같은 것이 아니다.

“초월자? 아니… 신….”

“…….”

“위대한 존재….”

이질적이다. 너무나 이질적인 것을 본 것처럼 느껴진다. 이 대륙에 떨어진 이래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을 많이 목도했었지만 저건 그중에서도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어떤 것이었다.

올바른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저 존재를 마주한 순간 영혼이 흔들리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아니, 영혼이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신이 어지럽다.

눈이 멀어버릴 것 같다. 지금 자신이 뭘 보고 있는 것인지에 대해서 자각하기가 힘들다.

누군가 평범한 인간이 초월적인 어떤 것을 마주하면 미치광이가 되어버린다고 했던가. 지금 자신의 상태가 딱 그 짝이었다.

“아… 뭐야….”

눈과 코에서 피가 흘러내리기 시작한 것을 자각한 것은 약간의 시간이 지난 직후, 지금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에 대한 자각도 없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저것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는 것 하나였다.

배에서도 계속해서 검은색의 무언가가 꾸역꾸역 흘러내리고 있었고, 정체를 알 수 없는 문양은 마치 어떠한 것을 상징하는 듯했다.

얼핏 노예의 낙인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럴 리가 없지 않은가.

타락한 신성함이라는 표현이 가장 잘 어울리는 모습. 색욕이라는 것이 다시 태어난 것처럼 보인다.

‘가지고 싶어.’

가지고 싶다.

저걸 가지고 싶다.

“…….”

저걸 가지고 싶다. 저걸 소유하고 싶다. 저걸 내 것으로 하고 싶다. 하지만 그럴 수 없다는 것을 이해하고 있다.

저것은 다가가기에는 너무 멀다. 평범한 인간이 다가가기에는 너무나도 먼 존재다. 그 사실이 너무나 슬퍼져 저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된다. 저건 자신이 가질 수 없는 것이다.

“흐윽… 흐으으윽… 하… 흐… 흐으으윽….”

머리가 어지럽고 정신이 혼미해진다. 움직일 수조차 없다. 어디에선가 이상한 향기가 나는 것처럼 느껴진다.

공중으로 천천히 떠오른 어떤 것이 조용히 주변을 돌아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색욕과 영면의 군주라는 이명처럼 색욕을 형상화한 것 같은 모습으로 조용히 중얼거리는 게 들려온다.

마치 몸이 굳어버린 것 같은 천사들이 보인다. 그들은 스스로의 목에 창을 가져다 대고 있었다.

하나둘 떨어지는 천사들이 눈에 보인다.

아. 어쩌면 나도 저것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이곳이 아니라 다른 곳에서라면 나도 저것에게 다가갈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머릿속에 들어와 꽂힌다.

아니, 사실은 아무것도 생각이 나지 않는다. 단지 눈을 뗄 수가 없을 뿐….

누군가 자신의 몸을 잡아당긴 것은 바로 그때.

“정신 차려. 김아영.”

“…….”

“…….”

“김아영! 정신 차려!”

“…….”

“김아영!”

“어? 어… 사냥개?”

힘들게 고개를 돌리자 그곳에는 눈을 감고 있는 사냥개가 있었다.

“바라보지 말고 눈을 감아. 그럼 조금은 나아질 테니까.”

“너… 너… 아니… 나 방금….”

“눈을 감아.”

“싫… 싫….”

녀석이 손을 뻗어 자신의 눈을 감기는 것이 느껴진다. 저걸 보면 안 된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지만 눈을 뗄 수가 없다.

계속해서 발버둥 치자 자신의 몸을 꽉 붙들고 있는 사냥개가 느껴진다.

지금 밖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알 수가 없었지만 계속해서 정적이 흐른다.

천사들이 떨어지는 소리 외에는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다. 누군가….

“부길드마스터!”

하는 소리가 들려오기는 했지만 누구의 목소리인지는 확인할 수 없다.

아니.

‘조혜진?’

조혜진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사냥개. 사냥개!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마리엔? 너도 거기 있어? 어?”

“…….”

“끝났어? 이제… 이제 끝난 거야?”

“…….”

“대답 좀 해줘. 모두….”

“…….”

“…….”

“나… 눈 떠도 되는 거지? 응?”

“…….”

“눈 뜰 거야. 그래도 되는 거지?”

“…….”

사냥개도, 기적의 사제도, 색욕과 영면도 눈에 보이지 않는다.

자신이 목도했던 것들이 꿈이었던 것마냥 아무것도 없는 장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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